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이안의 미간이 설핏 좁아졌다.
“뭐, 성흔이 사라지기라도 했단 거냐?”
“…예.”
나세르가 힘없이 대답했다. 성흔을 두고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이안의 눈빛이 순간 묘해졌다.
‘빛을 섬기고 교리와 율법을 따르면, 루 솔라도 멋대로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었나?’
뭔가가 더 있나.
지금까지 본 바, 이 세계의 신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신도를 필요로 하는 신과 아닌 신.
카르하나 공허의 고대신 같은 부류가 후자였고, 루 솔라는 대표적인 전자였다.
신도들의 신앙으로 막대한 신격을 유지하는 만큼, 그녀 역시 교리와 율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빛은 만물을 두루 비춘다는 말은, 사실 루 솔라에게는 족쇄나 다름없는 것일 터였다.
“웃기네. 그 반짝이한테는 축복을 잘만 내리더니. 너한테는 왜 그랬대.”
그때, 테사이아가 비웃듯 말했다. 나세르가 짧게 침음했다.
“글쎄요. 지금에 와선, 짐작 가는 부분이 너무 많군요. 이안 경과 대적해서일 수도. 이게 정말 옳은지 의구심을 품고 있었으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방관해서일지도. 어쩌면 교만했던 벌을 받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신의 총애를 받는다고 자부하며 살아왔으니까요.”
본인도 정확히 모르는 건가.
이안의 입가에 옅은 헛웃음이 스쳤다.
하긴. 신들과 관련된 부분은 공허와 마찬가지로 모호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아는 것이라 봐야 대부분 추측이었고, 알지 못하던 새로운 법칙이나 예외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튀어나올 수 있었다.
루 솔라가 자신의 신도조차 아닌 이안에게 사도를 제안하거나, 카르하가 사도가 아닌데도 멋대로 문신을 새겨 축복을 내리는 것처럼.
‘확실한 건, 카르하 그 새끼는 아주 속이 편할 거란 사실 뿐이군.’
물론 잘못 나대다가 악신으로 규정되기라도 한다면 공허로 추방될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그가 아는 카르하라면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런 걸 두려워했다면, 루 솔라의 사도와 싸울 때 축복을 내리지도 않았으리라.
“뭐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죄업이 쌓이고 있었으리란 건 분명합니다. 그러니 직접 임하신 때에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신 거겠죠.”
“직접…?”
이어진 나세르의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에, 테사이아가 눈을 깜빡였다.
“모르셨습니까? 아마 이안 경도 느끼셨을 텐데요.”
나세르가 오히려 되물었다. 샬롯과 테사이아의 시선이 동시에 이안 쪽으로 돌아왔다.
“그랬어, 이안?”
“그랬지.”
“아니,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얘기를 안 해 줬단 말야? 뭔데? 신이랑 대화라도 나눴어?”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건 아니고. 사도가 될 뻔 했는데, 거절했다.”
“……!”
샬롯의 입이 순간 벌어지는 가운데, 마부석과 이어진 간이 창문이 벌컥 열렸다.
“뭐라고요? 여신의 계시를 거부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왜요?”
필립이었다.
새끼, 역시 다 듣고 있었군.
이안은 제안을 거절한 게 처음이 아니라거나, 그 어떤 신도 섬길 생각이 없다는 식의 대답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저 테사이아에게 턱짓했을 뿐이었다.
테사이아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손을 뻗어 창문을 닫아 버렸다.
다시 나세르를 바라본 이안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그럼 넌 이제 성기사도 뭣도 아니란 거군. 신에게 버림받은 존재일 뿐.”
“…예. 그렇습니다.”
“그럼 널 어떻게 다루건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겠네.”
“……!”
나세르가 그렇게 해석할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샬롯이 슬쩍 송곳니를 드러내며 미소짓는 가운데, 화들짝 정신을 차린 나세르가 내뱉었다.
“제, 제겐 죽음보다 비극적인 일입니다만. 그렇다 해서 제가 더 이상 찬란한 여신을 섬기지 않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뜻을 비로소 확실하게 알게 됐죠.”
잠시 이안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본 그가 말을 이었다.
“여신께선 슬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칼을 겨눈 것을 마음 아파 하신 게 분명해요. 경도 느끼셨을 텐데요.”
“뭐, 기분이 좋으신 것 같진 않더군.”
이안의 덤덤한 대답에, 나세르가 고개를 간신히 조금 끄덕였다.
“그건, 선배들의 확신이 틀렸다는 의미나 다름없습니다. 여신께선 이안 경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는 거예요. 계시까지 내리셨다니, 더더욱 확실해졌군요. 경은 대륙을 다시 밝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분이신 겁니다.”
나세르의 눈빛이 한순간 번쩍였다.
이안도 여러 번 본 적 있는 눈빛이었다. 대부분 광신도들에게서.
이 정신 나간 놈의 내면에 새로운 확신이 꽃핀 모양이었다.
심지어 고티어의 죽음을 그다지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마 당연한 최후를 맞았다 여기는 것이리라.
어쨌건,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그럼 증명해 봐. 본론으로 돌아가지.”
당장 써먹기엔 더 쉬워질 테니까.
슬쩍 샬롯 쪽을 돌아본 나세르가, 그녀의 손길과 검날을 치우는 건 포기한 듯 입을 열었다.
“…예. 알겠습니다.”
“너와 뜻을 함께하는 자들이 있댔지. 너희를 뭐라고 부르지?”
“저희는… 이제는 그들이라고 해야겠군요. 그들은 여명단이라는 조직입니다.”
“정화대로만 이루어져 있나?”
“대부분은요. 제가 알기론.”
대답이 묘하게 두루뭉술했다.
눈매를 살짝 찌푸린 이안이 덧붙였다.
“규모는?”
“정화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식으로 활동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계속 그렇게 질문해 주면 좋겠군. 내 친구가 아주 바라고 있는 상황이야.”
기다렸다는 듯 샬롯이 단검을 조금 더 움직였다. 검날이 살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뜻밖에도 출혈은 그리 늘지 않았지만, 어쨌건 나세르에게 충분한 고통을 준 건 분명해 보였다.
눈썹을 바르르 떨며 고통을 참은 나세르가 내뱉었다.
“심문이 아주 능숙하시군요. 경께서 용병 출신이시란 건 알고 있긴 했습니다만….”
“난 지금도 용병이야. 하나 더 알려 주자면, 난 루 솔라를 섬기지도 않지. 심지어 지금은 해도 졌고. 그러니 대답이나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말 돌리지 말고.”
예, 하고 대답하며 숨을 고른 나세르가 이내 말을 이었다.
“정화대는 소문처럼 교단의 정계 군단이 아닙니다. 전원이 한곳에 모이는 일도, 서로 간의 교류가 잦지도 않죠. 극단적으로는 개인. 보통은 조 단위의 소규모로만 나뉘어 개별적인 임무를 수행합니다. 왜냐하면 정화자 대부분의 활동지는-”
“검은 벽 인근이지. 벽을 넘어온 마물이나 놈들의 둥지, 광기가 만들어낸 마경을 정화하는 게 너희 주요 임무니까.”
“…정확하게 아시는군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임무들을 수행하는 만큼, 상하 관계는 물론 이름, 명성, 서로 간의 관계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영혼을 약하게 만드니까요.”
“내부적으로도 폐쇄적인 조직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거군.”
이안이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나세르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실상 같은 조원이나 임무를 하달하는 사제님을 제외하면, 정화자들은 서로 접점이 없습니다. 함께 합동 임무를 수행하고도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는 경우도 있죠. 당연히, 정화대의 총원이 몇 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건, 여명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규모는 모른다고?”
“예. 저희, 아니 그들은, 내부에서 선택된 소수만이 입단하게 되는 비밀 결사이며, 그 존재를 발설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철칙입니다.”
“…한 마디면 끝날 대답을 길게도 하는군.”
이안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모른다고만 대답하면 믿지 않으실 것 같아서-”
나세르가 다급히 대답하던 그때, 샬롯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왼팔을 움직였다. 단검 날이 삽시에 귀 옆으로 튀어나오고, 다음 순간 나세르의 귀 끝이 비스듬하게 잘려나갔다.
“……!”
이를 악문 나세르가 코로 거친 숨을 내쉬는 가운데, 이안이 샬롯을 돌아보았다. 눈을 깜빡인 그녀가 내뱉었다.
“신호를 보낸 거 아니었나?”
…그래도 나름대로 유용한 정보였다고 말하려 한 건데.
내심 생각한 것과 달리, 이안이 건조하게 내뱉었다.
“마차 안이 너무 더러워지진 않았으면 좋겠다만.”
“…아, 그래. 주의하지.”
샬롯이 머쓱하게 대답하는 그때.
“하여간, 어떻게든 피를 보고 싶어 한다니까.”
손을 뻗어 떨어진 귓 조각을 마차 창밖으로 던져 버린 테사이아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단검을 마차 벽면에 꽂은 샬롯이 손수건을 받아 나세르의 잘린 귀를 콱 움켜 쥐었다.
“읏…!”
나세르가 부들댔다. 물론, 샬롯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전히 그의 턱은 샬롯의 손에 잡혀 있었다.
눈을 감은 나세르가 숨을 골랐다. 어느새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축축했다. 그가 고통을 추스를 시간을 준 이안이,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여명단의 목적은 뭐지?”
“…필연적인 어둠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아침을 밝히는 것입니다.”
나세르가 숨을 고르며 내뱉었다. 어쨌건, 덕분에 잔머리를 굴릴 여유가 없는 건 분명해 보였다.
“이건 좀 더 자세히 들어야겠군.”
“대륙이 어둠에 뒤덮이는 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결과라더군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게 신의 사도로서 옳은 선택이라는 겁니다.”
“그럴듯한데. 누가 그렇게 말했지?”
“제게 입단을 명령한 선배가요. 이름은-”
“그건 나중에. 그래서, 너희가 어둠 이후에 찾아올 여명이란 거군.”
“여명이 되고자 준비하는 자들이죠. 혼돈의 시대가 열리면 모든 어둠의 족속들이 본모습을 드러낼 테니까요. 그때 우리가 여명의 한 가닥으로서 앞장서 그것들을 소탕할 거랬습니다. 그러면 모든 법도가 바로 서고, 새로운 빛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요.”
“그래… 그럴 듯도 하고, 솔깃하기까지 한 얘기였겠군.”
이안이 중얼댔다. 이름도 없이 평생 어둠과 싸워야 하는 정화자들에겐, 그야말로 달콤한 속삭임이었으리라.
한결 차분해진 얼굴로 나세르가 대답했다.
“호기심이 더 컸습니다. 정말 그런 어둠이 찾아올지. 그리고 새로운 빛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죠.”
호기심으로 사람도 죽일 새끼일세. 속으로 읊조린 이안은, 이내 짧게 실소했다.
이 세계엔 그런 인간들이 발에 차이게 많았으니까.
“그래서, 너희 단장은 누구지?”
“모릅니다.”
“너희를 이끄는 자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이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샬롯이 손수건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손수건 위로 불그스름한 빛이 번졌다. 인상을 잔뜩 찌푸렸던 나세르가 신음하듯 내뱉었다.
“아시다시피 교단 내부에도 타락자들이 암약하고 있습니다. 수없이 솎아냈음에도 남은, 아주 신중하고 사악한 자들이죠. 그러니 개개인이 아는 게 많아지면 전체가 위험에 빠질 확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 제가 아는 건 소문이 전부입니다.”
“소문?”
“교구장 중 하나라더군요. 그게 전부입니다. 전 단장을 실제로 본 적도 없습니다. 여명단을 소집하고 임무를 하달하는 건, 대주교라 불리는 분이시고요.”
“…그자의 정체도 모르긴 마찬가지겠군.”
“예. 그분은 저희와는 식사도 함께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건, 꽤 젊다는 것뿐입니다. 많아야 서른 안팎일 겁니다.”
이안이 짧게 코웃음 쳤다.
“호기심이 참 많아 보였는데. 그 부분에선 쓸데없이 선택적이었군.”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늘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암흑 성물을 가져간 북부의 용살자나, 루 사드의 흡혈 일족 같은.”
“그들에 대해서도 이번에 알게 된 거냐?”
“예. 경이 그들을 멸족시키신 덕분입니다.”
테사이아가 짧게 코웃음을 흘렸다.
“날 필요로 한 건 너희들이었는지도 모르겠네.”
“예…?”
“여명단이 마족을 부리고 있었는데,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나?”
테사이아가 뭔가 더 내뱉기 전에, 이안이 말을 잘랐다.
“필연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 결과를 조금이라도 통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놀라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나세르가 씁쓸하게 덧붙였다.
“당시에는 물을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입단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선뜻 먼저 입을 열 위치가 아니기도 했고요.”
이안의 표정이 묘해졌다.
“…설마, 날 따라온 게 첫 번째 임무라던 가 그런 건 아니겠지.”
“세 번째입니다. 두 번째가 글루미르의 조사였고요. 정화자로서의 사명에도 충실해야 하기에, 여명단의 소집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쩐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싶더라니. 비로소 짧게 입맛을 다신 이안이 읊조렸다.
“뒤에서 구경만 한 이유가 있단거군….”
“…그건 제 경력과는 무관한 부분입니다. 처음부터 임무는 경과 싸우는 게 아니었습니다. 선배들의 생각은 달라 보였지만, 대주교께선 경과 적대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셨습니다.”
불에 기름을 부은 거군.
이안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나세르의 조금은 어리둥절한 시선에, 그가 이내 내뱉었다.
“그 대주교란 작자가 몰랐을 것 같지 않거든. 너희와 내가 마주치면 어떻게 될지.”
“…충돌이 일어날 걸 알면서도 보냈을 거란 말씀이십니까?”
“네 눈에도 보인 걸 못 볼 정도의 병신이 아니라면.”
나세르의 입이 또 한 번 설핏 벌어졌다. 이윽고 그가 내뱉었다.
“하지만, 어째서요…? 그건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건 네 입장이고. 그자에겐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득이었을 거다.”
“그게 무슨…”
헛똑똑이가 따로 없군.
실소를 흘린 이안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가 내 손에 죽으면 백금룡의 대행자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확신을 단원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겠지. 너희가 날 죽이면, 거슬리는 존재 하나가 사라지는 거였을 테고.”
“…….”
입을 몇 번 달싹인 나세르가, 이윽고 내뱉었다.
“우리를 일종의 희생양으로 삼은 거란 말씀이십니까…?”
“너희 식으로는 그런 걸, 순교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나세르의 눈이 흔들렸다. 신에게 버림받은 것과 비슷한 수준의 충격인 모양이었다. 이안은 코로 짧게 웃었을 뿐,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물론, 그 대주교란 놈도 정화자 둘 중 하나가 포로로 잡히리란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신의 사도가 사로잡힌다는 건 어지간해선 하기 힘든 생각일 테니까. 그 포로가 이렇게 아는 걸 전부 털어놓으리란 것도, 당연히 전혀 생각지 못했을 터였다.
‘어차피 제대로 아는 건 별로 없는 놈이긴 하지만….’
조각난 정보들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했다. 이안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그런데 너희는 이안을 왜 그렇게 싫어한 거야? 백금룡은 또 왜 싫어하고? 교단의 성자잖아?”
테사이아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이안의 시선에, 그녀가 어깨를 까딱였다.
“계속 궁금했단 말야.”
“…이안 경을 싫어하는 건.”
조금은 지친듯한 목소리로 내뱉으며, 나세르가 이안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경이 부러워서였을 겁니다. 정화자 대부분은 그 이름이 알려지는 일 없이, 어둠과 싸우다 죽어가니까요.”
“그야말로 인간다운 이유로군.”
샬롯이 한심하다는 듯 읊조렸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이안은 딱히 놀라워하지 않았다.
테사이아가 코웃음을 흘렸다.
“백금룡도 그래서 싫어한 거야? 단순하긴.”
“그건 아닙니다. 교단에는 백금룡의 저의를 의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들을 내부에서는-”
“순수 교도라고 부르지.”
이안이 툭 내뱉었다. 나세르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잘.”
“…그러시군요. 어쨌든, 아예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백금룡은 대부분의 시간을 둥지에서만 보내시니까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며, 신의 시선조차 닿지 않는 은신처에서.”
가져다 붙이긴.
이안은 낮게 웃음 지었다.
엄청난 힘을 가진, 심지어 죽지도 않는 존재라면 껄끄러워하는 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자주 보이면 자주 보여서.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아서.
“그런 주제에, 백금룡이 만든 물건은 잘만 쓰더군.”
이안의 핀잔에, 멈칫한 나세르가 미소 지었다.
“전 딱히 그분께 악감정이 있진 않습니다만…. 변명하자면 어둠과 맞서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 이용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게 백금룡이 마법을 새긴 망토라거나, 용의 숨결로 제련한 검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요.”
“미치광이 주문쟁이들이 만든 무구도 그렇겠고.”
“…예. 물론, 선배들은 그런 이유가 전부가 아니었겠지만요.”
“뭐가 더 있나?”
“백금룡과 싸우게 될 상황도 염두에 둔 걸 겁니다. 다들 대륙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그가 본색을 드러내리라 여겼으니까요.”
“난 또 무슨….”
코웃음을 흘린 이안이 말했다.
“장담하는데. 그 양반은 너희 전부가 몰려가도 못 죽여.”
“선배들은 가능성이 아예 없다 여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저 조차도요.”
“……?”
이안의 시선에, 나세르가 도리어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진언 마법은 진언 마법으로 막을 수 있으며, 용의 마력이 깃든 무기는 용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용은 다른 용으로 죽이라는 옛말, 모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