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놈의 비명에는 고막을 긁는 듯한 높은 음파가 겹쳐져 있었다.
그 안에 담긴 파장이 삽시에 이안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
이안의 미간이 순간 꿈틀댔다.
달려가며 시전한 바람 칼날이 단숨에 흩어졌을 뿐 아니라, 혈관 속을 흐르던 마력이 일순간 뒤엉켜 움직임을 멈췄기 때문이다.
물론 트롤의 포효에는 상태 이상을 유발하는 파장이 섞여 있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공포 상태였고, 이안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마력 역류, 아니, 마력 엉킴 상태였다. 저항력과 무관한, 그보다는 회복력이 관건인 상태 이상.
파사사사-
거의 동시에, 거미 트롤의 좌우로 꿈틀거리는 것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또 다른 거미 트롤도 놈의 옆으로 더 모습을 드러냈다.
사냥감을 향해 기척을 죽인 채 일렬로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안의 시선은 놈이 아니라, 자주색 안광을 반짝이며 밀려들고 있는 작은 놈들을 훑고 있었다.
‘코볼트…?’
새카만 갑각 다리들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하반신과 달리, 놈들의 상반신은 아무리 봐도 코볼트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트롤과 마찬가지로, 머리 뒤쪽에 갑피에 덮인 뿔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제보니 뿔보다는 차라리 갑각 촉수에 가까워 보였다.
“끼에에엑-”
“키에-”
놈들이 이를 딱딱대며 특유의 괴성을 토해냈다. 아무리 변이되었다고 해도 트롤의 새끼들이 코볼트라니.
‘의태라도 하는 놈들인가?’
반사적으로 오른팔을 내밀어 선두의 놈에게 쇠뇌를 발사한 이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의미 없는 의문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저것들이 빠른 속도로 마주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혈관 속에 뒤엉킨 마력은 아직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멈추지 않고 내달리는 와중에도, 이안이 주먹 쥔 왼손을 얼굴 앞으로 치켜들었다.
지잉-
이안의 앞으로 황금색 육각형이 피어올랐다. 백금 방벽.
마력을 뒤엉키게 하는 파장도, 진언 회로에 담긴 용의 마력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다.
게임의 마력 역류도 보스전의 고위 스킬이나 신성 스킬은 취소시킬 수 없지 않았던가. 용의 마력도 같은 취급일 터였다.
물론, 이안이 가진 용의 무구는 하나가 전부가 아니었다.
솨아아아-
진은 강철 장검의 새하얀 검날에도 샛노란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검면 중앙을 따라 십자 막이 바로 위까지 이어진 진언 회로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더 진하게 번진 마력이 삽시에 검날 전체를 감싸며 삐죽 솟아났다.
백금 방벽과 달리 경광봉으로 써도 될 만큼 밝은 빛이었다. 날도 본래보다 1.5배는 길어진 채였다.
‘이 정도면 광검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누가 봐도 성기사 같기도 하겠고.
덕분에 저 멀리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거미 트롤과 늑대 떼처럼 우글대며 달려오는 거미 코볼트들이 한층 더 선명해졌다.
“키에에에-!”
선두를 달리던 코볼트들이 펄쩍 뛰어오른 건 거의 동시였다. 집중력과 육감이 활성화된 덕분에, 실제보다 훨씬 더 느리게 느껴졌다.
이안은 교차하듯 뛰어오르는 세 마리와 측면을 노리려는 듯 나무를 기어오르는 몇 마리. 그리고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의 가슴팍에 박혀있는 새카만 볼트를 전부 동시에 인식할 수 있었다.
…적어도 움직이진 못하게 할 줄 알았는데.
생각하면서도, 이안의 왼팔에 힘이 들어갔다.
쩌엉-!
몸 바깥쪽으로 떨치듯 휘두른 방패 표면에, 달려들던 거미 코볼트가 그대로 부딪혀 튕겨 나갔다.
동시에 이안은 늘어뜨리고 있던 오른팔을 사선을 그리며 올려쳤다.
광검이 만들어낸 샛노란 궤적이 비스듬한 사선을 그렸다.
서걱-
칼날은 옆에 걸린 나무 둥치를 반쯤 썰어버리고도 전혀 느려지지 않고, 대각선으로 달려드는 거미 코볼트의 몸을 하반신과 함께 반으로 썰어버렸다.
뾰족한 다리들을 쩍 벌린 채 달려들던 놈의 몸이 갈라지는 사이.
“……!”
이미 반대편 측면을 바라보고 있던 이안은, 뒤로 젖히고 있던 왼팔을 힘껏 앞으로 내뻗었다.
콰직-!
코앞까지 달려든 코볼트의 거미 같은 하반신 한복판으로 방패 날이 그대로 틀어박혔다. 왼팔에 무게감이 느껴지자, 이안은 그대로 왼팔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카가가각-
거미 코볼트가 거의 바닥에 거꾸로 처박히듯 짓눌렸다.
이안은 왼팔에 더 힘을 주면서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방패 날에 짓눌린 코볼트는 땅에 갈리면서 반쯤 으깨진 형상이 되어 있었다.
하반신의 다리들이 경련하듯 꿈틀댔다.
하지만 이안은 이미 놈을 내려다보고 있지 않았다. 왼팔을 떨치듯 밀어내며 일어선 그가 몸을 휘돌렸다.
콰직- 서걱-!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던 거미 코볼트의 몸이 썰려 나가고, 계속 몸을 휘돌린 이안이 치켜들었던 검을 다시 사선으로 내리쳤다.
달려들던 또 한 마리의 코볼트가 광검에 썰려 나가 허물어졌다.
‘내 예상보다 더 좋은데…?’
후두둑, 뒤통수의 두건과 망토에 체액이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이안은 내심 감탄을 흘렸다.
물론 이런 초인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건 그의 특성과 높은 능력치, 특히 힘과 민첩성 덕분이긴 했다. 하지만 백금의 발톱을 활성화한 칼날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새끼들이라고 해도, 이놈들의 갑각이 이렇게 두부처럼 썰려 나갈 만큼 무르지는 않을 터였기 때문이다.
흑검에 내장된 역천의 송곳니가 상대를 톱날로 갈아버리는 것 같다면, 백금의 발톱은 무엇이라도 벨 수 있을 만큼 예리했다.
게임이었다면 물리 방어력 무시 따위의 옵션이 붙어 있었을 게 분명했다.
‘소모 값이 상당한 것 같긴 하지만….’
그의 마력을 사용하는 게 아닌 이상, 이 정도는 단점이라고 할 수도 없을 터였다.
“……!”
이안이 불현듯 고개를 돌린 건, 거미 코볼트를 연달아 세 마리 째 썰어버린 직후였다.
“크-아아아-!”
분노가 담긴 포효가 이안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느새 저 앞까지로 다가온 거미 트롤이 내지른 일갈이었다. 처음에 나타난 놈이 아니라,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놈이었다.
반사적으로 백금 방벽을 들어 얼굴 앞을 가리긴 했지만. 흐름을 거의 되찾았던 마력이 다시 뒤엉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사사사사삿-
동시에 사방에서 우글대던 거미 코볼트들이 일제히 그를 지나쳤다.
방패를 치켜든 이안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새끼들이 목표를 야영지로 바꿨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그의 시선이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것들을 훑었다.
‘일곱? 여덟?’
…빨리 끝내고 합류해야겠네.
늘 그렇듯 빠르게 결론 내린 이안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포효를 끝낸 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거미와 전갈을 섞어 놓은 듯한 하반신 덕분에, 일반적인 트롤보다 훨씬 더 컸다.
하지만 이안은 그보다, 놈의 쩍 벌어지고 있는 아가리에 주목하고 있었다. 삐걱대며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입가의 피부가 찢어지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르륵-”
이럴 줄 알았다, 시발.
이어진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에, 이안은 곧바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놈의 아가리에서 새카만 토사물이 분출되기 시작한 건 거의 동시였다.
콰과과과-
바닥을 구른 이안이 그대로 내달렸다. 놈이 엄청난 압력으로 토해내는 걸쭉한 토사물이 이안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왔다.
치이이이-
토사물을 뒤집어쓴 나무 둥치에서 매캐한 연기가 번졌다. 생각할 것도 없이 독이었다.
‘아가리에서 독까지 토하다니, 이건 거미쪽 특성인가?’
속도를 줄여 방향을 틀면서, 이안은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다리를 움직여 슬금슬금 몸을 돌리고 있는 트롤을 눈에 담았다.
정확히는 아가리를 쩍 벌린 역겨운 면상 뒤에 솟은 기다란 뿔을.
이제보니, 저건 뿔이 아니라 하반신에서 이어져 나온 꼬리였다. 전갈 같은 꼬리가 뒤통수에 박혀 이어져 있는 것이다.
‘코볼트들도 저랬던 것 같은데.’
생각하며 이안은 놈을 향해 내달렸다. 놈의 토사물이 만들어내는 궤적이 잦아들고 있었다.
적어도 저만한 양의 독을 연달아 토할 수는 없을 터였다. 트롤의 아가리 주위는 새카맣게 물들어 뼈가 다 드러난 상태였다.
자신이 토한 독에 자신이 타격을 입은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다가오는 이안을 노려보며 오른 주먹을 치켜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이안은 땅을 박차며 놈에게로 솟구치는 중이었다. 광검이 만들어내는 샛노란 궤적이 커다란 호선을 그렸다.
서걱-!
호선은 트롤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부터 오른쪽 목덜미까지를 깔끔하게 갈라냈다. 자루를 쥔 이안의 손아귀에는 여전히 두부를 가르는 듯한 감촉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대로 마저 몸을 돌린 이안이 놈의 몸통에 어깨를 들이받았다. 충돌에 거미 트롤의 몸이 순간 들썩이며 뒤로 젖혀졌다. 잘려나간 어깻죽지와 목이 뒤로 떨어져 나갔다. 뒤통수에 여전히 꼬리가 이어져 있어서일 터였다.
“……!”
허공에서 그대로 검을 내리치려던 이안이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본래 주먹으로 후려치려 내뻗었던 오른팔이 몽둥이처럼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의 하반신이 발작하듯 옆으로 몸을 돌린 결과였다.
‘대가리가 날아갔는데도 다리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본능적으로 백금 방벽을 치켜들었다. 트롤의 두꺼운 팔뚝이 그 위를 그대로 후려쳤다.
쩌엉-!
방패 표면을 타고 번진 압력이 이안의 몸을 옆으로 튕겨버렸다.
아무리 그라도 허공에서 버텨낼 방법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또 다른 거미 트롤이 있는 방향이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내 울부짖던 것과 달리, 놈은 천천히 다가오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빈틈을 노려 습격하거나, 여차하면 도주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트롤답지 않은 교활함이었지만, 그렇게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하면서, 이안은 가까워지는 놈을 눈에 담았다.
놈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듯, 아가리를 찢어질 듯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의 시선은 놈의 머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이 새끼들, 설마?’
그는 광택도 없이 새카만, 여덟 개의 다리로 땅을 딛고 선 하반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관절 다리들이 붙은 한복판에, 흑요석같은 홑눈들이 점점이 박혀 반짝였다.
‘…진짜 저게 본체인 건가.’
생각하며 바닥을 구른 이안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땅을 박차듯 튀어 올랐다. 나무 둥치 하나가 부딪칠 듯 가까워졌지만, 간신히 몸을 틀어 피하고는 계속해서 내달렸다.
촤아아악-
거미 트롤이 토해낸 독액이 그 위로 쏟아졌다.
이안은 좀 전보다 더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그대로 놈을 향해 달려갔다.
트롤은 고개와 동시에 하반신까지 움직여 이안 쪽을 돌아보았다.
이안은 두 다리에 더 박차를 가하면서, 백금 방벽을 비스듬하게 치켜들었다.
콰과과과-
독액이 방패 표면으로 쏟아졌다. 정면으로 맞았다면 뒤로 밀려났을 법한 압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머리를 비스듬하게 짓누르는 듯한 상태였고, 이안은 자세를 낮춘 채로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속도가 조금 느려지긴 했지만, 충분히 견딜 만했다.
치이익-
방패 표면에서 마구잡이로 튄 독액들이 망토 자락에도 스쳤다.
이안은 그저 인상만 찌푸릴 뿐이었다.
그의 독과 질병 저항력은 여러 상태 이상 저항력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치를 자랑했다. 이게 공허의 존재가 만들어낸 독만큼 강하지 않은 이상 죽을 일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악취까지 무감각해진 건 아니었다.
‘시발.’
방패를 짓누르는 압력이 잦아들자, 이안은 왼팔을 떨치듯 휘두르며 뛰어올랐다.
어느새 트롤이 바로 앞이었다. 놈은 검게 물든 아가리를 여전히 쩍 벌린 채, 이안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고 있었다.
물론, 이안이 뛰어오르는 것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서걱-!
힘껏 휘두른 칼날이 놈의 허리를 사선으로 갈랐다. 이안은 치켜든 오른팔을 살짝 구부려 힘을 주면서 그대로 트롤과 부딪쳤다. 퍼억, 둔탁한 충격과 함께 트롤의 상반신이 뒤로 밀려났다.
여기까지는 좀 전과 같았지만.
콰지직-
이어진 이안의 행동은 아까와는 달랐다. 충돌한 순간 이를 악물면서, 왼팔을 아래로 힘껏 내리친 것이다.
독을 뒤집어쓴 흔적조차 남지 않은 백금 방벽의 샛노란 방패 날이, 썰려 나가 체액을 흘리기 시작한 단면 위로 반쯤 틀어박혔다.
어느새 잿빛으로 물든 이안의 눈동자는 잘려나간 트롤의 허리 아래, 여전히 허물어지지 않고 서 있는 하반신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그 위에 불룩불룩 돋아난 새카만 홑눈들을.
‘진짜 이 새끼가 본체였네.’
동시에 이안이 왼손의 주먹을 펼쳤다. 손아귀 한복판. 손가락과 이어진 사슬 끝에 고정되어 있던 정수가 회색 마력을 머금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콰득- 쩌어엉-
손바닥 앞에서 시작된 커다란 보이지 않는 원이, 주위 모든 것을 한순간 응축시키듯 끌어당겼다가 그대로 터뜨렸다.
회색 마녀의 보옥으로 증폭된 진공 폭발. 트롤의 허리가 북처럼 터져 나가고, 그 아래의 하반신도 원형으로 움푹 으깨져 버렸다.
폭발의 여파에 뒤로 밀려나면서, 이안은 비명도 지르지 않고 주저앉는 하반신을 눈에 담았다.
그대로 뒤로 나뒹군 이안이 벌떡 일어나며 고개를 돌렸다.
“알아 둬라! 이 놈들의 본체는-!”
마력까지 실어 외치던 그의 목소리가 순간 잦아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저 뒤편에 일렁이는 주황색 불빛이 선명하게 맺혔다.
주위가 밝아진 건 백금 방벽과 광검 때문만이 아니었다.
소리 없이 타오르는 주황색 불꽃들이 야영지 주위를 불바다로 만들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흙바닥은 물론이고 나무줄기에도 맺혀 일렁이는 불길은,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성화였다.
“…….”
올빼미의 그것처럼 커진 이안의 동공은, 그 너머로 펼쳐진 광경을 한순간에 모두 담아냈다.
소리 없이 일렁이는 불길을 등진 두 마리 말들. 그리고 그 앞에서 손에 움켜쥔 도끼를 내리찍는 미구엘. 그의 후미로 달려들고 있는 거미 코볼트와, 그런 놈을 후려치려는 듯 달려들고 있는 닐라.
그리고 그 옆, 왼손을 앞으로 내뻗고 있는 루시아의 모습이 초점을 다시 맞춘 것처럼 선명해졌다.
그녀에게 달려들고 있는 거미 코볼트의 전신에서 주황색 불꽃이 치솟고 있었다.
뒤로 젖혀 치켜든 루시아의 철퇴 윗부분에도 마찬가지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주위의 다른 성화와 달리, 창백한 흰색처럼 보이기도 하는 푸른 불꽃이었다.
불붙은 코볼트를 후려치려는 듯, 움켜쥔 손아귀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사도는 어려도 사도란 거지.’
한쪽 입꼬리가 꿈틀댈 찰나, 이안의 감각이 다른 움직임을 포착했다. 훨씬 더 가까운 위치였다.
먼 곳을 망원경처럼 응시하던 시야가 삽시에 되돌아왔다.
불빛을 등진 채 일어서는 거구가 비로소 또렷해졌다.
머리가 날아간 거미 트롤이었다. 미동 없이 축 늘어진 놈의 몸이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놈의 하반신. 본체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뒤쪽 다리를 들어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로 트롤을 등에서 뽑아내고 있던 것이다.
“…….”
그제야 트롤의 등판에 박힌 꼬리가 보였다. 트롤을 위로 들어내는 건 저 꼬리였다. 트롤의 몸이 완전히 분리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트롤의 하반신은 녹아버린 것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끈적한 점액이 뚝뚝 떨어졌다.
철퍽-
트롤의 몸이 땅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본체의 윗부분, 본래는 등판이었어야 할 부분에 뻥 뚫린 아가리가 비로소 드러났다.
사냥감을 저 안에 넣고 천천히 소화시키면서, 동시에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것이리라.
‘저걸 뭐라고 불러야 돼? 숙주 거미…?’
생각하며, 이안은 다시 땅을 박찼다.
이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저 저 역겨운 놈을, 먼저 간 동족의 곁으로 보내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