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오히려 이렇게 써먹는단 말이지.’
비로소 이안은 헛웃음을 삼켰다.
북부로 보낼 리 없다 여긴 건, 물론 그가 북부의 대전사이기 때문이었다.
전 대륙에 그의 명성이 자자하긴 하지만, 북부는 그중에서도 그의 영향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미치는 지역이었으니까.
그를 중심으로 한 신흥 군벌이 탄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모든 북부인의 지지를 받는, 심지어 중앙의 통제조차 벗어난.
“전선의 방위군과 힘을 합쳐, 예정된 침공을 저지하고 전선을 사수토록 하라. 또한-”
하지만 황제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안의 권위를 이용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심지어 감투까지 씌워 등을 떠밀 만큼 본격적으로.
‘그만큼 큰 위기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눈앞으로 퀘스트 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전선으로. 게임에서 받았던 것과 같은 이름의 퀘스트였다. 하지만 내용은 그때와 전혀 달랐다.
동부 전선의 수복을 돕는 게 아니라, 북부 요새인 카링기온으로 향하는 게 목표였으니까.
‘하필 또 카링기온이네.’
카링기온은 최전선에 위치한, 사실상 가장 중요한 거점 요새였다. 침식이 시작되면 가장 위험해질 장소라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만큼 가장 많은 경험치를 손에 넣게 될 장소이기도 할 터였다.
“-집결 이후의 총지휘권은 울라프 대공에게 위임한다. 이는 변경백의 병단이 소집 해제되는 시점까지 유효하며, 해제 즉시 제도로 귀환하여 결과를 보고할 것을 명하노라.”
창을 닫은 이안의 눈앞으로, 곧바로 또 다른 퀘스트 창이 이어졌다.
북부의 전사들.
침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수의 북부인 전사들에게 집결 명령을 내리는 게 목표였다.
야만 전사 전용 연계 퀘스트가 분명했다.
물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황실이 아니라 교단으로 찾아갔다면, 기사나 수행 사제의 전용 퀘스트를 받게 되었을 테니까.
어쨌건, 마법사 전용 퀘스트를 받게 될 일은 어디서든 없었으리라.
이안이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그렇다고 드러내면, 말 그대로 난리가 나겠지.’
이안이 내심 혀를 차는 사이, 비로소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말아 든 세라스가 덧붙였다.
“예를 다해 금인 칙서를 받들라.”
이안은 양손을 활짝 펼쳐 머리 위로 들었다. 세라스가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오는 사이.
“북부 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믿겠다. 변경백.”
황제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세라스가 이안의 손바닥 위에 책서를 내려놓은 순간,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합당한 보상은, 귀환 후에 다시 논의토록 하지.”
무심하게 덧붙인 황제가 몸을 돌렸다. 발걸음이 멀어지고, 곧이어 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번졌다.
거, 일으켜는 주고 가지.
내심 읊조리며 칙서를 움켜쥔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힌 건, 작위가 일종의 계약금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받아서였다.
대화를 몇 마디 더 나눌 겨를만 있었더라면, 보상에 대한 흥정까지도 시도해 봤으련만.
‘하긴. 그건 일을 다 끝낸 뒤에 해도 늦지 않겠지.’
그땐 내 상황이 또 달라져 있을 테니까.
내심 덧붙이며,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건 황제가 알현실을 떠났으니 계속 무릎을 꿇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버르딘을 거쳐 북부로 향하십시오, 성자 대행.”
노인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이안의 시선을 받은 그가 차분하게 덧붙였다.
“그곳에 귀하를 도울 조력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뭐, 감시라도 붙이겠단 건가.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소.”
어떤 역할로 붙여 줬건, 써먹는 건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이유로 붙은 거면 망설임 없이 위험 속으로 던져 넣어줄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노인이 덧붙였다.
“그럼, 하사품을 받으십시오.”
많이도 준비했네, 진짜.
이안은 다가오는 시종을 눈에 담으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황제는 그가 방문하면 어떻게 할지를 전부 계획하고 준비해 뒀던 게 분명했다. 어쩌면 세라스가 성공하리라 처음부터 확신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
이안의 앞에 멈춰 선 시종이 은 쟁반을 내밀었다. 쟁반에 남은 두 물건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검은 표지를 금박으로 장식한 고급스러운 서첩과 투박하게 큰 금속 열쇠.
노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폐하의 금인으로 날인한 증명서와 남작저의 열쇠입니다.”
이안의 눈을 순간 번쩍이게 하기에도 충분한 말이었다.
“내 소유의 집이오?”
이안이 열쇠를 집어 들며 물었다. 그가 그걸 먼저 쥘 줄은 몰랐던 듯 잠시 눈을 깜빡인 노인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법에 의거한 정당한 소유지입니다.”
“훌륭하군….”
내 집 마련의 꿈을 이 세계에서 이룰 줄이야.
갑자기 황제에 대한 호감이 솟아나는 느낌을 받으며, 이안은 손에 쥔 커다란 열쇠를 내려다보았다.
열쇠 상단의 고리 부분에는 제국어와 숫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일종의 주소 같았다.
이안이 슬쩍 보여 주자, 세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을 보아하니, 그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뭐, 나가서 직접 물어보면 그만인 문제였다.
비로소 증명서를 집어 든 이안이, 다시 노인을 바라보았다.
“하나만 더 묻겠소.”
“말씀하십시오.”
이안이 증명서를 살짝 흔들었다.
“이제, 황실에서 녹봉도 받소?”
“…….”
노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눈을 몇 차례 깜빡인 그가, 이윽고 탄식하듯 내뱉었다.
“물론 받으실 겁니다…. …더 물으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없소.”
“그러시다면…”
노인이 그들의 뒤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손짓에 옅은 피로가 묻어났다.
‘그러고보니, 저 영감은 대체 직위가 뭐지.’
세라스가 이안을 돌아본 건 그때였다. 웃음을 참으려는 듯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까딱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하긴. 직위 따위, 알게 뭐람.
어깨를 으쓱인 이안도 몸을 돌렸다. 어느새 알현실의 문이 다시 활짝 열려 있었다.
***
“……?”
황궁을 나선 이안은 곧이어 눈을 깜빡였다. 계단 아래쪽에 익숙한 마차가 보여서였다.
페이든과 아스메가 마차를 아예 황궁 앞까지 끌고 온 것이다.
이안은 그제야 세라스가 마지막에 보낸 손짓이 마차를 끌고 따라오라는 뜻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저래도 되는 건가.’
어쨌건, 근위병의 절반과 케드릭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다른 황족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간 것이리라.
무례한 짓이었지만, 이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딱히 케드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 없었다.
세라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황제가 될만한 그릇 같지도 않았다. 직접 황제를 만나고 온 입장에선 더더욱.
이안을 따라 마차에 오르던 세라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너는 병사들과 함께 먼저 돌아가. 아스메.”
“……?”
“샛별궁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하거든.”
“……!”
고개를 갸웃하던 아스메의 눈이 커졌다. 빙긋 미소 지은 세라스가 마차에 올랐다. 문을 닫기 전, 그녀가 이안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경. 잠시 열쇠를 주시겠어요?”
가져온 물건들을 옆의 의자에 내려놓았던 이안이 선선히 열쇠를 내밀었다. 간이 창문을 연 세라스가 페이든에게 열쇠를 내밀었다.
“숙소가 아니라 이곳으로 가세요. 폐하께서 하사한, 성자 대행의 저택입니다.”
“……! 예. 전하.”
열쇠를 공손히 받아든 페이든이 간이 창문을 닫았다.
역시, 주소였던 거군.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안은 등받이에 깊이 기대앉았다. 마차는 세라스가 문을 닫음과 동시에 출발했다.
장내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세라스는 굳이 마석등을 켜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등받이에 털썩 널브러졌을 뿐이었다.
“…….”
그녀의 얼굴에 감추고 있던 피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안이 이 속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밤마다 마석 등을 켠 건, 그저 엘리야가 책을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지만….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대신, 이안은 의자 아래의 술병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 남은 포도주였다. 지겨워서 남겨 두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한 모금을 마신 이안이 병을 내밀었다.
“포도주. 드시겠소?”
“…네. 감사해요. 딱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어둠 속을 더듬어 술병을 받아든 세라스가, 이내 덧붙였다.
“저택에 모셔다드리고 나면, 저는 곧바로 소니에르 가의 저택으로 가겠습니다. 약속드린 보수를 드려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시오.”
“금화는 바로 준비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분들 건, 제가 따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알겠소.”
잠시 머뭇거리며 모호하게 덧붙인 건, 아마도 황제를 의식해서 이리라. 아직 황도 한복판이지 않은가.
술을 한 모금 마신 세라스가 덧붙였다.
“저택에는 언제 방문하실 건가요?”
“준비만 된다면, 내일 아침이라도 바로 가겠소.”
그녀가 내민 술병을 받아들며 대답한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황명을 받았는데, 미적거릴 수는 없잖소?”
물론 사실, 며칠 더 묵었다간 온갖 귀찮은 일들을 겪게 되리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내일 하루 정도는 별일 없을지도 몰랐지만, 그의 저택 위치가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게다가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침식의 날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북부의 전사들을 규합해 전선으로 향하기에, 남은 시간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중간에 어떤 예상 못 한 변수가 끼어들지도 알 수 없지 않은가.
‘북부 야인들은, 내가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명령을 따르지 않겠고.’
물론 이미 그를 따른 전적이 있던 자들은 그렇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일부에 불과했다. 게다가 솔직히, 그들이 여전히 정착지에 남아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타후므리트가 죽었으니 죄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설원지대를 직접 돌면서 다시 전부 이끌고 데리고 나와야 하리라.
“저택에 모셔다 드린 뒤에, 마차를 잠시 빌릴 수 있을까요? 볼일이 끝난 뒤에 다시 타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러시오. 어차피 정산도 받아야 하니, 겸사겸사 한 번에 끝내면 되겠군.”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을 끝으로,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 술병만 주고받았다.
이안은 황제와, 황제가 내린 명령을 곱씹고 있었다.
괴상한 존재감이나 너구리 같은 언행도 그렇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리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뭔가 다른 비밀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무엇일지는 시간이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부분이었다. 어쨌건, 이번 만남은 시작에 불과할 것 같았으니까.
악연이 될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지만….
“…감사해요, 경.”
세라스가 다시 입을 연 건, 한 차례 마차가 덜컹댄 직후였다. 술병이 반쯤 빈 시점이기도 했다.
그녀가 내민 술병을 받아들며, 이안이 내뱉었다.
“뜬금 없으시군. 인사는 기꺼이 받겠소만.”
“아까 오라버니가 아니라 제 편을 들어주셔서요. 사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주실 이유는 없었잖아요.”
아, 그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이안이 내뱉었다.
“있었소.”
어둠 너머, 세라스의 눈이 반짝였다.
“뭔가요?”
“아니꼽잖소. 재주는 귀하가 넘었는데, 돈은 자기가 챙기겠다니.”
“……?!”
“난 내가 그러는 건 괜찮지만, 남이 재수 없게 구는 건 싫어하는 편이오.”
말을 마친 이안이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본 것도 잠시. 세라스가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맙소사… 오라버니가 들으면 얼굴이 새빨개졌겠군요. 하긴. 이미 돌아가실 때도 그랬겠지만요.”
그녀가 눈가를 훔치며 중얼댔다.
저렇게까지 웃을 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안이 내심 생각할 찰나, 마차가 다시 한번 덜컹댔다.
이안이 술병을 내밀어 세라스의 다리 위에 얹으며 덧붙였다.
“이제야 좀 편하게 말하겠군.”
어느새 익숙해졌던 거슬림이 한순간에 씻은 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황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술병을 받아들며 드디어, 하고 읊조린 세라스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이내 그녀가 한결 자연스러워진 말투로 내뱉었다.
“덕분에 거처를 옮기게 된 것도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성자 대행. 그러니 제도에 남은 두 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꾸준히 신경 쓰며 조력할 테니까요.”
“거처를 옮긴다는 게 다른 의미가 있는 모양이군.”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꾸했다. 술을 한 모금 들이켠 세라스가 미소 지었다.
“표면적으로는 부릴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죠. 하지만 그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커요. 그만큼 제가 아버님의 눈에 들었다는 의미거든요. 황도에서의 제 영향력이 더 커질 겁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요.”
의미심장한 마무리에, 이안의 입술도 말려 올라갔다.
“삼황자께선 마냥 좋아하진 않으실 것 같은데.”
“그럴 지도요.”
세라스가 술병을 이안의 무릎 위에 얹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제 와선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경께서 제 손을 잡아 주신 덕분에요.”
어둠속에서 세라스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어쩌면 이번 일이, 불씨에 불과했던 그녀의 야망을 타오르게 한 걸지도 몰랐다.
물론 그 야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아주 희박하겠지만.
“그럼, 조금 더 잡아 봅시다.”
“……?”
이어진 이안의 말에, 세라스의 고개가 슬쩍 기울어졌다. 이안이 술병을 받아들며 덧붙였다.
“앞으로 황도에 들어올 일이 더 있을 것 같아서 말이오. 폐하를 뵙거나 다른 일을 할 때, 곁을 지켜줄 누군가가 있다면 일이 더 편하지 않겠소?”
“앞으로도… 계속 제 조력을 받으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상부상조하자는 말이오. 나와의 관계가 전하께도 나름대로 도움이 되시잖소.”
“그야 물론이죠…!”
세라스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허리를 곧추세운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주 현명한 결정을 하신 겁니다. 성자 대행.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정말 그럴지는 지켜 보면 알겠지. 미리 말씀드리는데, 귀하가 후회하실 일이 없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소.”
농담하듯 덧붙인 이안이 술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 짓던 세라스가 이내 대답했다.
“상관 없어요. 반역을 모의하지만 않으신다면, 배신하지 않는 우군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경. 아니. 변경백. 그리고 남작.”
“하던대로 부르시오. 편하게.”
술잔을 입에서 떼며 낮게 웃음 지은 이안이, 이내 덧붙였다.
“폐하께서 내게 하사하신 영지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고 계시오?”
세라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성자 대행께서도 알고 계실 텐데요. 북부의 대전사시잖아요.”
“…다들 착각하는데. 나는 북부인이 아니오. 생각보다 북부에서 머문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고.”
물론 게임에서는 꽤 오래 있었지만. 주요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관심조차 가져 본 적 없었다.
이안이 다시 술병을 입에 가져갔다. 그사이 낮게 침음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세라스가 대답했다.
“루 글라스트와 노르 린도르는 아히고른 산맥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갤 마로는 그 두 영지 남쪽에 바로 인접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안의 입가에 놀랍지도 않다는 듯한 실소가 스쳤다.
손바닥으로 입술을 훔치며, 그가 덧붙였다.
“전부 설원 지대란 말씀이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