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카- 가가가각-
손아귀에서 엄청난 저항감이 느껴졌다. 이안은 이를 악물면서 끝까지 팔을 뻗었다.
퍼석.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안광이 폭발하듯 번쩍였다. 뻗어 나가지 못하고 응축되던 신성력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반작용을 더는 버티지 못한 이안이 뒤로 튕겨 나갔다.
키- 아아아아-!
타후므리트의 분노한 절규가 숨결과 함께 터져 나왔다. 바닥을 구르는 이안을 향해 숨결이 마구 밀려들었다.
콰직!
백금색 날개가 그 앞의 땅을 내리찍으며 가로막았다. 숨결이 날개에 막혀 사방으로 흩어지며 얼어붙었다. 날갯죽지 너머로 황금색 마력이 눈부시게 점멸하며 숨결과 포효를 막아냈다.
아르케아스의 눈매가 설핏 구겨진 순간.
콰아아!
타후므리트의 전신에서 터져 나온 보랏빛 충격파가 그의 거체를 밀쳐냈다. 한데 뒤엉켜 소용돌이치던 하늘의 마력이 번쩍였다.
더 강하게 튕겨진 건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 밀려나냐고…!’
그는 이를 악물며 왼팔을 땅에 찍듯 휘둘렀다. 카가각, 팔 끝의 역장 방패가 땅에 박혔다. 이안의 왼팔은 강력한 자력에 고정된 것처럼 방패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절벽에 매달린 듯한 자세.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와중에, 이안은 단죄의 검을 간신히 거꾸로 쥐었다. 검날도 땅에 박혔다.
콰과과-
방패와 검이 땅을 갈듯 밀려났다.
진언에 담긴 마력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어이없게도 망자들의 공격을 막거나 후려칠 때보다, 지금 소모되는 마력이 더 많았다.
어쨌거나 어깨의 고통도, 밀려나는 속도도 줄어들었다.
이안의 발이 땅에 닿은 그때.
쿠우웅-
멀지 않은 곳에 아르케아스가 떨어졌다. 지축이 흔들리고 충격파가 역장 방패 위를 훑고 지나갔다.
한쪽 무릎을 꿇은 이안의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크르르….
하지만 아르케아스는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마력을 폭발시킨 타후므리트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른 빛이 아니라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놈의 안광이, 마력이 뒤엉킨 하늘로 향했다.
놈이 치솟았다.
자세를 다잡은 아르케아스가 날개를 펼친 건 그 직후였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날아오르지 않았다.
대신 눈매를 슬며시 찌푸린 채 뒤를 돌아보았다.
“하아… 하아….”
꼬리 위로 뛰어올라 몸을 타고 오르는 인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아르케아스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기까지 했다.
아르케아스는 감히 자신의 몸을 밟는 인간에게 분노하거나, 불경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거대한 송곳니를 슬쩍 드러내고는, 몸의 비늘을 살짝 세워 주었다.
그가 밟고 오르기 편하도록.
동시에 그의 전신에 옅은 금빛이 아른댔다.
떨어져 사라졌던 전신의 비늘이 전부 한순간에 새로 돋아났다.
양 날개뼈 사이의 비늘은 몇 겹으로 돋아나며 위로 솟아올랐다.
그사이 거의 달리듯 기어 올라온 이안은, 자신의 가슴 아래까지 여러 겹으로 돋아난 비늘 사이로 왼팔을 단단하게 끼워 넣었다.
“……!”
그 순간 아르케아스는 그의 몸속에 아른거리는 마력의 파장을 느꼈다.
흐릿한 공허의 힘과 선명한 신성력도.
마법사라니.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라는 감상은, 물론 찰나에 불과했다.
타후므리트가 어느새 저 높이까지 솟구치고 있었으니까.
아르케아스가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의 거체가 대기를 찢으며 솟구쳤다.
***
콰과과과과-
눈도 뜨기 힘든 엄청난 풍압 한복판.
‘이게 맞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찰나의 순간 속에서, 이안은 당연한 의문을 떠올렸다.
이게 정말 옳은 공략법인가 하는.
공략 글을 자세히 읽었어야 했다.
돌이켜 보면, 그가 공략을 제대로 읽은 시간은 불과 삼십 분도 되지 않았다.
스크롤을 휙휙 내리며 자신의 캐릭터가 왜 망캐인지 알아본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로 다른 것들에 사용한 시간은 채 절반도 되지 않으리라.
본래의 그는 그다지 똑똑하지도, 활자를 읽는 걸 즐기지도 않았다.
어차피 캐릭터를 새로 키우면서 중간중간 찾아가며 읽으면 그만이기도 했고.
‘다른 직업 설명이나 퀘스트 목록을 훑어볼 시간에, 주요 퀘스트 공략이나 진득하게 읽을걸.’
하다못해 그렇게나 많이 건너뛴 북부의 공략이라도 차근히 눈에 담았더라면, 그는 지금 용의 등이 아니라 안전한 지상에 서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르케아스가 타후므리트를 다시 지상으로 끄집어 내려 주기를 기다리면서.
물론, 지금에 와선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시간을 돌릴 수는 없으니까.
‘저 새끼를 죽이면, 그게 옳은 공략법이 되는 거지.’
비로소 압력이 조금 줄어들었다.
휘몰아치는 구름 바로 아래였다. 거대한 마력의 바다를 머리 위에 둔 느낌. 저 소용돌이에 담긴 마력이 얼마나 방대한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마력을 이렇게나 쓴 채로 싸웠는데도 그 정도였단 말이지….’
아르케아스가 상승을 멈췄다.
저 너머, 타후므리트가 보였다. 놈은 소용돌이에서 마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묵은 갈증을 해소하듯 필사적으로.
아르케아스는 물론 기다려 주지 않았다.
콰아아아-
솟구치는 동안 이미 응집되어 있던 마력이, 용의 숨결이 되어 눈부시게 뻗어나갔다.
타후므리트는 피하지 못했다.
콰과과과과-
눈부신 폭발과 열기가 놈을 집어삼켰다. 비늘 사이에 더 깊이 손을 끼우며, 이안은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곧 불길에 삼켜졌던 타후므리트의 모습이 설핏 드러났다.
어느새 놈의 전신에 보랏빛이 뒤엉킨 마력이 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놈도 온전하진 못했다.
근육은 완전히 타서 눌어붙고, 뼈 역시 마찬가지였다.
‘깨지는 게 아니라 녹아내리다니.’
타후므리트의 날개 위로 두 장의 날개가 더 펼쳐진 건 그때였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날개였다.
거의 동시에 소용돌이 사이로 번진 황금빛 마력이 아르케아스의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솨아아아-
아르케아스의 날개 위로도 황금빛 마력 날개가 돋아났다.
“……?!”
이안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몸 속으로 밀도가 엄청난 마력이 밀려들고 있었다.
용의 마력.
백금색의 커다란 비늘 하나가 왼손 손아귀에 들러붙어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느껴졌다.
이안의 입가에 헛웃음이 번졌다.
‘이게 마법사 버프인가…?’
이제야 그가 마법사라는 걸 알게 된 게 분명했다.
마력이 무한대로 늘어난 것 같은 고양감이 뒤를 이었다. 그의 머리는 이 순간에도 그 이면의 진실을 깨달았다.
이 정도 마력은 아르케아스에게는 티끌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마 그가 아무리 마법을 쏟아낸다 하더라도, 바다에서 물을 몇 냄비 퍼내는 것에 불과하리라.
‘그렇다면….’
생각하며, 이안은 단죄의 검을 옆으로 뻗었다.
푸른 신성력이 검신을 타고 뻗어나가는 가운데, 황금빛 마력이 그 사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치칙- 치치칙-
마력은 곧 새하얀 뇌전으로 화해 거미줄처럼 번져나갔다.
포효한 타후므리트가 날아든 건 그 직후였다. 놈의 목표는 이안이 틀림없었다.
아르케아스도 마주 뻗어나갔다.
쩍, 이안의 손아귀에 붙어 있던 비늘이, 안장 역할을 하는 비늘들 사이로 들러붙었다.
쩌엉-!
두 용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그들은 아까와 달리 추락하지 않았다. 마력 날개가 모종의 역할을 하는 게 분명했다.
공중전이 이어졌다. 포효와 마법, 숨결이 난무했다. 둘은 서로의 턱을 후려치거나 몸을 회전하며 숨결을 피하고, 역장과 충격파를 토해내 마법을 상쇄시켰다.
위와 아래의 구별이 무의미한 어지러운 전투. 요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신화의 한 장면을 목격하는 기분이리라.
그리고 그 한복판의 이안은, 뜻밖에도 크게 괴롭지 않았다.
투쟁의 축복뿐 아니라 용의 마력까지 그의 능력치를 높여주고 있었다.
‘버프가 대체 몇 겹인지.’
생각하며, 이안은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단죄의 검은 어느새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뇌전이 아니라 빛의 검을 든 것 같았다.
용의 마력에는 마법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안은 거기에 혼돈력까지 섞어 넣었다.
마법을 더 증폭시키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그게 타후므리트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놈은 지금 공허의 마력까지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혼돈력은 같은 공허의 존재들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걸, 이안은 지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캐릭터를 타락시키면, 이런 식으로 타락자들과 싸우는 거겠지.’
이안은 지금이라면 마법을 끝도 없이 증폭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단죄의 검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농담 삼아 강철 마법봉이라 부르긴 하지만. 어쨌건 검은 대부분 마법을 부리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었다.
검으로 마법을 쓰면 내구도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
그거 예비 성물인 이 튼튼한 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검 내부 어딘가에 자리한 신성의 근원이 휘청대는 게 느껴졌다.
내내 신성력을 한계까지 뽑아내며 휘두른 여파이기도 하리라.
‘조금만. 조금만 더….’
다행히 적당한 순간은, 검이 더는 마법을 버틸 수 없게 되기 전에 찾아왔다.
쿠와악-
아르케아스의 앞발에 뒤엉켜 있던 타후므리트가 불쑥, 기습적으로 고개를 들이민 것이다.
이안을 그대로 찢어발기려는 듯, 보랏빛 마력을 머금은 아가리가 벌어졌다.
“댁도 좀 따끔할 거요.”
아르케아스를 향해 내뱉은 이안이, 그 한복판으로 빛의 검을 내뻗었다.
용의 숨결조차 뇌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새하얀 빛 덩어리 같은 뇌전이 타후므리트의 아가리를 관통했다.
파삭-
일렁이던 보랏빛 마력이 으깨졌다.
타락용의 뼈 사이로 새하얀 빛이 번쩍이고, 뒤이어 새하얀 뇌전 줄기가 거체를 뒤덮었다.
캬- 아아아아-!
놈에게도 확실히 깜짝 놀랄 정도의 충격인 모양이었다. 용의 마력과 혼돈력이 놈의 강대한 저항력을 뚫어낸 게 분명했다.
…이정도면 인간의 마법은 초월한 것 같은데.
생각하는 사이, 아르케아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카드득-!
뇌전이 자신에게도 타격을 입히는 것을 감수하고, 타후므리트의 어깻죽지를 깊이 깨문 것이다.
그러면서 황금빛 마력이 가득 맺힌 양 앞발을 놈의 갈비뼈 한복판으로 틀어박았다.
번쩍이며 상쇄되는 마력과 충격파.
꽈지직-
기어코 그의 발톱이 타락용의 가슴을 으스러뜨리기 시작했다.
고통에 찬 절규를 토해내며, 타후므리트도 아르케아스의 목덜미를 깊이 깨물었다. 아르케아스는 방어에 돌릴 마력 조차 전부 공격에 동원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백금색 비늘이 으스러지며, 용의 피가 치솟았다.
튀어 오르자마자 기체가 되어 승화하는 황금색 마력.
까드드드득-
그사이, 타후므리트의 가슴이 점점 더 으스러졌다.
아르케아스는 목덜미를 깊이 물린 상태에서도 다시 한번 힘을 줬다.
그의 거체에 어마어마한 힘이 실리는 것이 이안에게도 전해졌다.
타후므리트가 조금씩 위로 솟았다.
아르케아스가 놈의 가슴에 박아넣은 양 앞발을 점점 벌리면서 치켜들고 있었다.
우지직, 어깨와 이어진 아르케아스의 목덜미가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황금빛 피가 치솟으며 금빛 안개가 자욱해졌다.
마침내 백금룡의 살점을 한가득 입에 문 타후므리트가 고개를 젖혔다.
고통과 증오가 뒤섞인 절규.
곧 살점을 뱉어낸 타후므리트가 아르케아스의 목을 물어뜯었다. 아르케아스도 물러나지 않고 놈의 뼈만 남은 목을 물었다.
“…….”
하지만 이안은 두 용의 뒤엉킨 머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아르케아스가 치켜든 앞발 사이.
으스러진 티후므리트의 가슴이 좌우로 쩍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그의 시선은 그 한복판, 거대하고 새카만 덩어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부에 엄청나게 응축된 마력이 전해졌다.
용의 약점.
본래라면 몇 겹의 뼈와 마법으로 보호받는 용의 심장이, 같은 용에 의해 무방비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쩌적-
이안은 비늘에 붙어 있던 왼팔을 빼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걸음을 옮겨, 아르케아스의 어깻죽지 끝에 멈춰 섰다.
단죄의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강대한 마법을 펼친 여파로 위태롭게 깜빡이던 신성력이, 어느새 다시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
이안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밑에서 볼 때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건만. 여기선 모든 게 장난감처럼 보일 만큼 작았다.
사방에 자욱하게 깔린 짙은 어둠. 그 한복판, 불길과 재에 뒤덮인 폐허가 된 계곡과 벨리움 요새.
공포에 질린 것처럼 울부짖는 망자들.
이안의 입가에 옅은 실소가 스쳤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겠지?’
다음 순간, 그는 심장을 향해 몸을 날리며 단죄의 검을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