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
이안은 창밖을 응시하며 손에 든 술병을 입에 가져갔다.
뱃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싸구려 럼주였다. 목이 얼얼할 정도로 독했지만, 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창문을 타고 안으로 흘러들었다. 아직 서부를 벗어난 건 아니었으니, 계절이 변하고 있는 것이리라.
‘거, 시간 더럽게 빠르네.’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이안은 다시금 술병을 입에 가져갔다.
말발굽 소리만이 백색 소음처럼 귓가를 울렸다. 늘 떠들어 대던 동료들이 전부 사라진 데다, 필립도 그와 마찬가지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동안은 그리워했던 고요함이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 나니 생각처럼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목소리와 정신없는 일상에 묻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 빌어먹을 세상에 대한 회의감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이래서,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니까.’
기분 좋게 헤어져 놓고도 이 모양이라니.
새삼스러운 쓴웃음과 함께, 이안은 일행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름대로 신경을 쓰긴 했지만. 그들 모두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확신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아무리 애써도, 이 세계는 점점 더 망해가고 있었다. 심지어 이미 혼돈의 시대가 열리지 않았던가.
아직은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이 소수에 불과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모두가 그렇게 부르게 될 터였다.
그러니 누군가 치명적인, 혹은 불운한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상하진 않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싸늘해지는 느낌에, 이안은 다시 술병을 입에 가져갔다.
정신력 수치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위기 상황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정신력은, 평소에도 감정의 기복을 그리 크지 않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가 늘 어느 정도는 냉담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높은 정신력 수치의 영향도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국, 감정을 아예 없애 주지는 못했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능력치도 아니었다. 그저 현실이 되면서 더해진 부가 효과 중 하나일 뿐.
‘…배가 부르긴 했네. 내 코가 석 자인데.’
이런 말랑한 감상에나 젖어 있다니.
술을 삼키는 이안의 입가에 쓴웃음이 짙어졌다.
아마 한동안 평화로운 여정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터였다.
중앙 지역에 접어들 테니까.
황실과 교단의 영향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닿는 중앙은, 가장 부유하며 치안도 좋았다.
물론 시한부에 불과한. 그리고 그 이면에 수많은 끔찍한 비밀을 품은 표면적인 평화일 뿐이지만.
어쨌건 길가에서 도적이나 마물을 마주칠 일은 거의 없을 터였다.
‘그래도 이딴 생각은 오늘까지만….’
“이안 님.”
엘리야의 목소리가 번진 건 그때였다. 다시 술병을 입에 가져가려다 멈칫한 이안이 고개를 돌렸다.
풀어헤친 짐가방. 그리고 그 안에 종류별로 나뉘어 정돈된 물건들과 그 앞에 앉은 엘리야가 동시에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하던 그녀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짐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보존 식량을 비롯한 각종 물자를 되는대로 쑤셔 박아둔 게 보기 거슬렸던 것이리라. 보아하니, 이제 정리가 다 끝난 모양이었다.
“그 상자도 꺼내 주시면 안 될까요? 어제 보니, 안이 엉망이었거든요.”
“엉망일 것까지야…”
중얼대면서도, 이안은 선선히 왼손을 뻗어 아공간에 넣었다.
곧 표면에 주문 회로가 음각된 봉인함이 빈 좌석 위로 떨어졌다.
다시 봐도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내던 엘리야가 벌떡 일어나 봉인함을 열었다.
마차 안에서도 마음껏 일어설 수 있다는 것도, 난쟁이의 태생적 장점 중 하나였다.
자연스럽게 보급품 담당이 됐네.
내심 뇌까리며, 이안은 상자 안을 뒤적이는 엘리야를 바라보았다.
마법적인 재능이 있다고 들었지만, 아직 그녀가 비전 주문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긴, 비전은 대부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었다. 마력 탐지가 그렇듯이.
상자에 담긴 마석과 정수, 기타 잡다한 소지품과 향신료 통들을 뒤적이던 엘리야가, 이내 뭔가를 집어 들었다.
“이건, 무슨 반지죠? 마도구나 유물 같지는 않은데요.”
이안의 시선이 엘리야가 내민 손바닥 위로 향했다. 쇠로 만든 굵은 반지가 그 위에 얹어져 있었다. 넓적한 마디 부분에 원형 미로 같은 복잡한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그건 강철 금고의 열쇠야.”
“강철 금고라면… 제국 최대의 은행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모르는 게 없네. 그것도 책에서 읽었냐?”
“네. 작은 조직으로 시작해 전쟁의 시대를 거치며 막대하게 세를 불린 곳이죠. 혹자들은 교단을 매수한 고리대금 업자들이라 부르기도 한다더군요. 하지만 어쨌든 제국의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곳이기도 하다고 읽었어요.”
설명해 달란 뜻은 아니었다만….
속으로 읊조리면서도, 이안은 반지를 가만히 눈에 담았다.
아직 필립에게 말해두지 않았지만, 강철 금고는 이번 여정에 들러야 할 곳 중 하나였다.
주머니가 홀쭉해지다 못해 텅 빌 지경이지 않던가. 금고에 있다는 금화의 절반만 건질 수 있어도, 다시 한동안은 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게 될 터였다.
“혹시, 강철 금고의 지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
이어진 물음에, 엘리야가 잠시 생각을 곱씹고는 입을 열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중앙 곳곳에 다섯 개의 지부가 있을 거예요. 그 위치는 아마도….”
“그건 밤에 필립에게 알려 줘. 경로를 맞춰 보게.”
“네. …의외네요.”
고개를 끄덕인 엘리야가 이안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안 님도 강철 금고를 좋아하지 않으실 줄 알았거든요. 그분의 대행자시니까.”
“그분이, 강철 금고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돈을 위해 너무 많은 피를 손에 묻혔다고 하셨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해 주지 않으셨지만, 그렇게 말씀하실 만 한 일들이 있었던 거겠죠.”
난 또 뭐라고.
이안이 짧게 웃음 지었다.
“돈이란 게 다 그런 거지. 애초에 네 손에 있는 그 열쇠도, 원래부터 내 건 아니었어. 남의 것을 빼앗은 거지.”
“빼앗으신 거라고요…?”
멍하니 되물으며, 엘리야가 손바닥의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더 묻지 않을게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게 좋으리라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리라.
이미 이안을 비롯한 일행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끔찍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몇 번이나 보지 않았던가. 반지를 봉인함에 집어넣는 엘리야를 바라보며 피식 웃은 이안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 그게 없으면, 여정의 절반은 거지꼴로 다니거나 손에 피가 마르지 않게 될 테니까.”
“…네.”
침을 꿀꺽 삼킨 엘리야가, 한층 더 진지한 얼굴로 봉인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산기슭을 따라 이어진 관도를 오르던 마차가, 이윽고 길을 벗어나 으슥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이쯤에 자리를 잡겠습니다.”
마차가 멈추고, 간이 창문을 연 필립이 말했다.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 문을 열었다.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땔감부터 구해 오겠습니다. 쉬고 계십시오.”
마부석에서 훌쩍 뛰어내린 필립이 어둠에 잠긴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 새끼. 기운 없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낮게 콧방귀를 뀐 이안이 시선을 돌렸다.
산 중턱. 나무와 풀숲 사이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작은 공터였다.
야영지로 삼기에 흠잡을 데 없는 위치였다.
“…역시, 바깥세상의 숲은 다르네요. 음산해요.”
마석 등을 손에 든 채 뒤따라 내린 엘리야가, 주위를 두리번대며 속삭였다. 말과 달리 눈빛을 반짝이는 채였다. 공터로 걸음을 옮기며, 이안이 입을 열었다.
“여긴 꽤 안전한 산이야.”
“그런 건, 어떻게 아시는 건가요?”
“새 소리도 나고 산짐승도 울잖아. 저주받거나 마물이 득시글대는 산은 조용하지. 죽은 것처럼.”
“아하….”
“책에 이런 건 쓰여있지 않나 보군.”
“네. 덕분에 배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까지야….”
낮게 웃은 이안이 아공간에서 마법서를 한 권 꺼내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그는 그 옆에 봉인함까지 꺼내 놓고는 몸을 돌렸다.
이내 마차에서 짐가방을 꺼내는 엘리야의 곁을 지나치며, 그가 덧붙였다.
“저기 모닥불을 피울 거니까, 근처에 자리를 잡아 둬.”
“네. 식사를 준비하면 되죠?”
“그래 주면 고맙지.”
이안은 말들을 마차에서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잡일을 직접 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뭔가 하기도 전에, 일행들이 알아서 척척 처리해 주지 않았던가.
‘이래서, 없어져야 소중함을 안다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이안은 말들을 근처의 나무로 끌고 갔다. 나무 둥치에 줄을 묶고 있자니, 백마가 가볍게 고개를 털며 투레질을 해댔다.
뭐, 줄이 너무 짧다고?
피식한 이안이 줄을 더 길게 고쳐 묶었다. 녀석이 그제야 고분고분 땅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안은 백마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똑똑한 녀석이었다. 하긴. 정화자들이 타고 다니던 녀석이니 당연하겠지.
…이왕이면 안 죽고 계속 데리고 다닐 수 있으면 좋겠는데.
“……?”
생각하며 몸을 돌린 이안의 눈매가, 이내 설핏 가늘어졌다.
엘리야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바닥에 마석 등을 내려놓은 채, 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사락, 종이 넘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런 식으로 네가 주문쟁이라는 걸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
그녀의 곁으로 다가선 이안이 내뱉었다. 그가 오는 줄도 모르고 책에 빠져 있던 엘리야가 고개를 들었다. 이안의 눈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곧바로 내뱉었다.
“이런 금서를, 어디서 구하신 건가요?”
그녀의 눈이 반짝이는 건 마석 등의 불빛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미간을 슬쩍 찌푸린 이안이 내뱉었다.
“흑마법사의 연구실에서.”
“역시…!”
엘리야가 탄성을 흘렸다. 이안의 미간에 더 깊은 골이 패일 찰나, 그녀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깜짝 놀랐어요. 이안 님께서 흑마법에 관심이 있으시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 없었거든요!”
“관심 없어. 그건 땔감으로 쓰려고 챙겨온 거다.”
“아하! 땔감으로 쓰….”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야가 멈칫했다. 이안의 눈을 다시 올려다본 그녀가,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색으로 눈을 치켜 떴다.
“땔감이요? 이걸, 땔감으로 쓰신다고요?”
“그래. 이런 건 불에 특히 잘 타거든. 왜, 문제 있냐?”
“다, 당연하죠!”
엘리야의 목소리가 순간 커졌다.
“이건 오염된 마력을 이용해 이미 죽은 신체를 다시 움직이거나, 사체에 남은 잔존 의식을 영혼 없이 일깨우는 방법 등이 기록된 아주 귀중한 자료 같거든요. 아직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공허의 파장으로 오염된 마력이 육체와 정신에 끼치는 영향도 기록되어 있는 것-”
“우리 그걸 보통 사령술이라고 부르지. 알다시피 흑마법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자른 이안이, 엘리야의 눈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흑마법사가 되고 싶은 거냐?”
“네…? 아뇨. 그럴리가요. 어디까지나, 이게 학술적인 가치가 아주 높은 책이라는 의미였어요.”
“이 책에 가치를 두는 건, 내가 알기로는 흑마법사들뿐이거든.”
“보편적으로 그렇죠. 하지만 저는 검은 벽에 대해 공부해야 하잖아요. 아시겠지만, 검은 벽은 공허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도 알려져 있고요.”
“…….”
한쪽 눈썹을 찌푸린 이안을 올려다 본 엘리야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검은 벽을 연구하려면 공허와 흑마법에 대한 이해가 필수 불가결한 셈이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흑마법사들은 제정신이 아닌 데다 위험하기까지 하고, 이런 금서들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타락자로 몰릴 수도 있으니까요. 거기다 대부분은 어딘가에 감춰져 있거나,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죠.”
양손으로 마법서를 가리킨 엘리야가 덧붙였다.
“이런 높은 수준의 금서를 손에 넣는 건, 제국의 암시장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그런 것도, 책에서 읽은 거냐?”
이윽고 이안이 양쪽 눈썹을 다 찌푸린 채 물었다. 엘리야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검은 벽에 대한 연구가 더딘 건, 학자와 마법사들이 금서를 손에 넣기 어려워서거든요. 얼마나 많은 학자가 자료에 목말라 있는지 아신다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보고서에 참고 문헌의 부족을 매번 토로하는 건 물론, 정기적으로 마탑과 교단에도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고요. 물론, 소득은 거의 없지만요.”
“하….”
이안의 얼굴에 비로소 헛웃음이 번졌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그를 올려다보며 침을 꼴깍 삼킨 엘리야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태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은데… 그건 어렵겠죠?”
“당연하지.”
언제 웃었냐는 듯 정색한 이안이 대답했다.
아무리 학문으로 접한다고 해도, 이런 어둠의 지식을 가까이하다 보면 익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 엘리야는 호기심도 많았다.
그녀를 정말 대자로 여기는 건 아니었지만, 눈앞에서 타락하도록 방치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이래서 굳이 나한테 부탁한 건가?’
아르케아스를 떠올린 이안의 미간이 다시금 좁아졌다.
빙 돌아간다고 했을 때 오히려 반겼던 걸 보면,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그와 오래 함께하다 보면 타락자 한 둘쯤은 마주치게 될 테니까. 어둠의 지식과 가까이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이 순진한 막내 딸이 직접 보고 경험하길 바란 것이리라.
저벅- 저벅-
저만치에서 되돌아오는 필립의 발소리를 귀에 담으며, 이안이 오른손을 펼쳤다. 그의 손아귀에 불꽃이 피어올라 주위를 밝혔다.
“그러니까 물러나라.”
“자, 잠깐만요, 대부님…!”
숨을 들이켠 엘리야가 손을 내뻗었다. 이안이 짧게 혀를 찼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죄송해요…! 하, 하지만, 이론적인 부분만이라도 잠깐만이라도 읽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주문을 완성시키는 방법 같은 건 훑어보지도 않을게요…!”
“…….”
물론, 이안은 그녀의 설득에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마법서를 읽으면서 주문은 안 보겠다니.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이안의 눈매가 가늘어진 건,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라서였다.
막내 딸의 연구 자료.
연계 퀘스트가 분명했다. 엘리야의 연구에 도움이 될 서적을 몇 개 구해다 주면 완료되는, 게임이었다면 비교적 간단했을 퀘스트였다. 보상도 약간의 경험치와 능력치 포인트 하나가 전부였다.
‘…그리고 보통은, 이런 퀘스트가 분기점이었지.’
이안이 짧게 입맛을 다실 찰나.
“뭘 보게 해 달란 말씀이십니까…? 엘리는 또 왜 저런 표정이고요.”
뒤에서 필립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품에 나뭇가지를 한 아름 안아 든 그가 다가오고 있었다.
“크랄렌이 가지고 있던 마법서를 읽게 해달라는군.”
이안이 오른손의 주먹을 쥐며 내뱉었다.
“예…? 뭘 읽는다고요…?”
필립이 되물었다.
불덩이가 번쩍이는 불티를 흩뿌리며 손아귀에서 사그라드는 가운데. 이안이 인상을 구긴 필립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엘리가 어둠의 주문쟁이 꿈나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