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3)
돈지랄 네크로맨서 (33)
도제(3)
‘……안일했어.’
엘리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김민우라는 인간의 말 대로였다.
누구에게나 목숨 값은 무겁다.
그런 목숨 값으로 형편없는 대가를 제시했으니 쓴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거기에 그가 도움의 대가로 제시한 것들도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어머니 나무의 과실?
엘프들에게 있어 보물이 맞다.
하지만 모든 건 상대적이다.
이대로 무너져 어머니 나무가 쓰러지는 것과, 과실을 주고 어머니 나무를 지키는 것. 둘 중 뭐가 중요한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포션 또한 그랬다.
보호받게 되면 지금보다 소모량도 급격히 줄어들 터.
그걸 저항군 측에 주는 것일 뿐이다.
엘리제가 김민우를 바라보았다.
스켈레톤 앞에서 무언가를 부지런히 짜 맞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 하세요?”
“소환수 강화 중입니다.”
“강화요?”
“네. 여기 뼈 보이시죠?”
“그거, 혹시 코카트리스의 다리뼈 아닌가요?”
“맞습니다. 이걸 이렇게 이놈의 다리에 대고 교체해 주면…….”
[뼈 교환(B)를 사용합니다!] [‘세드릭’의 다리뼈를 코카트리스의 다리뼈로 교체합니다!] [재료의 수준이 당신의 레벨보다 대단히 높습니다.] [성공 확률: 12%] [시도하시겠습니까?]끄덕.
[대성공!] [뼈가 세드릭의 체형과 종족에 맞게 변형됩니다!] [세드릭의 힘과 민첩, 체력이 10씩 증가합니다!] [*대성공 특수효과: 이동 속도 +10%] [남은 수용량 (20/75)]세드릭의 다리뼈가 한층 굵고 단단해졌다.
“대충 이런 식으로 되는 거죠.”
“신기하네요. 시도하면 무조건 성공하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다리뼈만 거의 이백 개 갈아 넣은 것 같은데.”
“……그렇게 확률이 낮아요?”
“아뇨. 그 정도는 아닌데, 그냥 성공하면 효과가 좀 심심해서. 대성공 효과가 따로 있거든요.”
맨 처음 일반 해골로 몇 번 시험해 봤을 때 알았다.
성공과 대성공.
둘 사이엔 차이가 좀 있었다.
그냥 성공은 용량을 많이 잡아먹는다.
거기에 특수효과도 없었다.
반면 대성공은?
용량을 덜 잡아먹는다.
‘성공은 25였지.’
대성공은 20.
용량이 5나 줄어들었다.
그런데 효과는 훨씬 좋다.
“세드릭, 어때?”
―주인, 아주 좋은 스킬을 얻은 것 같다.
다리를 움직여 보던 세드릭이 따봉을 날린 채 말했다.
확실히 효능을 체감할 만했다.
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10이나 올랐으니까.
거기에 대성공 특수효과로 이동 속도 10%가 붙었다.
‘진짜 미친 스킬이다.’
효과가 미쳤다.
특히 고레벨 몬스터의 뼈를 사용했을 때가 그랬다.
코카트리스는 레벨 200을 훌쩍 넘기는 몬스터였다.
당연히 스켈레톤의 기본 육체보다 뼈가 압도적으로 단단할 거다.
하물며 이 몬스터의 가장 대표적인 부위인 다리를 사용했으니.
대성공만 띄우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물론 단점도 있긴 한데…….’
고레벨 몬스터의 뼈로 갈수록 성공 확률이 화끈하게 낮아졌다.
대성공 확률은 체감상 거의 1% 수준.
세드릭 다리뼈 바꾸는데 지난번 사냥했던 코카트리스 무리의 뼈를 죄다 소모했을 정도다.
제대로 활용하려면…….
‘돈이 지랄 맞게 깨지겠지.’
몬스터는 죽으면 시체와 부산물을 남긴다.
이 부산물은 몬스터의 중요한 부위나 아이템, 마석, 스킬북 등 종류가 다양했다.
보통은 부산물 정도만 챙긴 채 돌아온다.
무겁기도 하고 짐을 들 용량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좀 더하자면 그냥 돈 되는 부위를 해체해서 오는 정도다.
일부 고부가가치 몬스터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랬다.
문제가 있다면, 뼈는 보통 고부가가치 상품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일부 몬스터의 것을 제외하면 굳이 아득바득 가지고 나오는 품목이 아니었다.
경매장에서 긁어도 양이 얼마 안 될 것이다.
결론.
각성자들에게 뼈를 가져올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한다.
‘뼈 현상금, 걸어야겠지?’
아마 조 단위로 깨져 나갈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해야지.’
다른 건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일단 세드릭만큼은 최고의 뼈로 전신에 대성공 세례를 퍼부어야 한다.
‘나머지는 뭐…….’
천이 넘는 스켈레톤 전부를 그렇게 하려면 수십 조가 깨져 나가도 가능할지 미지수였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김민우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계속해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엘리제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용건 있으신가요?”
“……그게. 지난번 무례는 사과드릴게요. 확실히 제가 경솔했어요.”
“이미 다 잊었습니다.”
고개를 저은 채 말했다.
사과한다는 사람, 아니 엘프에게 모질게 반응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 말에 한숨을 내쉰 엘리제가 말했다.
“……저기 엘프들 보이세요?”
“예.”
“불만을 잠재우긴 했지만, 솔직히 임시방편이에요. 아마 마을에 가면 장로들부터 들고일어날 테죠.”
“그럼 약속을 못 지키시는 겁니까?”
“아뇨!”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전 어머니 나무의 숲지기에요. 약속을 지킬 힘 정도는 있어요. 다만 다른 엘프들의 반응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해서요.”
“엘리제 님은 다른 엘프들과 조금 다른 것 같네요. 좀 현실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라고 해도 다를 거 없어요. 안일하게 생각했던 건 같으니…….”
“반성했으면 됐죠. 그걸 할 줄 안다는 것만 해도 훌륭한 엘프입니다.”
오죽하면 깐프라는 단어가 있겠는가. 그만큼 엘프들의 성격이 지랄 맞기 때문이었다.
연이은 어부바에 엘리제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이 정도면 당근은 충분히 준 것 같고.
“엘리제 님.”
“예.”
“제가 다른 건 다 참아도, 세 가지는 못 참을 것 같습니다.”
“그 세 가지가 뭔가요?”
“첫째. 오크들의 희생을 폄하하는 것. 둘째. 꿈나무들에게 성실하게 교육하지 않는 것. 셋째.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 만약 이 셋 중 하나라도 제 눈에 보인다면…….”
“……보인다면?”
“제가 칼을 좀 씁니다. 때론 그냥 휘두르는 게, 가장 지름길인 경우가 많더군요.”
“…….”
엘프 장로니 뭐니.
듣기만 해도 썩은 물이 연상되지 않는가.
클리어가 목표인 상황에, 그딴 놈들에게 발목 잡힐 시간이 없었다.
빙긋 웃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해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주의할게요.”
“엘프 마을은 내일 출발할 겁니다. 슬슬 쉬시죠.”
* * *
“오늘 우리는 엘프들을 구하러 간다!”
―취익! 귀쟁이 구한다!
―취익! 포션 먹고 세질 거다!
이미 엘프들과 힘을 합쳐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오크들에게 설파한 상태였다.
포션 먹고 세진다.
그걸로 마녀 머리통 쪼갠다.
뭐 이런 내용들.
덕분에 반대는 없었다.
“가자!”
이천이 넘는 오크가 움직였다.
이미 엘프 마을을 치고 있는 병력에 대해선 들었다. 이 정도 병력이면 박살을 낼 수 있을 거다.
‘소식 전해지는 건 막기 힘들겠지만.’
놈들의 규모가 제법 됐다.
엘룸 때처럼 도망치는 놈을 죄다 막긴 어려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언제까지 스텔스 모드로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엘프 정벌군까지 모조리 죽어 나가면 사도가 병신이 아닌 이상 뭐라도 알아채야 정상이다.
그렇게 위풍당당한 오크군이 여정을 떠났고, 행군 6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대한 숲이 조성된 지역.
어머니 나무의 권역이었다.
엘리제와 엘프 무리는 먼저 이동해 저곳에 들어가 있었다.
어제 짜 둔 작전을 엘프들에게 전달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아마 어제 친히 경고해 둔 내용을 설파하기 위해서기도 하겠지.
‘들어 먹을지는 의문이지만.’
고작 그 정도로 엘프들이 개과천선할 거였으면 애초에 깐프라는 별명도 없었을 거다.
물론 모든 엘프가 답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답이 없는 존재 중에 엘프가 많은 건 사실이었다.
저 멀리 숲의 나무를 마구 베어 내고 있는 군세가 보였다.
‘돌려 깎기 시작했구만.’
어머니 나무의 권역은 공략이 매우 까다로운 지역이었다.
나무들이 살아 움직이며 진로를 방해하고, 식물이 적을 마구 집어삼키곤 했다.
거기에 숲에 숨은 채 화살을 쏴 대는 엘프까지.
적 지휘관이 뇌가 있다면 당연히 그냥은 안 들어간다.
보통은 불을 지르거나 나무들을 외각에서부터 박살 내며 전진하곤 했다.
지휘관이 택한 건 후자였다.
‘불붙이기 쉬운 건 아니지.’
보통 그러면 어머니 나무 쪽에서 수분을 내뿜으며 막아서곤 했다.
그게 죄다 증발하고 나서야 불이 붙는다.
‘거기에 시체도 수급해야 할 테니…….’
불탄 시체는 재활용 불가능한 폐기물이다. 그러니 돌려 깎기를 하는 것이리라.
이미 사전에 이야기를 끝내 두었다. 오크들이 뒤를 치면 엘프가 앞에서 합공하는 식으로.
―오크! 오크!
바닥을 쿵쿵 내리치는 소리에 사도 측 군세가 뒤를 돌아보았고.
곧이어 소란이 벌어졌다.
뜬금없이 오크 무리가 등장했으니 당황할 만도 하겠지.
무슨 말이 필요하랴.
“죄다 죽이자! 돌격!”
오크 무리가 달려들었다.
* * *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적 지휘관은 협공에 제대로 반격도 못 한 채 도주했고, 병력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오백에 가까운 적 무리 중 사백을 죽였다. 물론 그 대가로 오크 사백 마리 정도가 죽긴 했지만, 평균 레벨대를 생각해 보면 기적의 교환비였다.
‘덕분에 폭업했네.’
75에서 85까지.
막타를 쏠쏠하게 치며 경험치를 올렸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요구 경험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걸 생각해 보면, 광속에 가까운 레벨 업이었다.
‘뭐, 렙 높은 놈들을 잡는 거니 당연한 거긴 하지만…….’
사도 측 군세는 기본이 레벨 250 이상이었다. 그러니 폭업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머지않아 나무들 사이로 엘프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총 사백 정도.
엘리제가 가장 앞에 있었고, 그 뒤를 늙은 엘프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아마 장로들이겠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엘리제.
하하호호 하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원래 삶은 기브 앤 테이크였으니까.
“도울 수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지요. 그럼 슬슬 대가를 받아야 할 차례인데…….”
“예. 이미 전달해 두었습니다.”
엘리제의 대답과 함께 연금술사 무리가 앞으로 나왔다.
귀를 쫑긋거린 채 스켈레톤들을 바라보는 엘프들.
“……저기 해골들을 저희가 가르치면 된다는 거죠?”
“예. 오백 마리니 한 분당 스물씩 맡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드워프 분들도 대단히 만족한 기재들입니다. 가르칠 보람이 있을 겁니다.”
나머지 오백은 드워프 대장간에서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다.
아직 제작 스킬을 못 배웠기 때문이었다.
연금술사들이 하나둘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정도 반응이면 양반이지.’
갈! 감히 사악한 언데드 따위가 연금술을 배워?
이런 반응이 아닌 것만 해도 어딘가. 먼저 가서 내용을 전파한 엘리제가 많이 노력한 것 같았다.
해골들이 연금술을 배워나갈수록 포션도 빠르게 생산될 테니 첫 약속은 지킨 셈이고.
“그럼 이제 어머니 나무의 과실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때.
아까부터 뚱한 얼굴을 내비치던 장로 중 하나가 나섰다.
“인간. 잠깐 기다려 보게.”
“할 말 있으십니까?”
“내 많은 걸 참았네! 애초에 사악한 언데드에게 연금술을 가르친다는 것부터가 기막히긴 했지만, 거기까지도 이해했네. 하지만 과실은 달라! 그건 우리 엘프에게 대단한 보물이네. 우리 동족 중에서도 선택받은 존재만 먹을 수 있는 물건이란 말일세!”
“예. 그러니까 대가로 받으려는 거죠. 안 귀했으면 굳이 요구했겠습니까?”
“자네, 너무 과한 걸 요구한다 생각하지 않는가?”
이건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신념인 거다.
그래야 뒤편의 오크 무리를 보고도 저렇게 당당하게 나서지.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한숨을 내쉬는 그녀.
아무래도 깐깐한 장로까지 죄다 설득하진 못했나 보다.
“반대하면, 막을 방법은 있으시고요?”
“과실은 장로 전원이 동의해야 반출할 수 있는 물건이네.”
“그렇군요. 당신의 신념을 존중합니다.”
이 정도 고집이면 박수를 쳐 줘야 하는 게 맞다.
고개를 끄덕였고.
서걱!
엘프 장로의 목이 떨어졌다.
그래도 할 말 다 하고 갔을 테니 호상일 테지.
칼날을 털어 피를 훑어 낸 채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또 반대하시는 분?”
“…….”
“없으시면 받아 갑니다.”
반대표가 사라졌으니 전원 찬성이 맞았다.
과실을 취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