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58
358화
타탓-
이안은 끈적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한 파수꾼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그리핀은 안개 속으로 다시 반쯤 몸을 감춘 뒤였다. 뒷걸음질을 치는 놈의 등 뒤. 하늘을 향해 양손을 치켜든 듯한 제사장의 실루엣이 안개에 가려졌다.
‘역시. 의식을 계속 진행 중인 거네.’
그 와중에도, 놈의 양손에 균열처럼 번진 자줏빛은 여전히 선명했다.
이안을 발견하고도 공격 대신 물러나는 걸 택하는 걸 보면,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리핀 역시 날아오르거나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방비 상태에 가까운 것이리라.
트타타탓- 쒸에엑-
하지만 대신 호위하는 것들이 있었다. 좌우 전면에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뒤이은 파공음을 들은 이안이, 대검을 땅에 비스듬하게 박아 넣으며 급정거했다.
쒸하아악-! 카가가각-
연달아 날아든 촉수가 그의 앞을 지나쳤다. 몇 개는 대검의 검면을, 그리고 하나는 치켜든 백금 방벽을 훑고 지나갔다.
이안은 그 모든 공격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주문을 시전 중이지 않았다면 충분히 전부 피할 수도 있었으리라.
‘세 마리.’
이안의 붉게 물든 눈동자가 안개 너머를 훑었다.
크기나 생김새는 조금씩 달랐지만, 전부 심연의 파수꾼이었다.
칼날 처럼 삐죽한 다리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타타타탓-
놈들의 가슴팍에 박힌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뜩였다.
어쨌건, 이안이 게임에서 만난 놈보다는 작고 약한 놈들이었다.
그때는 훨씬 더 컸고, 약점인 눈을 제외하고는 물리 공격도 마법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었다.
굳이 촉수를 고수하는 걸 보면, 눈깔에서 마력 광선을 뿜어내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아직 육체를 완벽하게 다 구성하지 못한 건가.’
공허에서의 본모습을 완전히 되찾을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리라.
아마 아까의 심연 아귀들도, 공허에서 마주쳤다면 그렇게 쉽게 격퇴할 수 없었을 터였다.
원리를 알 수는 없었지만, 놈들은 통로를 지나고 장막을 넘는 과정에서 힘을 상당히 잃는 것 같았다.
검은 벽이 침식 중일 뿐. 이 일대가 마경이 된 것은 아니어서인지도 몰랐다. 이 세계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조금 느슨해진 거겠지.’
대충 결론 내린 이안이, 왼손을 활짝 펼쳐 앞으로 내뻗었다.
콰르르르-
손바닥 한복판에 붉게 물든 보옥의 모습이 드러나고, 다음 순간 불길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화염 해일. 이안은 뒤로 밀려나지 않게 대검의 자루를 더 콱 움켜쥐면서, 손바닥을 옆으로 훑듯이 움직였다.
콰아아아아아-
혼돈력과 보옥으로 증폭된 싯누런 화염의 물결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불길이 마음대로 날뛰게 풀어 버려서, 이안도 이 화염 해일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었다. 아마도 부채꼴을 그리며 번져 나가, 마력이 다할 때까지 모든 것을 불태우리라.
퍼석-
불길이 잦아들자, 보옥에 박힌 정수가 빛을 잃으며 부서졌다.
품고 있던 마력을 전부 소진한 것이다. 이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왼손을 탈탈 털며 대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격렬하게 넘실대는 불길의 장벽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멀어지는 가운데.
콰르르르-
달려오는 파수꾼들의 모습이 다시금 온전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놈들은 화염 해일을 피하지 않고 한복판을 뚫고 나왔다. 잠시 감겼던 가슴팍의 눈이 다시 자줏빛을 번뜩이며 벌어졌다.
전신에 불길이 지글대고 있었지만, 아까 백색 겁화를 뒤집어쓴 놈과 달리, 한 놈도 정신파를 뿜어내지 않았다.
‘역시, 별 타격은 없는 건가.’
하지만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촉수를 뿜어내지는 못하게 된 것 같았으니까. 불길이 지글대는 놈들의 촉수는 죄다 말려 들어간 상태였다.
물론 크기도 형태도 제각각인 다관절 칼날들은 여전히 멀쩡했다.
첫 상대를 정한 이안도 마주 달리기 시작했다.
-위■■ ■■의 강■을… 방■하지 말■… 혼돈■ ■■여…
뇌리로 사념이 번진 건 그때였다.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증오와 집념. 광기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감정의 편린을 실은 채였다.
제사장의 사념이었다. 물론 이안은 멈춰 서거나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속으로만 읊조리며 대검을 떨치듯 휘둘렀을 뿐이었다.
뿜어져 나간 새하얀 궤적이 저만치에서 달려오는 파수꾼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카가가각-
지글대는 몸통에 백색으로 일렁이는 궤적이 더해졌다.
이번 공격은 효과가 있었다. 놈의 전신에 말려 들어간 촉수들이 움찔댔다. 달려오는 속도도 순간 느려졌다.
그사이 휘두른 대검을 힘으로 멈춰 세운 이안이, 가장 가까운 놈의 품으로 힘껏 달려들면서 다시 비스듬하게 올려쳤다.
쒸에에에엑-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파수꾼이 휘두른 세 개의 낫 같은 칼날이, 그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육감과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한 지금, 그의 감각은 찰나의 예지력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이었다.
카가가각- 콰지직-!
대검 날이 파수꾼의 복부와 가슴. 그리고 그 한복판의 눈깔까지 사선으로 가르며 지나간 건 거의 동시였다. 대검 날과 백색 불길이 휩쓸고 간 놈의 눈깔이 퍽 터지면서 부글부글 타들어갔다.
이안은 대검 자루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끝까지 휘둘렀다. 검날을 타고 쩍, 또 한 번 얼음 깨지는 느낌이 번졌다.
-■■ ■■■!
비명 같은 정신파를 토해낸 파수꾼이, 발작적으로 칼날이 돋아난 자신의 팔들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착지한 이안은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쒸에에엑-
그대로 마저 몸을 휘돌리면서, 양손으로 움켜쥔 대검을 야구 방망이처럼 휘두른 것이다.
콰지직-! 콰장창창-
검날에 하반신이 휩쓸린 파수꾼의 몸통이 구겨지듯 튕겨 나가 나뒹굴었다. 동시에 놈의 갑피와 맞닿았던 대검 날이 이가 빠지듯 깨졌다.
타탓-
상관하지 않고 대검을 멈춰 세운 이안이, 그대로 측면으로 달려나갔다. 저놈은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이었다. 녹아내린 눈깔에 여전히 백색 겁화가 이글대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파수꾼들을 상대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이안이 백색 겁화를 머금은 채 달려오는 것들을 눈에 담는 찰나.
-■■의 ■림을 방해하지 ■■- 혼돈이여…! ■는 ■■ ■■■-!
또다시 제사장의 정신 나간 사념이 뇌리를 울렸다.
…축복까지 받았는데도 타락자 취급이라니.
하긴. 마법에 섞인 혼돈력이나, 혼돈의 파편이 토해내고 있는 울림을 감지한 건지도 몰랐다.
‘알게 뭐람.’
생각하며 비스듬히 몸을 비틀었던 이안이 힘껏 땅을 박찼다.
뻗어 나오던 칼날들이 망토를 스치고 지나가고, 동시에 양손으로 움켜쥔 대검이 새하얀 궤적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콰지지직-
파수꾼의 몸에 새하얀 궤적이 아로새겨졌다.
이번에는 눈깔을 베어 버리지 못했지만,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콰득-!
대검 날을 땅에 박아넣은 그가, 그대로 자루를 쥔 왼손을 놔버리며 마저 몸을 휘돌렸다. 하반신이 붕 떠오르는 가운데, 허공에 눕듯이 몸을 기울인 이안이 왼팔을 힘껏 밖으로 내뻗었다.
콰직-!
백금 방벽의 측면 날이 파수꾼의 눈깔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카가각, 동시에 파수꾼이 휘두른 칼날 하나가 이안의 가슴 근처를 할퀴고 지나갔다. 백린 갑옷에서 불똥이 튀고, 몇 개의 비늘 조각이 비산했다. 그림자 망토의 끝부분도 잘려나갔다.
‘…더럽게 날카로웠네.’
이안은 밖으로 휘두른 왼팔을 더 힘껏 내뻗었다. 방패 날이 눈알로 더 깊이 박혀 들었다. 거의 온몸으로 놈에게 부딪친 형상이었다.
공허의 괴물도 급소가 으깨진 상태로 이안의 힘을 견뎌내지는 못했다. 놈의 길쭉한 몸이 뒤로 넘어졌다. 이안은 놈을 따라 떨어지면서, 자루를 거꾸로 쥔 대검을 그대로 뽑아 들었다.
쿠웅….
몸과 대검의 무게까지 더해지자, 백금 방벽의 방패 날이 더 깊이 박혀 들었다.
으직-
터져 버린 눈알 아래로 뭔가 으깨지는 소리가 번졌다.
쓰러진 파수꾼의 몸이 경련하는 가운데. 대검 날을 달려오는 마지막 파수꾼 쪽으로 향하게 치켜든 이안이 자세를 다잡았다.
내리찍은 방패 날을 축 삼아, 그가 몸을 채찍처럼 앞으로 휘두르며 오른팔을 내뻗었다.
쒸- 아아아악-!
대검이 날아갔다. 백색 겁화가 허공에 기다란 궤적을 그려냈다. 그 궤적은 달려오는 파수꾼의 가슴 한복판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콰직-!
가슴의 눈에 대검이 박힌 놈이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듯 널브러졌다.
‘…이게 되네.’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놈의 몸통에 비죽 솟은 대검을 눈에 담았다. 백색 겁화가 멈추지 않고 뿜어져 나와 파수꾼의 눈알을 불태웠다.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어차피 이미 근원도 거의 다 소진된 상태였으니까.
타타탓-!
이안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발을 박찼다.
온몸이 파수꾼들의 체액으로 흥건했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저 너머를 눈에 담았다.
화르르르-
제멋대로 날뛰는 화염 해일이 멀어지고 있었다. 불길이 안개를 기화시켜 날려 버리면서, 갑갑하던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이 들었다.
검붉게 이글대는 검은 벽이 아른거렸다. 침식을 이어 가고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있었다.
‘한 이백오십 미터…?’
당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훨씬 더 가까이에 있었다.
-의■을 막을 ■■ 없을 ■■다… 강■의 ■가 머지■■다…
혼잣말처럼 정신 나간 사념을 토해내는 제사장과 그리핀의 모습 역시 선명해졌으니까.
대검을 내던진 덕분인지, 내달리는 발걸음이 날듯이 가벼웠다.
눈 한 번 깜빡일 사이에 바람 칼날을 시전한 이안이, 적당한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힘껏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쒸아아악-
그의 몸이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솟구쳤다.
그리핀이 삽시에 발아래에 놓였다.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며, 이안은 놈을 눈에 담았다.
‘생각보다 너무 멀쩡한데.’
놈의 전신에는 불이 조금도 맺혀 있지 않았다. 날개를 활짝 펼친 걸 보니, 불길을 날려 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마법적인 행동이었을 터였다. 놈의 날개에는 깃털 하나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저 말라비틀어진 것 같은 검은 뼈대만이 돋아 있을 뿐이었다.
-후회■■ ■리라… ■■하는 ■■의 ■도여….
물론 날개만 그런 몰골인 건 아니었다. 자줏빛 안광을 일렁이며 그를 올려다보는 거대한 그리핀은 전신이 흉측하게 뒤틀린 상태였다.
이안이 보자마자 놈을 그리핀이라 여긴 건, 삐죽하게 튀어나온 새 부리와 날개. 그리고 네 개의 다리가 맹금류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일 뿐이었다.
제사장의 사념을 한 귀로 흘리며, 이안은 진은 강철 장검을 단숨에 뽑아 들었다.
솨아아아-
검집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검면에서 진언 회로의 금광이 번졌다. 새하얀 검날에 샛노란 마력이 뒤덮였다.
대검을 미련 없이 던져 버린 이유이기도 했다. 이안은 처음부터 제사장만큼은 백금의 발톱으로 확실히 죽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다…! 오■라…! 나■ 죽음■여…!
뇌리를 뒤흔드는 사념과 동시에, 날개를 펼치고 있던 그리핀이 떨어져 내리는 이안을 향해 펄쩍 앞발을 들었다.
자신의 주인을 지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양팔을 치켜든 제사장의 모습이 놈에게 가려졌다.
쉬악-
바람 칼날이 이안의 궤적을 비스듬하게 꺾은 건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이안은 기꺼이 손에 쥔 광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서걱-
두부를 가르는 듯한 감촉과 함께, 광검이 그리핀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이안은 허물어지는 놈의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 드러난 등 뒤를 내려다보았다.
그리핀과 하나로 융합된 제사장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눌러쓴 두건 아래, 역겹게 뒤틀린 놈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자꾸 뭔 개소리를 하나 했더니.’
놈의 감긴 눈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뒤틀린 코와 귀, 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목숨을 바쳐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제아무리 광기에 물든 마족이라 해도, 아무런 대가 없이 공허로 이어지는 통로를 열 수는 없는 법이리라.
어쩌면 의식이 완성되는 순간이, 놈이 목숨을 잃는 순간이었는지도 몰랐다.
물론, 이안은 놈이 그렇게 죽게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쉬악-
이안은 몸 앞에 닿아 있던 오른팔을 밖으로 힘껏 휘둘렀다. 샛노란 궤적이 기다란 부채꼴을 그렸다.
서걱-
광검의 궤적은 제사장의 등판을 지나 가슴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양팔을 치켜든 제사장의 상반신과 그리핀의 잘린 머리가 굴러떨어지는 가운데, 그들을 지나친 이안이 바닥을 구르며 착지했다.
-늦■■라… 내 ■■ 목■을… ■두… 바■■니….
아직 안 죽었다고…?
이안은 이어진 사념에 튕겨 오르듯 일어서, 그대로 미끄러지듯 멈춰서고는 되돌아 달려갔다.
목 잘린 그리핀의 시체 옆에, 가슴까지만 남은 제사장이 널브러져 있었다. 여전히 양팔을 하늘을 향해 치켜든 채였다.
서걱-
내리친 광검이 제사장의 머리를 세로로 가르고 지나갔다. 동시에 놈의 전신에서 자줏빛이 부글대며 끓어오르더니 소리 없이 폭발했다.
“……!”
이안은 반사적으로 백금 방벽을 들어 얼굴 앞을 가렸다.
하지만 예상한 것 같은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한순간 모든 감각이 옅어지면서, 눈앞에 찰나의 광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불타는 숲. 죽거나 포로가 된 요정들. 그들을 유린하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요정들. 인간, 그리고 저 역겨운 배신자들에 대한 끝없는 증오.
그리고 자비롭게 일렁이는 무수한 자줏빛 안광.
‘이 새끼가 흑요정이었다고…?’
그런 것치곤 너무 못생겼던데.
이것이 제사장의 주마등임을 직감한 이안이 헛웃음을 삼켰다.
물론 그의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놈의 자세한 사연 따위는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솨아아…
삽시에 감각이 되돌아왔다.
눈앞으로 퀘스트 완료창이 이어졌다. 심연의 제사장 퀘스트가 끝난 것이다. 창을 닫으며, 이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 오오오오-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검붉은 소용돌이가 회전하면서, 벌어져 있던 눈이 조금씩 닫히고 있었다.
비로소 백금의 발톱을 거둬들이며, 이안은 검은 벽 반대편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끈적하게 뒤덮인 어둠이 어느새, 경계선이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비록 그 너머의 하늘도 여전히 어둡긴 했지만.
‘그런데 왜 아직도….’
…불길한 느낌이 사라지질 않지?
멈칫한 이안의 시선이 다시 머리 위, 소용돌이의 눈으로 돌아갔다.
어두워지고 있는 자줏빛 장막이 시야에 가득 펼쳐졌다. 월식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 너머에서 가까워지는, 거대한 무언가의 그림자.
“……!”
그 사실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지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었다.
그제야 이안은, 심연의 제사장이 무엇을 불러들이기 위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것인지를 깨달았다.
‘이 미친 귀쟁이 새끼가….’
비슷한 감각을 몇 번이나 느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허의 초월적인 존재들을 마주한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