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2
032화
여급이 되물었다.
“…그게 아무도 완수한 적 없는 의뢰라도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시지를 한입 더 베어 물었다.
이윽고 한숨을 내쉰 여급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님이 직접 현상금을 건 일이에요.”
“내용은?”
“지하에 수로가 있거든요. 엄청 오래전에 요정들이 만든 거라, 아무도 전체 구조를 몰라요. 뭘 버리면 저 너머의 배수구로 빠져나가니까 그냥 쓰는 거지. 아무튼, 거기 뭐가 살아요. 가끔 하수구를 타고 그르렁대는 소리도 들리고.”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은 들은 적 있어. 식인 악어.”
“토벌하겠다고 들어간 사람 중에 딱 한 명만 돌아왔어요. 그 사람 덕분에 정체가 밝혀졌죠. 눈이 넷 달린 악어라던데. 사실 그게 진짜인지도 알 수 없어요. 그 사람 외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안 가시는 게 좋아요. 게다가 거길 들어가면….”
여급이 목소리를 낮췄다.
“똥물에 다리를 담그고 다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
이안과 필립의 인상이 동시에 구겨졌다.
필립과 눈빛을 교환한 이안이 물었다.
“그놈을 죽이면 어디로 가져가야 하지?”
“그냥 여기로 가져오셔도 돼요. 경비대가 찾아올 테니까.”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은화를 하나 더 건네며 말했다.
“침대 두 개 있는 방으로 주고, 내일 나와 이 녀석이 갈아입을 옷을 두 벌씩 사다 줘. 돌아와서 씻을 물도 준비해 주고. 이거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정말 하시게요?”
“내일 낮에. 바로.”
“…전 말렸어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이 묵을 방을 알려 준 여급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멀어졌다.
“똥물이라니… 하….”
딱딱한 빵을 스튜에 적시던 필립이 한숨 쉬었다.
이안이 어깨를 까딱였다.
“어차피 내 눈엔 여기나 똥물이나 다를 것도 없어.”
“지하 수로에 사는 식인 악어라니. 버차드 후작은 잘도 그런 걸 방치하고 있군요.”
“병사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은 거겠지.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어차피 많아야 백인대 한 두 부대나 지원할 거면서, 더럽게 쪼잔한 작자인 모양입니다.”
“글쎄… 뭔가 생각이 있겠지.”
“……?”
필립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길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대꾸도 하지 않고 소시지를 입에 넣었다.
내일 격하게 움직일 테니, 이런 맛대가리 없는 음식이라도 든든히 먹어 둬야 했다.
***
용병인 패튼은 늘 그렇듯,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일어났다.
간밤의 음주 덕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홀로 나간 그는, 평소와 달리 이른 시간부터 모여 앉은 용병들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뭣들 하고 있냐?”
“엉? 내기 중이었어. 너도 낄래?”
“내기…?”
그가 테이블로 다가갔다.
“뭔 내기?”
“어젯밤에 온 놈들 말이야.”
양쪽 손가락이 둘씩 없어서 육손이라 불리는 녀석이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냈다.
“지하 수로로 들어갔다더라고.”
“수로에…? 설마 둘이서 그 괴물을 잡겠단 건 아닐 테고.”
“그 설마가 맞아.”
“미쳤군.”
패튼의 미간이 좁아졌다.
여급에게 손짓으로 스튜를 부탁한 그가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내기 조건이 뭔데?”
“오늘 자정까지 돌아오느냐, 마느냐.”
“…너무 뻔한 조건인데.”
“그래서 누가 돌아온다에 걸 건지로 얘기 중이었어.”
다른 용병이 거들었다.
“돌아오면 한 놈이 판 돈을 다 먹고. 못 돌아오면 전부한테 한 잔씩 사는 거로 말이야.”
“차라리 그냥 한턱 쏘는 게….”
중얼거리던 패튼이 문득 볼을 긁적였다.
때마침 여급이 스튜를 가져왔다.
접시째로 들어 입에 부으면서, 그는 어젯밤에 본 떠돌이들의 행색을 떠올렸다.
한 놈은 애송이 같았지만, 다른 한 놈은 묘한 위압감이 있었다.
덩치가 크거나 얼굴이 무서운 것도 아닌데도.
그래서 적당히 지켜보다가 말을 걸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쓸만한 인재가 필요했으니까.
“…그럼 내가 그쪽에 걸지.”
이윽고 접시를 내려놓은 패튼이 말했다.
둘러앉은 용병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심이냐, 패튼?”
“그래. 살아 돌아오면 돈을 벌어서 좋고. 아니면 너희 새끼들한테 한 잔씩 사서 좋다고 하지 뭐.”
패튼이 테이블에 은화를 내려놓았다.
잽싸게 챙긴 육손이가 돈을 내기용 주머니에 넣었다.
“역시 넌 괜찮은 놈이라니까.”
“도련님이 아끼는 이유가 있어. 둘이 비슷하다니까?”
곳곳에서 이어지는 속 보이는 덕담에 패튼이 코웃음을 쳤다.
“작작들 해라, 새끼들아. 그딴 사탕발림은 다른 호구한테나 가서-”
쿠우웅-
패튼의 말이 멈췄다.
어딘가에서 둔중한 떨림이 번졌기 때문이다.
어리둥절해하던 용병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거, 뭐였.”
구웅-
다시 한번 진동.
그들은 그제야 이 떨림이, 저 너머 어딘가의 땅속에서 번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병들이 저마다 시선을 교환할 찰나.
쿠웅- 쿠우웅- 쿠구구구-
진동이 연달아 이어졌다.
여기서 이렇게 느껴질 정도라면, 외성과 내성에선 더 선명하게 느껴질 게 분명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다시 장내가 고요해졌다.
한참을 서로 눈빛만 교환하던 중, 이윽고 육손이가 웃음을 흘렸다.
“꽤 인상적이긴 했는데. 아무래도 끝난 것 같지?”
“그렇지? 무슨 짓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콰앙-!
그때, 이번엔 아예 폭음이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테이블 위의 잔들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아무도 주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으니까.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번지는 가운데.
키아아아아아-
난생처음 들어 보는 비명이 사방에 메아리쳤다.
도시의 모든 배수구를 나팔 삼아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적막. 장내에도 기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여관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방금 들었어? 그거 뭐냐?!”
도시에 나가 있던 용병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던 용병들이 여관으로 모여들었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그들은, 모두 저마다가 들은 것과 본 것들을 떠들어 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망치로 지하를 다 부수고 다니는 것 같은 소리였다고. 그 미친놈들이 수로를 막아 버린 거야. 악어를 잡으려고.”
“난 욕이랑 외침을 들었어. 배수구 아래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막으라고 하는 걸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니까?”
“기름이야. 기름을 들고 가서 똥물에 불을 지른 거야. 불붙은 악어가 비명을 내지른 거지.”
실체 없는 추측과 주장이 난무하고, 그에 따른 크고 작은 내기들이 성행하는 가운데.
끼이이이-
여관 문이 천천히 열렸다.
노을의 붉은 빛과 기다란 그림자가 장내에 드리웠다.
좌중이 삽시에 고요해졌다.
그림자를 앞세운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오물과 체액을 뒤집어쓴 이안이었다.
“…….”
하지만 아무도 그의 행색이나 그에게서 풍기는 구린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품에 안고 들어온 것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장내를 돌아본 이안이, 여급을 발견하고는 품에 안고 있던 것을 내던졌다.
“가서 사람을 불러 와라.”
철퍽-
거대한 머리통이 여관 바닥에 널브러졌다.
소 몸통만 한 크기에, 눈이 네 개나 달린 악어의 머리였다.
“지하 수로의 괴물을 죽였으니까.”
이안이 말을 맺는 사이, 뒤따라 들어온 필립도 손에 든 것을 머리통 옆에 던졌다.
그건 머리와 마찬가지로 엉망진창으로 뜯겨나간 꼬리였다.
“못 들었습니까? 경비병이든 대장이든, 불러오라고. 당장.”
“네, 네엣!”
필립이 짜증스럽게 덧붙이자, 여급이 불에 덴 것처럼 여관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다시금 장내에 내려앉은 적막을 깨뜨린 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패튼이었다.
“내 돈 전부 가져와, 이 새끼들아! 형씨, 고맙소! 덕분에 대박이 터졌어!”
그의 외침을 시작으로, 탄성과 함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사방에서 튀어 오른 용병들이 이안과 필립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떻게 한 거요? 기름. 기름이지?”
“망치로 짓이긴 것 맞소? 난 거기에 걸었거든.”
“저걸 진짜 죽이다니! 정말 엄청나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쏟아지는 질문과 환호에 이안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필립도 마찬가지였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들이었지만.
적어도 똥오줌을 뒤집어쓴 상태에서 나눌 얘기는 아니었다.
슬슬 이안의 눈에 살기가 돌기 시작할 때쯤.
“작작 해, 미친놈들아! 몰골이 어떤지 안 보이냐? 내가 맥주 한 잔씩 살 테니까, 그거나 마셔!”
이안 덕에 큰돈을 딴 패튼이 용병들을 물렸다.
이안과 눈이 마주친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목욕물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는 얘긴 들었소. 안에 들어가면 준비되어 있을 거요. 댁들, 구린내가 장난 아니거든.”
“…물 한 통으론 어림도 없어.”
“여급이 돌아오면 말해 두겠소. 덕분에 한 달은 놀고먹게 됐는데, 이 정도는 도와 드려야지.”
고개를 까딱인 이안이 걸음을 옮기고, 욕설을 중얼거리는 필립이 뒤를 따랐다.
악어의 머리와 꼬리를 중심으로 때 이른 술판이 벌어졌다.
그 한복판에서 복도로 들어서는 둘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고 응시하던 패튼이, 나지막이 중얼댔다.
“엄청난 놈들이 굴러들어 온 것 같은데… 도련님을 빨리 모셔 와야겠구만.”
***
경비대장이 네눈박이 악어의 머리를 싣고 돌아갔다. 현상금은 사흘 내로 지급될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였다.
이안은 뒷수습까지 깔끔하게 끝냈다.
악어와의 전투 중에 지하 수로가 조금, 아주 조금 파손되었으니 석공들을 파견하라는 말을 잊지 않은 것이다.
혹시라도 꼬투리를 잡힐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고대수 사건의 진위를 밝혀내는 것보다 오른델의 영주와 충돌할 일을 먼저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이런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두 번은 절대 못 해요.”
마주 앉은 필립이 우울한 얼굴로 중얼댔다.
앞에 놓인 음식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였다.
“동감이다.”
이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을 세 번이나 씻고 옷도 전부 갈아입었건만.
아직도 몸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가지고 간 장비도 잘 씻어서 말려 두긴 했지만.
솔직히 완전히 깨끗해질 것 같진 않았다.
어쨌건, 그들을 향한 대우만큼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어젯밤 같은 경계의 눈빛은커녕, 다들 눈길만 스쳐도 고개를 까딱이거나 술잔을 들었다.
이안에겐 익숙한 변화였다.
용병의 세계는 처세술이나 실력이 전부니까.
이제부턴 아무도 그들의 행동에 토를 달지 않을 터였다.
혹은.
“잠시 실례해도 괜찮겠소?”
오히려 저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거나.
이안은 다가온 남자를 돌아보았다.
아까 용병들을 물렸던 인상 좋은 사내.
그의 뒤에는 꽤 곱상하게 생긴 못 보던 청년이 부하처럼 서 있었다.
이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본론만 짧게 말한다면.”
“하하. 실력만큼 성격도 시원하시군. 반갑소. 패튼이오.”
웃음 지은 패튼이 빈자리에 앉았다.
“이안.”
“필립입니다.”
패튼의 뒤에 선 청년이 거슬린다는 듯 곁눈질한 필립도 고개를 까딱였다.
“이런 실력을 가진 분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니. 이상하군. 혹시 출신지가 어찌 되시오?”
“늪지대.”
“엥…? 하하. 말씀하고 싶지 않으신 거군. 알겠소. 그럼 전에는 어디서 활동하셨소? 실력을 봐선 분명, 어디에서건 명성을 떨치셨을 것 같은데.”
“그딴 호구 조사나 할 거면-”
인상을 구기며 내뱉던 필립이, 이안의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이안이 패튼을 바라보았다.
“내가 범죄자 출신이 아니라는 건, 이런 개소리를 들어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 것 같은데. 본론이나 꺼내시오. 그쪽 말고….”
그의 시선이 패튼의 뒤에 선 청년에게로 향했다.
“할 말이 있는 당사자가, 직접.”
“……!”
패튼이 놀란 표정을 짓는 가운데, 필립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
이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귀족이 왜 자유민 흉내를 내고 있소? 아니, 음지의 거물 흉내인가?”
“……?!”
그제야 필립도 눈을 치켜떴다.
공손하게 서 있던 청년이 머쓱한 웃음을 흘린 건 그때였다.
“들킬 줄은 몰랐는데. 내 연기가 그렇게 엉망이었나?”
“이런 베테랑 용병의 호위 흉내를 내고 싶으시면, 얼굴이나 손등에 흉터라도 몇 개 만드시는 게 좋을 거요.”
“훌륭한 조언이지만, 그건 힘들겠군. 나름대로 이 얼굴이 재산이라서 말이야.”
“죄송합니다, 도련님. 들켜 버렸군요.”
패튼이 일어섰다. 청년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보아하니 처음부터 속일 수 없는 상대였던 것 같은데.”
그가 자연스럽게 패튼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이안을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무례를 사과하지. 알다시피 용병 중에는 아주 위험한 과거를 가진 자들이 섞여 있어서 말이야. 최소한의 확인 절차가 필요했어. 나는 칼부림엔 영 젬병이거든, 하하.”
귀족보다는 자유민에 가까운 말투.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오. 사과는 받아들이겠소.”
“고맙군. 난 데클란 버차드라고 한다.”
“버차드라면….”
필립의 입이 벌어졌다.
이안은 놀란 기색 없이 말했다.
“영주님의 아드님이시군. 귀하신 분이 우리 같은 일개 용병의 신분은 왜 확인하려 하신 거요?”
“이 도시의 용병들을 관리하는 게 내 역할이거든. 거기다 그대들은 특히 실력이 뛰어나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용병들이 득시글대는 것치곤 지나치게 평화롭더라니.
게임에서도 이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사실 스토리와 관련된 부가적인 설정에는 그가 모르거나 바뀐 부분이 더 많았다.
“소공자께서 이런 고된 일을 맡으시다니, 대단하시군요. 좀 전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필립이 정중하게 말했다.
데클란이 피식댔다.
“소공자가 아니니까 맡은 거다. 난 서자거든.”
“아하… 그러셨군요.”
“그래서, 신분에 대한 확신은 생기셨소? 뭔가 물증이 더 필요하신가?”
이안이 느긋하게 물었다.
데클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필요하지 않은 것 같군. 물론 실력을 검증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바로 본론으로 넘어갈까 하는데, 괜찮겠나?”
그가 이안과 필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필립이 이안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는 보겠소.”
“그래. 자네들, 내 밑에서 함께 일해 보지 않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