Dam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56)
돈지랄 네크로맨서 (156)
대마녀
마녀들은 차원을 이동하며 많은 이득을 본다. 카이사르 대륙처럼 직접적인 이득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거래와 같은 간접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위 차원일수록 보통 그랬다.
그정도쯤 되면 차원의 원주민들과 싸우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데스 로드의 차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게 최악의 실수였다는 건 머지않아 드러나게 되었다.
그가, 동방 마녀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까. 잔혹한 리치는 되돌아간 마녀의 궤적을 쫓아 찾아왔다.
마녀회가 보유한 수많은 행성이 불타 없어졌다.
재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데스 로드뿐만 아니라 그 밑에 있는 군단장들조차 끔찍한 강함을 보여 주었으니까.
용기사 세드릭.
지옥마귀 발칸.
피의 군주 올리비아.
셋도 톡톡히 악명을 떨쳤지만…….
밴시 메르헨은 그런 군단장들 사이에서도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마치 별의 추락처럼 수많은 마녀들이 그녀의 마법 앞에 우수수 떨어졌다.
대마녀들조차 다르지 않았다.
아난케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마녀 셋을 상대로도 시종일관 여유를 내보이던 언데드.
―바보. 셋이서 덤비는데도 이게 다야?
그날 아난케가 얻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700년.
무려 700년간 마법에 미쳐 살았다. 전 차원의 천재들이 모이는 마녀회. 그곳에서도 아난케는 정점을 찍었다. 고작 700년 만에 견습 마녀에서 대마녀의 직위에 올랐다.
당연히 전 차원 최고의 실력은 아니겠지만, 그렇다 해도.
마법이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앞에서 오만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난생처음으로 겪었던 처참한 패배였다.
또한 지독한 멸시기도 했다.
바보라니?
바보라니!
짧디짧은 두 글자가 700년의 노력을 모래성처럼 무너뜨렸다.
그날의 기억은 아난케의 머릿속에 낙인처럼 뿌리박혔다.
듣자마자 평소 그녀가 아끼던 까마귀조차 단숨에 터뜨려 버릴 정도로.
또한, 듣자마자 오랜 수련을 뒤로한 채 곧바로 움직일 정도로.
9구역.
당초 르루예가 움직일 만한 궤도를 찾아 뒤지던 아난케가 눈을 빛냈다.
“찾았다.”
르루예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찾았다.
또한.
마치 누가 훅 납치하기라도 한 것처럼 중간에 완전히 꺾여 버린 궤도 또한 보였다.
‘흐릿하군.’
선임 마녀가 왔다면 여기서 추적이 끊겼을지도 모른다. 설사 숙련 마녀라 한들 껌껌한 방에서 실 꿰듯 한참을 조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난케는 대마녀였다.
그것도 흉조라는 운명과 깊게 관련된 영역을 다루는 대마녀.
그래서였다.
보자마자 알았다.
무언가가 르루예의 운명에 개입했다는 걸.
그리고 운명을 비틀어 이끌었다는 걸.
“그 밴시는 이런 거 안 쓰는데.”
죽음 마법 전문가다.
다른 마법 쓴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운명 마법이라면야.
‘제삼자의 소행인가.’
궁금할 땐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 큰 걱정은 없었다. 데스 로드가 직접 현신한 건 아닐 테니까.
그만한 존재가 직접 부활했다면, 이미 전 차원에 소식이 알려졌어야 정상이다.
까마귀?
흉조를 토해 내기도 전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린 채 죽어 나갔으리라.
그건 단순한 흉조 수준으로 평가할 게 아니었으니까.
직접 부활하는 대신 모종의 수단을 썼을 것이다.
대충 그게 뭔지는 짐작이 갔다.
그렇게 아난케가 희미한 흔적을 따라 고속으로 움직였고.
머지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최하위 차원들이 주로 모인 10구역. 카이사르 대륙 또한 이곳에 속해 있었다.
곧이어 아난케가 눈을 빛냈다.
“등가 교환?”
차원에 새겨진 기억.
그건 한 마녀의 절규이자 악몽이었다. 그리고 아난케에게 있어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정보이기도 했다.
낱낱이 기억을 살펴본 아난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르루예.
나름 재능있는 정식 마녀였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죽음의 순간이었다 한들 등가 교환을 사용하진 못했을 테니까.
‘기회가 되면, 되살려야겠군.’
목숨 바쳐 기억을 건넨 대가로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녀의 신형이 한 행성으로 향했다. 행성의 주변엔 감지 마법이 떠돌고 있었다. 마법에 들어간 마나의 양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격 또한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 구성은 대단히 정교했다.
“이젠, 다를까?”
아난케가 손을 뻗었다.
스르르.
마법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으며 해제됐다.
열 갈래의 신호가 퍼졌다.
아난케가 곧바로 그 신호들을 차단했다.
그 순간이었다.
신호 중 하나가 일백 개로 작게 분열한 채 또 퍼져 나갔다.
그것도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
이번엔 너무나도 작게, 수천 개로 분열해서 계속 길을 뚫는 감지 신호가 보였다.
그것도 막았다……고 생각했다.
투웅…….
감지 마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할 뻔했다.
아난케가 눈을 끔뻑였다.
딱 하나.
하나를 놓쳤다.
“하하! 여전하구나, 밴시.”
과거였다면 일천 개를 놓쳤으리라.
하지만 이젠 단 하나였다.
까마귀의 몸을 터뜨린 보람이 있었다.
‘악몽이라고?’
이젠 아니야.
그녀의 신형이 행성 안으로 쑥 빨려 들었다.
* * *
까악!
불길한 까마귀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그걸 들은 이리스가 동공을 벌벌 떨었다.
‘어, 어쩌면 좋지?’
아난케가 직접 왔다고?
이런 별 볼 일 없는 차원에?
뇌하고 심장에 폭탄을 심었는데.
진짜 큰일 났다.
그렇다고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녀가 눈을 데룩 굴리는 사이.
김민우는 팔짱을 낀 채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제 막 진짜 클리어 조건 알아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나가긴 너무 아깝다.
안 싸우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때.
까마귀가 마구 몰려들었다. 그 까마귀가 뭉쳐 여성의 형상을 취했다.
등 뒤에 마치 타락 천사처럼 시꺼먼 날개가 달린 여자.
그녀가 이리스와 메르헨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탈출 수단이야, 네크로맨서.”
―마나 움직이지 마. 바로 터뜨려 버릴 거니까.
“다리 아픈데. 의자 소환하는 것도 안 되나?”
―서서 이야기해. 마나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밴시. 못 보던 새 많이 깐깐해졌구나.”
―오는 거 다 들켰어. 멍청한 까마귀.
아난케가 빙그레 웃었다.
“네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거다. 좋은 방향일지도 모르지. 소환수는 이만 조용히 하도록.”
―…….
메르헨이 이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라. 주제가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을 테지. 아닌가?”
“맞습니다.”
김민우가 쿨하게 인정했다.
보아하니 저 대마녀, 게이트와 클리어 조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요?”
“목적을 말하지. 거래를 하고 싶다. 서로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나? 내가 이름 앞에 맹세한다면 가능하겠지.”
―허튼짓하지 마. 그렇게 마법 쓰려는 거 모를 줄 알아?
“밴시. 난 네 주인에게 물었다. 거기에…… 날 막을 자신이 없나? 하긴. 아까 딱 하나만 놓쳤었지.”
은근슬쩍 메르헨을 도발하는 아난케. 입술을 깨문 그녀가 김민우를 바라보았다.
―민우. 저거 수작질이야. 맹세하면 몸 안의 마나가 움직일 거야. 그걸로 마법 쓸지도 몰라.
날카로운 고양이처럼 반응하는 메르헨. 그녀가 저 정도로 다른 마법사를 경계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고민하던 것도 잠시.
김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시죠, 맹세.”
“시원시원하군.”
“저도 나름의 수단이 있는지라.”
위험이 없으면 보상도 없다.
지금이 딱 그랬다.
대마녀가 정말 거래할 생각이 있다면, 대어를 낚을지도 몰랐다.
물론 뭘 거래하고 싶은지.
조건은 뭔지.
그런 거 하나도 모르긴 하는데.
‘어차피 지금 들어도 몰라.’
마녀가 거짓말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맹세를 운운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만약 다른 생각 먹고 마법 쓴다?
‘그럼 핵 써야지.’
별수 있나.
핵폭탄을 써서라도 탈출각 잡아야 한다. 근데 그걸 감수할 만큼 대마녀의 거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메르헨. 부탁할게.”
―……알았어. 민우는 나만 믿어.
메르헨이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대마녀가 입을 달싹였다.
“나, 아난케 로와즈로우 아벨론데는 지금부터 진실을 말할 것을 맹세한다.”
파앗!
아난케의 몸 위로 푸른 빛이 터져 나왔다.
“밴시. 보았겠지?”
―……그래. 맹세했어.
메르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을 받은 아난케가 김민우를 바라본 채 말했다.
“우린 거래가 가능하지. 하지만 용군단은 다르다. 그쪽은 천적 관계야.”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용기사와 용은 천적인 관계다. 마녀와 밴시 또한 그럴 것 같나?”
“천적이 아니다?”
“검을 잘 쓰는 검사를 보고 검사들의 천적이라 칭하나? 보통은 안 그러지.”
곧이어 어깨를 으쓱한 아난케가 메르헨을 바라본 채 말했다.
“우리가 천적인가? 아, 용기사와 용과 같은 관계냐 묻는 것이다.”
―그건…… 아니지.
김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제안하실 건?”
“협력.”
“마녀회가 이렇게 친절한 단체인 줄은 처음 알았네요.”
“투자는 저점에 해야지. 안 그런가?”
“원한은 잊으신 겁니까?”
“아니, 그럴 리가.”
곧이어 잠잠한 눈빛을 띄운 채 아난케가 말했다.
“잊은 적 없고, 잊을 생각도 없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잠시 미뤄 두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대의?”
“외신이 깨어났다.”
“……외신?”
김민우의 눈이 진지해졌다.
“그래. 외신. 한때는 단지 형이상학적인 존재였을 뿐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그는 이미 실체를 얻었다. 전 차원이 흔들리고 있어.”
“내가 외신과 싸워 주길 바라는 겁니까?”
“언젠가는. 물론, 이건 큰 범위의 협력일 뿐이다. 작은 협력 또한 있지.”
“작은 협력이라면…….”
“용군단의 몰락. 그대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거참, 매력적인 제안이네요.”
아난케의 제안은 정말 흥미로웠다.
고룡?
혼자 잡아내려면 세월 좀 걸릴 것이다. 찾아내는 것도 일이고, 설사 찾아낸다 한들 용군단과 같은 단체에 속해 있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근데 이쪽도 마녀회라는 뒷배를 둔다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잡아낼지도.’
만 년 이상의 고룡 시체.
이게 제일 구하기 어려워 보이는 재료 아니던가.
“근데, 대의를 위해선 손잡는다면서요. 용군단은 아닙니까?”
“이미 대다수의 고룡들이 외신과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이쪽에게도 적이었다.
자신은 외신 사냥 자체가 근본적인 목적이지 않은가.
“그럼 협력은 어떻게 진행할 생각입니까?”
“엄밀히 말하면, 까마귀 학파와의 협력이다. 내 의견이 마녀회 전체의 뜻은 아니니까. 우리 학파에서 지원할 수 있는 걸 해 주지. 요구할 것 있나?”
“혹시 학파에 이런 것들 있습니까?”
곧바로 글레이프니르의 재료를 말했다.
덤덤히 듣던 아난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록의 피와 미미르의 한숨은 건네줄 수 있을 것 같군. 심연 군주의 혈맥은 없다. 다만 서식지는 알고 있지. 네게 연결시켜 줄 수 있다.”
“공짜로?”
“그럴 리가. 이것들은 귀한 재료들이다. 심연 군주의 서식지를 연결해 주는 것 또한 그렇지.”
하긴.
이것들 다 공짜로 퍼 주면 협력이 아닌 호구나 다름없었다.
명색이 수백 살 이상 산 대마녀인데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있나.
“그럼 대가로 원하는 게 뭡니까.”
“너의 몸에 한 가지 마법을 새기는 것. 내용은 별거 없다. 관찰일 뿐이니.”
“그거, 별거 있는데?”
―이런 미친년이.
언데드 하나와 사람 하나.
그리고 마녀까지.
셋이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