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82)
돈지랄 네크로맨서 (82)
두 번째 안배(8)
학살, 또 학살.
그야말로 학살의 향연이었다.
고작 반나절 만에 삼백에 가까운 몬스터 무리를 죽였다. 그럼에도 케른은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
그가 검을 잘 쓴다는 건 메르헨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인 전투와 몬스터 사냥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날고 기는 기사 후보생도 정작 실전에 가면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랬기에 좀 걱정했는데.
‘……엄청나.’
그냥, 엄청났다.
몬스터를 가지고 노는 느낌이라고 해야 알맞을 것 같았다.
초고속 전진.
어어 하다 보니 어느새 악마의 숲의 중간 지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적당한 동굴 하나를 찾아낸 케른이 메르헨을 바라보았다.
“야영은 여기서 하면 되겠네.”
“응.”
나뭇가지를 모아 온 그녀가 도구를 통해 불을 붙였다.
따닥.
따닥.
모닥불 사이로 준비해 온 음식이 익어 갔다.
“먹어.”
케른이 두툼한 고기 한 점을 건넸다. 그렇게 식사를 하는 사이.
주변을 둘러보던 메르헨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정도였나?”
“뭐가?”
“마기가 1년 전보다 더 진해진 것 같아서.”
“그래?”
“응. 저기 한 번 봐 봐.”
그녀가 가리킨 곳엔 마기에 잔뜩 뒤틀린 나무가 있었다.
아예 스크류바처럼 꼬여 있는 모양새가 비슷했다.
“저런 현상은 여기 숲에서도 좀 깊숙한 곳에 가야 나온다고 들었거든.”
마기가 진해졌다라.
악마의 숲에 대해 문헌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렸다.
듣기론 마계의 기운이 전달되는 통로 같은 게 있어서 숲이 오염되는 구조라고 했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기에 일단 내버려 두고 있다는 설명도 보았다.
‘쌓인 몬스터의 토벌은…….’
매년 진행되는 아카데미의 실습 시험. 이게 일종의 정기적인 토벌인 셈이었다.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겠지.’
학생들에게 양질의 실전 경험을 쌓게 해 줄 수 있다.
또한 토벌을 통해 제국 측에게 일정 수준의 보상을 얻는다 들었다.
마기라는 위험성에도 이 숲이 괜히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마기가 많이 나온다는 건, 통로가 커진다는 소리 아닌가?”
“응? 통로에 대해서도 알아?”
“나도 책 좀 봤어.”
그 말에 메르헨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그렇지. 통로가 커지면 커질수록…….”
“몬스터 웨이브가 등장할 확률이 높아진다. 맞지?”
“응. 마계에서 뭐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니까. 그럼 몬스터들이 하나로 뭉쳐서 웨이브를 만든다고 해. 그래서 말인데…….”
메르헨이 이쪽을 흘깃 바라본 채 말했다.
“……그, 돌아가서 교수님들에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웨이브 올 거라고?”
“응. 좀 걱정돼서.”
“나무가 좀 기괴하긴 한데, 저거 하나로 확정 지을 수 있는 사안이야?”
“그건 아니지. 다만 위험성이 아예 없진 않다 정도일 뿐…….”
웅얼거리던 메르헨이 머리를 긁적였다.
“……안 믿어 주려나?”
“모르지. 시험을 중단할지 안 할지는. 근데, 굳이 말해야 할까?”
“응?”
“그냥 우리가 처리하면 되잖아.”
“……응?”
“아깝잖아. 그거 다 점수 덩어리인데.”
몬스터 웨이브 그거 경험치 복사 이벤트 아닌가?
‘안 그래도 사령검한테 피 좀 줘야 하는데.’
이걸 쪼르르 달려가서 보고했다간, 외각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단과 마법 병단이 움직일지도 몰랐다. 수준은 제국에서도 중상 정도라 들었다.
몬스터 웨이브 정도는 자기들끼리도 어느 정도 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그럼 경험치도 날리고 점수도 죄다 날리게 되는 것이다.
근데 굳이?
“……그, 케른 넌 사고방식이 좀 독특하네.”
“어차피 우리가 말 안 해도 누군가는 가서 말하겠지. 안 그래?”
이쪽이 좀 더 빨리 내부로 들어오긴 했다지만, 조금만 지나도 상위권 애들은 알아서 이 라인까지 도착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몬스터 때려잡아야 점수가 오르는 구조 아닌가.
몬스터는 당연히 숲 안쪽에 많이 있었다.
“……음. 모르겠어. 본다고 해도 시험 도중에 돌아가려나? 그러다 계속 진행되기라도 하면 꼴찌 확정인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냐?”
“어…… 그렇네? 이미 벌어 둔 점수가 있어서 꼴찌는 안 할 것 같긴 한데…….”
“겨우 그 점수로 만족하게? 안 그래도 꼴찌였으면서?”
“…….”
메르헨이 침묵했다.
김민우가 슬쩍 말했다.
“그래도 메르헨 네가 원한다면, 돌아갈게.”
두 번째 안배.
여기서 최우선 순위는 바로 메르헨과의 관계다.
그 무엇도 이것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다.
군단장 획득.
애초에 이 때문에 안배를 수행하러 온 게 아니던가.
그러니 원하는 게 있다 한들, 그걸 강요하는 형식으로 받아들이게 해선 곤란했다.
그래서야 소탐대실이다.
‘그냥 상황 파악만 하게 만들면 그만이지.’
어차피 누군가는 말해 주지 않을까?
아무도 안 나설 거라고?
그럼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데?
대충 돌려 말해 줬다.
말귀 정도야 알아먹었겠지.
물론 이렇게 말해도 돌아가자고 한다면, 김민우는 망설임 없이 돌아갈 생각이었다.
레벨 업과 사령검 피 건네주기?
그건 나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반면 메르헨과의 관계는.
‘여기서밖에 못 쌓지.’
이유 없는 무대는 없다.
단순히 언데드가 되는 걸 막아 내기만 하면 되는 구조라면.
‘굳이 이렇게 과거사를 보여 줄 필요가 없거든.’
그냥 사악한 데스 로드에게 꺄아악, 거리는 메르헨이 놓인 장면에서 시작하면 그만이다.
곧바로 데스 로드와 꽝 하고 부딪치면 된다.
근데 그렇게 안 했다.
오히려 상당한 여유 기간이 주어졌다.
왜?
‘메르헨의 후회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플레이어에게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김민우는 이 시간을 메르헨과 친분을 다지는데 필요한 기간으로 보고 있었다.
‘관계 형성.’
그게 아니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설마하니 지원군을 요청하라고 준 시간은 아닐 테니까.
‘와도 못 이길 테고.’
제국의 황제도 아니고, 고작 공작가 아들놈이 병력 끌어와 봤자 얼마나 끌겠나?
애초에 지원군 수준에서 처리될 존재였다면, 데스 로드가 이 대륙을 지배하지도 못했을 거다.
결론.
메르헨과 더 친해져야 한다.
그럼 뭔가 이점이 있는 구조일 것이다.
김민우는 그렇게 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래?”
“……그, 그럼 오늘은 일단 자고…… 내일 좀 더 들어가 볼까?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원한다면.”
* * *
메르헨과 케른이 숲 안쪽을 향해 진입했다. 더 기괴하게 변한 몬스터부터 시작해서 끔찍하게 뒤틀린 나무들이 드문드문 등장했다.
중간에 위기도 몇 번 있었다.
당연히 케른의 위기는 아니었다.
메르헨.
그녀가 몇 번 위험한 상황을 넘겼다. 특히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샤벨 타이거가 덮쳤을 땐 정말 위험할 뻔했다.
―커헝!
순식간에 발톱을 내민 채 덮치는 몬스터.
메르헨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터질 것 같은 심장.
‘제발……!’
애타는 마음에도 발현은커녕 마법이 나갈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서걱!
“괜찮아?”
다행히 케른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케른의 팔이 발톱에 크게 베인 모습이 보였다.
‘……나 때문에 상처까지…….’
케른의 몸에 난 상처를 본 메르헨이 발을 동동 굴렀다.
“미, 미안. 나 때문에…….”
“괜찮아.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뭘. 간지럽지도 않은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은 채 포션을 붓는 케른.
이상하다.
샤벨 타이거는 분명 쓰러졌는데.
두근.
뜀박질하는 심장이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었다.
특히 케른을 바라볼 때 더 그랬다.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포션을 부은 김민우가 메르헨을 바라보았다.
‘이거, 좀 중증인데?’
조금 전 위기.
샤벨 타이거가 숨어 있다는 건 하양이를 통해 진작 알고 있었다.
일부러 습격을 유도했다.
죽으라고 그런 건 당연히 아니고.
보통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발현이 되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태 몇 번 그런 위기 상황을 유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발현은커녕 마나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걸론 힘들겠네.’
각이 나왔다.
단순히 목숨이 위험한 수준 가지곤 마법을 발현시키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게 쉬웠으면 진작 발현했겠지.’
메르헨도 나름 노력해 보지 않았겠는가. 일단 목숨의 위협으로 인한 발현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 정도 더 진입하며 몇 가지 변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점점 더 진득해지는 마기.
군데군데 이어진 몬스터들의 발자국이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그것을 본 메르헨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이전까지는 마기가 좀 더 심해졌다는 건 알 수 있을지언정, 웨이브의 가능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면.
지금은 달랐다.
몬스터가 모인다?
이건 명백한 웨이브의 징조였다.
“케른. 더 가면 위험해.”
“그러게. 조만간 웨이브가 터질 것 같네.”
“가자. 알려야 해.”
“메르헨.”
“응.”
“세드릭 붙여 줄 테니까, 먼저 가.”
“……응?”
갸웃하는 메르헨을 향해 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머지않아 몬스터들이 죄다 몰려올 거야. 학생들이 모두 숲에 퍼져 있으니, 이대로라면 많이 죽을 테고.”
“그, 그러니까 빨리 도망쳐야지!”
“누군가는 막아야 해.”
“하, 하지만…….”
그게 너일 필요는 없잖아.
메르헨이 뒷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내, 내가 케른한테 부담을 준 건가?’
문득 그 생각이 스쳐 갔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웨이브를 알려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했던 건 바로 자신이었다.
그에 비해 케른은 어땠던가?
그는 그 의견에 회의적이었다.
네가 꼭 하겠다면 반대는 안 하겠지만, 굳이?
이런 느낌이었다.
점수에 대한 욕심.
거기에 정말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에, 여태까진 메르헨도 그런 주장을 펼칠지언정 어영부영한 태도로 케른을 따라왔었다.
근데 확실한 웨이브의 증거가 나온 순간, 돌연 그의 태도가 변화했다.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쪽으로.
진짜 웨이브를 혼자 다 잡아서 점수 얻겠다고 그러는 건 아닐 테고.
아무리 봐도 이유로 떠오를 만한 건 자신의 태도뿐이었다.
메르헨이 다급히 말했다.
“나, 나 때문이라면 그럴 거 없어. 나 하나도 신경 안 써. 어차피 다들 이기적이잖아.”
만약 학생들이 이 이상 현상을 알렸다면?
두세 조만 그런 현상을 알렸어도 이미 구조대가 출발했을 것이다.
사방에 마법 폭죽을 휘날렸겠지.
그럼 숲 안쪽에 들어왔다 한들 적어도 확인 정도는 가능했을 테고.
그러나 마법 폭죽은 단 한 번도 터지지 않았다.
상위권과 중위권.
그 선두 주자들 중 누구도 이상 현상에 대해 보고하러 가지 않은 것이다.
물론 자신들도 그러지 않았기에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단지.
그냥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는 걸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을 뿐이다. 그러니 케른이 희생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불의의 사고에 대체 왜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웨이브를 케른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닌데.
메르헨이 다급히 케른의 소매를 붙잡았다.
“가, 같이 가. 아직 안 늦었잖아. 도망가면…….”
그때.
마치 수천의 무리가 달려나가는 것처럼 땅이 떨리기 시작했다.
메르헨의 눈이 멍해졌다.
거센 진동.
이미 웨이브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네. 이쪽으로.”
“아…….”
케른이 손을 뻗었다.
소환된 세드릭을 향해 말했다.
“데리고 가.”
―그러지.
세드릭이 메르헨의 팔을 붙잡았다.
“싫어! 놔! 케른! 나도 같이 있을…….”
―……곱게 따라와라.
메르헨을 덥썩 어깨 위에 얹은 채, 세드릭이 달려나갔다.
손으로 두개골을 마구 잡은 채 흔드는 메르헨.
‘……귀찮군.’
세드릭이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여자는 주인의 진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웬 몬스터 웨이브 하나에 이렇게 발광을 해대지.
마음 같아선 왜 그렇게 난리냐고 쏘아붙여 주고 싶긴 한데.
그랬다간 주인에게 몇 달 내내 두들겨 맞을지도 몰랐다.
김민우는 치밀한 인간이다.
진가를 안 보여 준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어깨 위에서 발광하는 과거의 동료를 보니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았다.
십중팔구.
‘점수 따려고 그런 거겠지.’
“놓으라고!”
―가만히 좀 있어라.
두개골 안으로 쏙 파고든 손가락을 떼어 낸 세드릭이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정말 그 차갑고 고고했던, 밴시 퀸이 맞단 말인가?
현타가 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