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62)
돈지랄 네크로맨서 (162)
“엄마.”
“어이구, 내 새끼. 왜 이렇게 말랐어. 요즘 많이 바빴다면서? 괜찮아진 거야?”
“……응. 엄마도 잘 지냈지?”
“그럼. 잘 지냈지. 우리 시아 생각하면서.”
김하은이 빙긋 웃은 채 답했다.
한결같이 미소지어 주는 엄마.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걸 본 한시아가 내심 안도했다.
‘날 사랑하지 않아?’
김민우의 말을 떠올린 그녀가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
결코 그럴 리 없었다.
저건 오로지 진짜 가족에게만 보여 줄 수 있는 미소였다.
엄마는 자신을 사랑한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다만.
호기심이란 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냥, 한번 확인만 해 보는 거야.’
그 정도는 상관없잖아?
어차피 날 사랑하는데.
괜히 뒤숭숭하게 있느니 확실하게 확인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게 나았다.
단지 그런 과정일 뿐이다.
절대 김하은을 의심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마음먹은 그녀가 김하은을 바라보았다.
“저녁은 먹었어? 밥 먹을래? 닭볶음탕으로?”
“아직 배 안 고파서. 좀 있다가. 근데 있잖아…… 나, 조금 무서워.”
“뭐가?”
그 순간 메르헨이 걸어 준 마법이 발동되었다.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해졌다.
마치 초월이라도 한 것처럼.
그 대가라도 되는 것일까.
두통이 밀려들었다.
머리를 흔들던 그녀가 말했다.
“……가문에 돌아가는 거. 지금도 몸이 안 좋은데…… 혹시 그쪽에서 거짓말했으면 어떻게 해? 잘못되는 건 아닌지 걱정돼.”
그때였다.
김하은의 손이 살짝 떨렸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라면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 미세한 차이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증폭된 감각이 이상을 알아챘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한시아의 눈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내린 사이.
빙긋 웃은 김하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채 말했다.
“그럴 리 없잖니. 엄마가 다 확인했단다. 시아는 자유로워지는 거야. 더 이상 감시도 없을 거고.”
“……진짜?”
“그럼. 진짜지. 줄 거 다 줬잖니. 그놈들도 사람이라면 이만 놔줘야지.”
머리에 닿은 그녀의 손 위로.
쿵.
쿵.
쿵.
훨씬 더 빨라진 맥박이 마치 천둥소리처럼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한시아가 멍하니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귀를 의심하고 싶었다.
아니, 이 모든 게 그저 끔찍한 악몽이기를 바랐다.
‘아, 아니야…….’
한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이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김민우가 의도적으로 속임수를 끼워 넣었을지도 몰랐다.
분명 그럴 것이다.
메르헨은 대단한 마법사 아니던가. 자신 같이 재능 다 빼앗긴 쭉정이 하나 속이는 건 일도 아닐 터.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데.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정말일까?
정말 김하은은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사지로 보내려 했던 것일까?
잠시 입가를 달싹이던 그녀가 마음을 진정시킨 채 김하은의 손을 덥썩 잡았다.
“어, 엄마.”
“응?”
“그, 엄마는…… 요즘 행복해?”
“엄마? 그냥 뭐…… 괜찮지?”
아까와 달리 매우 평온한 대답이 들려왔다.
맥박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짓과 진실.
두 가지의 반응은 너무나도 상반되었다. 한시아가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반찬은 뭘 좋아하는지.
요즘 동네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등.
너무나도 평이한 질문들이었다.
딱히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는 질문들.
그래서일까.
맥박은 아까와 달리 너무나도 평온했다.
계속된 질문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 김하은이 물었다.
“무슨 일 있니? 안 하던 질문도 다 하고.”
“아, 아니. 일은 무슨. 그냥 엄마 오랜만에 보니까…….”
“실없기는.”
“그, 그럼 있잖아…….”
“응. 말하렴.”
“……엄마는, 나 사랑해? 사랑하지? 그렇지? 맨날 그랬잖아. 나 사랑한다고.”
“그럼. 사랑하지. 그걸 질문이라고.”
맞잡은 손 사이로 느껴지는 맥박이 조금, 빨라졌다.
한시아가 다급히 물었다.
“어, 얼마만큼……?”
“세상에서 무엇보다 가장 사랑한단다. 그 무엇보다도 더.”
늘 들었던 말.
늘 믿고 있었던 말이었다.
의심할 내용도, 이유도 아니었던 말.
그런데…….
쿵.
쿵.
쿵.
김하은의 맥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왜?’
사랑을 물을 때마다.
거짓이라는 것처럼 자꾸…….
왜 이렇게 뛰지?
이 순간 증폭된 감각이 너무나도 저주스러웠다.
그녀의 목구멍이 칼칼해졌다.
숨을 쉴수록 가슴이 미어졌다.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체 왜?
어째서?
거짓말이다.
그냥, 거짓말이다.
근데,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터져 버린 둑처럼 흘러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시아야. 갑자기 왜 울고 그래. 응?”
“……그, 그냥…… 오랜만에 엄마 보니까…… 좋아서…… 막…… 안심이 돼서…….”
한시아가 슬피 웃은 채 답했다.
두통에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초여름인데도 너무 추웠다.
* * *
한시아 외에도 열아홉의 상담이 대기 중이었다.
메르헨이 전부 도맡았다.
그도 그럴 게 마법사들과 나누는 이야기 아니던가.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다행히 메르헨은 상담을 제법 잘해 주는 편에 속했다.
“세상에! 이게 그 마법 증폭입니까?”
―이렇게 해 봐. 메모했어?
“네! 감사합니다!”
적당히 마법만 인도해 주면 대만족한 채 돌아가곤 했으니.
그렇게 상담이 끝났을 때였다.
메르헨이 이쪽을 빤히 바라본 채 말했다.
―민우, 사용했어.
“그래?”
―응. 좀 오래 쓰네. 걔 몸 상태론 감당 안 될 텐데.
“위험한 수준이야?”
―조금? 궁금한 게 많긴 한가 봐.
“아마 그렇겠지.”
원래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하물며 그 영역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에 속해 있다면 판도라의 상자, 안 열고는 못 배긴다. 한시아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충격이야 받겠지만…….’
별수 있나.
때론 극약 처방이 해답일 때가 있었다. 한시아가 그런 경우였다.
몸 상태가 생각보다 더 안 좋다.
달리 말하면 루카스를 빠르게 잡아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빼앗긴 재능을 돌려받는 방법은 그것뿐일 테니까.
“아까, 마법사가 아니라고 했잖아.”
―응.
“재능을 돌려받으면? 다시 마법사가 되는 구조야?”
―음…… 아닐걸?
“아니라고?”
―예시를 들어 줄게.
메르헨의 손 위로 둥그런 찰흙이 생성되었다. 곧이어 꿈틀거리던 찰흙이 형상을 갖췄다.
둥그런 고깔모자에 회색 로브를 입고, 길쭉한 지팡이를 든 형상이었다.
―민우는 이걸 보면 뭐가 떠올라?
“마법사.”
―그렇지? 근데 왜 그렇게 생각했어?
“지팡이와 모자, 로브 때문에?”
―그게 마법사적 재능이야. 근데 한시아는 지금 그게 다 없어. 말하자면 그냥 벌거벗은 셈이지. 백수라고 해야 할까.
대충 이해했다.
그게 다 없다면 저 형상은 마법사가 아닌 그냥 평범한 행인 A일 뿐이었다.
다만 의문이 있었다.
“루카스를 잡으면, 빼앗겼던 것들을 다 돌려받지 않나?”
―똑같은 걸 돌려받지 못할 거야. 도구를 썼으니까. 그때부터 이미 변질됐을걸?
도구라.
원래는 5할이 뺏겨야 하는데, 8할이 뺏긴 것도 그것 때문인가?
어찌 됐든.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래서, 다시 돌려받으면 뭐가 되는데?”
―나도 몰라.
“모른다고?”
―응. 그 애가 원하는 대로 변하겠지.
“그럼 마법사는 아닐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재능의 총량은 보존될 거야.
“그럼 뭐.”
어쩌면 이 세계관에선 마법사 한시아 대신 다른 직업을 가진 한시아를 보게 될지도 몰랐다.
‘뭐, 낫 배드지.’
총량이 보존된다면 다른 직업 가도 천재인 건 그대로란 소리 아닌가. 그거면 상관없었다.
뭐가 됐든 그 정도 천재는 다 도움이 되기 마련이었으니.
―끝났어. 지금 돌아오고 있는 것 같은데. 만나볼 거야?
“그래야지.”
환상이 깨졌을 것 같은데.
애초에 그게 목적이었다.
그게 달성됐으니 이제 다음 스텝을 밟을 차례였다.
‘영입.’
한시아는 애초에 연기를 잘 못하는 캐릭터다. 반면 그녀의 모친인 김하은은 눈치가 비상한 편에 속했다. 보통 연기 잘하려면 남을 잘 관찰하는 게 기저에 깔려 있어야 했으니까.
이상을 못 알아챘을까?
아닐 거다.
그럼 변수가 무엇이었는지 찾겠지.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상담 한 번 하고 나니 얘가 개판이 됐네?
누가 원인인지는 대충 짐작할 터.
‘이미 특정됐다면.’
달리는 게 답이다.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뭘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김민우가 몸을 일으켰다.
성큼성큼 향한 곳은 바로 여자 기숙사였다. 물론,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교장과 동행했다.
707호.
한시아와 라우라가 지내는 방이었다. 문을 두들기자 라우라가 나왔다. 명백히 경계하듯 바라보는 그녀.
“……무슨 일이죠?”
“한시아 양을 만나고 싶은데요.”
“지금 시아는 아파요. 다음에 오세요.”
“아프다고요? 아까만 해도 멀쩡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김민우.
그를 본 라우라가 이를 갈았다.
이미 김하은의 연락을 받았다.
고열이 펄펄 끓기 시작하는 한시아를 데리고 온 것도 순식간이었다. 이건 딱히 치료 방법도 없었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그녀는 마법이나 약도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
십중팔구 뭔가 바람을 불어넣은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상담 끝나자마자 제 모친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반응을 보인 것까지 죄다 설명할 수 없었다.
당연히 다음 만남은 기를 쓰고서라도 막아야 했다. 이놈이 뭔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그럼 가 볼게요. 간병해야 해서.”
문을 닫기 직전.
발이 하나 쑥 들어와 막았다.
“그쪽이 간병한다고 뭐 달라집니까? 별 의미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럼, 당신이 오면 뭐가 달라지고요?”
“달라지죠. 치료제 있습니다. 그러니 문 열어 주시죠.”
“……약은 의미 없어요.”
“그것보다 훨씬 귀한 겁니다. 돈으로도 쉽게 못 구하는 거죠.”
“그게 뭔데요?”
“엘릭서. 들어는 보셨죠?”
라우라의 눈이 커졌다.
그런 아이템이 있다고는 들었다.
일종의 만능 회복제.
보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워낙 희귀해서 문제일 뿐. 정말 그게 있다면 지금 한시아의 몸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김민우를 이대로 한시아와 만나게 하는 게 올바른 판단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는데…….’
아카데미에 그리프의 심복들이 있긴 하지만, 절대적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물며 그 김민우다.
자신과 몇몇이 힘으로 막는다고 막아질까?
아니다.
가문의 마법 기사단이 우르르 몰려와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타협안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있다면, 보여 주시죠.”
“자. 됐죠?”
라우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엘릭서였다.
명분에서도 실력에서도 죄다 밀린다. 심지어 가문에서 경고를 내렸던 한성일 교장까지 직접 동행하고 있었다. 이미 교장이 누구의 편에 선 것인지는 명확했다.
“혹시 모르니 저도 같이 있어야…….”
“라우라 씨. 눈치가 많이 없으시네.”
“……예?”
“그리프의 개랑 이야기할 생각 없으니, 이만 가시죠. 방해되니까.”
“하, 알고 있는데 이러신다? 접촉도 의도한 겁니까?”
“그쪽이 해야 할 건 간단합니다. 위에 보고하기. 쫄따구는 주어진 명령만 잘 수행하면 그만 아닙니까.”
라우라가 이를 으득 갈았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제 발로 안 나가면 강제로 끌어 내려질지도 몰랐다.
“좋아요. 나가죠. 대신, 경고 하나 하죠. 더 이상 한시아를 흔들지 마세요. 그 아이는 가문의 소중한 자산이에요. 함부로 건드린다면 저희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자산이라니. 취급이 대충 알 만하네.”
“고작 마법사 하나 때문에 우리와 대적할 생각이라면 접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런 마법사 하나에 목매다는 게 지금 누구더라?”
으쓱인 채 답한 김민우가 문밖을 눈짓했다.
이만 꺼지라는 신호였다.
“……그럼 양해 드리죠.”
문밖으로 나간 라우라가 이를 갈며 김민우를 노려보았다.
당장 그를 물리칠 만한 힘은 없었다. 그저 냉랭한 경고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이 무색하게.
김민우와 교장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쿵.
문이 닫혔다.
안으로 들어가자 이불을 죄다 덮은 채 끙끙거리는 한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김민우를 바라본 교장이 조용히 속삭였다.
“……엘릭서, 정말 쓰실 겁니까?”
“써야죠.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한시아와 엘릭서.
뭐가 더 중요한지는 말해 봤자 입만 아팠다.
“한시아 씨. 정신 차려 봐요.”
“……당신…….”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이를 악문 채 이쪽을 바라보는 한시아.
뭐가 그리 슬프고 분한지, 눈이 시뻘게져 있었다.
“약 먹어요. 몸에 좋은 겁니다. 메르헨?”
메르헨이 손을 까딱였다.
한시아의 입이 벌어졌다.
졸졸.
엘릭서가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어때?”
―어느 정도는 회복되겠네. 물론, 혼을 치료하진 못하겠지만.
“그거면 됐어.”
중요한 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되느냐였다.
다행히, 엘릭서는 효과가 좋았다.
점점 더 안색이 안정되는 한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효과 좋죠? 비싼 겁니다.”
엘릭서의 효과로 몸은 좋아졌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배신감과 충격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모친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지 깨달은 지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약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김민우의 친절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다.
왜 자신을 돕는 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었기에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죠? 대체 뭘 얻으려고?”
그녀가 물었다.
김민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의문인 사람이었다.
대뜸 보자마자 가문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냐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렇게 병 주더니, 이번엔 비싼 약을 줬다. 대체 그가 왜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절 이용해 가문과 싸워 보려는 거면, 아무 의미 없어요. 저기 메르헨 님도 말했잖아요. 난 마법사도 아니라고. 재능도 없다고…….”
“한시아 씨. 자의식 과잉이 좀 심하시네. 그쪽 치는 데 당신이 도움 될 것 같아서 이러는 거 같습니까?”
“아, 아니겠죠. 그러니까 모르겠다고요. 대체 왜 이러는지…….”
“저점 매수라고 아십니까?”
“……네?”
“원래 쌀 때 주워야 대박 터지는 겁니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다를 게 없어요.”
김민우가 빙긋 웃은 채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