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74)
돈지랄 네크로맨서 (174)
한시아가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8년 만의 재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엔 단 한마디의 대화도 없었다.
‘똑같아.’
어렸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루카스의 눈은 여전히 시리다 못해 차가웠다.
‘뱀 같은 눈빛.’
분명 만나기 전부터 굳게 다짐했는데, 몸에 새겨진 공포는 그녀가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기계 앞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기억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구성원들이 보냈던 감시의 눈길까지.
10년을 훌쩍 넘는 기억이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주변이 칠흑같이 껌껌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벌벌 떨렸다.
쿵. 쿵.
심장이 쿵쾅거렸다.
손에 식은땀이 배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건 일종의 트라우마와 비슷했다.
한시아가 이를 악물었다.
냉혹한 시선에 복종하듯 고개 숙일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큼직한 손이 그녀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조금 말랑거리는 굳은살이 박인 손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김민우가 빙그레 웃은 채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처럼.
순간 차가웠던 육체에 온기가 돌았다. 감각이 점점 또렷해졌다.
명료한 시선 속에서 그녀가 다짐하듯 생각했다.
‘……그래, 이젠 아니야.’
자신은 그리프의 도구가 아니다.
루카스를 완성시킬 재료가 아니다. 그녀의 소속은 평생을 고통스럽게 만든 그리프가 아니었다.
자신을 지켜 주고, 동료로 받아들여 주고, 깨우치게 만들어 준.
한국의 길드야말로 제 소속이었다. 무엇보다 튼튼한 방파제였다.
그녀의 세상이 밝게 개였다.
더 이상 그녀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흥미롭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던 루카스가 말했다.
“안색이 많이 좋아졌구나. 그간 여흥은 잘 즐겼느냐?”
“아뇨. 앞으로도 잘 즐길 거예요. 당신 얼굴을 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까.”
그 말에 냉소하던 루카스가 답했다.
“아니. 넌 결국 돌아오게 될 거다. 나의 딸아.”
딸?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딸이라 생각했다면, 혈육이라 생각했다면.
루카스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가 뒤돌아섰다.
김민우의 얼굴이 보였다.
순간 그녀가 깨달았다.
쓸모없는 걱정 따위.
불안 따위.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가 지금 김민우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은.
“당신이, 이길 거라 믿어요.”
흔들림 없는 믿음이었다.
김민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두 사람이 차량에 탑승했다.
앞서가기 시작한 차량을 그리프의 차량이 뒤쫓기 시작했다.
* * *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 속에서 루카스가 눈을 빛냈다.
한시아.
자신을 완성시켜 줄 마지막 퍼즐 같은 존재.
처음 태어나 울음소리를 내었을 때. 그 찬란한 기억은 아직도 노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감히 직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빛나는 재능.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자신의 가장 완벽한 걸작이 될 것이라고.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노라고.
끔찍이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 한들 딸아이의 재능만 못할 테니까.
너무나도 귀한 보물.
그랬기에 가지고 싶었다.
그 아름다운 재능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전부 다.
그래서 가졌다.
만족을 모르는 짐승처럼 탐했다.
배가 터지다 못해 내용물이 밖으로 흘러넘칠 때까지.
‘정말 아쉽게도…….’
대사제의 도움에도 8할의 재능을 빼앗아 오는 것에 그쳤다.
그건 루카스의 한계였다.
그렇게 한시아는 반쪽도 아닌, 사과 한 쪽만도 못한 재능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재능은 여전히 빛났다. 그건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비슷했다.
그래서 방심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언제부터였더라.’
직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빛나던 재능이, 빛을 잃기 시작한 것은.
처음으로 루카스가 당황했던 때였다.
언제나 빛날 줄 알았으니까.
빛난 채 남을 줄로만 알았으니까.
적어도 자신이 모든 재능을 흡수하기 전까진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는 한시아를 볼 때마다 루카스는 공포에 빠져들었다.
혹시라도 남은 재능을 흡수하기 전, 그녀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이 찬란한 재능이 불완전한 채 끝나기라도 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결말이었다. 방목하듯 한시아를 가문에서 풀어 낸 것도.
제 어미를 붙여 준 것도, 철저하게 사랑을 속삭이게 만든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철저하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음에도.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죽음이 유예된 것처럼, 단지 불빛이 꺼지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을 뿐이다. 루카스가 폐관 수련에 전념했던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하루빨리 거대한 재능을 소화시켜야, 남은 재능 또한 흡수할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정말, 아름다운 빛이야.”
마지막 순간이었다.
냉소한 채 뒤돌아선 딸아이.
그런 딸아이가 김민우와 대화를 나눴을 때였다.
화려한 빛무리가 그의 눈을 덮쳤다. 오래전, 그녀가 힘차게 울음소리를 토했을 때처럼.
제어할 수 없는 군침이 입가에 뚝뚝 흘렀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허기가 졌다.
어서 빨리 저 재능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싶었다.
그럼 완벽해지겠지.
찬란한 재능이 자신의 몸에 깃들게 되겠지.
단순히 그림자의 ‘사제’를 넘어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겠지.
‘서둘러야겠구나.’
보아하니, 김민우와 얽혀 저렇게 빛나게 된 것 같은데.
오늘 결투에서 김민우를 죽인다면 저 불빛이 언제 사그라들게 될지 몰랐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결투의 조건을 바꾸고 싶었다.
죽이는 것 대신 다른 방향으로.
인질로 잡기라도 한다면 한시아의 재능을 뽑아내기 너무나도 수월해질 테니까.
하지만 그것 또한 곤란했다.
‘대사제께서 이번 일을 주시하고 있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김민우. 그 사특하고 간교한 종자 말일세.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다.
당연히 이번 결투에서 깔끔하게 처리하길 바랄 것이다.
어떠한 변수도 원하지 않겠지.
그러니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결투가 끝난 뒤 조금이라도 빨리 한시아를 독일로 호송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이 끝나면, 바로 돌아갈 거다. 미리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가주님.”
충성스럽게 답하는 구성원들이 보였다. 흔들림 없는 눈빛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건 루카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수많은 방송사부터 온갖 방송 종사자들까지 차량을 뒤쫓았다.
목적지는 일성 트레이닝 센터.
한국 최고의 훈련 시설이었다.
당연히 연무장 또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부까지 진입할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여기부턴 허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끄응…… 진짜 서로 목숨 걸고 합니까? 조건 바뀔 가능성이라든가 그런 건…….”
“없습니다. 아직까진.”
경호원들이 단호히 고개를 저은 채 말했다.
목숨을 건 결투.
아무리 피 튀기는 전투가 일상이 됐다지만, 이런 내용까지 공중파로 나오는 건 불가능했다.
당연히 이번 결투는 비공개 결투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이번 결투에 공증인으로 참관했기 때문이었다.
“SKS 뉴스의 서영길 기자입니다. 지금 결투장으로 선정된 일성 트레이닝 센터 앞에 위치해 있는데요. 이번 결투의 공증인으로 각성부의 장관부터 시작해서 검선과 신창, 권왕과 독마가…….”
“프랑스 측에선 이자벨라 양이 공증인으로…….”
“그리프 가문 또한 동맹국들의 각성자들을 불러모으며…….”
“방금 들어온 속보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에서도 정부 측 인사들을…….”
그렇게 부지런히 소식을 나르는 기자들 사이로, 핸드폰을 든 사내가 조심스레 지나갔다.
선글라스를 낀 채 빤히 바라보는 경호원을 본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초대받아서 왔습니다만…….”
“초대장이 있으십니까?”
“예, 여기…….”
뉴튜버 깜묵.
본명, 이만호.
그가 공손히 초대장을 내밀었다.
그걸 본 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습니다. 여기 초대장에 적혀 있듯, 결투의 시작까지만 촬영이 가능합니다. 인지하셨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들어가시죠.”
이만호가 내부로 쏙 들어갔다.
머지않아 트레이닝 센터로 중량감 있는 국제 인사들이 하나둘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김민우와 루카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걸 본 기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실시간으로 중계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믿겨지지가 않았다.
‘진짜 붙나?’
‘이걸?’
이미 발 빼기엔 전 세계에서 공증인으로 이름난 각성자들을 보내는 상황. 당장 저 관객들의 이름값만 해도 어지간한 국가 하나 뒤집어 놓을 만한 전력이었다.
김민우와 루카스의 결투가 가진 파급력이 그만큼 거대하다는 뜻이었다.
한국과 독일 측 인사들만 모였다면 모를까, 지금 스무 개가 넘는 국가들이 ‘공증인’을 보낸 만큼 조작의 가능성은 이제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 방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이제 2분 뒤 결투가 시작…….”
기자들이 전해진 소식을 앵무새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 * *
검선, 신창, 권왕, 독마.
네 명의 초고수부터 시작해서 한국에 있던 이자벨라도 모자라 각 국가의 대사들까지 이번 결투에 공증인으로 참여했다.
특이점이라면 뉴튜버도 한 명 초대받았다는 것 정도였다.
연이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김민우가 빙그레 웃은 채 깜묵에게로 다가갔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시죠? 딱 선 맞춰서.”
“예, 맡겨만 주십쇼!”
깜묵이 황송하다는 듯 고개 숙인 채 악수를 받았다.
공중파 방송으로는 결투 장면을 생중계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그 내부를 촬영해 증거를 남기는 게 좋았다.
‘아니면 온갖 잡소리가 나올 테니까.’
검선을 보자.
이쪽과 매우 친하다.
한참 전 은퇴했다 한들 루카스보다 훨씬 위 단계의 랭커다.
막말로 트레이닝 센터 안에서 몰래 쓱싹했다고 의심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물론 각 국가의 중량급 인사들이 모인 상황에서 그렇게 떠드는 건 터무니없는 개소리긴 했지만…….
‘그냥 깔끔하게 결투로 잡았다는 증거 남겨 두는 게 낫지.’
깜묵은 바로 그 역할을 위해 선택된 인물이었다.
결투가 시작되면 주변에 새하얀 기운이 샘솟고,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게 된다.
딱 그 과정까지만 촬영하면 된다.
그럼 온갖 잡소리도 안 나올 테니까. 깜묵은 딱 거기까지 촬영할 절제력을 가진 뉴튜버였다.
그래서 불렀다.
‘개인적으로 호감이 있기도 하고.’
그의 분석 방송은 자주 봤었으니까.
어찌 됐든.
큼지막한 연무장 내부에서 루카스와 눈을 마주쳤다. 이미 B급 이상의, 이해관계가 없는 보증인은 썩어 넘치는 상황.
서로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나 김민우는, 여기 루카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나 루카스는 이 결투를 받아들이겠다.”
[‘결투’가 활성화됩니다!] [세부 조건을 설정해 주세요!]“약속은, 천금보다 귀하다는데.”
“그거 하나는 생각이 같군.”
덤덤하게 답한 루카스가 조건을 말했다.
“둘 중 하나가 목숨을 잃으면 패배. 그 이전에 결투는 끝나지 않는다. 동의하나?”
“물론이죠.”
싱긋 웃은 김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목숨을 빼앗으면 승리’로 조건이 설정됩니다!] [결투장의 범위는 이곳 연무장 내부입니다!] [승리 조건을 달성하기 전엔, 그 누구도 결투장에 진입하거나 나올 수 없습니다.] [보증인이 다섯 이상입니다!] [결투가 성립됩니다!]그 순간.
연무장에 새하얀 기운이 흘러나오며, 김민우와 루카스의 위치가 양 끝으로 이동됐다.
[10초 후, 결투가 시작됩니다!]누구를 믿고 응원하든.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영감님, 이젠 되돌릴 수 없다는 거 잘 아시죠? 그래도 나름 세계 랭커신데, 알기야 하겠지.”
“나라면 지금 떠들 시간에 소환수나 불러낼 거다. 그래봤자 부질없겠지만.”
차갑게 말하는 루카스.
“이걸 어쩌나.”
“……?”
사령검을 뽑아 든 김민우가 빙글 돌린 채 말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쓰는 건 아깝잖아요. 그쪽에겐 이 검 한 자루면 충분할 것 같은데.”
냉소하던 루카스가 슬슬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개소리에 답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비루한 유언이군.”
딱 1초가 남았을 때 루카스가 차갑게 말했다.
[결투를 시작합니다!]곧이어 그가 손을 뻗었다.
[심장 장악(SS)가…….]녀석의 심장을 터뜨릴 생각으로.
그걸 빤히 바라보는 김민우.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에 루카스가 내심 조소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쇄도하던 무형의 마법이 두 쪽으로 잘려 나간 것도 모자라.
서걱!
피 분수와 함께 팔 하나가 공중을 날았다.
쪼글쪼글하게 주름진 팔이.
그걸 본 검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검?’
그의 동공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