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콰직-!
칼날 각다귀가 땅에 처박혔다.
본래는 작은 야생 동물이나 소형 마물 따위를 잡아먹으며 사는, 고양이 정도 크기의 마물이건만.
지금 땅에 처박힌 놈은 곰보다도 덩치가 컸다.
전신의 갑각은 불길한 잿빛이었고, 날개 대신 두 개의 커다란 낫 같은 갑각 칼날이 더 돋아 있었다.
앞다리에 돋은 갑각 칼날 역시, 인간의 머리도 잘 익은 밀처럼 추수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였다.
물론 멀쩡한 건 하나뿐이었다. 변이되어 돋아난 나머지 칼날 다리들은 진작 다 잘려나가서, 관절 부위만 남아 바둥댔다. 그때마다 새카만 체액을 줄줄 흩뿌리는 채였다.
“키이이이-”
놈의 몸을 꼬챙이처럼 꿰어 땅에 박아 버린 건 검붉은 마력이 일렁이는 칼날이었다. 검붉은 마력이 출렁댈 때마다 날에 꿰뚫린 몸통이 검게 타들어 갔다.
꾸구국-
검 자루를 움켜쥔 건 전신 판금 갑옷을 걸친 기사였다. 검을 내리치며 각다귀의 몸통 위로 착지해, 한쪽 무릎을 꿇은 듯한 자세였다.
그가 자루를 놔버리며 일어섰다.
파충류의 아가리를 형상화한 듯한 안면 가리개가 드러났다. 그 사이로 일렁이는 검붉은 안광도.
“…….”
각다귀의 몸에서 내려온 그는, 그대로 놈의 머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카가각- 가각-
아직 채 잘려나가지 않은 다리들이 바둥대며 갑옷 표면을 할퀴었다. 하지만 기사는 밀려나긴커녕 휘청대지조차 않았다.
칼날 각다귀의 머리가 다가오는 기사 쪽으로 돌아갔다.
세모꼴 머리에 돋은 겹눈과 홑눈들에 다가오는 기사의 모습이 겹겹이 맺혔다.
쩍, 머리 한복판이 세로로 갈라지며 뾰족한 촉수를 날름대는 아가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아아아-”
와지직!
비명이 제대로 터져 나오기도 전에, 기사의 강철 장화가 각다귀의 머리를 짓밟아 으깨버렸다. 오물을 흩뿌린 것처럼 체액이 터져 나왔다. 바들대던 녀석의 다리들이 축 늘어지는 사이.
저벅- 저벅-
눈길조차 주지 않고 몸을 돌린 기사가, 각다귀의 몸통에 박혀 있는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
검날에 남은 체액을 마력과 함께 탁 털어내며, 기사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주위에는 마찬가지로 토막 난 칼날 각다귀 몇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하나 같이 거대하고 끔찍하게 변이된 놈들이었다. 검은 벽의 광기가 놈들의 소굴에 스며든 것이다. 물론, 놈들이 광기의 근원에 홀려 몰려 들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어느 게 사실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마경의 정수로 거듭나기 전에 찾아냈다는 사실 뿐이었다.
짐승과 마물의 뼈 무더기와 썩은 살점이 굴러다니는 한구석. 땅에 거미줄처럼 새겨진 붉은 균열이 바로, 광기의 근원이었다.
잿빛 두건 망토를 걸친 채 그 앞에 무릎 꿇은 건, 기사와 같은 주를 섬기는 사제였다.
계시를 받은 것은 같았으나, 역할은 서로 달랐다. 기사가 싸우는 사이, 그는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솨아아아-
균열 위로 내뻗은 손바닥에서 검붉은 빛이 아른거렸다.
오물이 덮인 균열 한복판에, 검붉은 진언이 아주 천천히 새겨지고 있었다.
비로소 기사는 검을 등에 사선으로 고정된 검집으로 되돌렸다. 검붉은 빛이 사라진 검날은 어둠 속에서도 이질적일 정도로 새하얗게 번뜩였다.
“…….”
가슴 앞에 팔짱을 낀 기사가, 비쩍 말라붙은 숲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대낮인데도 일대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하늘에 타르처럼 끈적하게 꿈틀대는 어둠이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불쾌한 질감을 가진 어둠은, 거리조차 가늠할 수 없는 한순간 장막처럼 흘러내려 땅으로 이어졌다.
검은 벽이었다. 여긴 검은 벽을 인식할 수 있는 위치였다. 하늘을 덮은 어둠은 인식 범위 전체를 잠식해 나가고 있는 것이리라.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기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저 어둠이 신들을 눈뜬장님으로 만든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 만들어진 신들은, 이 어둠 아래에선 그저 사도들의 눈을 빌려야만 세상을 살필 수 있었다.
기사와 사제가 자신들의 본모습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솨아아….
기사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완성된 진언이 균열로 녹아들고 있었다. 광기의 근원이 검붉은 빛으로 물들고, 뒤이어 땅속으로 스며들듯 자취를 감췄다.
의식을 끝낸 사제가 일어섰다. 기사를 돌아보는 두건 아래, 검붉은 안광이 호선을 그렸다.
“감사를 표합니다, 경. 덕분에 또 한 번의 의식을 무사히 끝냈군요.”
아주 차분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
“…주께 받은 은혜를 보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사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주 굵고 낮은, 고저 없는 목소리였다.
땅속으로 스며든 광기는, 그들의 주에게로 흘러갈 터였다. 물론 주에게 도착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저 주를 가둬둔 감옥 표면에 눌어붙어, 외부에서부터 조금씩 부식시킬 얼룩이 되리라.
“한미한 얼룩을 더할 뿐이겠으나, 그 얼룩들이 모인다면 주께서 다시 해방되시는 데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될 것입니다.”
부드럽게 덧붙인 사제가 기사에게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 영광스러운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군요.”
“…….”
“그러니 멈추지도 않아야겠죠. 어디로 가고 싶으신 가요, 경?”
“…북쪽으로.”
기사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멈춰 선 여사제가, 이윽고 더 짙게 미소 지었다.
“잊으셨나 보군요. 북쪽에는 그자가 있습니다. 그자와 마주치면 죽음만이 남을 테니, 가까이하지 말라는 계시를 경도 받으셨을 텐데요.”
“그자가 있어서… 한 말이었소.”
기사가 덤덤하게 덧붙였다. 고개를 끄덕인 여사제가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잊지 마세요. 더는 그분이 자식을 잃는 슬픔을 느끼시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것과 달리, 그들의 주는 더없이 자비로웠다.
과업의 완수보다 사도들의 목숨을 더 우선할 정도였다. 신들과 교단의 눈에 띄지 않는 곳만을 오가라 명하신 것도 그래서였다.
물론, 검은 벽이 광기를 토해내고 신들의 눈마저 가리는 지금이기에 가능한 명이기도 했다.
“때를 기다리세요, 경. 승천의 날까지 견딜 필요도 없을 겁니다. 거짓 신들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요.”
그녀가 기도하듯 양손을 가슴 앞에 맞잡았다.
“주께서 그들이 덧씌운 사슬을 하나만 끊어내시더라도, 백금룡의 대행자는 더 이상 우리의 죽음이 되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그들의 죽음이 되겠지. 거짓 신들을 섬기는 어리석은 자들과 원탁에 둘러앉은 저 머저리들에게도.”
“저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경에게 강요하지는 않을게요.”
미소 지으며 대답한 사제가 손가락을 튕겼다. 손바닥 한복판의 붉은 보옥이 순간 일렁이고, 저 멀리서 두 마리 흑마가 달려왔다.
대조적으로 새하얀 마갑을 걸친, 털에 윤기가 흐르는 녀석들이었다.
안장에 올라탄 그녀가, 저 멀리 일렁이는 검은 장막을 눈에 담았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군요. 예상보다 빠르게 침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하나라도 더 찾아내 보죠.”
고삐를 움켜쥔 그녀가, 말에게 다가가는 기사를 돌아보았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요.”
“…….”
기사가 대답 대신 안장에 올라탔다. 여사제가 고삐를 흔들었다.
역천룡의 사도들을 태운 두 마리 흑마가 내달렸다.
신들의 시선에 닿지 않는 어딘가에 뿌리 내린, 또 다른 광기의 근원을 찾아서.
***
-답장이 늦어서 죄송해요. 성자 대행. 한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답니다. 자치령은 물론이고 제국의 병기고도, 제 권한이 전혀 닿지 않거든요.
이안은 마법 전서에 새로이 새겨진 글귀들을 눈에 담았다.
설원 지대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그사이 언젠가 답신이 도착한 것이다.
찬 바람이 몰아치고 날이 어둡다는 건, 물론 글자를 읽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차선책을 찾아냈어요. 금화를 준비하셔야 하고,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쉴 틈 없이 움직였다는 사실만 참작해 주세요. 자금이 여의치 않으시면 제 이름을 대셔도 괜찮아요.
어느새 세라스의 편지는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남은 부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비싼 건 둘째 치더라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일 텐데. 낭비가 심했다.
-벼락과 관련된 부분은 저희도 이미 알고 있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말을 줄일게요. 당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까. 추신. 검은 벽의 상태가 기록보다 급격하게-.
“형씨. 저기 좀 보시오.”
미구엘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안은 슬쩍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었다. 앞장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나아가던 미구엘이, 의수로 앞을 가리키고 있었다.
“용의 계곡이오.”
칸토와 루시아가 말을 비스듬하게 몰아 간격을 벌렸다. 이안은 비로소 앞에 펼쳐진 전경을 눈에 담았다. 칙칙한 어둠. 계곡이라 부르기엔 다소 널찍한 황폐화된 평야. 그리고 그 너머, 좌우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기다랗게 솟은 성벽.
관문 요새, 벨리움이었다.
“그러네.”
덤덤하게 대답하며, 이안은 전서를 다시 품에 넣었다.
그를 바라보던 미구엘이 눈을 깜빡였다.
“다시 돌아온 소감이, 그게 끝이오?”
“뭐가 더 필요한데?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돌아온 것도 아닌데.”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이안은 고삐를 가볍게 흔들었다. 닐라가 성큼성큼 속도를 높였다. 미구엘이 옆으로 따라붙는 이안을 돌아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건 뭐… 그렇긴 한데…. 어쨌건, 형씨가 전설을 쓴 곳이잖소.”
“전설은 무슨….”
이안이 낮게 코웃음을 흘렸다. 추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절대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 중 하나였다.
떠오르는 거의 모든 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먼저 가서 문을 열어 놓고 있을 테니까, 데리고들 따라와라.”
뒤편에 길게 이어진 행렬을 돌아보며, 이안이 내뱉었다.
미구엘의 미간이 설핏 좁아졌다.
“설마, 식사도 안 하고 그냥 지나칠 생각이시오? 아예 안 쉬고?”
“그래. 볼 일이 있어도 일부만 잠깐 남길 거다. 밤새 걸으면 내일은 정착지에 도착할 거야. 그때 쉬어도 돼. 그러니까….”
이안이 고개를 옆으로 까딱였다.
“야간 행군이라고 전달해.”
“어이구… 염병…. 들었소? 밤새 가신다고 전달하라시오!”
탄식하면서도, 뒤를 돌아본 미구엘이 소리쳤다. 조금 뒤편을 따르던 기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야간 행군이다! 전달!”
“밤새 가신단다!”
“잠은 걸으면서 자라신다!”
파도처럼 멀어지는 외침을 등진 채, 이안은 고삐를 후려쳤다.
닐라가 불만 없이 달려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춥긴커녕 후련하게 느껴지는 바람이었다. 타오르는 여신의 축복 덕분에, 이안은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다그닥- 다그닥-
한때 생사를 넘나들었던 전장이 시야 가득 펼쳐졌다.
눈도 쌓이지 않아, 거뭇거뭇하게 메마른 땅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였다.
가득했던 망자들의 시신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계곡 곳곳에는 아직도 그날 있었던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특히 두 마리 용이 육탄전을 벌이며 만들어진 몇 개의 구덩이나 부자연스럽게 쌓인 흙더미 따위가 그랬다. 이곳을 용의 계곡이라 부르게 된 이유이기도 하리라.
‘무슨 추억 여행도 아니고….’
아는 곳은 다 돌아보네.
문득 실소하며, 이안은 저 앞에 가까워지는 관문 요새를 눈에 담았다. 기다랗게 이어진 성벽 역시, 그의 기억 그대로였다.
굳게 닫힌 성문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횃불이 일렁이는 성벽 위에 선 경비병 몇이, 보이는 인원의 전부였다.
‘역시, 여기도 인원을 최소한만 남겼네.’
경비병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가는 걸 보니, 다가오는 야인 병단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안이 신분을 증명하고 관문이 열리면, 병단은 멈추는 일 없이 통과해 나아갈 수 있을 터였다.
‘…챙길 게 있는지도 좀 보고.’
생각하며 관문 앞까지 달려간 이안이, 문득 눈을 깜빡였다.
아직 신분을 증명하긴커녕 도착도 하기 전이건만. 벌써 관문이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올 걸 알고 있었던 건가.
내심 읊조리며 계속해서 달려간 이안이, 이내 관문 너머에 모습을 드러낸 자를 눈에 담았다.
다소 창백한 안색을 가진 젊은 기사. 아는 얼굴이라는 건, 이제는 새삼스럽게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여기서 볼 줄은 몰랐지만.’
해자 위로 이어진 다리로 접어든 이안이, 비로소 고삐를 슬며시 당겼다. 닐라가 속도를 죽이면서 활짝 열어 둔 관문을 지나쳤다.
이윽고 닐라가 완전히 멈췄다. 옆으로 물러나 있던 기사가 정중하게 무릎을 구부렸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오랜만이오. 밀드레드 경.”
이안이 말머리를 돌리며 대답했다. 밀드레드 아니스. 과거, 그를 벨리움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찾아왔던 자치령 소속의 기사였다.
반대쪽, 관문을 여닫는 기둥 손잡이 앞에 선 병사 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딱히 놀랍지도 않은 반응이었다.
“이곳을 지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정말 이렇게 오셨군요.”
이안이 안장에서 내리자, 밀드레드가 다가오며 말했다. 닐라의 목을 가볍게 토닥인 이안이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내가 올 거라는 소문이 제대로 돌았나 보군.”
“파다했습니다. 용살자께서 돌아오셨고, 전선으로 함께 갈 용사를 기다리신다고요.”
이안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그래서, 그 소문은 효과가 있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