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인 가르손이, 이내 내뱉었다.
“스, 스물셋이오.”
그 얼굴이?
저도 모르게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던 이안이, 표정과 달리 덤덤한 말투로 내뱉었다.
“생각보다 어리군.”
다른 야인 전사들이 이안의 뇌리를 스쳤다.
…설마 이것들, 전부 보기보다 훨씬 어린 건 아니겠지.
지금까지 나이를 궁금해한 적은 없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대전사께선 보기보다는 나이가 많으신 모양이군….”
이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덧붙인 가르손이, 이내 이를 드러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아무튼, 영광이오! 대전사의 명성은 나도 이미 여러 번 들었소. 비로소 다시 나타난 진정한 대전사. 카르하도 해내시지 못했던 숙원을 이루고 저주의 고리를 끊어낸 용살자. 새로운 초인…!”
가르손의 목소리에 열기가 맺혔다.
그의 일렁이는 눈을 덤덤하게 마주 보면서, 이안이 내뱉었다.
“잘 알면 그냥 따라오는 게 어때.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흐하하! 그럴 수는 없소! 만나고 보니 더 한판 붙어 보고 싶어졌소!”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가르손이 이안을 바라보았다.
“내 상상과는 여러모로 다르셔서 말이오. 정말 그토록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위대한 전사가 맞는지, 주먹을 맞대서 확인해 봐야겠소.”
그럴 줄 알았다….
속으로 읊조리며, 이안이 턱짓했다.
“내가 널 이기면, 약속대로 마을 전체가 내 뜻을 따를 건가?”
“물론이오! 카르하의 앞에 맹세하겠소.”
“그렇다면….”
한숨을 삼킨 이안이 곰 가죽 망토를 벗었다. 그가 망토를 옆에 선 닐라의 안장에 거는 사이, 가르손이 덧붙였다.
“맨주먹으로 하셔도 괜찮겠소?”
“물론.”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허리춤의 검집을 풀어 안장 옆에 걸었다.
콧김을 뿜은 닐라가 다시 턱을 치켜들었다. 자신을 훑는 몇몇 전사들의 시선을 느낀 것이리라.
그사이 씨익 미소 지은 가르손이 슬쩍 주먹을 쥐어 들었다. 그의 주먹은 이안의 머리와 크기가 비슷할 것 같았다.
“다들 물러나라. 신성한 결투 의식이 곧 시작 될 테니.”
인파 사이에 선 노인 하나가 칼칼한 목소리로 내뱉은 건 그때였다.
두 가닥의 기다란 흉터가 깡마른 얼굴에 가로로 길게 새겨진 자였다.
주위에 서 있던 주민들이 곧바로 뒤로 물러나 공간을 벌리기 시작했다.
“…….”
그사이, 말에서 내려 고삐를 들고 있떤 전사들도 이안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뒷걸음질 쳤다.
다들 묘한 기대감이 서린 눈빛들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결투를 기대하는 것이리라.
‘아쉽게도 그럴 생각은 없는데.’
내심 생각하며, 이안은 닐라의 목덜미를 토닥였다. 콧김을 뿜은 녀석이 몸을 돌려, 물러나는 전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지켜보시오! 카르하여!”
가르손이 포효한 건 그때였다. 어느새 설표 가죽으로 만든 상의를 벗어 던져 버려서, 근육질의 상반신을 완전히 드러낸 채였다.
“당신의 앞에서 나, 헤가르의 아들 가르손이 당신의 대전사에게 도전할지니!”
‘하고 싶었던 건 다 하는군.’
옷은 또 왜 벗고 난리야.
헛웃음을 흘리던 이안이 멈칫했다. 왼팔을 타고 열기가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투 의식에 카르하가 축복을 내리는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안이 멈칫한 건, 그저 투쟁의 축복이 내리기만 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어서였다. 아랫배로 모여드는 열기. 분명, 전투 함성을 유발할 때의 그것이었다.
‘뭐, 나한테만 축복을 내리면 재미없단 거냐…?’
내심 혀를 차면서도, 이안은 치솟는 열기를 거스르지 않았다. 어차피 견딜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분출하는 게 쓸데없이 고통받지 않는 방법이었다.
“오-오오오오-!”
지금처럼.
고개를 치켜든 이안이 포효했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붉은 신성의 파장이 충격파처럼 터져 나왔다.
“……!”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던 주민들의 눈이, 이윽고 찢어질 듯 커졌다.
“이것이… 대전사…!”
“북부의 초인이여….”
크고 작은 탄식이 번졌다.
몇몇은 카르하의 조각상을 돌아보고 있었다. 대충 파낸 눈과 아래로 움켜쥔 검에 붉은 신성이 맺혀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결투를 지켜보듯이.
“북부의- 초인이여-!”
또 다른 포효가 터져 나온 건 거의 동시였다. 주먹을 불끈 움켜쥔 가르손이었다. 그의 전신에도 어느새 붉은 신성이 타오르고 있었다.
붉게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에도 그만큼의 희열이 번졌다.
“이토록 거대한 힘이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영문 모를 투쟁심과 힘이 솟구치고 있었으니까.
그의 번뜩이는 눈이, 포효를 끝내고 바닥에 침을 탁 뱉고 있는 이안에게로 향했다.
“이것이 그 모든 업적의 비결이었소, 대전사?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이토록 거대한 힘이라면, 나 역시 용조차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니!”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그를 바라본 이안이 내뱉었다.
“그래서, 언제 시작할 거냐?”
“지금-!”
울부짖듯 일갈하며, 가르손이 몸을 날렸다. 전신에 힘이 넘쳐흘렀다. 땅을 박차는 순간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이안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여전히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노려보며, 가르손은 거의 본능적으로 주먹을 내뻗었다.
쒸에에엑-!
주먹에서 대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가 번졌다.
지금이라면 거대한 바위라도 부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대전사가 자신과 정면으로 맞부딪쳐, 이 용솟음치는 힘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게 해주리라는 기대감과 흥분이 함께 뒤엉켰다.
휘아악-
이안이 고개를 살짝 젖히며 몸을 옆으로 비튼 건 거의 동시였다.
‘피한다고…?’
자신의 주먹이 이안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가르손은 눈을 부릅뜨려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건, 몸을 비튼 이안이 그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내뻗어서였다.
쒸학-
가르손에 비해 가볍게 내뻗은 주먹. 하지만 지금 그는 용살자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안의 전신에도 자신과 같은 붉은 신성력이 맺혀 있었다. 주먹에 턱을 내준다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게 분명했다.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가르손은 왼손으로 얼굴 앞을 가렸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쩌엉-!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손아귀가 욱신해진 순간, 가르손은 반사적으로 이안의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이 작은 주먹을 으스러뜨리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일 터였다.
“……!”
가르손의 미간이 좁아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손아귀에 힘을 줘도 주먹이 으스러뜨려지지 않는 건 둘째치고, 이안의 주먹을 밀어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벽에 막힌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속도가 줄어든 건 그였다.
쿠구국-
땅에 디딘 이안의 두 발이 뒤로 조금 밀려났다.
가르손은 이안의 주먹을 움켜쥔 자신의 손등에 얼굴 한쪽이 짓눌렸다. 내뻗은 오른 주먹은, 채 회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였다.
‘밀어낼 수가 없다니.’
말도 안 돼. 눈을 부릅뜬 가르손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안의 주먹을 쥔 손아귀에 더 힘을 주며 밀어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뻗은 오른손을 당겨 이안의 뒷목을 후려치려 했다.
터억-
하지만 그보다, 이안의 왼손이 그의 팔뚝을 움켜쥐는 게 더 빨랐다.
“……!”
가르손이 눈을 부릅뜨는 가운데, 이안이 그의 오른팔을 위로 들듯이 밀어냈다. 물론, 가르손은 밀려나지 않으려 버텼다. 여기서 팔이 밀려난다면, 자신의 오른쪽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셈이었으니까.
물론, 전사로서의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다.
쿠득- 쿠드득….
이안과 가르손의 발아래, 흙이 압력에 짓눌리는 소리가 번졌다. 얼어붙은 땅에 옅은 균열이 번지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가르손의 오른팔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는 이안의 손아귀를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핏발이 번진 가르손의 눈에 경악이 번졌다. 그는 지금 말 그대로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안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를 악문 듯, 볼과 턱을 따라 근육의 결이 돋아났을 뿐이었다.
오른팔이 위로 올라가고 왼손이 점점 더 얼굴을 짓누르면서, 가르손의 한쪽 무릎이 자연스럽게 땅으로 굽어졌다.
구구- 구구국….
가르손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분명 서로가 서로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피와 땀이 튀는 위대한 결투가 되리라 여겼건만.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이안을 떨쳐 낼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이안에게 맺힌 신성력은 겉보기에도 느껴지는 것도 자신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 체구의 차이도 명확하지 않은가.
“대체… 어떻게…?”
가르손이 이를 악문 채 내뱉었다. 목소리가 절로 떨리고 있었다.
“…그냥.”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이안이, 마찬가지로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힘이 더 센 거다.”
“……!”
가르손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그의 두 무릎은 모두 땅에 닿아 있었다. 이안의 힘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마땅한 반격을 시도할 수도 없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가르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안이 내뻗고 있던 오른 주먹을 옆으로 떨치듯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가르손의 왼팔이 튕겨 나가듯 젖혀졌다.
“……!”
숨을 들이켠 가르손의 눈에 들어온 건, 휘둘렀던 팔을 그대로 치켜드는 이안의 모습이었다.
“앞으로 싸울 땐, 떠들지 마라.”
교훈처럼 내뱉음과 동시에, 이안의 손날이 떨어져 내렸다.
쒸악- 빠각-!
사람 목에서 난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소리와 함께, 가르손의 고개가 옆으로 휙 꺾였다. 이안의 손날은 그의 목과 쇄골 사이에 깊숙이 틀어박혀 있었다. 맥이 탁 풀린 가르손의 눈이 위로 돌아갔다.
그의 몸이 축 처진 순간.
파슥-!
투쟁심이 꺾인 순간부터 이미 조금씩 잦아들고 있던 붉은 신성력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이안이 그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진 가르손이 흙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후우….”
이안이 비로소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그는 얼얼한 자신의 양손을 쥐락펴락하며, 기절한 가르손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의 쩍 벌어진 입에서 피 섞인 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쨌건, 여전히 멀쩡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안 죽이는 게 더 어렵다니까….’
비로소 이안이 낮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힘겨루기 같은 어울리지 않는 짓을 택한 건, 가르손을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 정도 되는 전력을 이탈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될 것 같아서 하긴 했지만….’
발아래의 균열이 번진 땅까지 눈에 담은 이안이, 비로소 소리 없이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내 힘이 더 셀 줄이야.’
변종 오거의 돌진도 견뎌 냈으니 짐작이야 했지만.
자신의 순수 근력이 웬만한 야인 전사보다 강한 수준까지 왔다는 걸 확실하게 체감한 것이다. 같은 수준의 축복을 받고도 제법 큰 격차가 느껴질 정도였다.
반사신경이나 반응 속도도 마찬가지였다.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아마 체력도 그럴 터였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입맛을 다신 이안이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
“…….”
광장은 이미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둘의 결투가 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끝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심지어 이안과 함께 온 전사들 중에서도 몇몇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가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추억에 잠긴 듯한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건 볼베르를 비롯한 둘뿐이었다.
주위를 한 차례 빙 돌아본 이안이 내뱉었다.
“결과에 불복하는 사람 있나?”
물론, 그런 사람은 없었다.
“대전사여….”
“따르겠습니다. 초인이시여.”
그저 다들 고개를 숙여, 북부의 대전사를 향한 예를 다했을 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기절한 가르손을 가리켰다.
“데려가서 푹 재워. 이놈이 깨어나면, 곧바로 이주할 준비를 시작하고.”
저들이 하고 싶은 걸 했으니, 이젠 저들이 그가 원하는 걸 해 줄 차례였다.
고개를 조금 더 숙인 주민들이 서로를 돌아보는 사이, 전사 둘이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려던 이안이 멈칫했다.
파스스….
전신에 맺혀 있던 신성력이 잦아들면서, 문득 귓가로 혀를 차는 듯한 소리가 메아리쳤기 때문이다.
그걸 들은 건 이안 뿐인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저 앞, 카르하의 조각상 쪽으로 돌아갔다.
‘뭐, 내가 너무 쉽게 이겨서 못마땅하기라도 한 건가.’
조각상의 검에 맺힌 신성력은 이미 흩어진 후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붉은 안광만이, 이안을 마주 보듯 일렁이다가 바스러졌다.
‘설마….’
이안의 한쪽 눈매가 비로소 슬며시 좁아졌다.
‘…가는 곳마다 전부 이러려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