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
014화
빠악!
둔탁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메브가 싸우는 동안에는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소리.
검면에 맞고 튀어나온 무언가가 바닥에 처박힌 건 그 직후였다.
흙먼지가 치솟는 가운데.
촤악-!
그 앞에 착지한 이안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검을 내리찍었다.
빠악! 콰직! 빠각!
무자비한 타격이 이어졌다.
처박혀 있던 무언가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튀어 올랐다.
메브는 비로소 그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카만 두개골이었다.
인간의 것이라기엔 눈두덩이가 큰.
‘…저게 본체였던 건가.’
메브는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그 형체 사이에서 저걸 어떻게 찾아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이안이 그 어려운 일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이었다.
두개골을 깨부수려 한다는 것도.
“…….”
메브는 말의 속도를 늦췄다.
그녀가 이안을 도와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콰아아-.
두개골의 눈구멍에서 새빨간 안광이 줄기줄기 피어올랐다.
아까 보았던 그 안광.
“■■■-! ■■■■ ■■■!”
쩍 벌어진 턱뼈 사이로 악령이 울부짖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검붉은 마력의 파장이 두개골에서부터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읏…?!”
메브가 절로 눈을 부릅떴다.
전신이 얼어붙은 까닭이었다.
신성력을 두른 그녀조차 마비될 정도로 강력한 저주였다.
말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면 낙마하고 말았으리라.
‘그렇다면…?’
메브의 시선이 이안에게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검을 내리치던 이안의 움직임도 굳어져 있었다.
솨아아-!
두개골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놈의 주위로 새카만 원념 덩어리가 뭉실뭉실 번지기 시작했다.
“…….”
메브가 이를 악물었다.
놈이 본래 형태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 마비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녀가 황급히 신성력을 뿜어내려던 그 순간.
터억.
이안이 손을 뻗어, 두개골을 움켜쥐었다.
“……!”
손아귀에 잡힌 정수리의 딱딱함을 느끼며, 이안은 미소 지었다.
‘이럴 줄 알았다, 새꺄.’
안돌프 때도 그랬듯, 네임드 몬스터들은 위기 상황을 탈출할 비기를 최소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둘라한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안은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마비가 아닌 순간적인 둔화.
그마저도 1초 남짓한 순간이었다.
높은 정신력과 마력, 잘못 찍은 몇 개의 스킬들이 만들어 낸 시너지 효과였다.
“……!”
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안은 두개골의 눈두덩이에 타오르는 안광이 당황스럽게 흔들리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그는 입술 끝만 말아 올려 미소 짓고는, 그대로 두개골을 땅에 내리찍었다.
퍼억!
마력까지 담았기에 두개골이 땅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뭉실뭉실 번지던 원념이 흩어졌다.
뒤이어 이안이 검을 들어 올렸고.
빠각!
일방적인 구타가 다시 시작됐다.
현란한 기교나 화려한 기술 따윈 없었다.
그저 손에 든 검을 날이고 면이고 상관없이 힘껏 내리치고, 다시 들었다가 내리치는 것의 반복.
보통의 몽둥이질과 다른 건, 지금 이안의 검에는 바람 칼날 마법에 더해, 마력까지 가득 실려 있다는 점이었다.
내구성까지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구타가 이어질수록 검 역시 망가지고 있었지만.
빡! 콰직!
이안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리쳤다.
두개골이 도망치려 하면 다시 붙잡아 내동댕이치면서.
“…….”
메브는 검을 늘어뜨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비는 진작 풀렸지만, 도저히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불길하던 마물이, 저렇게나 단순한 폭력에 일방적으로 휩쓸리고 있다니.
더 황당한 것은, 그게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붉은 안광이 눈에 띄게 휘청댔고.
빠각! 쩍-! 쩌적-!
금이 가는 두개골 사이로 오염된 마력이 연기처럼 새어 나왔다.
콰직!
두개골의 이마뼈 한복판에, 마침내 이안의 검이 박혀 들었다.
깜빡이던 붉은 안광이 폭발하듯 번쩍인 건 그 직후였다.
“■■■-! ■■■■! ■■■!”
둘라한이 어긋난 턱뼈를 들썩이며 울부짖었다.
메브가 듣기에 그건, 처절한 단말마나 애원처럼 느껴졌다.
“■■! ■■■ ■■■■■!”
비명을 토해내던 두개골이, 별안간 검에 박힌 채로 들려 올라갔다.
직후, 이안의 입술이 달싹였다.
“조까.”
콰직!
그가 검을 땅에 내리찍었다.
쩌저적, 두개골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졌다. 그 사이로 새카만 마력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아아아아아-!
구슬픈 비명과 함께 안광이 눈부시게 점멸했다.
비명이 바람 빠지듯 잦아들었다.
안광마저 사라지자, 사위가 거짓말처럼 적막과 어둠에 휩싸였다.
“후….”
계속 두개골을 노려보던 이안이, 비로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잠깐 사이에 두개골은 매우 낡고 볼품없게 변해 있었다.
툭 치면 부서질 것처럼.
이안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네 원한 따위, 내가 알 바냐고.”
그는 둘라한의 단말마를 떠올렸다.
비화가 궁금하지도, 되새기고 싶지도 않은 케케묵은 원한.
퍼석.
박혀 있던 검이 손쉽게 뽑혔다.
이안은 거의 못 쓰게 된 검을 내려놓고는, 깨진 뼛조각으로 뒤덮인 두개골의 정수리로 손을 내밀었다.
희미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가 뼛조각 하나를 집어 든 순간.
쉭-!
눈구멍 안에서 작고 새카만 무언가가 화살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직도 뭐가 남았다고…?
생각보다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안은 날아오는 것을 반사적으로 잡아챘다.
움켜쥔 손아귀에 뭔가가 꿈틀댔다.
따끔한 통증이 뒤를 이었다.
“……?”
이안의 눈썹이 내려앉았다.
통증 때문이 아니라, 몸속으로 밀려드는 마력 때문이었다.
음습하고 끈적한 오염된 마력.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영문 모를 공포. 끝없는 증오와 분노가 해일처럼 치밀었다.
비명과 절규가 머릿속에 메아리치고 눈앞이 붉게 물들었지만.
“호오….”
이안은 그 광기에 조금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저 조금 놀랐을 뿐.
애초에 이 정도 원념으론, 그의 정신을 조금도 무너뜨릴 수 없었다.
플레이하던 게임 속에 망캐로 내던져지는 정도라면 모를까.
물론.
“…더럽게 시끄럽네.”
거슬리지 않는 것까진 아니었다.
콱, 이안은 손아귀에 힘을 줬다.
그리고는 손아귀의 무언가에게, 도리어 자신의 마력을 밀어 넣었다.
원념이 담긴 오염된 마력도 함께.
손아귀의 꿈틀거림이 거세졌다.
왜, 똑같이 당하니까 좆같냐?
이안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력을 주입했다.
꿈틀거림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윽고, 손아귀가 잠잠해졌다.
“……?!”
진짜 이안을 놀라게 만든 변화는 그 순간에 일어났다.
손아귀에서 새로운 감각 기관이 생겨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몸속의 마력을 느꼈던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손이나 발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생경한.
심지어 이것에서는 감각뿐 아니라, 단순하지만 또렷한 감정까지도 전해졌다.
굴복. 그리고 복종.
‘의식이 있다고…? 그게 나한테도 전해지고?’
더는 놀랄 게 없을 줄 알았는데.
감탄하며, 이안은 손을 펼쳤다.
손바닥 한복판.
검고 얇은 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뱀이었다. 5cm는 될까 싶은 가느다란 검은 뱀.
뱀은 깨알 같은 눈으로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또다시 같은 감정이 전해졌다.
완전한 복종.
‘뭐, 내 애완동물이라도 된 거냐?’
대꾸하듯 꼬리를 꿈틀댄 녀석이, 장갑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안은 재빨리 장갑을 벗었다.
뱀이 그의 중지를 감싸고 있었다.
자신의 꼬리를 깨문 채였는데, 영락없이 뱀의 형태로 세공한 반지처럼 보였다.
비로소 이안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건…?’
둘라한에게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전리품이 이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유일 등급의 반지, 늪지의 원한.
일정 이상의 정신력과 지능 수치를 갖추지 않으면 캐릭터가 착란 상태에 빠지는 제약이 있었다. 막상 획득하는 1챕터에서는 사용조차 할 수 없던 물건이었다.
그 착용 제한 조건이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 것이었을 줄이야.
심지어 진짜 뱀이었다니.
“방금 그건 뭐지? 불길한 마력이 느껴지던데.”
그때, 등 뒤에서 메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말에서 내려, 안면 가리개도 위로 올린 채 다가오고 있었다.
이안이 오른손을 들었다.
“이 반지에서 나온 마력이오.”
메브가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그걸 그냥 손에 끼다니. 어차피 전리품은 전부 네 것이지만, 정말 괜찮은 거냐?”
“보시다시피. 무사하오.”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를 찬찬히 살핀 메브가, 이윽고 감탄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쳤다.
“…정말이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이안. 망령을 두들겨 패서 처치하다니. 직접 본 게 아니었다면 믿지 못했을 거다.”
“나도 실제로 해 본 건 처음이오.”
피식 웃은 이안이 두개골의 뼛조각을 헤집었다.
“전리품은 내 것이라 하시니….”
이내 그의 손가락 끝에 익숙한 검은 구슬이 딸려 올라왔다.
또 다른 오염된 마력의 정수였다.
“이것도 내가 가지겠소.”
메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주머니에 정수를 넣는 사이, 그녀가 덧붙였다.
“그 두개골은 내게 주겠나? 증거로서의 가치가 충분해 보이는데.”
“기꺼이.”
이안이 두개골을 내밀었다.
메브가 혹시라도 부서질까, 조심스럽게 두개골을 받아 들었다.
금이 간 커다란 눈두덩이를 응시하던 그녀가 읊조렸다.
“고대 원혼에게도 힘을 주다니.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흑마법사의 속내를 누가 알겠소. 어쩌면 거창한 계획 따윈 없을지도 모르지.”
이안은 대충 대꾸하며 일어섰다.
어차피 죽을 놈의 목적 따윈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이제는 그저, 새로 얻은 반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을 뿐.
“…….”
메브의 침음이 이어졌다.
그저 나라의 앞날만을 걱정한다기엔, 지나치게 수심 가득한 눈빛.
마찬가지로 이안은 그녀의 사연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만나게 되면 다 알게 될 거요. 말 많은 놈이었으니.”
몸을 돌린 이안이, 고요한 언덕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지금은, 필립이 살아 있는지나 확인하러 갑시다.”
타탁. 타탁.
모닥불이 어둠을 밝혔다.
필립이 식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꼬챙이에 꿴 육포와 햄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 갔다.
한쪽에 앉은 이안은 그쪽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손가락에 낀 검은 반지를 묵묵히 응시했다.
정확히는 그만이 볼 수 있는 반지의 정보창을.
늪지의 원한. 이 반지는 그가 이 세계에 떨어진 후, 처음으로 손에 넣은 유일 등급 장신구였다.
성능 역시 그에 걸맞게 뛰어났다.
각종 능력치 상승도 그렇지만.
착란 상태를 유발하는 저주를, 약간의 생명력을 대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이건 이 세계가 게임이었을 때에도 똑같이 붙어 있던 옵션이었다.
‘쏠쏠하게 써먹었었지.’
그때는 근거리로 다가온 적에게 사용하여, 거리를 벌리거나 마법을 완성할 시간을 벌었었다.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도 유용했다.
착란 상태에 빠지면 피아의 구별이 사라졌으니까.
현실이 된 지금은 더 많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저주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시험해 봐야겠군. 만약 내가 사용했다는 걸 들키지만 않는다면….’
이안이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젠장할….”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어둠 너머에서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구엘이었다.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된 그는, 모닥불 옆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의 주위로 흙먼지가 푸스스 피어올랐다.
“…….”
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던 필립은 인상만 찌푸릴 뿐, 그에게 핀잔까지 주지는 않았다.
부하들의 무덤을 파느라 저런 몰골이 되었기 때문이다.
육포를 툭툭 턴 필립이 다시 미구엘을 곁눈질했다.
“후우….”
모닥불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의뢰를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 부하까지 전부 잃었으니까.
심지어 충실히 의뢰를 수행한 끝에 일어난 비극이었으니 더 허망할 터였다.
함께 싸웠던 필립은 그가 부하들을 구하려 얼마나 애썼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딱한 눈빛이 된 필립이,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동료분들에 대한 의리가 대단하시군요. 다시 봤습니다, 미구엘.”
미구엘이 나지막이 코웃음 쳤다.
“의리는 무슨. 나 살자고 한 거요. 죽은 동료를 버리고 가는 건 재수 옴 붙는 짓이니까.”
“그런 미신도 있습니까?”
“나는 객사했는데 동료는 살면, 죽어서도 억울하지 않겠수? 그러니 잘 묻어라도 주는 거요. 악령이든 원혼이든 되지 않게. 시부럴, 끝까지 손이 많이 간다니까….”
투덜대는 것과 달리, 그의 눈빛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입술을 달싹이던 필립이, 대신 햄을 꿴 꼬챙이를 들었다.
그의 시선을 받은 메브가 고개를 젓고는 미구엘 쪽을 턱짓했다.
필립의 손이 냉큼 방향을 바꿨다.
“이거라도 드시죠.”
“고맙소.”
사양 않고 꼬챙이를 받아든 미구엘이, 햄을 질겅대며 말을 이었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요. 또 무리를 다 잃다니…. 동료가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게 벌써 세 번째요. 믿어지시오? 세 번이나 나만 살아남았단 말이오.”
“운을… 타고나셨군요.”
“악운이겠지. 이게 소문나면, 누가 나와 함께하려 하겠소? 나만 빼고 다 죽는데 말이오. 이러다 사냥꾼이 아니라 사신이라고 불리게 생겼단 말이오. 세 번째면 충분히-.”
미구엘의 말이 점점 자기 연민과 신세 한탄으로 흘러갔다.
어쩌면 이게 본심일지도 몰랐다.
이윽고 조금 질린 표정이 된 필립이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메브와 이안에게 차례로 꼬챙이를 건넨 그는, 이어지는 미구엘의 한탄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예상보다 여정이 너무 늦어지고 있습니다, 나리.”
“음.”
메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이안이 합류한 이후, 거의 매일 싸우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말도 두 마리나 잃은 상태였다. 내일부터는 일행의 행군 속도가 더 느려지리란 의미였다.
“무덤 숲까지는 아직도 일주일은 더 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아니, 길을 돌아가게 됐으니 더 걸리겠군요. 이러다 다른 곳을 수색할 시간이 아예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지. 허탕이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메브가 탄식하듯 읊조린 때였다.
“목적지가 무덤 숲이셨소?”
미구엘이 불쑥 끼어들었다.
필립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미구엘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일주일까지 걸릴 일도 없소. 마을을 들른다 해도, 길어야 닷새면 충분하지.”
필립의 눈썹이 말려 올라갔다.
“그럴 리가. 계곡을 돌아가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릴 텐데요.”
“돌아갈 필요가 없거든. 질러가면 그만이니까. 나처럼 오래 구른 용병들만 아는 샛길이 있소. 물론 좀 위험하긴 하지만….”
“그거, 책임질 수 있는 말이냐?”
말을 자르고 끼어든 것은,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던 이안이었다.
그를 돌아본 미구엘이 침을 꼴깍 삼키고는 대답했다.
“그, 그렇소. 직접 가 봤으니까. 말했다시피 좀 위험하긴 하오만.”
“그건 상관없어. 안 그렇소?”
이안이 메브를 돌아보자, 그녀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일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미구엘에게로 모였다.
미구엘의 이마에 식은땀이 돋았다.
“나, 나보고 뭐 어쩌란 거요?”
“안내하란 얘기지. 무덤 숲으로.”
못 알아들은 척하긴.
코웃음 친 이안이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을 미구엘에게 튕겼다.
“널 길잡이로 고용할 테니까.”
엉겁결에 받아든 미구엘이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 저주받은 숲에 왜 가시려는지는 알아야….”
그의 목소리가 이내 잦아들었다.
손아귀에서 번지는 황금색 광채에 시선을 빼앗긴 까닭이었다.
그의 입이 멍하니 달싹였다.
“…이거, 제국 금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