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398
398화
“침입자…?”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디아나가 선선히 말을 이었다.
“도시나 둥지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러니, 이곳에서 그런 변이된 작물들도 키울 수 있는 거고.”
“역시 그런가….”
한숨 쉬듯 읊조린 이안이, 술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전부 들이켰다. 곧바로 잔을 내려놓은 그가, 자신이 독주를 마신 듯 눈매를 일그러뜨리고 있는 디아나를 일별했다.
“따라와. 직접 확인해야겠으니까.”
“어딜…?”
대답하는 대신 곧바로 몸을 돌린 이안이, 벽에 기대 두었던 진은 강철검의 검집을 집어 들고는 그대로 문으로 향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뒤따라가면서도, 디아나가 다시 한번 덧붙였다.
“이안. 뭘 확인한단 거야? 어딜 가는 건데…?”
걸음을 옮기며 검집을 허리에 찬 이안이, 곧바로 계단으로 들어서며 내뱉었다.
“우리가 들어왔던 수로 출입구. 아마도.”
“…아마도?”
“그래. 침입자가 있다.”
“……?”
가뜩이나 가늘어져 있던 가면 너머의 눈매가 더 가늘어졌다. 디아나의 늪색 눈동자가 절로 지하 도시 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도시의 전경은 여느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안의 뒤로 더 가까이 따라붙으며, 그녀가 속삭였다.
“이 거리에서, 침입자의 존재를 느꼈다고?”
“알겠지만, 내가 감이 좋은 편이거든.”
이안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내뱉었다. 오히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을 더 빨리하는 채였다.
물론, 말한 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 이제 확실히 느껴지는군. 익숙한 향인데.
잠에서 불현듯 깨어난 요그가, 냄새가 난다며 그에게만 속삭인 것이다. 이안의 육감이 작동했던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이안은 곧바로 통로로 이어진 길로 접어들었다. 디아나도 더는 묻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오른손으로는 어느새 소검의 자루를 손날 방향으로 슬쩍 움켜쥔 채였다.
타타탓….
통로로 접어든 이안은 거의 발소리를 내지 않고 빠르게 오르막을 나아갔다. 이내 코끝으로 흐릿한 비린내가 스쳤다.
“피…?”
디아나가 뒤늦게 입술만 달싹여 읊조릴 찰나, 이안의 발걸음이 거의 달리듯이 빨라졌다.
타탓-!
다소 낮은 출구를 박찬 그가 그대로 솟구쳤다. 딱 맞게 제작된 검집에서 단숨에 검을 뽑아 드는 채였다.
동시에 석실의 전경이 그의 눈동자에 새겨졌다.
콰직, 콰직-
좌우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난쟁이 보초들. 그리고 좌측 난쟁이의 머리에 소검을 내리치고 있는 침입자. 그리고 반대편의 또 다른 침입자는, 벽면에 튀어나온 손잡이를 손에 쥔 단검의 무게추로 망치질하듯 후려치고 있었다.
“……!”
뒤늦게 기척을 느낀 듯, 두 침입자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푸르스름하게 일렁이는 안광.
서걱-!
그리고 난쟁이를 후려치던 침입자의 머리 한복판을 새하얀 궤적이 훑고 지나갔다.
광대뼈부터 가로로 잘려나간 머리 윗부분이 핑그르르 돌며 솟구쳤다. 잘린 단면에서 끈적한 검은 피와 잘린 뇌가 흩날려 석실의 벽면을 더럽혔다.
콰작-
이안이 왼쪽 어깨로 아치형 문이 돋아난 장벽을 들이받는 사이.
퍼석-!
광대 아래만 남은 침입자의 머리에서 청록색 빛이 번쩍였다. 놈의 몸이 짚단처럼 널브러졌다.
쒸아악-!
벽면의 손잡이를 후려치던 놈이, 착지하는 이안을 향해 단검을 내리친 건 거의 동시였다. 청록색 안광이 긴 선을 그리려는 찰나.
콰직-
놈의 고개가 옆으로 튕겨 나가듯 기울어졌다. 관자놀이에 거무스름한 비수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
뒤따라 들어온 디아나가 반사적으로 단검을 던진 것이다. 침입자의 자세가 순간 무너졌다. 이안이 검을 다시 휘두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걱-!
새하얀 궤적이 침입자의 목을 날리고 장벽에 틀어박혔다. 머리를 잃은 몸통이 맥없이 허물어졌다. 이번에도 잘린 단면에서는 피가 거의 솟지 않았다.
이안이 벽면에 살짝 박혔던 칼끝을 뽑았다. 진언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 건, 그가 침입자가 아니기 때문일 터였다.
“이런….”
바닥에서 쉭쉭, 숨소리만 내뱉는 듯한 목소리가 번진 건 직후였다.
잘려나가 바닥에 떨어진 머리에 여전히 청록색 안광이 일렁였다.
관자놀이에 박힌 비수 덕에 멈춰선 머리가, 이안을 바라보며 입을 달싹였다.
“왜 죽나 했더니. 벌써 들켰을 줄이야…. 재미있는데…?”
숨만 내쉬며 말하는 듯한 목소리인 건 성대가 잘렸기 때문일 터였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디아나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마르코?”
눈동자가 디아나를 보려는 듯 옆으로 돌아갔다. 굳어져 있던 입가에 인위적인 미소가 번졌다.
“반가워. 그럼, 전해 주겠니 주민아? 우리가-”
콰직!
말이 끝나기도 전에, 떨어져 내린 새하얀 칼날이 놈의 머리를 수박처럼 반으로 갈라버렸다. 잘린 단면에서 청록색 마력이 번쩍이며 흩어졌다.
“이놈, 혹시 올빼미냐?”
이안이 다시 검을 치켜들며 물었다. 디아나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랑 같이 나갔… 이런, 시발…!”
그제야 쓰러진 난쟁이들에게 생각이 미친 듯, 디아나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녀가 끔찍하게 난자당한 난쟁이를 내려다보는 사이.
“…….”
활짝 열린 출입문 쪽으로 몸을 돌린 이안이, 자세를 굽힌 채로 그 너머의 계단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막 같은 빛이 번져 일렁였다.
“이봐. 반 토막. 정신이 들어? 이봐…!”
디아나는 쇄골 윗부분에 단검이 깊숙이 박힌 우측의 난쟁이에게 다가가 내뱉었다. 아직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꺼풀을 파르르 떨던 난쟁이가, 이윽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빨리… 가서… 알… 귀쟁….”
난쟁이의 입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계단 너머를 응시하던 이안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내뱉은 건 거의 동시였다.
“도시로 들어오는 출입구가 몇 개나 되지?”
“사용하는 건 총 세…. 설마.”
가라앉은 눈으로 난쟁이를 응시하며 대답하던 디아나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비로소 고개를 돌린 이안이, 검을 들어 도시 쪽 통로를 가리켰다.
“가서 모든 출입문으로 곰을 파견하라고 해. 당장. 최소 둘 이상. 돌아온 놈들은 전부 유랑단의 하수인이다.”
“대체 어떻게…?”
숨을 멈췄던 디아나가 간신히 내뱉었다.
“영혼은 죽음과 함께 육체를 떠나고, 남는 건 고작해야-”
“지금은 호기심을 참을 때야. 놈들이 문을 통제하는 손잡이를 부숴 버리기 전에, 빨리.”
이안이 벽면의 반파된 돌 손잡이를 올려다보며 내뱉었다.
“……!”
그제야 손잡이가 부서졌다는 것을 깨달은 디아나가, 더 덧붙이는 말 없이 득달같이 몸을 돌렸다.
타타탓-!
낮은 자세로 내달리는 그녀의 뒷모습이 삽시에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일별하며, 이안이 심드렁하게 생각했다.
‘저 녀석, 흑마법에도 조예가 있었나?’
디아나의 의문은 틀리지 않았다.
사령술은 시신에 남은 잔류 사념이나 원혼, 망령을 부려 망자를 되살려냈으니까.
그렇게 되살아난 망자들은 아주 단편적인 기억만을 지니고 있었다.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랬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북부를 배회하는 망자들처럼 본능만 남은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다.
‘역시… 재미로 함정 같은 귀찮은 짓거릴 꾸민 게 아니었네.’
하지만 어쨌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체들은 비교적 커다란 기억의 조각을 지니고 있었다.
생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되살리다 보면 거점의 위치를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는 존재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날 사로잡으려 한 것도 그래서였겠고.’
생각하며 일어선 이안이, 벽면의 손잡이로 다가갔다.
손아귀 가득 움켜쥐어야 하는 기다란 손잡이는, 반 정도밖에 남지 않은 채였다. 적어도 진언 회로가 새겨져 있지 않은 건 분명했다.
철컥. 이안이 손잡이를 붙잡고 위로 당기는 사이.
-드디어 이 지루한 평화가 끝나겠군. 기대되는데….
아까부터 그의 뇌리를 간지럽히던 요그가 또다시 키득댔다. 이안이 싸늘한 얼굴로 읊조렸다.
“내 생존이 최우선 사명이라는 새끼가….”
쿠구구구, 좌우의 벽면이 다시 모여들면서 뚫려있던 출입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저 재미있어서만이 아니라고. 네가 싸울수록, 내 영혼이 점점 더 온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
이어지는 속삭임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이안이 발치의 난쟁이 쪽으로 몸을 숙였다.
“…….”
이내 그가 멈칫했다.
난쟁이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디아나에게 내뱉었던 말이 그의 유언이었다. 짧게 혀를 찬 이안은, 곧 그의 얼굴이 낯이 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찾아왔던 난쟁이 장인 중 하나였다. 아마, 뒤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난도질 된 다른 난쟁이도 마찬가지이리라.
“갑옷은 걸쳐야 한다니까….”
씁쓸하게 읊조린 그가, 손을 뻗어 난쟁이의 쇄골에 박혀 있던 단검을 단숨에 뽑아 들었다. 검붉은 핏물이 단검 날을 타고 흘렀다.
이안은 곧바로 반대편의 통로로 몸을 돌렸다. 왼손에 난쟁이의 피가 묻은 단검을 꾹 움켜쥔 채였다.
***
드라그 벨가의 분위기는 짧은 시간 사이에 뒤숭숭하게 달라져 있었다.
“문제라도 생긴 건가…? 뭐지?”
“엄마, 무슨 일이에요?”
“…나도 아직 모른단다.”
주민들이 두리번대며 거리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아나가 꽤 떠들썩하게 뛰어다닌 모양이었다. 하긴 본인의 안위가 달리기도 했으니 당연한 부분인지도 몰랐다.
“피…?”
“저 칼은… 대체….”
이안은 재빨리 인파 사이를 가로질러 계단으로 향했다.
주민들은 선선히 길을 터 주면서도,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보며 멈칫했다. 왼손의 피 묻은 단검이 특히 눈에 띌 터였다.
-이 혼란… 이 두려움…. 그래… 이제 정말 재미있군….
요그의 속삭임을 무시하며, 이안은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디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곰, 그러니까 경비병들에게 상황을 전하고는 곧바로 내성으로 달려갔을 터였다.
“뭐, 침입자라고…? 뭔데?”
“비켜 봐 이 앞뒤 꽉 막힌 어금니들아. 지금 거의 다 우리 동족들이 근무 중이라고…!”
반대편 공방 쪽에서도, 어느새 난쟁이 장인들이 우글우글 몰려 내려오고 있었다.
미리 다 내려온 난쟁이들은, 냇물 상류 쪽을 막고 선 오크 경비병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상황 확인이 끝날 때까진 물러나 있으시오. 그게 원칙이니.”
오크 경비병은 난쟁이들의 성화에도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그저 도끼 창을 세워 든 채, 난쟁이들의 앞을 가로막고 툭툭 밀어낼 뿐이었다.
이내 다가오는 이안을 발견한 오크가 샛노란 눈을 빛내며 내뱉었다.
“물러나 계십시오. 이안 경. 지금 이곳은-”
“디아나를 보낸 게 나야. 이쪽의 상황을 알아야겠어.”
“…….”
이안의 대답에 오크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앞에 모인 난쟁이 장인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지금 저 길쭉이 형씨는 통과시켜주고 우리는 안 된단 거야?”
“이런 모루로 때려죽일…! 지금 우리 땅딸보들이 죄다….”
난쟁이들의 목소리가 이내 잦아들었다. 이안이 곧바로 지하수가 흘러드는 동굴 통로로 향하지 않고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였다.
“수로 출입구 쪽으로 빨리 가.”
피 묻은 단검을 앞으로 내밀면서.
“장인 둘의 시신을 수습해 와야 하니까.”
“이런… 시벌… 핀들과 헤밋이…?”
“안 돼… 형님…!”
숨을 헐떡인 난쟁이 몇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붉은 수염 코르보와 그의 단짝 친구인 곱슬 수염 렝리에게로 시선을 돌린 이안이 이내 덧붙였다.
“내 갑옷을 가져와. 당장 입어야겠으니까.”
“재조립만 간신히 해 뒀지만… 잠시만 기다리시오…!”
서로 눈빛을 교환한 두 난쟁이가 공방 쪽으로 달려갔다.
“기다려. 다녀올 테니까.”
남은 난쟁이들에게 덧붙인 이안이 오크들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채 열 걸음도 지나지 않아 멈췄다.
철벅- 철벅-
동굴의 어둠 너머에서 오크 경비병 하나와 인간 경비병 둘이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들을 확인한 이안의 미간이 설핏 좁아졌다. 오크가 한 손에 쥔 도끼 창과 인간 한 명이 양손에 쥔 두 개의 창에 피가 묻어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아서였다.
게다가 다른 인간은 양손에, 그리고 오크는 한 손에 축 늘어진 작은 뭔가를 안아 들고 있었다.
“이런… 시벌….”
“제기랄… 핀들리….”
그게 난쟁이 보초들의 시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뒤편의 난쟁이들 사이에서 탄식이 번졌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오크를 마주 보며 이안이 내뱉었다.
“침입자. 죽였나?”
“그렇소.”
“눈이 청록색으로 빛나고, 올빼미였고. 이미 죽은 상태였고?”
“예. 이안 경.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망자였습니다….”
대답한 건 옆의 인간 경비병이었다. 뒤에서 난쟁이들의 탄식이 곧바로 이어졌다.
“유랑단…! 이런 시부럴, 이곳에 오기 전에 카르미엘, 그 용광로에 태워죽일 새끼의 골통을 깨 버렸어야 했는데…!”
“그놈들이 여길 어떻게 알았지?”
“올빼미들이 나갔던 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 응?”
내뱉던 그들의 목소리가 다시 삽시에 사그라들었다.
다가온 오크가, 그들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왼손에 안고 있던 시신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유감이오.”
“…유감입니다.”
다른 인간 경비병도 양손에 안고 있던 시신을 앞으로 내밀었다. 두 시신 다, 보기에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얼굴과 목, 가슴 곳곳에 칼로 난도질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으니까.
“고맙소.”
하지만 난쟁이들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시신을 받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난쟁이들 여럿의 손이 시신을 받쳤다.
지금만큼은 오크와의 관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뒤이어 몸을 돌린 난쟁이들이 도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엄숙한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이안이, 이내 다시 경비병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출입문은, 다시 닫았고?”
“예. 다 부수진 못했더군요.”
오크가 평소보다 더 굵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늘 그렇듯 험악하고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노란 눈동자에 분노가 묻어나오는 것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역시….”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랑단의 방식은 단순하지만 효율적이었다. 하수인으로 만든 거점의 일원들을 돌려보내, 거점이 스스로 입구를 열게 만드는 것이다.
놈들이 보초를 죽이고 통로를 열어 두는 데에 성공하면, 기다리고 있던 본대가 합류해 도시를 침공하는 전략인 게 분명했다. 물론, 본대 역시 그렇게까지 먼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수로 입구로 흘러드는 공기에, 놈들의 혼돈이 아주 옅게 흘러들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계획이 성공하기 전에 저지당했으니, 우르르 몰려들거나 물러날 터였다.
‘후자면 좋겠지만….’
생각하며, 이안이 입을 열었다.
“입구가 하나 더 있다던데.”
“저 위쪽입니다.”
오크들이 동시에 세 번째 층을 가리켰다. 이안이 들어온 수로 입구의 정 반대편에, 또 하나의 통로가 뚫려있었다.
그 아래, 식당에서 우르르 나오고 있는 인파들을 눈에 담은 이안이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
서로를 돌아본 오크와 인간 경비병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를 따라 함께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