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솨아아-
마력 역장과 빛의 장막이 동시에 피어올라 이안을 감쌌다. 하지만 흑기사가 내리친 검은 그 위가 아니라 옆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꽈아앙!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충격파와 함께, 휩쓸린 이안이 함께 튕겨 올랐다. 아무리 이중으로 보호받고 있다 해도, 발아래에서 이어진 폭발력까지 상쇄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천장이 가까워졌다. 이안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마력 역장에 뒤덮인 그의 등이 천장에 틀어박히듯 부딪혔다.
거미줄 같은 균열. 엄청난 압력. 그 와중에도 연회장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연회장 한쪽을 새카만 마력의 궤적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대기를 찢으며 뻗어 나간 궤적 끝, 유령마가 단상의 상석을 박살내고 벽면에 충돌하는 중이었다. 놈에게서 번진 검붉은 마력이 벽면에 안개처럼 넘실댔다.
샬롯은 그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듯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한쪽 어깨와 팔의 갑옷이 찢겨나가고 그 사이로 피가 터졌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에 비하면 아주 얕은 부상이었다. 운 나쁘게 경로에 휩쓸린 그들은, 트럭에 치인 것처럼 만신창이가 된 채로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중이었으니까.
메브의 품에 안긴 병사도 그중 하나로 보였다.
그녀는 검을 들지 않은 상태였다. 샬롯에게 유령마를 맡긴 채, 먼저 전투 불능 상태가 된 병사들을 옮기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연회장 구석의 통로에 대충 널브러진 병사들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녀가 뭔가 말한 듯, 병사의 입술이 간신히 달싹이고 있었다.
이안의 인지력은 그 입술이 만들어 내는 불완전한 단어들을 단숨에 읽어냈다.
부디, 부탁드리겠.
메브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무엇을 부탁한다는 건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숨이 끊어지는 병사를 품에 안은 메브의 뒷모습이, 직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머금기 시작했으니까.
“……!”
추락을 시작한 이안의 시선이 바로 아래로 돌아간 건 그때였다.
불길한 직감. 역시나, 어느새 흑기사가 뛰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떨어지는 그를 공중에서 썰어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공중에서는 땅에서 그랬듯이 도망 다닐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보편적인 경우라면 그랬으리라.
푸확-!
하위 회색 마법인 돌풍을 생각과 거의 동시에 완성한 이안이, 왼팔을 옆으로 후려치듯 내뻗었다.
한 줌의 혼돈력을 머금고 증폭된 바람이 그의 몸을 옆으로 날려 버렸다.
콰직-! 퍼억!
이안은 기둥 하나를 등으로 부수고는 그 건너편의 벽면에 처박혔다. 미간을 찡그린 그가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아까 연회장 계단으로 들어서기 전에 지나쳤던, 바로 그 복도였다.
콰아아-
기둥이 부서지면서 튀어 오른 흙먼지 사이로, 솟구치는 흑기사의 모습이 뒤를 이었다.
검을 위로 내뻗은 자세를 취하면서도, 놈의 투구가 이안이 널브러진 복도 쪽으로 득달같이 돌아왔다.
놈이 왼팔을 위로 뻗어 자세를 다잡은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공중에서 체공하는 찰나의 순간.
내뻗은 검을 양손으로 움켜쥔 놈의 전신에서 검붉은 마력이 타올랐다.
콰과과과과-
놈이 복도로 밀려들었다. 검붉은 궤적이 복도 천장을 두부처럼 가르면서 쏟아져 내렸다.
“……!”
솨아아-
단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이안의 주위로, 신성력의 장막과 푸른 마력 역장이 발작하듯 피어올랐다.
콰지지지직-
검붉은 궤적이 천장에 이어 복도 벽면, 그리고 그 아래 피어난 신성력의 장막과 일렁이는 푸른 역장까지 차례로 찢어발겼다.
흑검은 빛의 축복이 아른거리는 단검 날 한복판에 맞닿고서야 간신히 멈췄다.
안면 가리개 사이, 흑기사의 안광이 웃음 짓듯 일렁였다.
“그래… 이제 확실히 알겠군….”
놈은 단숨에 검을 더 내리찍어서 상황을 끝내지 않았다. 그저 쏟아지는 돌 부스러기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너머를 응시하며, 손아귀의 감촉을 음미하듯 천천히 내리눌렀다.
“그 잔재주가 정말 네놈의 전력이었구나…. 거짓된 신들에게 굴복한 위정자가 아끼는 이유가 있었군. 쥐새끼 같은 부분이 닮아서였어.”
쿠구구국-
흑검의 검날 중앙을 가로막은 단검 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흑기사가 그르렁대듯 속삭였다.
“아주 느린 죽음을 선사해 주마. 네 죽음이 고통스러울수록, 내가 영광된 대전사로 거듭나게 될 의식도 훌륭하게…?”
그의 목소리 끝이 순간 올라갔다. 점점 내려가던 단검이 어느 순간 우뚝 멈췄기 때문이다. 흑기사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갔지만, 단검을 내리누를 수 없었다.
푸스스, 그 아래에서 언제부터인가 번지기 시작한 붉은 빛이 사람의 실루엣을 그려냈다.
“…막 상태창을 열었었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군.”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간을 찌푸린 듯 흑기사의 안광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거짓된 어쩌고 타령 좀 더 해 줬으면 좋겠군.”
흑검을 오히려 조금씩 밀어내면서, 이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신성력과 마력이 뒤엉켜 아른거리는 기묘한 눈으로 흑기사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덕분에, 그 거짓된 양반들이 좀 빡친 모양이거든.”
“……!”
흑기사의 안광이 다시 커질 찰나, 붉은 신성력이 타올랐다.
쩌엉-
검을 쥔 흑기사의 팔이 뒤로 확 밀려났다. 운철 단검을 앞으로 떠밀듯 휘둘러 떨쳐낸 이안이, 그대로 놈의 품으로 뛰어올랐다.
오른팔을 휘둘렀던 원심력을 고스란히 왼 주먹에 실어 내뻗는 채였다.
흙먼지를 가르며 뻗어 나가는 그의 주먹에 황금빛 신성력이 서렸다.
빠아악-!
이안의 황금빛 주먹이 흑기사의 투구 옆면을 후려쳤다. 놈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가고, 거대한 몸이 통로 쪽으로 붕 떠올라 튕겨 나갔다. 주먹 끝에서 터져 나온 황금빛 잔재가 검붉은 마력을 불태우며 번쩍였다.
“……!?”
투구 옆면에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가운데, 흑기사의 안광이 순간 휘청였다. 고통보다는 당혹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곧 안광이 다시 타오르면서, 놈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몸을 비틀었다.
바닥을 한바퀴 구르며 착지하고는 뒤따라 내달리는 이안의 모습이 놈의 시야에 선명해졌다.
쿠와악-!
흑기사가 그대로 마저 몸을 비틀어 이안을 향해 흑검을 내리쳤다.
예상한 듯 자세를 낮춘 이안의 위로, 빛의 장막이 비스듬하게 피어 올랐다.
카가가각, 흑검이 장막 표면을 깎듯이 할퀴며 미끄러졌다. 불똥이 눈부시게 튀는 가운데, 그 사이를 뚫고 도약한 이안이 또 한 번 힘껏 왼 주먹을 휘둘렀다.
쩌엉-!
그의 황금빛 주먹은 뿔 투구 옆면에 새겨진 자국보다 조금 더 위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결과가 다르지는 않았다. 신성력이 마력을 불태우고, 흑기사의 안광이 이번에는 선명한 고통을 머금고 흔들렸다. 안면 가리개와 투구를 이어 주는 이음새가 덜컹댈 찰나.
쩌엉-!
아직 투구에 박혀 있던 주먹에서 소리 없는 폭발이 터져 나왔다. 진공 폭발. 동시에 흑기사가 머리부터 복도 벽면에 처박혔다.
콰장창창- 와르르-
흑기사가 벽돌들을 부수며 튕겨 나가고, 복도 벽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이안은 내뻗었던 주먹을 짧게 털며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진공 폭발은 본래 맨손으로 사용하면 손이 함께 망가질 각오를 해야 하는 마법이었지만. 카르하의 신성력에 빛의 축복까지 덧씌워진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돌벽을 후려친 것처럼 얼얼할 따름.
‘의존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확실히 더럽게 편하긴 하네.’
역시, 기사나 야만 전사를 했어야 됐다니까.
생각하며, 이안은 다시 땅을 박찼다.
와르르르-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로 흑기사가 벌떡 일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의 붉은 안광이 분노와 모멸감을 머금고 이리저리 일렁였다.
곧 놈의 시선이 달려드는 이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용살자-!”
왜, 새꺄. 속으로만 대답하며 이안은 운철 단검을 고쳐 쥐었다. 흑기사가 검붉은 마력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흑검을 휘두른 건 거의 동시였다.
콰지지지직-
궤적에 걸린 기둥들이 모조리 갈려 나갔다. 이러다 성이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듯 거리낌 없는 움직임이었다. 이안은 물러나는 대신 더 빨리 질주했고, 바람 칼날이 만들어 낸 돌풍도 그를 힘껏 떠밀었다.
콰과과과-
흑검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비로소 힘껏 뛰어오르면서, 이안이 오른손을 내뻗었다. 운철 단검이 쩍 벌어진 흑기사의 투구 틈을 노리고 뻗어나갔다. 흑기사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 버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카가각-
신성력이 맺힌 단검 날이 투구 옆면을 톱으로 썰어 낸 것 같은 흔적을 만들며 찢어발겼다. 마침내 단검 날이 안면 가리개와 투구를 고정해 주는 이음매까지 닿은 순간, 이안은 준비하고 있던 진공 폭발을 다시 한번 사용했다.
쩌엉-!
흑기사의 고개가 뒤로 튕겨 나가듯 젖혀졌다. 동시에 위로 젖히게 만들어져 있던 안면 가리개가 너덜너덜하게 날아갔다.
놈이 튕겨나가던 고개를 힘으로 다시 내리 눌렀다. 분노가 일렁이는 눈동자가 이안을 마주보았다.
“……!”
놈이 오히려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달은 이안이, 황급히 팔을 회수하며 빛의 장막을 펼쳤다. 이미 흑기사의 왼 주먹이 그의 측면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쩌엉-!
간신히 생성된 빛의 장막이 커다란 주먹을 가로막고, 깨질 것처럼 출렁였다.
“오오오오오-!”
흑기사가 기합성을 토해내며 끝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결국 떠밀린 이안이 콰장창, 반쯤 무너진 기둥을 온몸으로 부수며 튕겨 나갔다.
시야가 한순간 확 트이고 허공을 천천히 선회하며 체공하는 가운데.
‘또 며칠 앓아 눕겠군.’
이안은 문득 생각했다.
고통이 큰 건 아니었다. 그저 온몸이 조금 욱신거렸다. 하지만 투쟁의 축복이 끝나고 나면, 분명 알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아프기 시작하리라. 하긴. 크게 상관은 없는 부분이었다. 이미 축복을 받기 전부터 비슷한 상태였으니까.
앞으로를 생각하면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흑기사가 말했듯, 균형이 무너지고 균열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니까.
‘…아무래도, 스킬을 더 찍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생각하며, 이안은 무너진 기둥 사이를 뚫고 튀어나오는 흑기사를 눈에 담았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 이안과 흑기사의 시선이 교차하는 그때.
푸-확!
옆에서 붉은 섬광이 번쩍였다.
이안은 물론 흑기사의 고개도 본능적으로 옆으로 돌아갔다.
난장판이 된 연회장의 전경. 그 한구석, 어느새 전신에 피처럼 끈적이는 신성력을 두른 메브가 요정의 세검을 힘껏 내뻗고 있었다.
그 끝에서 뿜어져 나간 붉은 신성력은, 유령마의 머리를 꿰뚫고 그 뒤쪽의 마갑을 안에서부터 찢어발기며 뚫고 나갔다.
‘…저쪽이 더 빨리 끝나겠는데.’
이안의 미간이 설핏 좁아졌다.
게임에서는 분명, 저 유령마와 흑기사가 한 조를 이루어 덤벼들었을 터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전투였으리라는 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뛰어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다른 여러 보스전이 그렇듯, 선택에 따라 추가적인 보상이 생길 수도 있었고.
어쩌면 저 유령마가 바로 그 추가적인 보상인지도 몰랐다.
‘흑기사를 저놈보다 먼저 죽이는 게 획득 조건이라면…?’
죽지 않는 탈것. 아주 달콤한 유혹이긴 했다. 하지만 반드시 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추측이 사실인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일행에게 기다리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게다가 저 유령마는 지나치게 눈에 띄었고, 동시에 저주받은 존재가 분명하기까지 했다.
낮에 탈 수도 없을뿐더러, 신성력을 두른 채로 타면 내내 괴로워할 게 분명했다.
투쟁의 축복을 받을 때마다 그의 피를 빨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들어 버리는 늪지의 원한처럼.
하지만 미련을 버린 건 이안 뿐인 모양이었다.
“로- 사아아아아-!”
흑기사가 쩌렁쩌렁한 고함을 토해냈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 이안은 화들짝 놈을 돌아보았다.
안면 가리개가 날아가면서, 놈의 얼굴은 턱 위부터 고스란이 드러나 있었다.
검붉은 비늘이 한가득 돋은 피부.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지 않은 머리에는, 대신 만들어지다 만 것 같은 뿔 대여섯개가 가장자리를 따라 삐죽삐죽 돋아 있었다. 샛노란 동공이 세로로 찢어진 붉은 눈은, 앞발을 치켜들며 울부짖는 유령마에 못박힌 듯 고정된 채였다.
이안의 입술 끝이 슬쩍 말려 올라갔다.
그대로 공격이 이어지면 영락없이 밑에 깔린 채로 추락할 판이었는데. 덕분에 주문을 완성할 틈이 생겼으니까.
“둘이 사귀냐?”
“……?!”
내뱉은 말에, 흑기사의 고개가 비로소 득달같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안은 이미 손을 내뻗고 있었다. 어느새 등 뒤까지 가까워진 바닥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자세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푸화악-!
혼돈력을 머금고 증폭된 휘몰아치는 방벽이, 그는 물론이고 흑기사까지 휩쓸어 날려 버렸으니까.
메브에게 발길질을 하려던 유령마와 다른 두 일행까지 터져 나온 돌풍에 휩쓸려 나뒹구는 가운데.
카드드득-
공중에서 자세를 다잡은 이안이, 연회장의 한쪽 벽면에 평지처럼 발을 디디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다소 둔중하게 치솟는 흑기사에게 고정된 채였다. 덩치 덕분인지, 놈은 돌진력이 상쇄되며 떠올랐을 뿐 이안처럼 튕겨 나가지는 않았다.
콰지지직-
발이 벽면을 부수며 파고들었다. 이안은 오른팔을 아공간 너머로 뻗었다. 운철 단검을 놔버린 그의 손아귀에, 이제는 꽤 익숙해진 굵직한 자루가 잡혔다.
끝이 살짝 휘어진, 넓적하고 기다란 검신을 가진 외날 대검이 벽면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막 휘두르기엔 좀 좁은데.
생각과 달리, 이안은 힘껏 벽면을 박찼다.
콰르르르-
균열이 일던 벽면이 그의 도약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뒤따라 번진 균열이 연회장 천장까지 이어지고, 천장을 구성한 돌들도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를 가르며, 대검을 머리 위로 치켜든 이안이 쇄도했다.
“……?!”
허공을 돌던 흑기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오오오오오-!”
대기를 울리는 기합성과 함께, 노랗고 붉은 신성력이 뒤섞인 거대한 궤적이 밀려들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