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동의합니다. 그는 결국 교단의 걸림돌이 될 겁니다.”
“찬란한 여신의 종에게 이름 따위는 필요치 않습니다. 모든 영광은 오롯이 주의 것. 거짓된 선지자나 구원자는 사라져야 마땅합니다.”
이어진 목소리에, 사제의 입꼬리가 설핏 말려 올라갔다.
이런 이유들이 저들의 모든 본심은 아닐 터였다.
사제가 볼 때, 이들은 이안 호프를 질투하고 있었다.
출신조차 불분명한 일개 용병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그런 결정을 내릴 시기는 아닌 것 같군요.”
그럼에도, 사제는 그들의 편을 들지 않았다.
“결론은 모든 게 확실해진 후에 내려도 늦지 않습니다. 어쩌면 정말 세간의 평가대로 대륙을 구원할 위대한 영웅일지도 모르니.”
“…….”
“그보다는 그를 찾을 방법을 모색하는 게 순서입니다. 그는 매번 홀연히 사라져 버리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제의 말이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다. 이대로면 그들은 이안 호프의 흔적만을 따라다니게 되리라.
“북쪽으로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는 전쟁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
“서쪽 국경을 지나 아겔 란으로 향했을지도 모릅니다. 붉은 기사가 그곳 출신이니, 반란으로 멸망하기 직전인 고향을 외면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아직 백금룡이 그에게 어떤 사명을 내렸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것이 변방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 제국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고민하는 척 턱을 어루만진 사제가 내뱉었다.
“아겔 란. 혹은 제국이라…. 여기서 남하했다면, 제국 서부에 발을 들이게 되겠군요.”
“목적지가 그곳이 아니라도, 한 번은 라클리프에 들르게 될 겁니다. 제국 서부의 중심이며, 길이 교차하는 요지이기도 하니.”
“그럼 세 무리로 나누도록 하죠. 둘은 서쪽으로. 둘은 남쪽으로. 그리고 둘은 나와 함께 움직입니다. 나는 본국으로 돌아가, 저 흑기사의 정체를 밝혀낼 생각입니다.”
상황을 정리한 사제가 손짓했다.
서쪽으로 가게 된 둘이 짧게 혀를 차며 물러나고, 사제와 동행하게 된 둘도 마찬가지였다.
남쪽으로 향하게 된 둘의 반응은 판이했다. 하나는 만족스럽게 뒤로 물러났으나, 또 하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머뭇거린 이는, 다른 정화자들이 떠드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자였다.
모른 척 두 무리를 돌아 본 사제가 덧붙였다.
“우상과 마검을 회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와 적대하지 마세요. 그는 백금룡의 대행자이자 북부의 초인이며, 교단의 다수가 주목하는 용사입니다.”
“…….”
정화자들의 숨결이 가라앉았다. 두건 아래로 드러난 눈빛들이 서늘했다. 사제가 태연하게 덧붙였다.
“사사로운 감정은 버리길 바랍니다. 신분도 감추도록 하세요. 혹여라도 외부에 교단 내부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이는 건 곤란합니다.”
“…….”
“그럼, 이만 물러들 나세요.”
정화자들이 몸을 돌렸다.
사제는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저들이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이안 호프를 찾는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를 죽이려 들 터였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오히려 그래주길 바라며 덧붙인 말이었으니까.
물론, 저들이 이안 호프를 죽일 수 있으리란 기대는 없었다. 오히려 이안 호프가 저들을 죽이겠지.
교단과 이안 호프의 관계에 균열을 만들기엔 충분한 계기였다.
당장은 여러 신과 교단의 관심을 받는 존재이지만.
크고 작은 마찰과 그로 인한 희생이 반복되다 보면, 그는 신의 축복을 받은 초인이 아니라 교단의 위험인물로 분류되게 될 터였다.
사제가 본격적으로 나서는 건 그때부터이리라.
“이별은 아쉽지만…. 당신은 끝까지 도움이 되는군요. 여제.”
폐허를 돌아보던 사제가 눈을 감으며 읊조렸다. 곧 그의 닫힌 눈꺼풀 위로 은은한 황금빛이 감돌았다. 곧 그의 감은 눈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사제가 먹구름 자욱한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감은 눈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제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당신이 남긴 균열조차도 말입니다.”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잘 접힌 매끄러운 손수건이었다. 표면에 금실로 수놓은 진언이 빽빽했다. 사제가 손수건을 펼쳤다.
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무언가의 잔해로 보이는 새카만 조각이었다.
모습이 드러난 순간 조각 내부에서 희미한 보랏빛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조각이 재가 되어 바스라 지면서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솨아아-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사제가, 이윽고 다시 눈을 뜨며 몸을 돌렸다. 빛이 가라앉는 그의 눈동자에 만족스러운 빛이 감돌았다.
수많은 변수들이 있었지만, 끝내 의회가 원하던 결과가 만들어졌다.
이제 대륙은 또다른 고난과 어둠을 마주하게 되리라.
“그러면 결국… 더 절실하게….”
문득 번쩍인 먹구름이 사제의 앞에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우르릉, 뒤이어 마른천둥이 울려 퍼졌다.
멀어지는 사제는, 끝내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어둠 사이로, 걸어 나오는 샬롯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절벽을 찢은 것처럼 뚫린 동굴.
입구를 나서는 그녀의 얼굴과 한 손의 도끼에서 짙은 푸른색의 체액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왼손에 질질 끌려 나오는 동굴 트롤의 체액이었다. 덩치가 다소 작은 걸 보니 새끼인 모양이었다.
“이제 저 안에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이안.”
샬롯이 동굴 옆 공터에 대충 겹쳐둔 트롤 시체 사이에 놈을 던져 넣으며 말했다. 무려 여섯 마리. 이 정도면 동굴 트롤 중에서도 대가족이라 할 수 있었다.
건너편 나무에 기대 있던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별 말씀을. 꽤 깊은 동굴이니, 충분할 거다.”
“잘 됐군.”
미소 지은 이안이 걸음을 옮겼다. 예상과 달리 일주일 만에 간신히 찾아낸 적합한 동굴이었다.
이번에도 허탕이었다면 제국 땅에서 각인 의식을 치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으리라.
“고생하셨습니다, 샬롯.”
이안을 앞서 달려간 필립이 천을 내밀며 말했다. 왼팔의 붕대를 푼 덕분에 움직임이 한결 자연스러웠다. 샬롯이 그가 건넨 천으로 도끼 날을 닦는 사이.
“꿈도 꾸지 마라.”
은근슬쩍 옆으로 따라붙은 테사이아를 돌아보며 이안이 내뱉었다. 테사이아가 미소 지었다.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아윽-”
휙 달려 온 샬롯이 팔뚝으로 테사이아의 목을 감싸 들어올렸다. 팔딱대는 그녀를 무시한 채, 샬롯이 이안을 바라보았다.
“염려 마라. 동굴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할 테니까.”
“야영지는 마차 옆에 꾸리겠습니다.”
샬롯이 팽개친 도끼를 들며 필립이 덧붙였다.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메브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등진채 걸음을 옮겼다. 붓으로 그린 듯한 동굴 입구가 가까워졌다.
화륵-
손에 든 횃불에 불이 붙었다.
다소 좁아 보이는 입구와 달리,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동굴 내부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천장이 높은 걸 보니, 본래는 자연 발생한 동굴이었던 게 분명했다. 이곳에 둥지를 튼 트롤들이 가꿨을 뿐.
“훌륭하군….”
이안은 이윽고 나타난 공동에서 걸음을 멈췄다. 입구는 보이지 않았고, 공간도 적당히 넓었다. 울퉁불퉁한 벽면 곳곳에, 트롤들이 판 것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샬롯의 말처럼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굴 밖의 기척 역시도.
이 정도면 일행이 공허의 속삭임에 홀릴 걱정은 없으리라.
턱.
횃불을 바위 사이에 꽂은 이안이, 음영이 아른거리는 바닥에 걸터앉았다.
아공간에 들어갔던 그의 손에, 마력을 머금은 보관함이 들려 나왔다.
상자 표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주문 회로가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이안이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
아래로 몇 개의 뼈가 이어 붙은, 눈구멍이 네 개나 뚫린 작은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횃불의 불빛이 잦아들고, 주위의 어둠이 한층 짙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안을 응시하는 눈구멍 속의 심연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이해할 수 없는 속삭임이 사방에 메아리쳤다. 기하학적인 문양. 다른 세계의 끔찍한 광경이 할퀴듯 눈앞을 스쳤다.
‘역시, 지랄 맞긴 하네.’
이안은 두개골을 움켜쥐었다.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정보창이 선명해졌다. 틈새를 걷는 자의 두개골. 유물 등급의 부적이었다.
능력치를 더 자세히 살펴볼 여유는 없었다. 시야가 일그러지고, 눈구멍 속의 심연이 그를 빨아들일 것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으니까.
이안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혼돈력을 끌어올렸다.
푸확-
하지만 그보다 두개골에서 끈적한 어둠이 터져 나오는 게 더 빨랐다.
흔들리던 횃불이 단숨에 꺼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느새 사방이 컴컴했다.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개골 속으로 혼돈력을 밀어 넣었다. 엄청난 저항감. 두개골 내부에서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각인된 여제의 마력이었다. 환청과 환각이 어지럽게 오가는 와중에도, 이안은 혼돈력을 밀어 넣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쩌적-
뭔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귓가를 스친 건 바로 그때였다. 이건 환청이 아니었다. 정말 어둠 한복판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었으니까.
쩌저저적-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진 균열이 와르르 무너져 흩어졌다. 시야가 확 트였다.
그는 여전히 동굴 한복판에 서 있었다. 하지만 온통 흑백이었고, 광원이 전혀 없음에도 주위를 식별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이안의 뇌리로 전에 본 비슷한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흡혈 여제의 환영.
뒤이어 이안은 자신이 전혀 움직일 수 없음을, 그리고 어느새 손아귀의 두개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또 이딴 식이군.’
쩌억-
또 다른 파열음이 귓가를 스친 건 그때였다. 이안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소리의 근원지를 볼 수 있었다. 동굴 입구로 나가는 길목 한복판에, 기다란 공간의 균열이 새겨져 있었다.
균열 너머로 자줏빛이 아른거렸다.
‘공허…?’
그럼 여긴 어디야.
생각할 찰나, 반질반질한 무언가가 균열을 비집고 튀어 나왔다. 커다란 머리통의 정수리였다. 쿠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고개를 들었다.
서양배처럼 생긴 회색 머리통 곳곳에, 흩뿌린 것처럼 멋대로 박힌 새빨간 눈알들이 번쩍였다. 면상 한복판이 세로로 길게 갈라지면서 아가리가 좌우로 쩍 벌어졌다. 선홍색 속살과 제멋대로 몇 겹으로 돋은 이빨들이 드러났다.
“키… 르르르-”
놈이 마력이 뒤섞인 울음을 토해내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벌레 껍질처럼 반들거리는 목덜미. 그 아래로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작은 머리들이 드러났다. 맨 위의 머리에 비하면 작지만, 그래도 웬만한 인간의 머리보다는 커 보였다.
머리 사이로 벌레의 그것과 비슷한 길고 뾰족한 다리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꿈틀댔다.
‘거참 징그럽네.’
이안이 할 수 있는 건 생각뿐이었다. 몸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고, 마력도 마찬가지였다.
상태창은 열 수 있었지만, 포인트를 투자할 수는 없었다.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스킬이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눈앞으로 퀘스트 창이 떠오른 건 바로 그때였다. 세상의 틈새.
퀘스트 창을 닫으며, 이안은 내심 안도했다. 역시, 이건 일종의 이벤트 컷씬이리라.
‘타락자 전용 이벤트는 다 이딴 식인 건가.’
빠드득, 빠득-
고막을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이어졌다. 공허의 괴물이 내는 소리였다. 놈은 더 이상 균열을 뚫고 나오지 못하고 고개만 들이민 채 멈춰 있었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놈이 안간힘을 쓰면서 이를 가는 소리였다.
곧 놈의 머리가 축 처졌다. 포기한 것처럼 보인 것도 잠시. 놈의 머리가 일제히 이안을 돌아보았다.
동공이 가로로 누운, 수많은 붉은 눈알들. 시야에 담긴 공허의 마력이 삽시에 이안의 의식을 옭아맸다.
“……!”
정작 이안을 놀라게 한 건, 그 순간 번지기 시작한 내면의 울림이었다. 이제는 꽤 익숙한 감각이었다. 혼돈의 파편이 공명하고 있었다. 주문에 저항하듯이.
‘갈수록 멋대로 구는 것 같은데.’
이안이 생각하는 사이에도 파편의 울림이 점점 커졌다. 시야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를 옭아맨 주문이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파편의 울림이 잦아든 것도 잠시.
푸확-!
파편이 품고 있던 혼돈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핏줄을 타고 번지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의 의식을 가득 채우듯이 번져나갔다.
시야가 삽시에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타르처럼 끈적한 감촉이 전신을 뒤덮고, 이안의 의식을 익사시킬 것처럼 집어삼켰다.
“……!”
이안을 주시하던 눈알들이 번쩍인 건 바로 그때였다.
곧 머리 사이 사이에 제멋대로 솟아 있던 다리 하나가 휙 움직였다. 날카로운 다리의 단면이 주렁주렁 달린 머리 중 하나를 깔끔하게 잘라냈다.
철퍽-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뒤이어 주렁주렁 달린 머리들이 아가리를 벌리더니, 보랏빛 점액질을 토해냈다. 쏟아진 점액질이 잘린 머리를 향해 꿈틀대며 기어갔다.
쩍, 쩌적-
새겨져 있던 균열이 좁아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균열을 비집고 나와 있던 머리가 조금씩 그 너머로 되돌아갔다.
“하아….”
이안이 의식을 되찾은 건 바로 그때였다. 시야가 밝아지고, 감각이 되돌아왔다.
되돌아온 정도가 아니었다. 껍질을 한 겹 벗은 것처럼 모든 감각이 더 선명했다.
심지어 몸을 움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타르를 뒤집어 쓴 듯한 느낌도 여전했다. 힘이 느껴지는, 기분 좋은 끈적함.
착각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인 이안은, 보랏빛 외피가 덮인 듯한 기다란 손을 눈에 담았다. 물질화한 혼돈력이, 섬유처럼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혼돈력이 육체 자체를 구성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의 의식을 담은 채로.
몸속에 가득한, 그리고 대기에도 흐르는 혼돈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헛웃음을 짓던 이안은, 자신의 입술이 말 그대로 귀 아래까지 찢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래보다 훨씬 굵고 길어진 혀가, 칼날처럼 촘촘하게 돋은 이빨 사이를 훑었다.
‘이 비슷한 걸 히어로 영화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하며, 이안은 상태창을 열었다.
능력치들이 멋대로 늘어나 있었다.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이 전부 사라지고, 대신 처음 보는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피의 칼날. 사냥의 시간. 혼의 결박 등등.
‘설마 이거, 그동안 파편에 먹힌 것들의…?’
“키… 르르르-”
귀를 찌르는 소리가 이안의 상념을 깨뜨렸다. 어느새 거의 다 닫힌 균열이 흐릿한 자줏빛 흔적만을 남긴 채 반짝이는 가운데.
푸스스스-
거무튀튀한 괴물이 일어섰다.
사마귀와 지네를 합친 듯한 역겨운 형태. 그 한복판에 박힌 건, 아까 잘려 나왔던 그 머리였다.
점액질이 육체로 재구성된 모양.
자신을 응시하는 여러 개의 눈알을 마주 보며, 이안이 다시 한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쿠득, 쿠드득-
늘어뜨린 그의 양손 끝에,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