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61)
돈지랄 네크로맨서 (161)
그리프 가문과 자신의 연결점.
이건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극소수 외엔 모르는 정보였다.
근데 외부인인 김민우가 느닷없이 그 주제를 꺼냈다.
한시아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김민우 또한 머리가 복잡한 건 마찬가지였다.
‘원래 저 정도로 말랐나?’
어찌 됐든.
김민우가 말을 이었다.
“가주한테 인생 저당 잡힌 채 계속 살 겁니까? 당신 이번에 돌아가면 미래 없어요. 뼛조각 하나 안 남긴 채 빨아 먹히겠지.”
“…….”
“제가 그리고 한국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침묵한 채 듣던 한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라우라는 입 닫고 조용히 듣고 오라고 했지만, 이미 그러는 건 불가능했다.
“……콜록! 상관없어요. 재능? 가지라 하죠. 제겐 저주일 뿐이니.”
재능.
평생을 옭아맨 주박.
지긋지긋했다.
마법 또한 혐오스럽다.
대체 그게 뭐라고.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나 망쳐 놓은 것인지. 그게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한시아는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마법을 발현하는 것도 전부 가문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빌어먹을 재활 치료 따윈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어렸을 때부터 자신에게 늘 당부했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원하는 건, 둘이서 행복하게 사는 거야.
―가문을 거스르지 말렴. 순응하는 것이 최선이란다.
―재능? 그게 뭐가 중요하겠니. 그거 그냥 주고, 엄마랑 평범하게 살자. 응?
한시아에게 있어 어머니란 존재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일하게 그녀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
끔찍한 아버지란 인간에게서 자신을 보호해 준 사람.
10년이라는 한시적인 시간이나마 자신을 위해 자유를 가져다준 사람. 어머니가 원하는 건 그녀가 그리프와 대적하는 게 아니었다.
평범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그녀는 그걸 원한다.
한시아 또한 그것에 동의했다.
그리프 가문과 맞선다?
그들의 힘은 헤아릴 수 없이 깊다. 또한 아버지란 존재는 그녀에게 있어 트라우마나 다름없었다.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크나큰 공포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자유를 되찾아 준다는 말에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때였다.
김민우가 냉소한 채 말했다.
“제가 오해하게 말했나요?”
“오해라뇨?”
“뼛조각 하나 안 남긴 채 빨아 먹힌다는 거 말입니다. 그거, 당신 죽는다는 소리입니다.”
“죽는……다고요?”
“그럼 편하게 재능만 빨리고 끝날 줄 알았습니까? 애초에 그게 가능한 구조 같던가요?”
“콜록! 콜록! 전 여전히 살아 있어요. 지금도.”
“반은 남겼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남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니 살아 있는 겁니다. 아직도. 근데…… 원래 그렇게 기침을 자주 하십니까?”
“……요즘 좀 심해지긴 했어요.”
김민우가 눈을 찌푸렸다.
원래 한시아의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은 건 맞았다.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뜯기고 온갖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좀 심한데.’
생각보다 많이 말랐다.
몸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검진 같은 건?”
“……딱히 이상 없다고 했어요.”
“어쨌든, 당신 죽는다는 건 사실입니다. 지금도 몸 상태 안 좋잖아요.”
“가문에선, 그로 인한 부작용이라던데요.”
“재능 뜯은 부작용?”
한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만 가져가서 균형이 무너졌다고. 그러니 다 가져가야 정상이 될 거라 했어요.”
그때.
김민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상담실 안으로 나온 메르헨이 물었다.
―민우. 무슨 일이야?
“여긴 한시아라고, 아카데미 학생인데. 이 사람 좀 한번 봐 줄래?”
―응.
곧이어 메르헨이 눈을 좁혔다.
한시아를 빤히 바라보던 것도 잠시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재능을 파 먹혔네? 그래서인지 혼도 불완전해.
“영혼을 말하는 거야?”
―맞아. 흔들렸어. 근간이. 잠깐만.
그렇게 말한 메르헨이 한시아를 향해 다가갔다.
―너, 마법 발현 잘 돼?
“그냥, 그럭저럭…….”
―그런 조악한 혼으로는 잘 안 될 텐데. 아니야? 정체성도 다 잃은 상태인데?
“……정체성이요?”
―응. 말하자면…… 너 이제 마법사 아니야.
“……네?”
―마법사로서의 근간이, 없다고 이제.
“하지만 발현은 되는데요……?”
―되기야 하겠지. 남은 걸 통해 억지로 쥐어짜는 중이니까.
“잠깐만. 마법사가 아니라고?”
―내가 보기엔 그래. 진짜야. 너무 많이 파 먹혔어. 근간을.
“대체 얼마나 먹혔길래?”
―8할 이상?
“그만큼이나 먹혔다고?”
김민우의 눈이 커졌다.
한시아가 재능을 빨아 먹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보통은 5할 정도 수준이었다.
그제야 왜 한시아가 병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했다.
50% 남는 것과 20%도 안 남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 아니던가.
고개를 끄덕인 메르헨이 말을 덧붙였다.
―응. 깔끔하게 핵심만 떼 먹었어. 내 생각엔 도구 쓴 거 같아.
“도구?”
―그게 아니면 지구의 마법사가 이렇게 했다는 거잖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나도 힘들어. 권능이 더 되돌아온다면 모를까.
루카스 그놈의 재능이 그 정도일 리는 없으니 도구의 도움을 받았다는 건가?
그럴듯했다.
그때였다.
한시아가 절박하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하렴.
“……만약 제 남은 재능이 다 흡수되면, 전 죽나요? 사는 게 아니라?”
―나무 있잖아. 기둥만 좀 남기면 살 거든? 근데 뿌리까지 다 뽑으면 살 거 같아?
“그게, 뿌리를 뽑는 일이라고요? 다 가져가면 정상이 된다고 했는데…….”
―너, 완전 바보구나? 지금도 혼이 흔들거리는데.
“거짓말…….”
―네 몸 상태를 보면 모르겠어?
한시아가 침묵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기억도 흐릿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태 엄마와 함께 자유롭게 살 그날을 기다리며 버텨 왔다.
근데 그 결과가 죽음이라고?
거짓말.
거짓말…….
“콜록! 거짓말!”
말도 안 됐다.
그럼 자신은 죽으려고 20년을 넘도록 시달렸다는 소리밖에 안 되지 않은가.
그때.
김민우가 말했다.
“당신 어머니가 그러던가요? 재능 주고 평범하게 살자고.”
한시아의 눈이 찌푸려졌다.
“어디까지 절 조사한 거죠?”
“어머니를 많이 의지하더군요. 이해합니다. 여태 당신을 사랑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테니.”
한시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미 그녀의 머리는 포화 상태에 가까웠다. 더 이상 이런 주제를 버틸 수가 없었다.
“저, 갈게요. 상담 다 했어요.”
“근데 말입니다. 그 사랑이 진짜일까요?”
“콜록! 엄마를 모욕하지 마!”
한시아의 눈에 핏줄이 섰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엄마를 욕되게 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근데 김민우가 그 선을 단숨에 넘어서고 있었다.
무례를 넘어 폭거였다.
어깨를 으쓱인 김민우가 계속 말했다.
“가주 루카스. 참 많은 사생아를 뒀죠.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그 자체가 하나의 거래일 거라는.”
“…….”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재능에 따라 모친이나 그쪽 가문에게 보상이 가는, 그런 종류의 거래 말입니다.”
“……설사 그렇다 한들 엄마가 날 사랑한다는 건 변하지 않아.”
한시아의 눈이 번들거렸다.
아이였을 때부터 가문을 벗어났을 때조차도 어머니는 자신과 함께였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했다.
아니, 사랑해야만 했다.
그걸 부정하는 건 그녀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삼단 논법이라고 아시나요? 이미 알려진 두 개의 논법으로 하나를 추측해 보는 방식입니다.”
곧이어 김민우가 독약 같은 말을 내뱉었다.
“한시아는 재능을 더 빼앗기면 죽는다. 그녀의 어머니는 재능을 주라고 한다. 그럼 여기서 도출되는 내용이 뭘까요?”
한시아의 손이 크게 떨렸다.
기민한 머리는 이미 그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다.
“……그럴 리 없어. 엄마는 몰랐을 거야. 속았겠지. 그 악마들에게.”
재능만 주면 행복하게 살게 해 주겠다고. 이젠 더 이상 모녀를 속박하지 않겠다고.
그리프 쪽에서 그런 달콤한 말을 뿜어낸 게 틀림없었다.
순진한 그녀의 어머니는 영락없이 속아 넘어간 게 틀림없을 터.
딱 거기까지였다.
한시아가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은.
그때.
김민우가 서류 한 장을 건넸다.
“한번 보시죠.”
경계하듯 그를 노려보던 한시아가 서류를 홱 집었다. 그곳엔 자신의 어머니 ‘김하은’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도박?’
20대의 나이에 독일로 유학을 와, 연극판을 전전하다 큰 빚을 졌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러다 그리프 가문과 연줄이 생기고, 자신을 낳고.
그녀의 통장에 계속 쌓여 가는 ‘성의’와 그로 인한 끝없는 사치.
최근까지도 그녀는 온갖 도박판에 출입하고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지원금이 좀 많죠?”
“……당연히 받아야 할 금액일 뿐이야. 양육비와 다를 거 없어. 여기 아카데미 다니는 데 한두 푼 드는 줄 알아?”
“그렇다고 수백억 단위가 들지도 않죠.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녀가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돈을 사랑했던 것인지.”
한시아의 손이 벌벌 떨렸다.
자꾸만 후벼지고 있었다.
그게 너무 아팠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근데,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내용이 계속해서 귀에 꽂힌다.
그녀의 눈시울이 확 붉어졌다.
“나,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왜…….”
“이대로 당신 모친만 믿다 죽으러 갈 겁니까? 확인하는 거,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요. 인생 충분히 고달프지 않았습니까.”
“다, 당신이 뭘 안다고…….”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당신, 이대로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다는 것쯤은.”
한시아가 침묵했다.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았다.
삶을 저주했다.
그렇다 해도.
김민우의 말이 맞았다.
죽고 싶지 않았다.
정말 보잘것없는 삶인데도 그랬다.
“콜록! 뭘 어떻게 확인하겠다는 건데요.”
“당신 어머니가 연극판에서 많이 뛰어다녔었죠. 아마 연기를 아주 잘할 겁니다. 그냥 물어서야 진실을 알 수 없겠죠.”
무려 20년간 가스라이팅해 왔으니, 그 실력이야 알 만했다.
이쪽이야 플레이어였기에 그걸 그냥 무시하고 나아갔던 거고.
한시아는 그게 아니니 저렇게 반응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어머니란 삶의 전부에 가까울 테니까.
침묵하는 한시아.
그녀를 향해 빙긋 웃었다.
“근데 말입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 해도 감각을 속일 수는 없거든요. 그럴 땐 맥박이 빨라지거나, 침샘이 마른다거나, 동공이 흔들린다던가 막 그래요.”
“……그, 그래서요.”
“지금부터 한시아 씨에게 마법을 걸 겁니다. 진실의 마법을.”
곧이어 메르헨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원할 때 마음먹으면 네 감각이 증폭될 거야. 땀구멍이 열리는 것까지 죄다 보일 정도로. 단, 오래 쓰진 마. 무리가 갈 테니까.
“들으셨죠? 가서 확인해 보면 됩니다.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 오늘 상담 끝입니다.”
곧이어 김민우가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인벤토리 안에 넣어 두고 있어요. 필요할 때가 올 테니.”
한시아의 가장 무거운 족쇄.
그건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채찍과 당근이지.’
모두가 차갑게 그녀를 멸시할 때.
유일하게 모친만큼은 달랐다.
그게 바로 당근이었다.
아이 때부터 이어진 학습은 결국 의존으로까지 발전했다.
유일하게 사랑을 주는 ‘척’ 연기한 사람. 그렇기에 그녀가 가장 맹목적인 사랑을 바치는 사람.
‘가장 먼저 그걸 부순다.’
아니면 한시아를 구할 수 없을 테니까.
* * *
상담이 끝나고.
그녀가 라우라에게로 향했다.
“어땠어?”
“……그냥. 별 이야기 없었어. 메르헨? 그 소환수가 좀 신기한 것 정도.”
“흐음. 그래?”
“어.”
하기야.
한시아가 보잘 것 있는 마법사면 뭐가 좀 달라지겠지만, 사실 그녀는 그리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었다. 당연히 별일 없었겠지.
“나, 엄마 보고 싶어.”
“하긴. 좀 됐나?”
“세 달째잖아.”
“좋아. 외출 가자.”
라우라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모친은 그리프의 관리 아래 있었다.
한시아를 컨트롤하는 가장 주요한 도구 중 하나였다. 보여 주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약속만 잡으면 되니까.
도박에 미치긴 했어도 돈줄의 명이니 알아서 복귀해 있겠지.
그렇게 라우라와 한시아가 외출권을 끊었다.
차에 앉았을 때.
라우라가 슬쩍 물었다.
“웬일이래? 요즘 통 보러 안 가더니.”
“……좀 아파서 그랬을 뿐이야.”
요즘 따라 유독 병세가 심해지고 있었다. 엄마에게 마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가지 않았을 뿐.
그리웠던 건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을 때.
라우라가 빙긋 웃은 채 말했다.
“오늘은 넉넉히 줄게. 3시간. 그 정도면 충분하지?”
“…….”
고개를 끄덕인 한시아가 펜트하우스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안에 탑승한 그녀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했다. 김민우와 메르헨의 대화.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의심까지.
모든 것이 뒤엉켜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럴 리 없어. 엄마는 날 사랑해. 분명히.’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한편으론 자꾸만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재능을 포기하라는 말. 그 말에 담긴 진심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한시아의 심장이 요동쳤다.
곧 문이 열리고, 저 앞에는 엄마가 있을 터였다.
‘만약 그 말이 진짜면 어떻게 하지? 엄마가 날 속였다면…….’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지금껏 내 편이 되어 준 건 엄마뿐이었는데.
그 사랑만큼은 진실일 거야.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이제 곧 문이 열리고 엄마를 만나게 될 터였다.
곧이어.
“우리 딸, 왔구나?”
그녀의 엄마, 김하은이 모습을 드러냈다.
꿀꺽.
한시아가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