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
“이런 미친….”
탄식하던 미구엘이 간신히 입을 앙다물었다. 지금 이안의 모습은 타락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과거, 루시아가 계시를 받을 때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때는 지금과 달리 아주 성스러웠지만.
어쨌건, 미구엘이 당황해 소리를 지르지 않은 건 그 경험 덕이었다.
‘형씨는 주문 쟁이니까… 검은 벽에 홀리기라도 한 건가…?’
왜 하필 지금.
숨을 고르며, 미구엘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다들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정신을 빼앗겨, 이안에게 일어난 일은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이안은 황급히 오른손을 뻗어, 이안의 두건을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 깊이 눌렀다. 이안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체 왜 갑자기 이런…. …잠깐만. 설마.’
마른침을 삼키던 미구엘이 멈칫했다.
‘발작이 아니란 건가? 그럼 저건-’
미구엘의 시선이 다시 정면으로 돌아갈 찰나.
부- 우우우우-
온몸이 울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뿔피리 소리 같기도 한, 모골이 송연해지는 소리였다.
검붉게 일렁이는 검은 벽을 눈에 담은 미구엘의 입이, 비로소 망연자실하게 벌어졌다.
‘…정말 침식이 시작된 거였군.’
이안의 상태가 이상해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직 그들이 카링기온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완전한 전력을 갖추기도 전에 침공이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형씨. 이제 어떻게 해야 하오? 응? 우리 다 망했소. 형씨…!”
간신히 목소리를 억눌러 속삭이며, 미구엘이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떨리는 눈으로 이안을 바라본 미구엘이, 이윽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럴 때일수록 어떻게든 침착해야 했다. 이안이 늘 그렇듯이.
‘언제일진 몰라도, 형씨는 분명히 깨어날 거야. 분명해. 형씨가 깨어나자마자 할 일이라면….’
미구엘의 시선이 다시 뒤편으로 돌아갔다.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변해가는 사제들과 군단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울음을 토해내는 검은 벽과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 검붉은 하늘. 아마 지금쯤 상황을 눈치챈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리라.
그건 곧 군단장의 명령을 촉구하게 되리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이안의 상태를 들키게 되리라.
‘에라 모르겠다… 시벌…!’
하나 남은 주먹을 콱 움켜쥐며, 미구엘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군 정지-!”
“……!”
“군단장의 명령이시다! 불필요한 짐은 전부 버리고 전투 대열을 갖춰서 따라 와!”
“–!”
다행히 군단병들은 질문 대신 짧고 굵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그대로 멈춰선 군단이 삽시에 분주해지는 가운데, 사제단 사이에서 칸토가 앞질러 걸어 나왔다.
“거기 멈추시오.”
미구엘이 다급히 손을 내뻗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절대 사제들에게는 지금 이안의 모습을 들킬 수 없었다. 말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면서, 미구엘이 덧붙였다.
“방해하지 마시오. 지금 대전사께서는 카르하께 계시를 받고 계시니.”
“……!”
칸토의 가느다란 눈이 순간 커졌다.
“그럼, 저게 정말-”
“그래. 침식이 시작됐소. 그러니 어서 가서 전투를 준비하시오. 늦지 않게 전선에 도착할 수 있게!”
“…알겠소. 부군단장.”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 칸토가 말머리를 돌려 행렬로 되돌아갔다.
서둘러 전투를 준비하는 군단병들의 모습을 잠시 눈에 담은 미구엘이,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과 입가에 들어가 있던 힘이 삽시에 빠졌다.
‘시벌… 미치겠네.’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걸음을 옮기는 닐라를 눈에 담은 미구엘이 입을 열었다.
“사람 말을 거의 알아듣는다던데. 멈추지 말고 가라. 네 주인의 상태를 들키면 안 되니까. 알았지?”
미구엘을 돌아본 닐라가 짧게 콧김을 뿜고는 시선을 돌렸다. 네 걱정이나 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준비를 끝내면 진열을 갖춰서 뒤로 따라붙으쇼!”
뒤를 돌아본 미구엘이, 멀어지는 군단을 향해 소리쳤다. 군단병들은 이번에도 함성으로 화답했다.
***
부- 우우우우-
잿빛 대지가 발아래 드넓게 펼쳐졌다. 검은 벽과 전선 사이였다. 흔히 죽음의 땅이라 부르는.
검붉은 잔상이 노이즈처럼 흐릿하게 아른거리긴 했지만, 시야는 평소보다 넓고 선명했다.
‘시발… 지금 컷씬 같은 거나 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안은 어떻게든 이 환영에서 깨어나려 애쓰는 중이었다.
물론 불가능했다. 움직일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이, 그저 모든 걸 보고 들을 뿐이었다.
‘하필 지금.’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완료창을 닫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퀘스트가 실패로 끝나지 않은 건, 어쨌든 비탄의 계곡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일 터였다. 전선으로 퀘스트의 완료 조건은, 침식이 시작되기 전에 전선에 도착하는 것이었으니까.
‘군단은 지금쯤 뭘 하고 있지? 바로 싸울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춰 놔야 하는데.’
생각하는 그때, 시야가 옆으로 돌아갔다.
검은 벽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저걸 가까이에서 본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지금 같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말라붙은 타르 같은 질감이 아니라, 검붉게 끓어 오르고 있었으니까.
하늘로 역류하고 있지도 않았다. 끈적한 용암처럼 천천히 흘러내렸고, 그럴 때마다 검고 푸석한 땅을 조금씩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이게 침식이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표면에 부글부글 기포가 끓는 듯 하더니, 뒤이어 새카만 덩어리들이 벽을 뚫고 걸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철퍽- 철퍽-
크기도 형태도 제각각이었다. 하나 같이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마물과 마수들. 온통 새카맣고 안광이 붉게 일렁이고 있다는 게 몇 없는 공통점이었다.
‘저건 트롤인가…? 저건 다 마수 같고…. 저 두 발로 걷는 건 뭐지.’
인간이나 요정이 변이된 건가. 답을 알 수는 없었다. 사실, 저것들 하나하나의 정체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헛된 노력 대신 전장의 상황을 확실히 파악해 두기로 한 이안은 검은 벽을 뚫고 나온 놈들을 차근히 관찰했다.
가장 많은 건 마수였다. 늑대나 곰이 변이된 듯한 놈들.
갑옷 같은 것을 뒤집어쓴 오거나 외눈 거인 같은 거대한 놈들도 종종 걸어 나왔다. 놈들도 온통 검었지만, 갑옷이나 무기가 몸과 이어붙은 것 같은 끔찍한 몰골이었다.
“끄- 에에에엑-!”
“키아아아악-!”
검은 벽 밖으로 튀어나온 놈들은, 몇 걸음 달리기도 전에 울부짖어댔다. 그때마다 시야에 일렁이는 검붉은 잔상이 진해지고, 동시에 뇌리로 놈들의 사념이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분노와 고통. 끝없는 파괴 본능과 광기. 그런 혼돈의 와중에도, 이들의 의식을 관조하는 누군가가 섞여 있었다.
‘종속된 건가…?’
시야가 줌 아웃 되듯 멀어진 건 바로 그때였다.
시야 한켠에 펄럭이는 날개가 스치고 고도가 더 높아졌다.
이안은 비로소 주위에 비슷한 고도로 날고 있는 새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독수리나 매 같은 맹금류들이었다.
다들 눈이 보랏빛이나 자줏빛, 짙은 녹빛으로 물든 채로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이안의 의식은 이 중 하나에 이어진 모양이었다.
‘죄다 공허 놈들 같은데.’
난 대체 왜.
내심 탄식하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땅을 굽어보고 있었다.
시야가 넓어 지면서, 검은 벽을 뚫고 나온 수많은 마수와 마물들의 전경이 펼쳐졌다.
‘많을 줄은 알았지만. 엄청나게 많네.’
심지어 검은 벽은 아직도 마물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침식하는 속도보다 마물들을 토해내는 속도가 몇십 배는 더 빨랐다.
‘침식은 꽤 오랜 시간 이어진댔는데. 그럼 그동안 계속 이렇게 튀어나오는 건가?’
게임에서도 이랬을까, 하는 확인할 방법이 없는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분명 게임에서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을 터였다. 다만 현실이 된 지금보다는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으리라.
모든 전선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도 뒤따랐다.
‘…전부 이럴리는 없고. 복불복이겠군.’
하긴. 모든 전선을 다 지켜내는 게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리라.
어딘가는 병력에 비해 보잘것없는 마물들이 넘어오고, 어딘가는 감당할 수 없는 숫자가 넘어오겠지만. 그 사실을 미리 알 방법은 없을 테니까.
물론, 이안은 이미 카링기온이 후자이리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퀘스트가 별 볼 일 없는 전장으로 그를 이끌고 갈 리는 없었다.
대앵- 대앵- 대앵-
저 뒤편에서 종소리가 번지기 시작한 가운데, 이안의 시야가 불쑥 검은 벽 한 구석으로 집중됐다.
유독 넓은 부위가 부글대고 있는 벽면이었다. 그 주위로는 마물과 마수의 숫자도 많지 않았다.
광기에 휩싸인 놈들도 그 근처만큼은 공간을 비워두고 있었다.
철퍽- 철퍽-
새카맣고 거대한. 끔찍한 몰골로 변이된 날개 달린 마수가 걸어 나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변이된 그리핀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지만, 이안은 그보다 놈의 등에 타고 있는 존재에 더 주목했다.
타고 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두건을 눌러쓴 놈의 하반신은 그리핀과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으니까.
‘예전에 테사가 저런 상태였던 것 같은데.’
그리핀이 울부짓지도 않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축 늘어진 두건 사이로 자줏빛 안광이 번졌다.
푸스스슷-
안광은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자줏빛으로 되돌아오면서, 아주 위태롭고 흉포하게 일렁였다.
놈이 고개를 치켜들면서, 동시에 이안의 시야에 검붉은 잔상이 노이즈처럼 번쩍였다.
-■시… ■아 왔■■…! …■대한 대군■의 ■광을 위하■…!
고장난 라디오처럼 어지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념들이 머릿속을 찢을 것처럼 울렸다.
두건 아래로 본래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흉측하게 뒤틀린 얼굴이 드러났다.
‘마족도… 검은 벽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가?’
공허나 혼돈의 힘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것들을 보통 마족이라 불렀다. 하지만 놈들이라 해서 혼돈과 광기를 무한정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게 분명했다.
품을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미쳐 버리는 게 분명했다.
안광을 흉포하게 일렁이며, 놈이 양팔을 좌우로 치켜들었다. 한 손에는 마법봉 같아 보이는 무언가가 쥐어진 채였다.
파- 치치칫-
뒤편의 검은 벽에서 몇 가닥의 붉은 뇌전이 번뜩이더니, 놈의 등판으로 쏟아졌다.
마족은 변이되거나 타버리지 않았다. 그저 안광을 터질 듯 분출하면서,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사념과 주문을 사방으로 흩뿌려댔다.
-■■들은… ■두… ■망■■…!
그 순간 시야가 하늘로 향했다. 양팔을 치켜든 놈의 머리 위로 검붉은 소용돌이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자줏빛 마력이 번뜩였다.
콰릉- 콰르릉-
저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완성되면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키엑- 키에엣-!”
“크워어어억-!”
어느새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던 마물들이 일제히 달려나가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저것들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쒸에엑-
그때, 의식의 근원지로부터 멀어지려는 듯 시야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비로소 검은 벽 반대편의 광경이 펼쳐졌다. 군단이 이동하던 곳보다 훨씬 더 가파르고 좁아진 계곡을 가르는 회백색 장벽.
대앵- 대앵-
좀 전부터 울리던 종소리의 근원지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장벽 뒤편, 한쪽 절벽 능선 위에 비죽 솟은 요새에서 번지고 있었다.
‘여기도 길은 장벽 하나로 가리고 요새는 절벽 중턱에 지어놨네.’
장벽이 무너지더라도 요새는 지켜야 한다는 계산인지도 몰랐다.
장벽 위로 바로 물자를 옮기기도 좋아 보이긴 했다. 장벽 한쪽 끝은 요새 측면으로 직접 이어져 있었으니까.
장벽 위로는 병사들이 다급하게 전투 물자들을 옮기고 있었다.
일자로 놓인 대형 노포들. 쇠뇌와 창을 움켜쥔 병사들도 통로를 통해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기사들도 있었다.
멈춰 서는 위치가 다른 걸 보니, 구역을 나눠 지휘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하나 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약속된 지원군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사령관도. 시발.
속이 타는 기분이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상황을 명확하게 알아두려 노력할 뿐이었다.
대형 노포가 규칙적으로 놓인 장벽 곳곳으로는, 붉은 망토를 걸친 마법사들도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다 해 봐야 고작 넷에 불과했지만, 두건 아래로 일렁이는 안광은 이미 붉었다. 그들의 주위로 모여드는 마력의 입자가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다.
‘마력 농도가 짙어진 건가…?’
이 또한 침식의 영향인지도 몰랐다. 검은 벽이 토해내는 마력이 멀쩡할 리는 없었지만, 적어도 당장은 희소식에 가까웠다.
“우리는 전선을 지켜낼 것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바로 그때였다.
절벽 위에 솟은 요새의 전면 첨탑에, 인상을 잔뜩 구긴 중년 기사가 검을 치켜들고 서 있었다. 신호용 뿔피리를 든 병사를 곁에 둔 채였다. 아마도 저자가 임시 총사령관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죽을 각오로 싸워라! 사격 개시!”
그가 치켜든 검을 내리치자, 병사가 기다렸다는 듯 뿔피리를 불었다. 중년 기사가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읊조릴 찰나.
콰- 아아아아-
거대한 파공음과 함께, 성벽 뒤에서 거대한 포물선이 날아올랐다.
성벽 뒤에 몇 대의 투석기가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궤적은, 상공에서 산탄총처럼 수십 개의 작은 궤적으로 변해 흩어졌다.
작은 바위들을 모아 발사한 것이리라.
쒸-에에에엑-
그리고 몇몇 궤적은 이안을 향해서도 쏟아지고 있었다.
이안은 저 돌에 맞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이 길고 긴 환영에서 깨어날 수 있을 테니까.
쉬아아악-
하지만 바람과 달리, 그는 재빨리 방향을 선회했다. 돌덩이들이 유성우처럼 뒤로 쏟아져 내렸다.
콰광- 콰과광- 쾅-
먼지구름을 자욱하게 피워내며 내달리는 마물 무리 한복판에서 폭음과 흙먼지가 치솟았다. 적지 않은 숫자가 깔려 죽었으련만, 티도 나지 않았다.
“사격 개시-!”
“사격 개시!”
어느새 성벽에서도 지휘관들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대형 노포를 움켜쥔 병사들이 달려오는 마물들을 조준했다.
“쏴!”
쇠뇌를 견착하는 병사들의 경직된 얼굴과, 붉은 안광을 일렁이며 주문을 준비하는 마법사들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눈가를 타고 스멀스멀 번지는 광기도.
“발- 사-! 침착하게 쏴라!”
그리고 장벽 끄트머리 쪽에 선 지휘관의 얼굴은, 뜻밖에도 익숙했다. 루카스 램필드. 과거 북부에서 몇 번이나 신세 졌던 그였다.
시야에 일렁이던 검붉은 잔영이 점점 더 짙어졌다. 동시에 루카스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이안은 자신이 루카스의 얼굴을 꿰뚫으려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루카스의 시선이 그를 마주 보았다. 예전보다 관록이 붙은 그의 얼굴에는 당황이 번지지 않았다. 그저 새하얀 검을 치켜들었을 뿐이었다. 치치칫- 검날을 따라 주황색 불티가 번졌다.
‘성화로 벼린 칼이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불티를 머금은 궤적이 이안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