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소리로 봐선 열댓 명쯤 되는 것 같았다. 오염된 마력이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둠을 헤집는 이안의 눈이 반짝였다. 마력 탐지. 저 멀리, 달려오는 것들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일렁였다.
기수뿐 아니라 그들이 탄 말들도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가장 선명한 마력을 뿜어내는 건 선두의 기수였다. 이안이 느낀 기척도 저 자의 것이리라.
스릉, 이안의 옆에 선 샬롯이 왼손으로 은검을 뽑아 들었다. 오랜만이라는 듯 왼손 손목을 휘휘 돌리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여제가 우리가 온 걸 눈치챈 거 아닐까?”
“글쎄.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덤덤하게 대꾸한 이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마차 쪽으로 다가오던 메브와 필립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안이 내뱉었다.
“우두머리는 내가 상대하겠소. 둘은 여기서 나머지를 상대하시오.”
“너 혼자…? 소리로 봐선 한둘이 아닐 것 같다만. 가능할까?”
메브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어깨를 으쓱인 이안이 샬롯을 돌아보았다.
“넌 경과 필립을 보조하면서 말과 마차를 지키는 데에 주력해. 우리가 도망칠 생각이 없다는 걸 알면 굳이 마차를 놀진 않을 거야. 하지만 여차하면 피를 빨기 위해서 말을 죽이려 들 수도 있어. 그건 반드시 막아라.”
“그거야 어렵지 않다만…. 보조만 하라고?”
“넌 저놈들과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하는지, 이미 꽤 잘 알잖아.”
샬롯의 눈빛이 묘해졌다.
“저것들을 이 둘의 연습 상대로 삼을 생각인 거군.”
“왜, 자신 없나?”
“그럴리가. 하지만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면, 나도 전력을 다할 거다.”
“걱정 마라.”
대답한 건 메브였다.
샬롯의 시선을 받은 그녀가 덧붙였다.
“네가 말을 지킨다면, 우리도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을 테니. 그거면 충분해. 그렇지않느냐, 필립?”
“글쎄요… 아니, 그렇습니다. 물론이죠.”
말을 흐리던 필립이 메브의 시선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샬롯이 덧붙였다.
“마차에 내 은검이 한 자루 남아 있다. 필요하면 그걸 써.”
“일단은 그냥 싸워 보지. 정말 팔다리가 잘리고 목이 날아가도 죽지 않는지, 확인하고 싶으니까.”
“전 성물의 힘을 아낌없이 쓰겠습니다.”
“죽을 걱정은 마라, 내가 뒤를 봐 줄 테니.”
몇 번 같이 싸워 봤다고, 합이 꽤 잘 맞는군.
생각하며, 이안은 달려오는 기수들을 다시 눈에 담았다.
어느새 놈들은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몸 곳곳의 뼈와 썩은 속살을 훤히 드러낸 채로 숨소리도 없이 달리는 말들. 기다란 창을 늘어뜨린 채 헐렁한 가죽 갑옷을 들썩이며 그 위에 탄 사내들.
선두를 달리는 건 날이 울퉁불퉁한 양손 검을 한 손으로 든 기사였다. 누비옷 위에 판금 흉갑과 견갑, 장갑 따위를 대충 걸치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검은 안개 같은 마력이 연기처럼 흩날렸다.
좌우로 뿔이 돋은 판금 투구 아래로 붉은 안광이 유독 선명하게 일렁였다.
다그닥- 다각-
마침내 기수들이 속도를 줄였다.
그들은 마차에서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 섰다.
뱀파이어 기사는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왔다. 전신에 일렁이는 검은 안개가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투구 아래로 꽤 젊어 보이는 얼굴이 또렷해졌다. 이안은 응시하며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짓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의 새들을 죄다 죽였으니 도망치는 천것들은 아니겠거니 했다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냐?”
“알지. 흡혈귀와 떨거지들.”
덤덤하게 대답한 이안이 덧붙였다.
“하지만 보아하니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모양이군.”
“잘 알지.”
송곳니를 드러내며 더 짙게 웃은 기사가, 양손검을 어깨에 비스듬하게 걸치며 말했다.
“오늘 밤의 내 사냥감. 질질 짜며 도망치는 것들보단, 훨씬 재미있어 보이는.”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긴 저놈들의 소굴이고, 오늘 밤 같은 사냥을 여러 번 반복해 왔을 테니까.
말투로 봐선, 최근에는 전쟁을 피해 도망치는 자국민도 사냥해 온 모양이었다. 하긴. 그것도 전쟁을 일으킨 여러 이유 중 하나일 터였다.
여유로운 건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은 칼 든 짐승을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든가, 피 맛이 궁금했는데 잘됐다는 식의 시시껄렁한 말들을 목소리도 낮추지 않은 채 떠들어 댔다.
이내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재미있는 놈이군. 이런 말을 듣고도 왜 웃는 거냐?”
기사가 덧붙였다.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이안이 내뱉었다.
“내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는 것 같아서.”
“……?”
기사의 투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옆으로 슬쩍 기울어졌다.
물론 이안은 그게 네놈이 별로 대단하지 않은 흡혈귀라는 의미라던가, 덕분에 여제가 아직까지 자신이 루 사드에 들어선 걸 모른다는 게 확실해 졌다는 등의 부연 설명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이내 기사의 코웃음이 이어졌다.
“그래. 명성깨나 떨치나 보군. 하긴, 새들을 다 쳐죽인 것들이 보통 놈들은 아니겠지. 그렇게 유명하다면 네 입으로 알려주는 게 어떠냐? 내가 얼마나 대단한 놈들을 먹었는진 알아야지.”
대충 걸친 갑옷과 어우러져, 기사보다는 무법 지대의 약탈자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거, 새끼. 더럽게 껄렁대네.
이안이 생각하는 사이, 샬롯이 낮게 가르릉 대고 필립도 짧게 헛기침을 흘렸다.
원한다면 바로 알려 주겠다는 듯.
왜 니들이 난리냐.
피식댄 이안이 말했다.
“알 필요 없어. 어차피 넌 여기서 죽을 테니까.”
“……? 하!”
눈을 치켜떴던 기사가, 이내 짧은 탄성을 터뜨리고는 깔깔댔다. 놈의 부하들도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웃어 댔다. 기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신감이 넘치는 놈이구나! 좋아, 네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주마. 그 자신감 만큼 피 맛도 좋다면-”
고맙네. 그게 내가 바라던 건데.
이안은 이어지는 놈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여제의 종복들. 게임에서도 받은 기억이 있는 서브 퀘스트였다. 글루미르로 향하는 동안 마주치던 정예 수준의 흡혈 귀족 몇을 죽이자 알아서 완수되던.
그 정도 수준인 놈이란 말이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창을 닫은 이안이 다시 기사를 바라보았다.
놈은 아직도 떠들고 있었다.
“내 친히 네놈의 피로 혈주를-”
“그래서, 언제까지 거기서 입이나 털어댈 거냐?”
이안이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기사가 뭔가 대답하기도 전에, 지붕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달려오는 그를 바라보며 눈을 치켜뜬 기사가, 또 한 번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소리쳤다.
“저놈은 내 거다! 너희는 가서 나머지나 조져! 맛이 괜찮은 놈이 있으면 살려 두고!”
도발하는 보람이 있는 놈이군.
이안은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기사도 마주 말을 몰았다. 둘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나는 워렌 셔피로! 이곳 달리홀의 지배자인 셔피로 백작의 장남이자, 정당한 후계자다!”
소리치는 와중에도 안장 옆으로 몸을 기울인 놈이 검을 휘둘렀다.
톱날 같은 기다란 검이 파공음을 흩뿌리며 사선으로 밀려들었다.
이안은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자세를 낮춰 검과 말 사이의 빈틈을 지나쳤다. 동시에 양손으로 검을 움켜쥐고는 옆으로 내밀어 말의 옆구리를 갈랐다.
카가각-!
뼈와 살을 가르는 감촉과 함께 둘이 교차해 지나쳤다.
하지만 워렌은 낙마하지 않았다. 이미 죽은 말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옆구리가 쩍 벌어진 채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 선회했다. 그 사이로 썩은 내장과 체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자신감만 있는 놈은 아니군! 네 이름은 뭐냐?”
“모기 새끼가 기사 흉내는.”
미끄러지듯 멈춰서며 이안이 중얼댔다. 목소리가 크지 않음에도 워렌의 귀에는 들어간 게 분명했다. 놈이 또 한 번 짧게 웃고는 소리쳤다.
“명예를 모르는 놈이로군. 용병이냐?”
놈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미 다시 내달리고 있었다. 주위에 나무가 듬성듬성 돋아 있음에도 거침없는 질주였다.
“넌 명예를 아는 놈이라 말 타고 싸우냐?”
마주 달려가며 내뱉은 이안이 흘깃 시선을 돌렸다. 워렌의 부하들이 야영지 주위를 어지럽게 돌고 있었다. 놈들은 놀리는 듯한 괴상한 기합 소리를 내면서 창을 이리저리 흔들어 댔다.
꼴값들을 떠네.
하긴. 그에게나 그렇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처럼 느껴지는 광경일 터였다.
쒸에엑-!
다음 순간 섬뜩한 파공음이 일었다. 거의 옆으로 눕듯이 몸을 기울인 워렌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피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칼날이 거의 수평으로 날아들었다.
검을 쥔 오른팔을 왼쪽 어깨 앞까지 바짝 당긴 이안이, 거의 눕듯 몸을 뒤로 젖혔다.
쒸아아악-
검날이 아슬아슬하게 팔뚝 위를 스치고 지나가고, 이런 식으로 피할 줄은 몰랐다는 듯 살짝 눈을 치켜뜨는 워렌의 얼굴이 뒤를 이었다.
“내려와, 새꺄.”
이안이 젖혔던 허리를 세우면서 오른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검신을 타고 솟구친 바람 칼날이, 그를 지나쳐가는 말의 뒷다리를 그대로 썰어 버리며 뿜어져 나갔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이안이 바닥을 굴렀다.
콰장창창-
그건 워렌도 마찬가지였다. 뒷다리의 종아리가 잘려 나간 말이 몇 걸음 더 달리기도 전에 나뒹굴었다.
워렌이 함께 뒤엉켜 흙바닥에 처박혔다가 튀어 올랐다.
쿠웅-
인마는 나무 둥치에 부딪히고서야 멈춰 섰다. 튕겨 나간 뿔 투구가 바닥에 떨어지고, 나무의 가지들이 출렁이며 흔들렸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 죽었을 충격.
하지만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일어선 이안은, 검을 고쳐 쥐며 뒤를 돌아보았다.
썩은 고깃덩어리로 돌아간 말과 나무 둥치 사이에서 쇠장갑을 낀 손이 불쑥 솟아오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너… 이 개자식… 마법 무구라도 쓰는 모양이지…?”
말을 밀쳐낸 워렌이 씹어뱉으며 일어섰다. 투구가 벗겨진 놈은 말의 썩은 피와 살점을 잔뜩 뒤집어 쓴 채였다.
“비열한 놈…. 오냐, 나도 똑같이 상대해 주지.”
왼손을 흉갑의 틈에 쑤셔 넣은 그가, 조그마한 철제 수통을 꺼내 입에 물었다.
저 안에 든 게 무엇일지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 모기 새끼들은 틈만 나면 반칙이네.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놈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워렌의 전신에서 다시 검은 안개가 번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방심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딱 좋은 상태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고, 달아오른 머릿속은 쉴새 없이 주위의 정보들을 받아들였다.
이안이 볼 때, 저놈은 전에 마주친 심판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약했다. 테사이아 보다도 약해 보였다.
어쩌면 여제가 아니라 백작에게서 진혈을 일부 물려받은 것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수준이었다.
단죄의 일격은 쓸 것도 없이, 마법을 적당히 동원하기만 해도 손쉽게 죽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근접전만으로도 그럴까?’
평소라면 딱히 하지 않았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메브와 필립이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을 시간을 줘야 했다.
물론, 그들이 고작 저런 것들에게 당하지도 않을 터였다. 일행 모두를 죽이려면 뱀파이어 군단 정도는 필요하리라.
게다가 앞으로 이런 수준의 뱀파이어를 몇이나 더 만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마다 마법을 마구 퍼부어 댄다면, 정작 글루미르에 도착할 때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지금처럼 마법을 보조 역할 정도로만 사용해도 이길 수 있다면 여러모로 여유가 생기리라.
슬픈 말이지만, 체력이 회복되는 속도가 마력을 회복하는 속도보다 압도적으로 빨랐다.
푸스스-
워렌의 전신에서 번진 검은 안개가 검신을 타고도 흘러내렸다.
“다 끝났냐?”
이안이 턱을 까딱이며 물었다.
그의 태도에서 여유를 느꼈는지, 인상을 찌푸린 워렌이 질주했다. 놈의 전신에서 번지는 검은 안개가 잔상 같은 궤적을 그렸다.
이안이 마주 달렸다. 하지만 워렌을 먼저 마중 나온 건 그가 아니었다.
채앵!
눈앞에 번쩍이는 섬광을 반사적으로 쳐낸 워렌이, 튕겨 나가 바닥에 박힌 투척용 단검을 돌아보며 웃음 지었다.
“용병이 맞구나! 이런 비열한 짓거릴-”
말을 멈춘 놈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어느새 코앞까지 달려온 이안이 검을 내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챙! 맞부딪친 검이 튕겨 나갔다. 이안은 물론이고 워렌 역시 조금 밀려났다.
눈을 치켜뜬 놈이 말했다.
“제국 강철? 제국 강철 검인가?”
함께 밀려났다는 것보다, 이안의 검이 부러지지 않은 게 더 놀라운 모양이었다.
이안은 대답 대신 미간만 찌푸렸다. 검과 검이 마주친 순간 그를 향해 뻗어 나온 검은 안개의 감촉이 기분 나빠서였다. 따끔하고 끈적한 느낌.
‘공격 보조에, 상태 이상도 유발하는 건가? 공포나 착란?’
뭐, 이 정도면 할만하겠네.
결론 내린 이안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워렌이 기다렸다는 듯 검을 맞부딪쳤다. 물러나거나 피하지 않는 건 그렇게 해도 이길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있어서일 터였다.
하지만 세 번째에 이어 네 번째까지 검격을 교환하는 중에도 이안의 검은 여전히 부러지지 않았다. 검은 안개 역시 그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쩌엉!
워렌이 힘껏 휘두른 일격에 이안이 주륵 밀려났다. 가늘게 떨리는 그의 검날에 기어코 작은 흠집이 패였다. 마력을 조금 밀어 넣어서 검은 안개가 주는 충격을 중화시켰건만. 어쨌건 내구도가 빠르게 떨어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이안은 짧게 혀를 찼다.
파엘에게 산 검이건만. 첫 싸움에서 바로 이 꼴이 되다니.
쒸에엑!
그때, 다시금 달려들며 워렌이 소리쳤다.
“여유가 없어 보이는군! 보기보다 힘도 좋고 검술 실력도 제법이다만. 너와 나 사이에는 결국 좁힐 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가-”
워렌의 고개가 뒤로 튕겨 나가듯 젖혀졌다. 그의 오른쪽 눈에, 어느새 투척용 단검이 박혀 있었다.
한 손으로 그의 검격을 흘려낸 이안이, 빈틈을 놓치지 않고 단검을 던진 것이다.
이렇게 근거리에서 던지리란 예상은 하지 못한 듯, 워렌이 순간 굳어진 찰나.
“차이가, 뭐?”
이안은 훤히 드러난 놈의 목덜미로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콰직-!
잘려나간 머리통이 허공을 갈랐다. 머리를 잃은 목의 단면에서 검은 피가 왈칵 치솟았다.
이게 정말 되네.
생각하던 이안이, 다음 순간 불현듯 뒤로 물러섰다.
쒸악!
머리 잃은 몸통이, 쓰러지지 않고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목 단면에서 치솟던 검은 피가 검은 연기로 화하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귀쟁이보다 비열한 놈이로군….”
바닥에 굴러떨어진 워렌의 머리에서 쉭쉭 바람 새는 목소리가 번져나갔다. 뒤이어 그의 머리가 검은 연기로 변하며 녹아내렸다.
목 단면의 검은 연기가 거의 전신을 뒤덮듯 뿜어져 나왔다. 그 사이의 몸은, 여전히 당장이라도 다시 검을 휘두를 듯한 자세를 취한 채였다.
연기 사이로 음산한 목소리가 번졌다.
“하지만, 그래…. 네놈의 실력을 인정하마.”
꼴에 뱀파이어다 이거지.
코웃음을 삼키며, 이안은 검을 고쳐 쥐었다.
저 상태가 된 놈도 날붙이만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