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4
414화
“…됐어.”
잠시 고민한 이안이, 이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말이라고 부르면 돼.”
“왜요…? 혹시, 마수라서 마음에 안 드시는 거예요?”
루시아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뼈를 씹어 먹던 흑마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대화를 다 알아들은 것처럼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런 건 아니고.”
뭘 또 쳐다보기까지.
속으로만 덧붙이며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이안이, 아직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루시아를 슬쩍 일별하고는 덧붙였다.
“나중에. 몇 번 싸우고도 살아남으면, 그때.”
“…아.”
눈을 끔뻑인 루시아의 얼굴에 비로소 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 반대였군요…. 정이 들까 봐 걱정하셨던 거예요. 맞죠?”
“…….”
하여간, 눈치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흑마를 바라보며, 이안이 낮게 콧방귀를 흘렸다.
가면을 목에 건 채 육포를 우물대던 디아나가 해괴한 말을 들었다는 듯 미간을 좁힌 건 그때였다.
“정이 들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중얼대던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안이 조금 싸늘해진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가 말이 안 되는데.”
이윽고 그가 툭 덧붙인 말에, 딴청을 피우듯 시선을 돌렸던 디아나가 웅얼댔다.
“너 같은 영웅이… 그런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네가 냉혈한이라는 얘기는 아니야. 이안 호프.”
정확히 그 얘기인 것 같은데.
혀를 차며 술병의 마개를 닫은 이안이 안장 아래로 내려왔다.
디아나 같은 반응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사실, 아예 오해인 것도 아니었다. 물론 영웅이라는 부분은 빼고.
“대충 먹고 눈들 붙여.”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루시아가 술병을 받아드는 가운데, 녀석의 옆에 대충 걸터앉은 이안이 덧붙였다.
“먹는 건 가면서도 할 수 있지만, 자는 건 아니니까.”
루시아는 물론, 여전히 딴청을 피우던 디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들은 참 잘해.
속으로만 읊조리며, 이안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곧바로 명상을 활성화하는 채였다.
격렬한 전투라도 치렀다면 모를까. 체력이 일정 수준을 넘기고부터, 그는 마음대로 잠들 수도 없게 됐다. 잠을 자기 위해선 강제로 의식을 가라앉혀야 했다.
오감이 아스라이 흩어지고, 고요한 무의식의 어둠이 내려앉는 지금처럼.
물론, 그렇다고 의식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냄새가 나는데, 친구.
이런 작은 속삭임만으로도, 삽시에 모든 감각이 다시 또렷해졌으니까.
“…무슨 냄새.”
입술만 달싹이며 눈을 뜬 이안이, 반사적으로 주위부터 살폈다.
두건 망토 위에 모포를 덮은 루시아와 굽힌 무릎에 팔을 괸 디아나는, 여전히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글쎄… 적어도 인간은 아니야. 혼돈과 광기의 맛이 나는군.
요그의 느긋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루시아가 깨어나지 않는 걸 보니, 그에게만 속삭이는 게 분명했다.
-다른 녀석들의 냄새가 워낙 많이 섞여 있어서, 정확하진 않아. 워낙 흐릿하기도 하고.
소리 없이 상반신을 일으킨 이안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매연 같은 흐릿한 안개에 휩싸인 어둠. 하나둘씩 깨어나고 있는 늑대들. 느긋한 발굽 소리. 발텐 경이 무리를 돌며 그들을 깨우고 있었다.
“…난 아예 모르겠는데.”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그의 감각은 이 마경에서 평소의 절반도 채 발휘되지 않았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오, 다른 냄새가 완전히 가려버리는군. 그 사자인가 하는 재미 없는 놈인가?
요그가 무책임하게 덧붙였다.
녀석의 말대로, 늑대들을 지나친 발텐 경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늘 그렇듯 전신 판금 갑옷을 완벽하게 착용하고, 마갑과 융합된 마수 전마에 올라탄 채였다.
안장에 가로로 길게 걸쳐둔 새카만 장창이 눈에 띄었다.
모든 신경이 그의 존재감으로만 쏠리는 것을 느낀 이안이 차분히 숨을 고를 찰나.
“피곤하실 텐데, 일찍 일어나셨군요. 성자 대행.”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선 발텐이 내뱉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저주파가 섞인 건 여전했다.
“……!”
루시아와 디아나를 화들짝 깨어나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퍼뜩 고개를 든 둘이 잠이 덜 깬 눈으로 주위를 살피는 가운데, 완전히 일어선 이안이 망토 자락을 뒤로 젖히며 내뱉었다.
“눈이 떠지더군.”
“저희가 너무 시끄럽게 한 모양입니다.”
“그렇진 않았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던데. 맞소?”
“예. 이 구릉 지대만 지나가면 금방입니다. 못 보던 균열이 생긴 게 아니라면, 중간에 한 번만 더 쉬면 될 겁니다.”
“혹시 이 근방에, 다른 위험한 요소는 없소?”
“예…?”
이안이 툭 덧붙인 말에, 발텐 경의 노란 안광이 설핏 가늘어졌다.
“다른 위험 요소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묻는 말이오. …하늘도 저 모양이고.”
이안이 검지로 슬쩍 위를 가리키자, 다시 한번 멈칫한 발텐이 탄식했다.
“…성자 대행께서도 혼돈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으시군요.”
“눈이 좋은 편이라서. 저것 때문에 더 서두르시는 게 아니었소?”
“이곳이 대마족들의 세력권 인근인 건 사실입니다만. 이 근처에 놈들의 세력이 발을 들이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늑대들이 자주 오가는 지역이라, 자리 잡기 전에 뿌리를 뽑아 버립니다.”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는 말씀이시군.”
“혹시 뭔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자 대행과 일행분들을 안전하게 모시는 게 제 임무니까요. 여러분들은 지금처럼 후방만 지켜주십시오.”
“…뭐, 그러겠소.”
이안은 더 덧붙이는 말 없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를 바라본 발텐이 이내 말머리를 돌렸다.
“그럼,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멀어지자, 이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돌렸다.
“들었지? 움직일 준비 하자.”
가면을 고쳐 쓴 디아나와 수통을 들고 목을 축이고 있던 루시아가 고개만 끄덕였다. 둘 다 피로가 다 풀리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흠… 그 사이에 사라졌군.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진 건, 이안이 흑마의 안장에 올라탄 직후였다. 흑마는 어제 먹다 남은 뼛조각을 오독오독 씹어먹고 있었다.
“아예?”
루시아가 건네준 보관함을 아공간에 넣으며, 이안이 되물었다.
-그래.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는 놈들이었는지도. 지금까지처럼.
“…지금까지처럼?”
-사실, 지난 며칠간 종종 다른 것들의 냄새가 났었거든.
이안의 눈썹이 절로 내려앉았다.
“그런데도 한 번도 안 알려 줬다는 거네.”
낮게 웃음 지은 요그가 대답했다.
-오늘처럼 오래 머물지 않고 도망쳤으니까. 사실, 조용히 지켜봐야 재미있어질 것 같기도 했고.
그놈의 재미는, 진짜.
혀를 찬 이안이 덧붙였다.
“…이제부터는 빠짐없이 보고해. 네 친구들을 만나서 반성하고 싶지 않으면.”
-기꺼이 그러지.
요그가 대답하는 가운데, 루시아가 안장 뒤로 올라탔다. 얼굴 절반을 철 가면으로 가린 채였다. 늑대들과 마찬가지로 옅은 아지랑이를 뿜으며, 녀석이 속삭였다.
“무슨 얘기를 나누시는 거예요?”
“훔쳐보던 놈들이 있었어, 지금은 사라졌고.”
“아하… 그리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군요. 이해했어요.”
고개를 끄덕인 루시아가 두건을 눌러 쓰는 사이, 옆에서 디아나의 잠긴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정도 숫자의 늑대들을 공격할 만큼 간 큰 놈들은 거의 없어. 전에도 말했지만, 여기선 은밀하고 신중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아닌 척 다 엿듣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손에 쥔 고삐를 흔들며,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그럴지, 어디 두고 보자고.”
벌떡 일어선 흑마가 방향을 틀었다. 늑대들은 이미 떠날 채비를 끝내고 마차를 중심으로 대열을 갖추는 중이었다.
두건을 깊이 눌러쓴 디아나가 옆으로 따라붙은 건 건, 늑대들이 행군을 시작한 것과 거의 동시였다.
곧 관문 초소의 잔해가 멀어졌다.
휘오오….
거뭇한 흙과 자갈. 크고 작은 바위가 가득한 검은 황무지가 이어졌다. 매연처럼 거무스름한 안개가 흐릿하게 일렁이고, 우측으로는 바위산이 완만한 둔덕을 그리며 이어졌다. 좌측은 앞과 마찬가지로 검은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다.
‘구릉 지대라더니….’
늘 그랬듯 늑대 무리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가면서, 이안은 때때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여전히 온갖 색이 뒤섞여 밀려들고 있었다.
드라그 벨가를 떠나기 전 종종 보았던 환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흉성처럼 빛나던 온갖 빛들. 그리고 서로를 향해 넘실대며 번지던 빛무리.
-약속대로 말하는데.
요그의 속삭임이 번진 건,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뒤였다.
-또 냄새가 나. 이번에도 아주 옅지만.
이안은 뒤에 앉은 루시아가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녀석에게도 속삭임이 들리는 게 분명했다.
“아까랑 똑같냐?”
-비슷한 것 같은… 아니. 모르겠군.
멈칫한 요그가 낮게 덧붙이고는 킥킥댔다.
이안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 새끼가 진짜….”
-거짓말이 아니야. 그런 것 같았는데, 이젠 모르겠어. 다른 냄새가 잔뜩 섞이기 시작했거든.
“잔뜩… 이라고요?”
되물은 건 루시아였다. 요그의 기대 섞인 속삭임이 번졌다.
-그래. 아주 많은 것 같은데.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어.
“어디서.”
-왼쪽.
이안과 루시아의 고개가 거의 동시에 좌측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건 흐릿하게 일렁이는 안개뿐이었다. 밀도가 낮아서 꽤 멀리까지 분간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흐릿한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다.
“…왜들 그러는 거야?”
디아나의 목소리가 이어진 건 그때였다. 늘 모른 척하던 것과 달리, 지금 그녀는 이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리라.
이안이 어둠 너머를 빤히 응시하며 내뱉었다.
“아무래도, 간 큰 놈들이 있는 모양인데.”
“……!”
“가서 발텐 경에게 알리고 와. 좌측에서 뭔가 오고 있다고.”
디아나가 더 덧붙이는 말 없이 몸을 날렸다. 무기력하게 터덜대는 게 아니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정말 지켜만 보실 거예요?”
루시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철컥대는 소리가 번지는 걸 보니, 장비들을 재조정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일단은.”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히케드를 만나기 전에 한 번쯤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흑사자와 늑대들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저들이 싸워도, 그에게 경험치가 들어오는지도.
“상황이 안 좋아지면, 너는 짐 마차에 타. 뼈를 싣고 가던 마차가 거의 비어있던데.”
“제가 뒤에서 이안 님을 보조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넌 디아나를 지켜야지. 백작과 약속 했잖아. 너랑 나는 지금 한 몸이나 다름없고.”
“…알았어요. 정말 위험하면, 마법도 쓸게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때, 늑대 무리 쪽이 분주해졌다.
선두에서부터 좌측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이다. 발텐이 디아나의 말을 믿어 준 모양이었다.
그들 쪽을 돌아보던 루시아가 덧붙였다.
“…아무래도 정면으로 맞부딪치려는 모양이에요.”
기마병들이니 당연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짐 마차를 이끌고 다니는 만큼 전력으로 돌진할 수는 없겠지만. 측면이나 후면에서 적들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그런 생각들을 무의식중에 이어나가면서도, 이안은 여전히 늑대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
그의 시선은 저 너머,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실루엣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기마병들이 달려오는 듯한 형상.
그것들의 뒤편으로 우글대는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가운데, 비로소 가늘게 뜬 이안의 눈매가 꿈틀댔다.
‘켄타우로스…?’
기마병처럼 보이던 것들이, 말에 탄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물론 그가 알던 신화 속의 존재와는 전혀 다른 놈들일 터였다.
저것들은 마수화된 전마의 몸통에 타락자의 상반신을 박아 놓은 듯한 몰골이었으니까.
‘…어쨌든 반인반마긴 하다만.’
때때로 뒤를 돌아보는 두 놈을 바라보며 이안이 혀를 차는 사이, 루시아의 나지막한 탄식이 번졌다.
“세상에….”
우글대며 놈들을 뒤따르는 어둠의 실체도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갖 종류의 변이된 마물들. 벽을 넘어 침공해 오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거, 진짜….”
하지만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간 건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별 개 같은 짓거리를 다 하네.”
멍하니 마물들을 바라보던 루시아가 그의 뒤통수를 올려다보았다.
“…개 같은 짓거리요?”
“저것들. 한 편이 아니야.”
이안이 때마침 다시 뒤를 돌아보는 반인반마를 눈에 담았다. 손톱보다 조금 큰 정도로 보였지만, 놈이 마물들을 향해 손에 쥔 각궁을 발사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분간할 수 있었다.
“아니라고요…? 그럼 무슨….”
미간을 찌푸린 채 같은 곳을 바라본 것도 잠시.
“…설마, 저 마물들을 이쪽으로 유인하고 있는 거예요?”
루시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마도.”
대체 저 많은 것들을 어디서 몰고 온 건진 모르겠지만.
-아까도 그냥 도망친 게 아니었던 거군. 재미있는 짓을 하는데….
…너한텐 그렇겠지.
생각하며, 이안은 짧게 입맛을 다셨다. 물론 그에게도 꽤 놀라운 광경이긴 했다. 마물들 중에 저런 전술을 구사하는 놈들이 있다니.
“이중 쐐기 대형으로-!”
발텐의 저주파 섞인 고함이 대기를 울렸다. 달려온 디아나가 미끄러지듯 나뒹굴며 근처에서 멈춰선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이런, 시발…!”
나지막한 욕설과 함께 일어선 그녀가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빨리 후미로 합류하자 이안. 저 미친 식인종 새끼들이, 여기서 웬 수인 똥 같은 짓거리를 벌이고 있었어…!”
산개하기 시작한 늑대들을 일별한 이안이, 다시 디아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는 놈들이냐?”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인간 고기를 즐겨 먹는 도적놈들이 있다고. 그게 저 말박이 새끼들이야.”
루시아의 눈이 커졌다.
“저게 타락자였다고요? 마물이 아니라…?”
“그래. 소문대로라면. 게다가 저 짓거리가 처음도 아닌 것 같아. 이미 재미를 좀 본 모양이지. 유랑단도 그러더니… 드디어 죄다 광기에 먹혀 버린 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읊조리는 디아나와 달리, 이안의 입가에는 옅은 실소가 번지고 있었다.
“타락한 도적 떼라…. 이제야 차라리 이해가 되네.”
읊조린 그가 자연스럽게 말머리를 좌측으로 틀었다.
달려오는 마물들의 모습이, 늘어선 늑대들에게 가려져 잘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와….”
루시아의 낮은 탄성이 번졌다.
짐 마차를 등진 늑대들은, 화살촉 같은 두 겹의 진형을 구축한 상태였다.
앞 열과 뒷 열의 인원이 교차하듯 번갈아 위치해서, 시야는 물론 병장기를 휘두를 공간도 충분하게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느슨해 보이지 않는 건, 모두가 적절한 거리를 정확하게 유지하고 있어서일 터였다.
“…우리는 뒤에 있으라더군. 절대 대열을 벗어나지 말고.”
마물들의 발소리와 고함이 대기를 타고 번지기 시작한 가운데, 디아나가 조바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안이 뛰쳐나가기라도 할까 걱정되는 눈빛이었다.
물론 이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걱정마. 후미를 지킬 거니까.”
나란히 선 마차들의 뒤로 따라붙으며 대답하던 이안이,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쉬아아아-
늑대들의 주위로 마력이 번지더니, 삽시에 흙먼지 섞인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해서였다.
다들 비슷한 마법 무구를 착용 중인 게 분명했다. 뒤이어 늑대들이 늘어뜨리고 있던 도끼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합을 맞춘 것처럼 딱 맞는, 절도 있는 움직임이었다.
화살촉의 첨단에 선 흑기사, 발텐이 장창을 치켜든 건 그때였다.
솨아아-
어느새 그의 전신에서는 어둠이 넘실대며 번져 나오고 있었다. 중심부는 검었지만, 가장자리는 검푸르게 보이기도 했다.
‘저 색은…?’
이안의 눈매가 설핏 가늘어지는 사이. 장창을 깃발처럼 치켜든 발텐이 포효했다.
“태자 전하를-! 위하여-!”
동시에 그의 장창에서 터져 나온 어둠이, 뒤따르는 늑대들에게로 삽시에 번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