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7
037화
후작의 상태가 얼핏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목과 얼굴을 타고 새카만 핏줄이 거미줄처럼 돋아나고 있었고.
핏발 선 눈으로 주위를 쉬지 않고 두리번대고 있었으니까.
지팡이를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늪지의 저주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메이슨이 물었다.
“아버님, 왜, 왜 그러십니까?”
착란 상태인 후작이 소리쳤다.
“이, 이게 보이지 않는 것이냐? 병사들에게서 빛나는 여신의 증표가. 창과 활에 맺힌 신성이…?”
“그게 대체 뭔….”
되묻던 메이슨이 숨을 멈췄다.
이안을 본 후작의 눈동자에 자주색 마력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야, 이제야 모든 게 명확하군! 네놈, 단순한 성기사가 아니구나! 티르 엔, 그 망할 여신의 화신이었어!”
고오오-
전신에 마력을 머금은 후작이 일갈했다.
“웃기지 마라…! 나는 네년의 심판 따윈 받지 않을 것이니!”
그를 바라보던 백성들과 병사들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여, 영주님이 정말 타락하셨다!”
“도련님의 말씀이 전부 사실이었어…!”
이안의 입가에도 비로소 후련한 미소가 번졌다.
이 오글거리는 성기사 흉내를 계속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어째서… 제기랄…!”
탄식한 메이슨이 뒷걸음질 칠 찰나.
이안이 후작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직 옅은 신성력을 머금은 검이 후작의 목을 노리고 뻗어나갔다.
후작이 짚고 있던 지팡이를 쿵, 내리친 건 그때였다.
푸확-!
그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 마력의 파장이 이안을 튕겨냈다.
이안이 성벽 끄트머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매달리는 사이.
“어억…?! 윽, 으윽, 그그극…!”
“컥, 크억…!”
동심원을 그리며 번진 파장에 휩쓸린 병사들의 몸이, 기괴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섬뜩한 뼛소리. 전신에 핏발이 돋고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성벽 안쪽의 병사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운 좋게 마력 잠식을 피해간 병사들이 눈을 끔뻑인 것도 잠시.
“애들 이러는… 으헉?!”
관절이 뒤틀린 병사들이 그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콰득! 콰직-!
“아악-! 미친! 놔! 놓으라고!”
“으아악! 제기랄! 뒈져!”
성벽 위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저렇게까지 본색을 드러내실 줄은 몰랐는데….”
그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댄 데클란이, 이윽고 검을 뽑아 들었다.
“백성들은 뒤로 물러나라! 패튼! 다 끌고 따라와!”
그가 용병들을 이끌고 성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사이.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괴상한 재주를 숨기고 있었네.”
중얼대며 성벽 위로 올라선 이안이 몸을 날렸다.
눈 전체가 자주색으로 물든 후작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콰직-!
이안의 검이 손쉽게 막혔다.
후작의 손은, 어느새 피부가 벗겨지면서 마물의 그것처럼 변이되고 있었다.
검은 핏발이 돋은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공허의 참된 신께서 하사한 태초의 힘이다…. 너희 같은 가짜 신들과는 다른-”
펑-
이안의 검에서 소리 없는 폭발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진공 폭발.
아주 작은 범위에 일어난 폭발이었지만, 후작의 지팡이와 지팡이를 쥔 손을 피 보라만 남긴 채 날려 버리기엔 충분했다.
후작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진 순간, 드러난 공간으로 이안의 검이 날아들었다.
콰직-!
후작의 옆얼굴에 틀어박힌 검날이 광대를 지나 코에서 멈췄다.
“……!”
치켜뜬 후작의 눈이 경련했다.
그를 마주 보는 이안의 눈동자에 잿빛 마력이 휘몰아쳤다.
“주절댈 시간에 변이나 했어야지.”
서걱-
날을 타고 번진 바람 칼날이, 후작의 얼굴을 반대쪽 광대까지 깨끗하게 갈라 버렸다.
잘려 나간 후작의 머리가 스르륵,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잘린 단면에서 피가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가운데.
“마… 법…?”
코 아래만 남은 후작의 몸이, 탄식 같은 단말마와 함께 허물어졌다.
이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기계적으로 달려들어, 쓰러진 후작의 목을 기어코 잘라냈다.
후작의 몸이 축 늘어졌다.
“후우….”
비로소 숨을 내쉰 이안이 검을 늘어뜨렸다.
…깨끗하게 잘라내고 싶었는데.
혀를 찬 그가 두 개로 나뉜 후작의 머리를 각각 주워드는 사이.
“나리. 벌써 끝내신 겁니까?”
헐떡이며 달려온 필립이 그의 곁에 멈춰 섰다.
교전이 있었던지 벌써 얼굴에 피가 튄 채였다.
“아직. 잃어버리지 마라. 후작의 머리니까.”
이안이 후작의 머리를 넣은 천 주머니를 내밀었다.
“가서 병사들을 도와.”
주머니를 허리에 단단히 묶은 필립이 덧붙이는 말 없이 달려 나갔다.
이제야 좀 쓸 만해졌네.
피식한 이안은, 저만치에서 달려오는 데클란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을 구하는 것에 집중해! 도란 경! 그대가 병사들을 지휘하시오! 다른 지휘관은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며 다가온 데클란이 그를 마주 보았다.
“이안, 괜찮나?”
“보다시피. 후작은 죽었소.”
“아버님께서 이러실 줄은 몰랐는데. 설마, 자네가 뭔가 했나?”
“글쎄. 영업 비밀이오.”
“그래. 그게 뭐건, 덕분에 일이 쉬워졌어.”
데클란이 성벽을 훑어보았다.
용병들이 합류하면서, 난전의 무게추가 그들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형님은 어디 계시지?”
“후작이 본모습을 드러낸 순간 도망쳤소. 내성으로 달려가던데.”
“아, 그래…? 내성엔 아버님과 형님의 수족들이 아직도 많을 텐데. 귀찮게 됐군.”
데클란의 미간이 좁아지는 가운데.
검을 고쳐 쥔 이안이 내뱉었다.
“성에 도망칠 만한 뒷문이 있소?”
“내성 옆에는 마구간으로 이어지는 쪽문이 있고, 마구간에도 바로 말을 몰고 나갈 수 있는 뒷문이 있지. …설마, 형님이 성을 포기하고 도망칠 거라고 보는 거야?”
“남아 있어 봐야 죽을 걸 알 테니까. 설명은 이쯤 하고.”
내성 쪽으로 시선을 돌린 이안이 덧붙였다.
“안내하시오. 형님의 목을 직접 베고 싶다면.”
“그렇다면 기꺼이 앞장서지.”
성벽의 정리를 끝내면 내성을 포위한 채로 대기하라고 외친 데클란이, 계단으로 달려갔다.
***
“빌어먹을…!”
벌컥, 쪽문을 박차며 뛰어나온 메이슨이 이를 갈았다.
하인들이나 오가는 길로 도망을 쳐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아버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붕대를 감은 오른 손목을 만지며 아직 소란스러운 성벽 쪽을 돌아본 그가, 이내 소리쳤다.
“빨리 움직여라! 여기서 뒈지고 싶지 않다면!”
“예, 예, 대공자!”
짐가방을 멘 채 그를 따라 나온 종자와 기사가 머리를 숙였다.
메이슨의 심복이자, 그를 통해 심연의 세례를 받은 타락자들.
그들은 메이슨의 턱짓에 재빨리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나, 나리. 이게 다 무슨… 커헉.”
겁에 질린 채 다가오던 마구간지기를 망설임 없이 찔러 버린 기사가 종자에게 손짓했다.
종자가 그들이 타고 갈 말을 꺼내러 마구로 달려갔다.
“아버님의 말로 가져와라. 오른델에서의 마지막이 이 똥 냄새나는 마구간이라니… 제기랄.”
마구간으로 들어서며 메이슨이 뿌득, 이를 갈았다.
데클란. 그 천한 놈이 성기사를 데리고 올 줄이야.
놈이 영주 자리에 앉을 것을 상상만 해도 속이 뒤집혔다.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그래 봐야 잠깐일 거다. 내가 아겔 란에 도착하면 모든 게 달라질 테니까.”
메이슨이 맹세하듯 읊조렸다.
“그 늙은 사슴도 오른델을 포기할 순 없을 테니. 병력을 내줄 수밖에 없겠지….”
야심차게 눈을 빛낸 것도 잠시.
메이슨의 미간이 다시 좁아졌다.
“뭘 꾸물대고 있는 거냐? 내 말은 어디에….”
뒤를 돌아본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가슴 한복판에 검날이 삐죽 튀어나온 기사가, 저만치에서 입을 뻐끔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폐를 꿰뚫려 신음조차 내지 못하던 그는, 검날이 쑥 빠져나가자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 뒤로 이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허억…!”
그의 새카만 눈을 마주한 제이슨이 숨을 들이켰다.
아랑곳 않고 쓰러진 기사의 목을 힘껏 내리쳐 잘라 버린 이안이, 비로소 미소 지었다.
“방금 한 얘기, 다시 듣고 싶은데.”
“네, 네놈, 언제……!”
메이슨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의 시선이 마구간을 황망하게 훑었다.
불안하게 콧김을 뿜어 대는 말들.
그리고 마구 앞, 기둥에 기대듯 주저앉아 있는 종자.
“그렇게 보셔도 도와주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형님.”
기둥 옆으로 모습을 드러낸 데클란이, 종자의 목을 후려치듯 잘랐다.
잘린 머리가 굴러갔다.
미간에 깊숙이 박혀, 자루만 보이는 단검.
“데, 데클란, 이 배은망덕한 놈!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그러는 형님은, 신을 저버리시고도 무사할 줄 아셨습니까?”
툭, 메이슨의 등이 마구간의 뒷문에 닿았다.
그의 시선이 빗장으로 향한 순간.
“안 그러는 게 좋을 거야. 남은 왼손이라도 지키고 싶다면.”
느긋하게 다가오던 이안이 말했다.
모멸감에 이를 간 메이슨이, 왼손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웃기지 마라! 나도 두 번 당할 생각은 없으니!”
“부전자전이란 말이 딱이군.”
이안이 입꼬리를 당겼다.
“네 아비도 본 모습을 드러낼 시간에 나불대다가 죽었거든.”
“뭐… 라고…?!”
메이슨의 눈에 핏발이 돋았다.
이안이 그를 향해 쇄도한 건 그 직후였다.
채앵-!
메이슨이 그의 검을 막았다.
왼손으로도 상당히 능숙한 움직임.
이안의 미소가 짙어졌다.
“하는 짓도 똑같군.”
퍼엉.
소리 없는 폭발이 일었다.
메이슨의 검이 튕겨 나가고, 육편이 흩날렸다.
“아, 아아악-! 내 손! 내 손이!”
양손을 다 잃은 메이슨이 울부짖었다.
이안이 비웃듯 덧붙였다.
“그러니까 진작 변신했어야지. 난 너희처럼 되다 만 것들은,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힘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거든.”
물론, 변이하는 걸 기다려 줄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지만.
콰직!
입술만 올려 미소 지은 이안이 메이슨의 한쪽 발목을 내리쳤다.
“아아악-! 아악!”
메이슨이 바닥을 굴렀다.
변이할 수 없도록 계속 고통을 줄 생각이었다.
푹, 메이슨의 반대쪽 허벅지에 검날이 박혔다.
발작하듯 몸을 떠는 메이슨의 머리채를 움켜쥔 이안이 말했다.
“맘 같아선 내 손으로 목을 날리고 싶지만. 묻는 말에 솔직하게만 대답하면 참아주지.”
“뭐, 뭐가 듣고 싶은 거냐…?”
“늙은 사슴이, 누구지?”
“그, 그건… 아으윽-!”
이안이 검을 비틀자, 주저하던 메이슨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안의 눈길에는 일말의 온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원하는 답을 끌어낼 생각뿐.
게다가 늙은 사슴이라는 말은,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안돌프… 그냥 헛소릴 한 게 아니었구만.’
저주받은 안돌프. 그가 유언으로 남긴 말도 그것이었으니까.
이제야 그게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남은 건 그 이름을 직접 듣는 것뿐.
“아겔 란의 귀족 같던데. 한 번 더 묻게 하면 허벅지를 자를 거다. 늙은 사슴이 누구지?”
“브란트 공작…!”
메이슨이 토하듯 내뱉었다.
이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브란트면, 왕족일 텐데?”
“그래…! 레지스 브란트. 나와 아버지는 그를 섬긴다….”
“그가 늙은 사슴이고?”
메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원하던 이름이 나왔으니까.
레지스에게 그런 별칭이 있다는 것까진 몰랐지만.
“레지스 브란트? 폐하의 작은아버지이자 왕국의 발이라 불리는 그 브란트 공작이, 타락자란 겁니까?”
데클란이 놀란 듯 물었다.
메이슨이 킬킬댔다.
“그러니 왕국을 손에 넣으신 거지. 왕은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다. 그저 우리가 내는 세금과 정보만 받아먹으며, 그 어떤 전쟁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병시… 읍.”
이안이 메이슨의 턱을 움켜쥐었다.
“제보 고맙군. 이제 그 혀는 필요 없겠어.”
“……?!”
메이슨의 눈이 커지는 가운데, 데클란이 이안의 곁에 주저앉았다.
“이안.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말씀하시오.”
“형님의 혀도 내게 양보해 주게.”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
“……!”
메이슨이 말이 다르지 않냐는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이 어깨를 까딱였다.
“약속대로, 나는 참고 있잖아? 네 아우가 참지 않을 뿐이지.”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읍…!”
데클란이 메이슨의 턱을 콱 움켜쥐었다.
“제가 얼마나 오늘을 기다렸는지 모르실 겁니다, 형님.”
메이슨의 공포에 질린 눈을 응시하면서, 그가 미소 지었다.
“형님이 저와 어머니가 사는 집에 독을 탄 음식을 보낸 그 날부터니까. 벌써 몇 년이나 됐군요.”
“……!”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아버님이 선물을 보내셨다며 좋아하셨죠.”
좋은 추억을 이야기하듯 조곤조곤한 말투.
하지만 메이슨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제가 음식을 먹지 못하게 몸을 던져 막으셨습니다. 입에 피거품을 물면서도요. 나중에 보니 혀를 깨무셨더군요. 거의 끊어질 만큼. 절 살리려고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데클란이 단검을 메이슨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형님께도 어머니가 느끼셨을 고통을 꼭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려던 메이슨의 노력은, 이안이 허벅지에 찌른 검을 가볍게 비튼 것만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손과 발, 혀가 잘린 채 끌려 나온 메이슨 버차드는, 그의 타락한 본 모습을 드러낼 기회도 가지지 못한 채 목이 잘렸다.
내성 안팎의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운 오른델의 영주인, 데클란 버차드의 손에 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