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60
360화
푸화악-!
터져 나온 자줏빛 파장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루시아가 미구엘의 몸을 가리듯 막는 가운데, 자세를 다잡던 군단병들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이, 이런 미친…?”
군단병들의 눈이 이내 커졌다.
뿌득, 뿌드드득…!
목숨을 잃었던 이들이, 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일어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타버리거나 으깨진 단면에 자줏빛 마력을 머금은 채였다.
되살아난 군단병들의 몸이 마력을 머금고 뒤틀리고 부풀었다.
“카르하여….”
“이런 끔찍한 짓을….”
크고 작은 탄식이 번질 찰나.
콰광-! 콰과과광-!
저 멀리서 번지기 시작한 폭음이, 군단병들의 정신을 간신히 일깨웠다.
“이, 이건 형제들의 육체일 뿐이야! 영혼은 이미 카르하의 곁으로 떠났으니!”
“정신 차려! 부상자들을 외곽으로 옮기고, 싸울 준비를 해!”
곳곳에서 크고 작은 외침이 메아리쳤다. 그사이, 거의 변이를 끝낸 수십의 망자들이 인근의 부상자와 전사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기를 들어라!”
“형제들에게 안식을-!”
“으아아아아-!”
고함과 비명, 그리고 괴성이 삽시에 사방에 가득해졌다. 저 멀리서는 아직도 폭음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화신체는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혼란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저 잦아드는 성화 너머의 루시아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큭큭큭….”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날름대며, 자주색 눈동자에 탐욕의 빛을 가득 띄운 채로.
“이… 육시랄 새끼가….”
미구엘에게 배운 욕을 씹어 뱉으며, 루시아가 일어섰다.
그러려 했을 뿐이었다. 비틀댄 그녀가 다시 휘청대며 무릎을 꿇었다. 귀울음과 현기증이 아직 잦아들지 않았다. 머리나 귀를 제대로 다친 모양이었다.
철퍽-
그 모습을 음미하듯 내려다보며, 화신체가 촉수를 움직여 미끄러지듯 루시아를 향해 다가갔다.
‘이안 님은…? 이안 님은 어떻게 되신 거지…?’
고함과 비명. 폭음과 괴성이 온몸을 울리는 가운데, 루시아는 화신체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그가 당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근거라고는 없는 일방적인 믿음이었다.
지금 땅을 울리는 이 폭음도 그와 연관이 있으리라. 아직 적이 남은 것일까? 아니면, 의식을 잃기라도 한 걸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중요한 건, 도움만 기다리느라 무력하게 당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윽고 결심을 굳힌 루시아가, 손바닥으로 입가의 피를 닦을 찰나.
“차기 성녀를 지켜-!”
고함과 함께 달려온 누군가가, 루시아와 미구엘을 양팔로 끌어안았다.
얼굴 가득 흙먼지를 뒤집어쓴, 이마에 피가 흐르는 칸토였다.
그가 루시아와 미구엘을 질질 끌고 가며 속삭였다.
“물러나셔야 합니다. 저건, 저건 일반적인 공허의 괴물이 아닙니다. 고대신이 직접 만들어낸 화신이자 혼돈의 응집체라는 말입니다…!”
루시아는 그의 속삭임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부릅뜬 채 저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와 화신체의 앞을 가로막는 세 전투 사제의 뒷모습을.
“아, 안 돼. 멈춰요….”
셋 다 폭발에 휩싸여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움켜쥔 무기에는 성화가 아른거렸고, 피부 아래의 혈관이 불씨를 머금고 빛났다.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이여…!”
“시간을 벌겠습니다! 성녀를 대피시키세요!”
“물러나라! 이 공허의 악마야!”
그들은 발견한 듯 화신체가 멈춰서는 가운데. 세 전투 사제가 저마다 소리치고는 달려나갔다.
루시아가 팔을 내저었다.
“안 돼! 멈춰요-! 당장!”
전투 사제들은 멈추지 않았다. 절뚝대면서도 세 방향으로 나뉘어 화신체에게 달려들고는, 저마다의 무기를 휘둘렀다. 화신체는 반격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콰지직-! 콰앙!
그저 가만히 선 채 사제들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세 방향으로 흩어진 사제들은, 놈의 촉수 표면을 힘껏 후려치고 있었다. 머리에 손이 닿지 않으니, 우선 다리를 무너뜨려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모양이었다.
퍼억-! 콰르르-
폭발과 불길에 휩싸인 촉수 표면이 퍽퍽 터져 나갔다. 내부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큭큭….”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화신체가, 이윽고 사납게 웃음 지었다. 뭔가 호기심이 해결된 모양이었다.
놈이 양팔을 옆으로 치켜들었다.
어느새 꿈틀대고 있던 몸통에서 굵직한 가시들이 일제히 솟구쳤다.
간신히 피한 도날드와 벨라가 바닥을 구르는 사이.
“안 돼-!”
루시가 절규했다. 촉수 하나가 브론의 목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피를 후두둑 토해내며 경련하는 그의 몸이 위로 붕 떠올랐다.
화신체가 촉수에 꿰뚫린 브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리를 잃은 사제의 몸이 피를 흩뿌리며 떨어졌다. 화신체가 손에 쥔 머리를 쩍 벌린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브론-! 이 저주받을 악마야!”
“으아아아-!”
피를 토할 듯 외친 도날드와 벨라가, 되돌아가는 촉수들을 후려치며 달려들었다.
그사이, 루시아가 여전히 자신을 끌고 가는 칸토를 돌아보았다.
“당장 이거 놔요! 부원장! 가서 도와야 해요!”
“저는 제 본분을 다할 뿐입니다, 차기 성녀…. 차기 성녀의 목숨은 우리 모두보다 중요합니다.”
“웃기지 마요! 다 똑같아요! 우린 다 똑같다고요!”
바둥대던 루시아가 피를 한 모금 더 왈칵 토했다. 그녀의 백지장 같은 얼굴을 내려다보며, 칸토가 내뱉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참으십시오. 당신이 누구인지 잊지 마십시오.”
“…….”
루시아가 숨만 헐떡이는 가운데.
“으, 으윽…! 놔! 이거 놔라!”
저 앞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도날드가 화신체의 손아귀에 붙잡혀 바둥대고 있었다. 어느새 화신체의 손은 마디 하나가 더 돋아난 상태였다.
“도날드-!”
소리친 벨라가 달려들었다. 그녀가 휘두른 철퇴가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화신체의 눈매가 꿈틀댔다. 고통스러운 것 같기도, 동시에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루시아가 보기에는, 눈앞에서 뛰노는 장난감들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다그닥- 다그닥-
루시아가 이를 악무는 가운데, 칸토의 뒤편으로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은색 마갑을 걸친 백마가 루시아의 앞으로 튀어나와 이내 멈췄다.
폭발이 일어난 순간 득달같이 도망쳤던 닐라가 되돌아온 것이다.
“…….”
화신체를 노려보며 콧김을 뿜은 녀석이 칸토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에서 뭔가를 느낀 듯, 칸토가 루시아와 미구엘을 쥐고 있던 팔을 풀었다.
몸을 일으킨 그가 걸음을 옮기며 내뱉었다.
“체력을 회복하십시오.”
“부, 부원장….”
다급하게 손을 뻗은 루시아가 칸토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아, 안 돼! 안 돼! 벨라!”
저 앞에서 도날드의 비명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어느새 벨라도 화신체의 손이 옴짝달싹도 할 수 없이 붙잡혀 있었다. 그리고 놈은, 도날드가 아닌 벨라부터 얼굴 앞으로 가져가는 중이었다. 도날드가 잘 볼 수 있도록 오른팔을 옆으로 치켜든 채였다.
꾸득, 꾸드드득-
놈의 아가리가 목까지 벌어졌다. 그 아래로 톱날처럼 수없이 돋은 새카만 이빨들이 드러났다.
벨라가 탄식했다.
“어, 어둠을 불사르는-”
콰직-
벨라의 어깨 위가 아가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다리가 잠시 바둥대고, 아가리 속에서 작은 불빛이 번쩍였다.
“벨라아아-!”
화신체가 멈칫하는 가운데, 도날드가 절규했다. 화신체가 곧바로 다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직, 까드득-
섬뜩한 소리가 번졌다. 벨라의 꿈틀대는 몸이 조금씩 화신체의 몸 안으로 사라졌다.
그사이 루시아의 팔을 떨쳐낸 칸토가 닐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루시아는 석상처럼 굳어진 채였다.
칸토가 안장에 오르자, 닐라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나갔다.
“아, 안 돼….”
루시아가 망연자실하게 읊조렸다.
하지만 닐라는 급격하게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녀석의 마갑이 눈부시게 빛나고, 뒤이어 힘차게 화신체를 향해 뛰어올랐다. 칸토가 녀석의 안장을 박차며 또다시 몸을 날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으아아아아-!”
그가 기합성을 내지르고서야, 벨라를 씹어 먹던 화신체가 그를 바라보았다.
콰르르르-
칸토가 내지른 칼날의 궤적이 놈의 한쪽 눈으로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동시에 포물선을 그리며 쇄도한 닐라도 놈의 몸통에 힘껏 몸을 부딪쳤다.
쩌엉-!
전신에 맺힌 마력이 충격파를 토해냈다. 화신체의 몸이 비틀댔다. 한쪽 눈에 불타는 검이 박힌 놈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
고통과 분노에 찬 괴물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자줏빛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었다. 휩쓸린 닐라가 종잇장처럼 튕겨 나갔다.
칸토는 놈의 눈에 깊숙이 박힌 검날을 움켜쥔 채 버텼다. 검날이 놈의 눈알을 더 깊이 헤집었다.
화신체가 휘두른 손바닥이 그의 몸을 후려친 건 거의 동시였다.
콰장창-!
칸토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그가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구르는 사이, 화신체가 옆구리에 축 늘어져 있던 촉수 하나를 치켜들었다.
콰직.
촉수가 칸토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짜증스럽게 몇 차례 더 후려친 화신체가 시선을 돌렸다.
“…큭.”
멈칫한 놈의 눈매가, 언제 분노틀 토해냈었냐는 듯 휘어졌다.
어느새 손아귀의 도날드가 축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칸토와 닐라를 상대하면서,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일 터였다.
화신체가 도날드를 입으로 가져가는 사이.
챙그랑-
눈에 박혀 있던 검이 스스로 뽑혀 나와 떨어졌다. 터진 안구가 부글대고, 몸 곳곳의 터지고 불탄 흔적들이 차올랐다.
“…….”
그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던 루시아가, 이윽고 전투가 한창인 일대를 돌아보았다. 군단병들도 부상자를 운반하고 변이체들과 필사적인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루시아의 시선이 뒤편의 미구엘에게로 돌아갔다.
칸토는 몰랐지만, 그녀는 화신체의 다음 목표가 자신이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놈은 처음부터 신의 사도인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여흥일 뿐이리라.
“…그러니까. 미구엘은 괜찮을 거예요.”
읊조린 그녀가 일어섰다. 이번에는 휘청대면서도 넘어지지 않은 그녀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미안해요, 사제님들.”
검날을 왼손으로 힘껏 움켜쥔 루시아가, 자루를 천천히 뽑아냈다.
“하지만 복수도 하지 않고 도망칠 수는 없어요.”
읊조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왼손 손아귀를 타고 번진 새하얀 불길이, 팔을 타고 어깨 위까지 번졌다.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휘청이던 발걸음이 이내 빨라졌다.
으적, 까드득….
도날드를 섭취하던 화신체의 움직임이 움찔 멈췄다.
놈의 눈동자가, 저 앞에서 다가오는 새하얀 불길로 향했다.
루시아가 쥐고 있던 단검을 힘껏 내던진 건 그때였다.
쒸에엑-
날아든 단검이 화신체의 한쪽 얼굴에 박혔다. 놈의 얼굴에 비해 턱없이 작은 칼날. 하지만 검날을 타고 터져 나온 새하얀 불길은 작지 않았다.
콰- 아아아-
새하얀 불길이 화신체의 머리를 뒤덮었다. 발작적으로 도날드를 내팽개치며, 놈이 찢어지는 비명을 토해냈다.
“으윽…?!”
“제기랄… 카르하여…!”
변이된 망자들과 전투를 벌이던 군단병들이 순간 비틀댔다.
하지만 화신체를 향해 손을 내뻗던 루시아는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콰르르르-
그녀의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온 새하얀 불길이 화신체의 촉수를 뒤덮었다. 입술만 달싹여 기도문을 읊조리면서, 그녀가 쉬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콰아아아- 콰르르-
그럴 때마다 터져 나온 폭발과 불길이 화신체를 새하얗게 뒤덮었다. 몇몇 군단병들이 한순간 멍하니 그쪽을 돌아볼 정도였다.
하지만 루시아는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화신체가 비명도 내지르지 않게 될 때까지.
콰르르르….
그녀가 움직임을 멈춘 건, 화신체의 전신이 반쯤 녹아내리는 거대한 덩어리처럼 변했을 때였다.
“하아… 하아….”
멈춰 선 루시아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전신에 일렁이던 백색 성화가 힘없이 잦아들었다.
잠깐의 각성 상태였을 뿐, 체력이나 부상이 회복된 건 아니었다. 손바닥의 출혈도 그녀의 체력을 빠르게 앗아갔다.
꾸득, 꾸드드득-
잦아드는 불길 사이의 덩어리에서 빗금이 번진 건 그때였다.
가운데가 쩍 벌어진 속에서 멀끔한 보랏빛 덩어리가 솟구쳤다. 허물을 벗듯, 만신창이가 된 겉껍질을 벗어던진 것이다.
그 아래의 화신체가 삽시에 처음의 모습을 되찾았다. 전보다 조금 작아졌을 뿐이었다. 텅 빈 머리 한복판에 자주색 눈이 벌어졌다.
“…….”
하지만 왼팔을 힘없이 툭 떨어뜨리는 루시아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놈이 죽지 않았다는 건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놈에게 절망하거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스스슷-
화신체가 내뻗은 촉수가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녀가 더는 신성을 부릴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은 듯, 아주 느긋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루시아를 응시하는 눈동자가 만족스럽게 휘어졌다. 드디어 원하던 먹이를 손에 넣은 듯이.
루시아의 몸이 떠올랐다.
뿌득. 뿌드득-
놈이 벗은 허물에서 하얀 불길이 일렁이는 가운데, 화신체의 눈 아래로 새로운 아가리가 벌어졌다.
심연처럼 새카만 목구멍.
그 내부를 가만히 바라보던 루시아의 시선이 문득, 화신체의 저 뒤편으로 돌아갔다.
시야가 높아진 덕분에, 보이지 않던 부분까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금색과 적색의 궤적이.
“……!”
루시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안이었다. 다행히 정신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
미소가 멈칫한 건, 적당한 거리에서 펄쩍 뛰어오른 이안의 모습이 선명해진 순간이었다.
쉬학-
광검을 움켜쥔 이안의 얼굴은 코 아래부터 변이된 것처럼 보랏빛으로 변해 뾰족한 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검을 치켜든 오른손도, 보랏빛으로 물들어 비대해진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였다. 각반만 걸친 하반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 마족이 되셨…?’
생각하던 루시아가 멈칫했다.
그의 전신에 맺힌 붉은 신성력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눈이나 왼팔이 그렇듯 변이되지 않은 부분들도 섞여 있었다. 심지어 카르하의 신성력은 변이된 부분을 지글지글 태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인… 반마…?’
루시아가 멍하니 생각할 찰나.
“……!”
비로소 지척을 느낀 듯 화신체가 멈칫했다. 놈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정수리 뒤로 돌아갔다.
쒸에에엑-
하지만 그때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이안이 광검을 내리치는 중이었다.
콰과과과과-
샛노란 궤적이 화신체의 몸을 빵처럼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루시아를 움켜쥔 촉수도 아래가 함께 잘려나갔다.
“—–!”
루시아가 촉수와 함께 땅으로 떨어지는 사이, 바닥을 구르며 착지한 이안이 마물의 그것과 비슷한 울부짖는 듯한 포효를 토해냈다.
다른 점은, 전신에서 붉은 신성의 파장이 터져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꺼질 듯 잦아들던 군단병들의 신성이 다시 붉게 타올랐다.
“오- 오오오오-!”
“대전사…! 대전사께서 돌아오셨다-!”
전장 곳곳에서 함성이 번지는 가운데, 미간을 찌푸린 이안이 몸을 돌렸다. 허물어지는 화신체를 눈에 담으며, 그가 톱날처럼 돋아난 두 번째 치열을 달싹였다.
“…어딜 아가리를 들이대.”
저주파가 섞인 그르렁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