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8)
돈지랄 네크로맨서 (8)
용기사
불빛 한 점 없는 새까만 공간.
그곳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발동됐다는 건, 내 힘을 받아 간 놈이 있다는 거겠지.]내 힘?
“혹시, 데스 로드 본인이십니까.”
[뭐라 질문해도 소용없다. 이건 저장된 목소리일 뿐이니. 그냥 들어라.]곧바로 들려오는 대답.
깨달았다.
뭐가 됐든 저 대사들이 끝난 다음엔 일이 시작될 거라는 것을.
지금은 준비 시간이다!
“일어나라, 똘마니들아.”
[스켈레톤 소환을 사용합니다!]딸그락.
딸각!
지면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해골 무리. 아이템을 낀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의 해골들이 튀어나왔다.
삼백을 훌쩍 넘는 해골들!
[아공간 반지(중급)을 개방합니다!]해골들 앞에 장비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거기엔 가성비 세트인 검은 심장 세트 외에도 수많은 장비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검, 창, 할버드, 철퇴 등.
대충 휘둘러도 위력이 나올 법한 흉악한 무기들이다.
“빨리 입어! 무기 하나씩 집고! 시간 없다! 빨리!
마나 포션을 꿀꺽 들이킨 채 명령을 내렸다.
해골들에게 장비를 입힐 시간은 지금뿐이다.
그사이에도 목소리가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복수를 위해 달려왔다. 대륙을 죽음으로 물들였노라.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딸그락!
딸각!
투구, 갑옷, 바지, 장갑, 신발까지.
묵색의 5종 세트를 부지런히 착용하는 해골들.
”세트 말고 남는 것도 다 입어! 모르겠으면 남는 갑옷이라도 하나 걸치라고!“
검은 심장 세트는 대략 200개 정도. 남는 건 개별 장비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닫고야 말았다. 난 고작해야…… 무대 위의 인형 중 하나였다는 것을…….]“허접이었네요.”
[나의 힘으로도 그놈들에게 대적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후일을 도모하기로 했다.]아니, 이걸 반응 안 해?
아주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흘러나오는 연속적인 대사들.
정말 저장된 목소리인 게 맞는 것 같았다.
‘뭐 이용당하기라도 한 건가?’
대륙을 죽음으로 물들였다는 걸 보면 딱 봐도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런 네크로맨서가 대적할 수 없었던 강자는 누구일까.
‘혹시 외신인가?’
바깥 신이니 다른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지.
뭐, 지금 당장 중요한 주제는 아니다.
지금도 봐라.
잠깐 신경 좀 돌렸더니 멍청한 놈 하나가 팔을 덜렁거린 채 묵직한 방패를 두 개나 들고 있다.
“야이씨! 방패는 하나만 집으라고!”
꿀밤을 먹인 채 방패 하나를 뺏고 검을 쥐여 주었다.
[이제 너의 자격을 시험하겠다.] [살아남아 증명한다면 나의 권능을 얻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증명하지 못한다면…….] [나와 함께 영겁에 갇히게 될 것이다. 편안한 죽음조차 사치일 테니.]거, 말 참 무섭게 하시네.
“응. 이미 장비 다 찼어.”
이걸로 전력이 최소 다섯 배는 업됐을 거다.
뭐가 됐든 나오기만 해.
[첫 번째 안배가 시작되었다…….]풍경이 다시 한 번 뒤바뀐다.
모든 게 흐릿해지고.
[영겁의 전장 – 흐룰루니프 전투에 참여합니다!] [고대의 전장에 참여하였습니다!] [타이틀, ‘너, 대체 어디까지 가?’를 획득하였습니다!]***
김민우는 어느새 거대한 성벽 위에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지독한 침묵이 자리 잡은 공간.
‘응?’
온통 회색빛으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조금 전 무장한 해골들도 그와 함께 성벽 위에 가지런히 서 있었다.
특이한 건…….
‘저것들은 내가 소환한 해골이 아닌데?’
자신이 소환하지 않은 해골들도 끝없이 도열해 있었다는 것이다.
스켈레톤 메이지.
스켈레톤 워리어.
스켈레톤 아처 등.
언데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듀라한, 리치, 스펙터, 데스나이트, 거기에…….
‘본 드래곤?’
성벽 아래 보이는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드래곤까지.
그야말로 언데드의 성 그 자체였다.
[이곳은 ‘용기사 세드릭’의 후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전장입니다.] [플레이어는 ‘가상 육체’인 상태입니다. 스킬과 능력치, 소지품은 동일합니다.] [단, 경험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참여합니다.]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합니다.]회색빛 무대에 색이 입혀지고.
언데드들의 눈에 하나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너인가. 로드께서 안배한 사람이.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다.
본 드래곤의 등 위.
거대한 덩치를 가진 금빛의 해골 기사가 탑승해 있었다.
‘저건 또 뭔 괴물이지……?’
황금색 뼈로 육체가 이루어진 해골 기사. 그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이글거렸다.
질식할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데스나이트는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였다.
“……혹시 그쪽이, 세드릭 씨?”
금빛의 해골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수룩한 네크로맨서여. 네게 많은 걸 바라진 않는다. 그저, 살아남아 봐라. 그럴 수 있다면.
[총사령관 세드릭에게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성벽 제16구역의 언데드 부대를 지휘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지휘 가능한 언데드: 데스나이트 1, 리치 1, 듀라한 5, 스펙터 5, 스켈레톤 500] [타이틀, ‘아기 지휘관’을 획득하였습니다!]그 직후…….
쿵! 쿵! 쿵! 쿵!
오크! 오크! 오크!
앞쪽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들려왔다.
성벽 앞 평원.
그곳엔 눈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시꺼먼 무장을 갖춘 채 무기를 바닥에 규칙적으로 두들기며 전의를 돋구는 오크 무리!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미친…….’
본 드래곤 따위가 아니다.
저 멀리서도 형체가 보일 정도로 거대한 진짜 용이 날개를 펄럭이고.
그 근처엔 와이번, 히드라, 사이클롭스, 코도, 죽음의 마녀 등.
하나하나 살 떨리는 최상위 몬스터들이 도열해 있었다.
‘와, 개빡센데?’
딱 봐도 문제가 많아 보인다.
성벽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 한들, 물량에서부터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그렇다고 질이 우세하길 하냐?
아니다.
보통 본 드래곤보단 살아 있는 드래곤이 훨씬 강하다.
데스나이트나 리치 같은 고위 언데드들이 있긴 하지만 가뭄에 콩 난 수준이었다.
하위권에서도, 상위권에서도 질과 양에서부터 크게 밀렸다.
‘도망칠 곳도 없네?’
앞은 오크들이 개떼처럼 몰려 있다.
그럼 뒤는?
까마득히 떨어진 낭떠러지였다.
‘성 구조가 배수진이잖아, 이거.’
설마 클리어 방법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기연을 찾으라는 건 아닐 테니…….
‘일단 싸우라는 거구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시간제한이었다.
일정 시간 이상 살아남으면 저 세드릭인지 뭐시기인지의 인정을 받고 전장이 끝난다든가 하는 그런 거.
아니면 지원군이 온다던가.
‘물론 세드릭이 강해 보이긴 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오크! 오크!
근위대 오크들 한가운데 보이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오크 히어로.
저 오크, 보통의 오크가 아니었다.
딱 봐도 진짜 강해 보인다.
섬뜩한 기세가 주변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었다.
저기 드래곤보다 훨씬 더 강한 것 같은데……?
이거 시간을 끌 수 있으려나?
‘생각해 보자. 일단 정공법은 난이도가 살인적이야.’
고작해야 한계 능력치 50에 소환 스킬 하나 달랑 배우면 소환되는 구조다.
그런 상황에서 소환된 놈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잘해야 렙 3~40 정도 수준의 어수룩한 네크로맨서일 터.
데스 로드(EX)고 자시고 아예 손써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이딴 곳에 던져두고 살아남으라 한다고?
게이트 헌터는 어려운 게임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게임은 아니었다.
‘분명 우회로는 있다. 후회가 키워드인가?’
후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장.
우리 세드릭 씨가 대체 뭘 후회했는지 아직까진 잘 모르겠지만, 그걸 해결하면 아마 전장이 끝나지 않을까.
‘뭐가 됐든 공략법은 존재한다.’
그걸 찾아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꾸어어어어어어어!
오크 히어로.
놈이 글레이브를 앞으로 내밀었고.
오크! 오크! 오크!
오크들이 성벽 앞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길쭉한 사다리를 든 채로!
“쏴! 화살 아끼지 말고 죄다 쏴!”
“지휘관님이 명하셨다. 쏴라.”
그 말에 성벽에 있던 데스나이트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슈수수숙!
쏟아지는 화살 세례.
몇몇 오크가 고꾸라졌지만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터덕!
사다리가 성벽에 마구 걸쳐진다.
오크들이 그야말로 해일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아그들아, 연장 들어라!”
스릉!
옆에서 검을 뽑아 드는 데스나이트. 지팡이를 들어 올린 리치의 눈에 흉흉함이 감돈다.
듀라한이 쌍날 도끼를 빼 들고, 스펙터의 입가에 시꺼먼 연무가 피어오른다.
전투를 준비하는 건 그의 휘하에 있는 아기 스켈레톤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장이라도 내리칠 듯 무기를 들어 올린 스켈레톤들!
레벨 1이라 힘이 후달려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건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성벽 위로 오크 머리통이 보인 순간, 힘껏 검을 휘둘렀다.
서걱!
순간 민우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몸이, 훨씬 부드럽게 움직인다!’
능력치는 분명 동일하다.
그런데 몸의 움직임이 달랐다.
허물을 벗어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훨씬 부드러웠다.
아무래도 가상 육체가 되며 김민우의 육체적 재능이 사라진 것 같은데.
‘오히려 좋아!’
단박에 모가지가 날아가는 오크.
그러나 배달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사방에서 오크들의 머리통이 올라왔다.
“무기 힘껏 내려찍어!”
쿵!
꽈직!
꾸어어억!
[스켈레톤 1이 자신보다 매우 강한 적을 추락사시켰습니다! 전투 경험이 크게 쌓이기 시작합니다!] [스켈레톤 171이 자신보다 매우 강한 적을 추락사…….] [스켈레톤 223이…….].
.
성벽 위라는 우세.
위에서 아래로 있는 힘껏 내리치는 공세에 올라오던 오크들이 맥을 못 춘 채 죽어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학습한 대로 무기를 오크 머리통에 힘껏 내리치는 아기 스켈레톤.
올라오던 오크가 한 손으로 망치를 꽉 붙잡는다.
딸그락?
해골이 열심히 잡힌 무기를 흔들지만, 오크의 손아귀는 아교같이 꽉 달라붙어 있었다.
꾸어어!
오크가 힘을 줘 당기자 쑥 빨려 들어간 해골이 순식간에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덜그럭!
그렇게 하나둘 온몸이 박살 나는 해골 무리.
[언데드가 다시 부활…….] [스켈레톤 1의 소환이 취소됩니다!] [스켈레톤 16의 소환이 취소…….]부활해 봤자 사방이 오크 밭이다.
스켈레톤들이 맥없이 역소환되기 시작했다.
고난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슉!
지면에서 활을 쏘기 시작하는 오크 궁수들!
민우가 얼굴 옆을 스치는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리치! 사다리 끊어! 산성 마법!”
[리치 ‘한스’가 산성 손길(C)를 사용합니다!]허공에 생성된 산성 손들이 사다리 윗부분을 꽉 붙잡는다.
순식간에 끊어지는 사다리.
올라오던 오크들이 구슬픈 비명을 내뱉은 채 추락한다.
그러나 올라오는 오크는 끝이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맨 처음엔 단순히 오크 병사와 전사만 올라왔다면.
지금은 슬슬 상위 오크들까지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꾸어어!
오크 버서커.
동족의 피를 보면 볼수록 강해지는 오크종.
놈의 거대한 도끼가 머리 위를 아슬하게 스친다.
복부를 향해 검을 푹 찔러 넣었다.
부드럽게 빨려 들어가는 검.
입가에 피를 울컥거린 놈이 얼굴을 물어뜯으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발로 몸을 뻥 차 밀어낸 채, 옆에서 올라오는 오크 모가지를 똑 하고 땄다.
[자신보다 레벨이 훨씬 높은 오크 일백을 사냥했습니다!] [타이틀, ‘오크 사냥꾼’을 획득합니다!]이게 뭔 효과였더라.
아마 오크 상대로 데미지 증가였었지.
아예 소환이 취소된 스켈레톤들을 다시 한 번 소환했다.
쑥 빨려 들어가는 마나.
순식간에 다시 이백에 가까운 스켈레톤들이 보충됐지만, 슬프게도 대부분 무장이 없었다.
성벽 아래에 떨어져 회수 불가능한 상태가 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빨리 아무거나 주워!”
재빨리 무기를 줍는 스켈레톤들.
개미 손이라도 빌려야 할 정도로 상황이 정신없었다.
30분.
1시간.
2시간.
막고, 또 막고.
그사이 듀라한과 스펙터 등 중위 언데드들이 하나둘 죽어 나갔다.
저 멀리서 데스나이트와 리치들도 소멸하기 시작했다.
오크를 베고 또 벴다.
[자신보다 레벨이 훨씬 높은 오크 오백을 사냥했습니다!] [타이틀, ‘오크 사냥꾼’이 ‘오크 학살자’로 변경됩니다!] [경고!] [단기간 너무 많은 포션을 섭취했습니다! 과부하가 오기 시작합니다!]‘안 되겠다.’
이거, 아껴선 똥 된다.
“한스야! 큰 거 써라!”
[리치 ‘한스’가 어스퀘이크(A)를 사용합니다!]우르릉……!
성벽 앞 땅이 마치 크레바스처럼 쩍 갈라지고 오크 수백이 그 안으로 쏙 빨려들었다. 숨 돌릴 여유가 약간이나마 생겼다.
꾸역꾸역 나름 잘 막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꾸어어!
오크 히어로의 울음소리가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펄럭!
거대한 용의 날개가 움직이고.
크허엉!
용의 형체가 급속도로 성벽에 가까워졌다.
그것도 하필이면 자신이 있는 16구역으로.
‘이거 못 피한다!’
데스나이트와 리치 한스가 있지만 조금도 믿음이 가지 않는 상황!
반사적으로 외쳤다.
“세드리익!”
뭐 좀 해 봐!
이러다 나 죽는다고!
그때.
펄럭!
뒤편에서 날아온 본 드래곤이 토종 드래곤을 향해 몸을 부딪쳤다.
그 위에 탄 금빛 해골 기사가 용을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리는 창날이 용의 머리를 푹 찍는다.
고통스러운지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드는 드래곤.
―……안 그래도 나설 참이었다.
지랄, 여태까지 팔짱 끼고 뒤에서 구경만 했던 주제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삼킨 민우가 달려드는 오크의 머리를 베었다.
저 녀석.
혹시 내 부하로 오게 되면 개 같이 굴린다.
민우가 내심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