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너도 이미 들었잖아.”
이안이 남은 빵을 스튜 그릇에 문지르며 말했다. 이제 그의 접시도 거의 다 비어 있었다.
“그래. 군도 놈들이 공작과 한패인지 궁금한 거랬지. 그거 말고, 진짜 이유 말야.”
“없어. 그게 전부야.”
“흐응… 그래? 알았어. 그렇다면야. 믿어 줄게.”
묘한 미소를 입가에 건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난 또, 이안이 군도로 가려고 하는 건가 했지.”
눈치 빠르긴.
이안은 빵을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테사이아의 예상대로, 그가 말한 건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검은 군도는 남부와 마찬가지로 가 본 적 없는 지역이었으니, 미리 정보를 얻기 위해 물어본 것이다.
궁금한 눈빛이 된 필립이 물었다.
“그래서… 소문대로, 놈들도 한 패였습니까?”
“긴밀한 사이이긴 했지만. 의회의 하수인은 아니었다더군.”
“아, 그렇습니까? 불행 중 다행이군요….”
대신, 놈들은 다른 괴물을 섬기는 것 같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필립을 바라보며, 이안이 속으로만 덧붙였다.
팔메르의 말에 의하면, 군도의 군주 몇은 바다 아래에 잠들어 있는 존재를 섬긴다고 했다.
군도의 배들이 흑해의 괴물들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드문 건 그 덕분이라는 것이다.
군도 놈들도 뒤가 구린 부분이 있으리란 의미였다.
샬롯과 테사이아도 함께 들었지만, 둘 다 그 부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거기선 뭐, 크라켄 같은 거랑 싸워야 하는 걸지도.’
어쨌든, 당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가 볼 생각이었지만, 적어도 당장은 아니었으니까.
군도의 잔당들이 부리나케 도망가지 않았던가. 지금 그가 군도로 향한다면 그게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흑해 한복판에서 배와 함께 침몰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아무리 그라도 망망대해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을 터였다. 군도의 해적들 전체를 상대로도.
한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은 이안이, 가볍게 입맛을 다시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돌아간 다음엔 정확히 어쩔 셈이지?”
그의 시선이 좌측에 앉은 샬롯에게로 향했다.
“그 제사장이란 놈과 심복들을 전부 죽일 거냐? 아까 네가 말했던 것처럼?”
샬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제사장과 그의 측근들은 죽일 수밖에 없다. 크룩시카께선 슬퍼하시겠지만, 어쩔 수 없어. 그리고 놈들의 가죽은 박제해서 성벽에 걸어둘 거다.”
또다시 끔찍한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자, 흥미진진하게 듣던 엘리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안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야의 반응은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어차피 도시를 떠나고 나면, 언제든 끔찍한 상황들을 경험하게 될 터였다. 게다가 그녀는 성인이었고, 거기다 난쟁이였다.
이안이 본 난쟁이들은 죄다 괴짜 기질이 있었지만, 어쨌건 다들 심지가 단단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이리라.
샬롯의 말이 이어졌다.
“일족이 타락자를 처단했다는 걸 보이기엔 그보다 확실한 방법이 없겠지. 그릇된 길로 접어든 어린 전사들도 와해 될 거다. 구심점이 사라졌으니까. 물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덤벼드는 놈들도 있겠지만….”
그녀가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편한 차림이었지만, 여전히 팔에는 팔메르의 꼬리를 감고 있었다.
“그놈들은, 전부 꼬리를 잘라 버릴 거야.”
“철혈의 대족장이 탄생하겠군….”
온몸에 꼬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그 모습을 떠올린 이안이 낮게 웃음 지었다. 그가 아는 샬롯이라면, 일족을 위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곧 입가의 미소를 지운 이안이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거다.”
“…내부 정리를 끝낸다 해도 말이냐?”
샬롯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의 말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 눈빛이었다.
“그래. 상대는 중앙에서 닳고 닳은 귀쟁이들이야. 일단 병력과 정화자들을 대동하고 남부로 발을 들이면, 네가 뭘 준비하건 소용없게 만들 거다. 네 권위를 의심하고, 꼬투리를 잡으려 들겠지. 거짓이 하나라도 드러난 순간, 하려던 일을 해버릴 거야.”
“…….”
“실제로 너도, 광전사들을 전부 죽이려는 건 아니잖아? 꼬리가 잘렸다고 크룩시카에게 버림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샬롯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길… 역시 그런가….”
읊조리는 그녀를, 이안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수인들이 요정들에게 패배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의 동족 의식 자체가 약점이나 다름없어 보였으니까.
만약 인간이나 요정이라면, 그냥 타락자들을 전부 죽여 없앴을 터였다. 그편이 훨씬 쉽고 깔끔했다. 그게 아닌 이상,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물론,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판을 엎어 버려야지.”
덧붙인 말에, 샬롯이 그를 홱 돌아보았다. 귀가 뾰족하게 위로 솟구친 채였다. 한쪽 얼굴을 가르는 네 가닥의 흉터가 전부 이안 쪽으로 드러났다.
“나랑 다니면서 많이 봤잖아. 저쪽의 패를 알면서도 이길 수 없으면, 무효로 만들어 버려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내부 정화를 끝내. 그리고 곧바로, 네가 직접 대교회에 사절을 보내 조사단의 파견을 요구해라.”
“……!”
샬롯의 눈이 커졌다. 이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일족을 타락시키려던 제사장과 관련된 이들을 전부 처단했다고 말이야. 확실한 물증도 동봉하고, 내 이름도 팔아. 그러면 아마 교단도 즉각적으로 움직일 거다.”
“네… 이름까지?”
“북부의 초인이자 백금룡의 대행자인 이안을 오랜 시간 보필하다 귀환했다고 하면 되겠군. 그게 사실이니까.”
메브가 넌지시 끼어들었다. 이런 부분만큼은 늘 그녀가 가장 이해가 빨랐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내 명령으로 돌아왔다고 해. 내가 남부의 어둠을 뿌리 뽑아 달라 부탁했다고. 그럼 네 말의 신뢰도가 훨씬 올라갈 거다.”
눈을 깜빡인 샬롯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멍하니 읊조렸다.
“그렇게 파견된 조사단이 모든 조사를 끝내고 돌아가, 일족이 깨끗하다는 걸 기록한다면….”
“아이나스나 다른 요정들도 정화자들을 불러들일 수 없게 되겠지. 이미 교단 내부에서 결론이 난 사안이니까. 그러면 그놈들이 사병을 끌고 수인들의 영역을 침범할 명분도 사라질 거야.”
이안이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이안을 빤히 바라보는 샬롯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안… 너는 정말이지….”
“물론 그사이에도 귀쟁이들이 훼방을 놓을 수도 있어. 어쩌면 조사단에 아예 자신들의 사람을 섞어 넣을지도 모르지. 그 부분은….”
그녀의 말을 자르며 덧붙인 이안이, 나세르를 돌아보았다.
“저 녀석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대교회라도, 믿음직한 주교가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여명단이나 순수 교도, 요정과도 관계없는.”
“음… 떠오르는 이름이 많지는 않군요. 사실, 대교회의 사제나 주교님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가 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요.”
나세르가 손가락으로 입술 아래를 문지르며 읊조렸다. 곧 입가에 예의 그 여유로운 미소를 띄운 그가 샬롯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수인들에 대한 편견이 없는 분들은 몇 분 떠오르는군요. 대신 헌금이 좀 필요해지겠지만요. 이안 나리의 이름도 효과가 좋겠지만, 금화가 더해지면 더 일 처리가 빨라질 겁니다.”
“그 정도 자금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샬롯이 즉답했다. 이안과 함께 다니면서 사제라는 족속들을 다루는 법도 꽤나 익숙해진 그녀였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군. 방법이 없으면 광전사들을 따로 어디로 빼 두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해 둬라. 마을이 없으면 하나 새로 만들어서라도.”
“그래… 영지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탁자 산이라 불리는 깎아지른 산들이 있다. 그 근처를 임시 유배지로 만들어 가겠어.”
“거기에 요정 가문의 보증까지 곁들이면 완벽해지겠네.”
이안이 테사이아를 돌아보았다.
“네가 정말 에레노스이길 바래라, 테사. 그럼 네가 판을 뒤엎고 수인족을 구할 마지막 단추가 될 테니까.”
일행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눈을 깜빡인 테사이아가 말했다.
“내가 가주이자 원로니까. 야옹이들을 구할 사절을 보내란 거야?”
“네가 직접 하면 더 좋고. 교단의 조사단이 방문하는 시기에 맞춰서. 중앙의 귀쟁이들에겐 결정타가 될 거다.”
“최연소긴 해도, 어쨌든 나는 원로니까. 그렇겠네. 듣자 하니 우리 가문은 거의 망했다던데. 수인과 교류하는 최초의 가문으로 만들면 되겠어. 그러면 남부에서의 영향력도 더 커지지 않을까?”
“…이 와중에도 이득 볼 생각을 먼저 하다니. 역시 귀쟁이답군.”
웃음을 흘린 샬롯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겠다, 이안.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렇게 길까지 제시해 주다니.”
“그냥 입으로만 떠든 거야. 막상 그대로 전부 이루어 내는 건 쉽지 않을 거다. 변수가 많을 거야. 위험하다는 건, 당연한 거고.”
“그래… 그걸 전부 해내려면, 우선 내가 일족을 확실히 장악해야 되겠지.”
샬롯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보란 듯 고개를 끄덕인 테사이아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내가 도와주기도 전에 죽어 버리지 말고.”
“걱정 마라. 나는 죽지 않아. 전부 해낼 거다.”
“할 수 있으실 겁니다. 찬란한 여신이 가호하실 테니까요. 투쟁의 신께서도, 물론 비호하실 테고요.”
필립이 덧붙였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이안이 설핏 굳어졌다.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 뇌리를 스쳐서였다. 그가 곁에 없으니, 샬롯이 투쟁의 축복을 받을 방법도 사라지는 것이지 않겠는가.
‘…맨몸으로 보내면 안 되겠네.’
내심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결론은 이만하면 나온 것 같으니까.”
그가 식탁 중앙의 술병을 손에 들었다.
“이제, 마실 일만 남았군.”
엘리야를 제외한 일행 모두가 순간 멈칫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술병의 마개를 연 이안이, 앞에 놓인 잔을 하나씩 채우기 시작했다.
물을 타서 색이 연해졌지만, 상쾌하고 달콤한 향은 그대로였다.
“물론입니다. 마셔야죠.”
필립이 분위기를 환기하듯 쾌활하게 내뱉으며 일어섰다. 그가 일행들의 앞으로 술이 채워진 잔을 배달하는 사이, 샬롯이 머쓱하게 중얼댔다.
“오늘 같은 날에, 너무 내 얘기만 했군.”
“그거야 네가 칠칠 맞으니까 그렇지.”
테사이아가 잔을 들며 미소 지었다.
“그래서 어디, 일족을 구할 수나 있겠어?”
“네 가문 걱정이나 해라, 귀쟁아.”
샬롯이 덤덤하게 맞받아쳤다.
“네가 원로이자 가주라는 것도, 미래가 어두운 건 마찬가지니까.”
“웃기네. 오늘만 해도 봐. 나한테는 이안도 별 말이 없잖아. 그만큼 믿음직스러웠다는 거야.”
“말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말을 아낀 거겠지. 넌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으니까.”
곧, 둘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향한 험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안도 오늘은 둘의 말다툼을 굳이 막지 않았다. 그저 기가 막히다는 듯 옅은 헛웃음만 흘릴 따름이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 둘은, 아주 친합니다. 서로 목숨도 걸 만큼.”
자신의 잔을 들고 실실 웃으며 구경하던 필립이, 나세르의 옆에 앉은 엘리야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엘리야가 눈을 깜빡였다.
“신기하네요. 제가 읽은 책에선, 수인과 요정은 원수나 다름없다고 했거든요.”
“그랬었지. 처음에는.”
이안이 술을 홀짝이며 대답했다. 물을 탔어도 여전히 맛이 좋았다. 이안을 돌아본 필립의 눈매가 슬며시 휘어졌다.
“이 두 분이 어쩌다 친구가 된 건지, 제가 알려 줘도 되겠습니까?”
“저도 궁금하군요. 사실, 내내 의문이었거든요. 그 마족과 관련된 부분이 특히요.”
나세르가 잽싸게 덧붙였다.
좌우에서 이어지는 샬롯과 테사이아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는, 변방의 왕국인 아겔 란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됩니다. 테사이아를 처음 만난 곳이 그곳이거든요. 아. 저와 우리 나리는 아겔 란 출신입니다. 이안 나리와도 거기서 처음 만났죠. 이 이야기는 뒤로 미뤄두고, 테사와의 첫 만남부터 이야기하자면….”
눈을 반짝이는 엘리야와 나세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필립이 주절주절 말을 이어갔다.
왁자지껄한 한복판.
“…….”
눈이 마주친 이안과 메브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소 지으며 술잔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
훌륭한 밤이었다. 지나가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
고오오…….
온몸을 울리는 듯한 낮은 소리가 번졌다.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속삭임 같기도 한 소리였다.
이안은 자신이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르처럼 끈적한 질감을 가진 어둠. 어둠 표면이 그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꿈틀대며, 비명을 지르는 얼굴 같은 일그러진 파문을 연달아 만들어냈다.
게임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광경이었지만.
“…….”
이안은 이게 검은 벽이라는 사실을 단숨에 깨달았다.
아르케아스의 기억에서 스치듯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터였다.
‘무의식에 남았거나. 혹은 영혼이 이어졌던 여파이거나….’
이안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끝도 없이 솟은 끈적한 어둠은, 중간쯤부터는 검은 연기처럼 변해 일렁였다. 불길한 오로라가 펼쳐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걸 인식의 장막이라 부르던가.
이렇게 보고 있자니, 왜 마법사들이 그렇게 검은 벽에 매료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닌.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고, 강대한 힘까지 품은 무언가.
게다가 바라보고 있으면 시선을 빨아들이듯이 끌어당겼다. 귓가로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네 본능에 몸을 맡기라고. 이 너머,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이라고.
“네 세상이 아니라니. 좀 아쉽군.”
옆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 건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