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인상을 구겼던 마인의 입매가 이내 비틀렸다.
“혀 놀림이 제법이군….”
파사사삭, 동시에 물러나 있던 저주의 망자들이 복도 좌우로 바퀴벌레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저 수전노 놈들만 처리하면 그만이니….”
이안의 미간이 설핏 좁아졌다.
도발이 안 통할 줄이야.
슈확-
이안은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워억-!”
불현듯 어깨를 떤 마인이 도끼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울부짖으며 이안을 노려보는 놈의 눈에는, 방금까지 존재하던 이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콰지직-!
새하얀 궤적이 놈의 머리를 반으로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가랑이 사이까지 깨끗하게 가르며 착지한 이안은, 반으로 갈라진 마인이 허물어지기도 전에 놈의 몸을 뚫듯이 다시 내달렸다.
‘시발….’
새카만 체액을 잔뜩 뒤집어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저주술사 놈이 튀려는 것 같았으니까. 마법사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도발에 잘 넘어오는 편이었지만, 이놈은 자존심보다 겁이 더 많거나 신중한 성격인 모양이었다.
하긴. 습격할 때마다 본인을 드러내지 않은 부분에서 미리 눈치챘어야 하는 부분인지도 몰랐다.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되는 걸지도.’
체액을 뒤집어 쓴 얼굴이 조금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며, 이안은 복도 좌우로 이어진 방들을 연신 눈에 담았다.
문과 창문이 죄다 부서졌고, 망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실내보다 더 새카만 안개가 바닥에 넘실댈 뿐이었다.
위층의 소란이 더 커지는 것을 느끼며, 이안은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지하로 통하는 길을 찾아야 했다.
-서, 서둘러 주세요, 대부님…! 너무, 너무 많아요. 이건… 이렇게 끔찍할 줄은….
엘리야의 헐떡대는 듯한 속삭임이 뇌리를 울렸다.
나도 그러고 싶다. 속으로만 읊조리며, 이안은 복도를 꺾은 끝에 나타난 문을 걷어찼다.
쩌엉-
밖이었다. 저택 뒤편. 그대로 걸음을 옮기던 이안은, 비로소 저택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했다.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번져 나오는 걸 보니 제대로 찾은 게 분명했다.
하수도는 딱 질색인데.
내심 혀를 차면서도, 이안은 망설임 없이 두더지 굴 같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좁고 낮고 어두운 데다, 저주의 안개가 자욱해져서 눈까지 따가웠다.
더는 백금 방벽의 빛도, 마력 탐지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위치가 느껴지냐? 엘리.
찰박, 몸을 반쯤 접은 채 하수도로 들어선 이안이 속삭였다.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네. 느껴져요.
-마력의 근원지까지 방향을 안내해.
-일단… 계속 나아가세요. 지금 대부님이 나아가시는 방향에서 북동쪽이에요.
이안은 엘리야의 속삭임에 따라 이동했다. 화생방 훈련이 따로 없었다. 발목까지 찰랑대는 오물과 구린내를 곁들인.
-시발….
-뭔가 문제라도 생겼나요?
-모든 게 문제야. 됐고, 위쪽 상황은 어때.
-안 좋아요. 이 망자들의 피에도 저주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경호병들이 벌써 셋이나 당했어요….
어쩐지 따갑더라니.
이안이 내심 혀를 차는 사이, 엘리야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필립 경이 펼친 기적이 중화하고 있긴 하지만, 위태로워 보여요. 밤이라 그런 것 같아요.
-위태롭다고…? 필립,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
이 자식 성격상 이미 한참 죽는 소릴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안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필립도 엘리야를 매개로 이어져 있었다. 이어진 코너를 돌 때쯤, 대신 엘리야의 대답이 되돌아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대요. 죽을 것 같으니까 빨리해 주시라네요.
아, 그래. 그냥 속삭일 방법을 몰라서 조용했던 거군.
-버텨라, 필립. 정 힘들면 싸움은 경호병들에게 맡기고 기도라도 올려. 최대한 빨리 돌아갈 테니까.
덧붙인 이안이 굽히고 있던 허리를 폈다. 공간이 조금 넓어지는 게 느껴져서였다.
-거기예요! 거기 같아요!
-알고 있어.
보고 있거든. 내심 덧붙이며, 이안은 지하실을 눈에 담았다.
본래라면 비밀 피난처나, 하수도를 청소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만들어진 공간일 터였다.
솨아아-
지금 이 한복판에는, 어디서 옮겨온 건지 모를 간이 나무 단상이 솟아 있었다. 그 위에는 주문 회로가 새겨진 커다란 양피지가 펼쳐져 있고, 회로 한복판에는 꽤 커다란 정수가 얹어진 채였다.
정수가 보랏빛으로 일렁이고, 주문 회로가 불길한 검은 빛을 내뿜었다. 자욱한 검은 안개의 근원지이기도 했다. 덕분에 단상은 파도치는 어둠 한복판에 불쑥 솟은 것처럼 보였다.
‘역시, 회담 장소를 미리 알고 준비해둔 거네.’
보르를 습격할 때 알게 된 건가.
어쨌든, 이안은 내내 묘한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그 실체를 알 수는 없던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됐다.
회로를 발동시키기 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게 당연했으니까. 게다가 사실, 이런 지하에서 벌어지는 일을 땅 위에서도 온전히 느끼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두근….
내면에서 파편의 울림이 번졌다.
닥치고 있어. 넌 당분간 근신이니까. 내심 속삭이며, 이안이 진은 강철 검을 들었다.
콰직-!
새하얀 궤적이 정수를 박살 내고, 그 아래의 주문 회로와 나무 단상까지 쪼개 버렸다. 정수에서 터져 나온 마력이 한차례 번쩍이고는 흩어졌다.
파슷….
주문 회로가 삽시에 빛을 잃었다. 주위의 검은 안개가 파도치듯 일렁이며 밀려났다. 더는 주위로 새로운 안개가 번져 나오지 않았다.
“…….”
물론, 이안의 표정은 딱히 밝아지지 않았다.
어쨌든 흑마법사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길을 찾는 사이, 하수도를 기어 도망친 모양이었다.
‘바퀴벌레 같은 새끼.’
혀를 차면서도, 이안은 곧바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저주의 근원을 없앴다고 해서 안게까지 단숨에 사라진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이 안개는 저주뿐만 아니라 망자들의 동력원 역할도 했다. 게다가 놈들의 피에도 저주가 담겨 있다지 않던가.
필립이 당할 리는 없어도 상단주 중 누군가는 죽게 될지도 몰랐다.
퀘스트에 숫자가 적혀있는 건 아니었지만, 하나라도 죽는다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있었다.
‘이 짓까지 했는데 그냥 날릴 수는 없지.’
이를 악물며 내달린 이안이 그대로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그워어어억-!”
“갸아악…! 그륵…!”
복도 바닥에 검은 안개가 양단처럼 깔린 가운데, 미쳐 날뛰는 망자들의 뒷모습이 펼쳐졌다.
그 너머로 황금빛 장막이 아른거렸다. 필립이 펼친 신성 장막이 저주의 안개와 망자들을 막아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빛이 꽤 옅어진 상태였지만, 적어도 아직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콰직-! 서걱!
생각하는 와중에도 내달린 이안이, 망자들의 후미를 덮쳤다. 새하얀 궤적이 쉬지 않고 이어져 앞에 걸리는 것들을 썰어 나갔다.
카드득- 푸확-!
단죄의 검과 흑검을 제외하면, 진은 강철 검은 지금까지 이안이 사용한 것 중에 가장 좋은 검이었다.
하나는 성검, 하나는 마검에 가깝다는 걸 생각해 보면, 사실상 일반적인 검 중에서 이보다 좋은 걸 찾아보긴 어려울 터였다.
하긴. 그러니 유일 등급인 것이겠지만.
서걱-! 퍼억-!
쉬지 않고 베고 찌르고 방벽을 후려치며 나아간 끝에, 이안은 마침내 생존자들을 눈에 담았다.
둘만 남은 경호병들이 신성 장막을 앞에 둔 채 싸우고 있었다.
뒤편의 제국인은 날에 불이 붙은 검을 휘두르고 있고, 이안 쪽의 북부인은 외날 도끼와 뇌전이 번쩍이는 쇠장갑으로 망자들을 필사적으로 후려쳤다.
우글대는 망자들 사이로, 문틈에 무릎 꿇은 필립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이안의 조언대로 기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리라. 한밤중이니, 성흔의 신성을 다시 채우려면 다른 방법이 없을 터였다.
“비켜!”
눈이 마주친 북부인 전사에게 소리친 이안이, 앞을 가로막는 망자의 목을 날려 버렸다. 놈의 몸통을 방벽으로 후려쳐 벽에 짓이겨 버린 그가, 반사적으로 비켜서는 북부인 경호병 곁을 지나쳤다.
“헉…!”
화염 검을 휘두르던 제국인 경호병도 다급하게 벽면에 찰싹 붙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으로, 백금 방벽을 앞세운 이안의 황금빛 궤적이 뻗어 나갔다.
콰지지직-
백금 방벽에 떠밀린 망자들이 구겨지듯 밀려났다. 그 사이로 새하얀 궤적이 그 어떤 기교도 없는 매끄러운 곡선만을 연달아 그려냈다.
서걱- 콰직! 콰드득-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졌다.
미쳐 날뛰는 망자들은 방벽을 깨뜨리지 못했고, 진은 강철 검은 저주를 잔뜩 머금은 살과 뼈를 말 그대로 종잇장처럼 갈랐다.
아직 남은 안개나 망자들의 체액에 담긴 저주도 이안을 멈추지는 못했다.
철퍽-
그보다 마지막 망자가 바닥에 쓰러지는 게 덜 빨랐다.
썰물처럼 서서히 밀려나는 검은 안개 사이로, 토막나고 짓이겨진 시체 조각들이 가득했다.
새카맣게 물들어 있던 살덩이들이 조금씩 본래의 색을 되찾아 가는 가운데.
“후우… 후우….”
검을 늘어뜨린 채 숨을 고르던 이안이 비로소 뒤를 돌아보았다.
“…….”
“…….”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던 두 경호병이 화들짝 어깨를 떨었다.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두 명의 상단주도 마찬가지였다.
놀라운 반응은 아니었다.
이안은 방금, 복도에 가득하던 저주 구울들을 말 그대로 인간 전차처럼 밀어 버린 셈이었으니까. 게다가 그가 쥔 검은 여전히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백금 방벽도 은은한 황금빛을 머금고 일렁였다.
파슷-
방벽을 거둬들인 이안이, 체액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은 검을 허리춤으로 되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기도 멈춰도 돼. 저주가 물러나고 있으니까.”
솨아아, 그 순간 신성 장막이 금가루 같은 빛무리로 화하며 흩어졌다. 필립이 허물어지듯 땅에 양손을 내디뎠다.
“콜록 콜록, 하아… 후….”
안면가리개 사이로 핏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코피라도 흘린 모양이었다. 신성력을 과도하게 끌어다 쓴 부작용이리라.
밀려드는 저주를 홀로 막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어쨌건, 덕분에 상단주들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저들이 죽지 않게 지키는 게 필립의 임무였으니, 훌륭하게 수행해 낸 셈이었다.
“……!”
이안의 시선을 받은 두 경호병이, 그의 턱짓에 재빨리 몸을 돌려 필립을 부축했다. 필립이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안면 가리개 사이로 아른거리는 금광을 내려다보며, 이안이 옅게 웃음 지었다.
“마법 무구는 장식이냐?”
“도무지 익숙해 지지가… 하하. 조금만 더 늦으셨다면… 기절했을 겁니다. 아마도요….”
필립이 헐떡대며 대답했다. 수고했다고 덧붙인 이안이 그의 뒤편, 회의장을 바라보았다.
낯이 하얗게 질린 엘리야는 물론이고, 겁에 질린 채 모여선 상단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귀하는… 도대체…?”
이안의 눈길을 받은 쿠르드인 단주가 더듬대며 물었다.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둘 중 한 사람이었다. 이안이 입을 열었다.
“다들 자리를 비우지 마시오. 아마 곧, 경비대가 들이닥칠 테니까. 뒷수습을 잘 하셔야 될 거요. 살고 싶다면.”
“……!”
그제야 상단주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의 눈동자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현실감이 되돌아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외곽이라 해도, 여긴 엄연히 도시 안이지 않은가. 심지어 영주의 별채이기도 했고, 전투와 저주의 여파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자칫하면 전부 목이 달아나기에 딱 좋은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이제 와서 발 뺄 생각들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이오. 똘똘 뭉치지 않으면 다 죽을 테니. 나도, 여기서 발을 빼는 자를 가장 먼저 의심할 거고.”
상단주들의 눈을 차례로 마주 보며 덧붙인 이안이, 마지막으로 파엘을 마주 보며 말을 맺었다.
“나라면, 연맹의 대표자부터 마저 뽑겠소.”
“아… 그, 그렇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오! 시간이 얼마 없소!”
파엘이 더듬대면서도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콧수염 단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회담을 계속하자고? 이 시체 밭 한복판에서? 심지어 이게 다, 우리 식구들이었는데?”
“어쨌든 절반은 살았잖아요. 방주 상단주의 혜안 덕분에.”
코뚜레 단주가 덧붙였다. 쿠르드인 단주를 비롯한 다른 단주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파엘을 돌아보았다.
“빨리빨리 머리를 짜냅시다. 여기서 다 죽고 싶지 않다면. 저분의 말이 맞소. 이제부턴 흩어지면 죽는 것이오. 습격의 배후는 일단 살고 난 뒤에 알아내도 늦지 않소.”
떠들어 대기 시작한 단주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이안이, 필립을 부축한 두 경호병을 돌아보았다.
“두 분을 안전하게 모셔. 내가 없는 동안.”
“또… 어딜… 가십니까?”
북부인 경호병이 물었다.
이안이 몸을 돌리며 내뱉었다.
“바퀴벌레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그놈의 목을 가져와야, 내 의뢰도 끝나는 거거든.
이안은 토막 난 시체로 즐비한 복도로 걸음을 내디뎠다.
안개가 사라졌지만, 구린내와 피비린내는 여전했다. 이안은 마비되지도 않는 자신의 후각을 내심 원망했다.
어쨌건, 시체 토막들에서는 저주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안개가 사라지면서 저주의 잔재도 함께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사령술이나 강령술로 만들어진 변이체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상황을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서로 싸우다 죽은 것이라 여길지도 몰랐다.
‘애초에 그걸 노렸던 건가….’
어쨌건, 이 개판을 수습하는 건 상인들의 몫이었다.
애초에 파엘의 말만 들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상황이 아니던가.
지금도 피해를 입지 않은 건, 경호병과 짐꾼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낸 방주 상단뿐이었다. 물론, 이 개판을 수습한 게 파엘의 개인 경호병인 이안과 필립이니 괴상한 오해를 살 일은 없으리라.
“……?”
문득 멈칫한 이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그의 손목을 잡아서였다. 엘리야였다.
“손에 피 묻는다. 떼.”
“저도 같이 가요.”
“……?”
엘리야의 말에, 이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엘리야는 안색이 여전히 창백한 와중에도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그 흑마법사를 꼭 잡고 싶어요. 주문 회로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이만한 주문을 사용했다면 아직 마력의 잔재가 남아 있을 거예요. 저라면 그걸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인파 사이에 섞여 있는 놈은 나도 찾을 수 있어. 꼭 지하 수로에서 붙잡을 필요는 없으니까.”
“수로 끝은 강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엘리야를 따라온 제국인 경호병이 끼어들었다. 이안의 시선을 받은 그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 도시의 지하 수로는 예전부터 밀수꾼들이나 범죄자들이 애용하는 공간입니다. 배수구 근처에 배를 대놓고 물건이나 사람을 운반하는 식이죠.”
“전 지하도 꿰뚫어 볼 수 있고요.”
엘리야가 재빨리 덧붙였다.
…하긴. 흑마법사는 꼭 이 녀석이 보는 앞에서 목을 치겠다고 생각했었지.
입맛을 다신 이안이, 목에 건 델라 루의 은총을 풀었다. 목걸이를 엘리야에게 걸어 주며 그가 내뱉었다.
“싸움이 시작되면 뒤로 물러나 있어라. 절대 끼어들지 마.”
“네. 그럴게요.”
하여간, 다들 대답은 잘해.
이안은 한 팔로 엘리야를 안아 들어 올렸다. 체액과 오물이 엘리야의 로브에도 묻었지만, 그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그의 목을 감싸 쥐었다. 어쨌건 그녀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들고 달리려면 진땀 좀 빼겠는데.
내심 중얼대며 걸음을 옮긴 이안이 이내 계단을 내려갔다.
“…대부님 말씀이 맞았어요. 전 흑마법도 마법의 일부이며 학문일 뿐이라 여겼거든요. 그게 터부시되는 건 그걸 익힌 자들의 문제일 뿐이라고.”
엘리야가 문득 읊조렸다. 이안이 슬쩍 내려다보는 가운데, 그녀가 덧붙였다.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이런 걸 익혔다면, 정신이 온전하게 유지될 리 없어요. 멀쩡한 사람도 결국은 미치광이가 될 거예요.”
이안이 낮게 코웃음을 흘렸다.
“그래. 마법이 정신을 갉아먹게 되겠지. 검은 벽도. 공허도 마찬가지야.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도 영혼을 오염시키지.”
“…공허를 본 적이 있으신 것 같은 말투시네요.”
“…….”
“설마, 정말 보신 건가요?”
눈을 치켜뜬 엘리야가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하여간, 이놈의 호기심은. 이안은 짧게 혀를 차며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깜빡인 엘리야가 덧붙였다.
“하, 하지만, 제가 알기로 공허를 엿본다는 건….”
“아주 끔찍한 일이지. 운이 좋지 않았다면 나도 미치광이가 되었을 거다. 호기심으로라도 시도한다면, 너도 그렇게 되겠고.”
“…확실히. 이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미친 난쟁이가 되고 싶진 않네요.”
어둠에 휩싸인 복도의 끔찍한 전경을 돌아보며 엘리야가 읊조렸다.
…교훈이 아예 없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며, 이안은 저택의 대문을 열었다.
사아아….
외부의 안개도 거의 다 흩어지고 있었다. 불길한 어둠이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차 주위에 밝혀 뒀던 횃불이 전부 다 꺼져서, 어쨌건 여전히 어둡긴 했지만.
“……?”
이안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 건, 늘어선 마차들 사이를 지나쳤을 때였다.
다그닥- 다그닥-
발굽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귀를 파고들어서였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이안이, 이내 조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밤의 또 다른 기적이군.”
은색 마갑을 걸친 백마가, 정원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