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6
416화
‘마적단의 우두머리라….’
대장만 조지면 된단 거지.
내심 읊조리며 퀘스트 창을 닫은 이안이, 뿌연 어둠 너머를 눈에 담았다.
‘다시 보니 도적들이 설치기에 딱 좋은 환경이긴 하네.’
안개에 휩싸인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는 구릉지. 심지어 요란스러운 전투도 이어지고 있지 않던가.
요그나 퀘스트 창이 아니었다면, 이안 역시 놈들이 지척에 다가오고서야 기습을 눈치챘을 터였다.
‘…아니. 그래도 그보다는 빨리 눈치챘겠네.’
혼돈의 정수가 낮게 공명하는 것을 느끼며, 이안은 왼손에 쥐고 있던 고삐를 후려쳤다.
크르릉…!
앞발로 땅을 긁고 있던 흑마가 튀어나가듯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속력. 달리는 들소에 탄 듯한 육중함이 동시에 전해졌다.
심지어 적들의 기척을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것처럼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확실히, 쓸만한 놈이긴 하네.’
…적어도 이 안에서는.
이안은 등자를 밟고 일어섰다. 상반신은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듯 앞으로 살짝 숙인 채였다.
넘실대는 갈기 사이. 어둠 너머를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푸른 마력이 일렁였다. 한복판에 점이 찍힌 것 같은 보랏빛도 마찬가지였다.
솨아아….
고삐를 움켜쥔 왼손에서 한기가 번졌다. 주문을 억누르듯 주먹에 힘을 주면서도, 이안은 어둠 너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흙먼지 같은 안개를 가르며 달려오는 것들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반인반수 마적들이었다.
제대로 된 진영조차 갖추지 않은 채 마구잡이 식으로 달려오는 놈들은, 뜻밖에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열 명 남짓.
‘…그리고, 더하기 셋.’
이안이 마적들의 좌우를 훑어보며 생각했다. 마물들을 끌고 온, 뿔피리를 불며 도망친 놈들이 본대에 합류하고 있었다.
어쨌든 생각보다는 적은 숫자였다. 하긴. 놈들의 특성상 다수가 살아남기는 어려운지도 몰랐다.
-단단해 보이는데. 그 칼로 괜찮겠어, 친구?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적들의 무장을 확인한 것이리라.
놈들은 아까 보았듯, 용병처럼 통일성 없는 장비들을 걸치고 있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왼손에 든 각궁과, 오른팔에 고정한 방패가 전부였다.
‘그 와중에도 모양은 다르네.’
하지만 어쨌건 다들 중무장한 상태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가죽으로 된 방어구라 해도 마수의 가죽으로 만들었기에, 웬만한 사슬 못지 않게 질길 터였다.
-용의 마력이 깃든 칼이 더 쓸만할 것 같은데.
이번엔 안 돼.
이어진 속삭임에 속으로만 대답하며, 이안은 오른손의 흑검을 더 단단하게 고쳐 쥐었다.
진은 강철 검은 아껴 써야 했다.
유랑단과의 전투에서 또 내구도를 잔뜩 소모하지 않았던가.
본래라면 몇 년을 써도 끄떡없었을 칼이었지만. 검에 무리를 주는 짓거리를 잔뜩 해댄 탓에, 내구도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진언 회로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수리한답시고 어설프게 두드려 댈 수도 없었다.
여기서 제힘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앞으로는 가능하면 꼭 필요한 순간에만 휘둘러야 했다.
콰과과과과과-
흑마는 어느새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압력에 눈이 조금 시큰댈 정도였다. 물론 이안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캬하하…!”
“간덩이가 부은 놈이 다 있군!”
“좋아! 저놈의 간은 내 거야!”
놈들이 외치는 소리가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육감이 경고를 보낸 건 거의 동시였다. 이안이 흑마의 목을 끌어안듯 자세를 낮췄다.
쉬쉬쉿-
그의 근처로 몇 개의 거뭇한 궤적이 스치고 지나갔다. 마적들이 쏜 화살들.
하지만 흑마는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오히려 더 속도를 높였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치솟는 와중에도, 그의 입가는 어느새 옅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스스로도 미소를 짓고 있다는 자각은 없는 채였다.
고삐를 쥔 왼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그가 속삭였다.
“겁먹지 마라.”
동시에 그의 손아귀에서 억눌려 있던 마력의 파장이 터져 나왔다.
푸른 동심원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다음 순간.
쩌저저저저적-
흑마와 마적들의 사이로 얼음 장벽이 엄청난 속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혼돈력으로 증폭한 빙하 방벽.
“마법…?!”
“저런 시발-!”
마적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장벽은 그들의 수십 미터 앞에 반원을 그리며 솟고 있었지만, 전력 질주 중인 지금은 불과 몇 초면 닿을 거리이기도 했다.
몇몇은 오히려 속도를 높이고, 몇몇은 허둥지둥 멈춰 서려 했다.
어쨌건 놈들을 이리저리 흩어버리기엔 충분했다.
쒸아아악-
그리고 이안을 태운 흑마가 얼음 장벽을 장애물처럼 뛰어넘으며 솟구쳤다. 어느새 녀석의 주위에는 대기를 밀어내는 듯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얼어붙으며 솟아오르는 장벽이, 흑마의 굽힌 다리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
눈을 치켜뜬 마적들의 고개가 절로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흑검이 뿜어내고 있는 보랏빛 아지랑이가, 허공에 잔상 같은 기다란 궤적을 아로새겼다.
안장에 하체를 단단하게 고정한 이안의 시선이, 한순간 놈들의 면상을 훑고 지나갔다.
‘하여간 역겹게도 생겨 먹었네.’
놈들과 이안의 시선이 교차한 건 말 그대로 찰나일 뿐이었다.
콰지지직- 쩌엉-!
그를 지나친 마적들이, 나뒹굴듯 미끄러지며 방벽의 표면에 마구 틀어박혔다.
몇몇은 반사적으로 뛰어올랐지만, 그저 조금 더 높은 벽면에 부딪힌 결과밖에는 만들지 못했다.
물론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은 놈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런 시발…!”
“유물? 유물이라도 가진 놈인가?”
“잘 됐군! 산 채로 내장을 뜯어 먹을 줄 알아라! 이 빌어먹을 사자 새끼야!”
뒤엉킨 마적들이 악다구니를 써댔다. 온갖 오해를 받고 있었지만, 놈들을 지나친 이안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솨아아-
오히려 고삐를 후려쳐 흑마의 속도를 더 높이면서, 정면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여간, 우두머리란 새끼들은 죄다 느긋하다니까.’
정수의 공명을 이끌어내는 존재.
식인 마적단 우두머리의 모습이 저 뒤편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소 느릿느릿 달려오고 있는 놈은, 다른 반인반수들보다 조금 더 크고 머리에 뿔까지 돋아 있었다.
그보다 이안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놈이 걸친 빛 바랜 전신 판금 갑옷이었다.
‘뭐, 도적 기사 같은 놈이었나?’
놈은 오른손에 커다란 연 방패를 들고 있었고, 하체에는 판금을 겹쳐 만든 마갑까지 완벽하게 두르고 있었다.
왼손에 활 대신 움켜쥔 장창은 목덜미에 비스듬하게 기대듯 치켜든 채였다.
“…….”
이안과 눈이 마주친 순간, 놈의 입꼬리가 재미있다는 듯 귀 아래까지 쭉 찢어졌다. 그 사이로 톱날 같은 날카로운 이빨들이 드러났다.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았지만, 이안의 눈은 놈의 이 사이에 낀 거무스름한 살점까지 볼 수 있었다.
동시에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 놈이, 목덜미에 기대고 있던 왼손의 장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놈의 전신에서 보랏빛 아지랑이가 번졌다.
‘마상 결투 흉내라도 내 보자고?’
좋지.
마주 미소 지어준 이안이 고삐를 쥔 왼손을 흑마의 목덜미에 얹었다. 동시에 그의 손아귀에서 번진 혼돈력이 흑마에게 스며들었다.
크르릉…!
곧이어 울부짖은 흑마가 더 속도를 높였다. 반인반수 도적 기사가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워졌다.
바로 앞에서 보니 놈의 덩치가 더 커 보였다. 웬만한 인간은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고기 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터였다.
“……!”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치켜뜨면서도, 놈이 반사적으로 창을 내뻗었다.
흑마에 탄 이안보다도 덩치가 큰 탓에, 비스듬하게 아래로 내지르는 듯한 형태였다.
물론 그보다 이안이 흑검을 휘두르는 게 조금 더 빨랐다.
쒸에에엑- 카가가가가-
동시에 뒤로 비스듬하게 젖힌 이안의 상반신 위로, 마력이 맺힌 창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옆으로 휘두른 흑검의 궤적은 기사의 방패를 지나, 놈의 하반신으로 할퀴듯 이어졌다.
-가가가각!
실제로는 눈 한 번 깜빡일 찰나에 이루어진 공방이었다.
놈을 그대로 지나친 이안이, 흑검을 마저 앞으로 내뻗으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옅은 쓴웃음이 스치고 있었다.
‘그래… 확실히 단단하긴 하네.’
역천의 송곳니를 활성화한 상태인데도,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반발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패를 부수지도 못했다. 판금 마갑은 찢어발긴 것 같았지만, 그 아래의 몸통에 깊은 상처를 남기지는 못했을 터였다.
뒤에서 놈의 발굽 소리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고삐를 당겨 속도를 줄이면서, 이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
도적 기사도 상반신을 돌려 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흑마가 크게 선회하고, 놈도 대칭을 이루듯 방향을 틀었다.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괜찮은 거 맞아, 친구? 피가 나는데.
이안이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읊조렸다.
“살짝 스친 거야.”
기사가 내뻗은 창은 피했지만, 풍압 만으로도 한쪽 얼굴과 귓가에 상처가 남은 것이다. 아마 마력이 실려 있어서이기도 할 터였다.
요그의 킥킥대는 웃음이 번졌다.
-그래… 비긴 것 같네.
방향을 틀며 드러난 도적 기사의 하체에도, 가로로 길게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찢겨 나간 마갑 사이로 드러난 몸통에도 검은 체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놈이 치켜든 방패 표면 역시, 역천의 송곳니가 남긴 흔적이 선명했다.
‘내가 만든 상처가 더 큰데, 솔직히 비긴 건 아니지 않나.’
유치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이안의 시선이 문득 놈의 뒤편으로 향했다.
저 멀리, 기화하듯 녹아내리는 빙하 방벽 아래로 다시 마적들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여-!”
“사자가 아니라 고슴도치를 만들어 주마! 새꺄!”
쩌렁쩌렁 소리친 놈들이 화살을 쏴댔다.
하지만 이안은 피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마저 선회하며 흑검을 아공간으로 밀어 넣었을 뿐이었다.
육감이 아무런 경고도 보내지 않아서였다. 흥분해서인지 죄다 조준이 형편없었다.
“그만-!”
오히려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친 건 우두머리였다. 놈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번지던 보라색이 한순간 격렬하게 일렁였다.
“……!”
칼로 자른 듯 입을 닫은 마적들이 저마다 속도를 줄였다.
화살통에서 꺼냈던 화살을 다시 되돌려 넣은 채였다.
이안의 입꼬리에 실소가 번졌다.
‘기사 흉내에 진심인데.’
어쩌면 정말 기사 출신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고마운 짓거리였다.
어깨를 으쓱인 이안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잿빛을 머금고 일렁였다.
크르릉….
동시에 잠시 멈춰 선 흑마가 콧김을 뿜었다. 이안의 무게가 달라졌기 때문일 터였다.
다시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이안의 오른손에는, 검 대신 굵고 기다란 전투 망치가 들려 있었으니까.
‘이게 대검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생각하며 왼손으로 자루 하단을 움켜쥔 이안이, 전투 망치를 비스듬하게 눕힌 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은 기사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옆으로 휙 내던졌다.
장창을 양손으로 고쳐 쥔 놈이 다시 달리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이안이 명령하기도 전에, 흑마가 그르렁대며 마주 달려나갔다.
두두두두두-
기사는 이안의 왼편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른쪽의 마갑에 상처를 입었으니, 멀쩡한 왼쪽을 드러낼 심산일 터였다.
이안은 등자를 밟고 일어섰다.
허리를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고, 자루 하단을 쥔 왼팔을 턱 앞에 멈췄다. 언제든 힘껏 휘두를 수 있는 자세였다.
‘신경도 안 쓴다 이거지.’
창을 앞으로 내민 기사를 바라보며, 이안이 한쪽 입술을 조금 더 비틀어 올렸다.
놈의 자신감이 의아하지는 않았다. 휘둘러야 하는 전투 망치보다 직선으로 뻗으면 되는 창이 더 유리한 건 당연했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사들의 대결이라면 그럴 터였다.
솨아아아-
이안의 왼손 손등에 황금빛이 번진 건, 놈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을 때였다.
“……!”
이안의 좌반신을 비스듬하게 가리며 피어오른 황금빛 방패에, 기사의 눈이 순간 커졌다.
그런데도 빈틈을 향해 반사적으로 창을 내뻗는 건, 이미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일 터였다.
푸화악-!
흑마의 주위로 돌개바람이 솟구친 건 거의 동시였다.
기사의 몸을 밀어내지는 못했지만, 순간 질주를 늦추며 창의 궤적을 바꿔버리기엔 충분했다.
카- 가가가각-
휘어져 뻗어 나온 창날이 백금 방벽의 표면을 긁었다.
육감과 집중력이 최고조에 다다른 이안은, 그 순간 허리를 반대편으로 비틀며 오른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쒸- 아아아아악-
전투 망치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뿜어져 나갔다.
창날이 방벽을 긁고 지나치는 가운데, 긴 궤적을 그리며 뻗어 나간 전투 망치가 그대로 기사의 상반신 측면에 틀어박혔다.
꽈- 지지직-!
이안의 눈에는 기사의 내뻗은 왼팔이 견갑 채로 으스러지듯 짓눌리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는 이를 악문 채, 허리를 양팔과 함께 끝까지 휘둘렀다.
쩌어정-!
이안의 허리가 끝까지 돌아갔다. 옆으로 패대기치듯 처박혔던 기사가 몸이 뒤집히며 튕겨 올랐다.
흑마 역시 한순간 균형을 잃고 휘청댔다. 자루 중앙을 쥔 오른손을 놔 버린 이안이, 원심력에 몸을 맡긴 채 하반신을 힘껏 내리눌렀다.
카드드드드드-
늘어뜨린 망치가 땅을 긁듯 훑었다. 중심을 다잡은 흑마가 박자를 맞추듯 속도를 올리며 몸을 되돌렸다.
평범한 말이라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몸이 꺾였겠지만, 놈은 뒷다리로 밭을 갈듯 미끄러지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았다.
속도가 줄어들자 다시 달려나가려는 듯 뒷발질을 해 대기까지 했다. 비로소 이안이 땅에 대고 있던 전투 망치를 다시 치켜들었다.
콰장창창- 콰르르르….
바닥을 나뒹군 도적 기사가 주르륵 밀려나며 멈춰 섰다.
흙더미 옆에 널브러진 형상이 된 그의 앞으로는 푹 파인 흔적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반신의 네 다리 중 둘이 부러져 덜렁대고, 어깨가 완전히 으스러진 왼팔이 덜렁거렸다.
“……!”
하지만 놈은 자신의 상태를 살필 틈도 없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흑마의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탓-
하지만 이안은 이미 그 위에 타고 있지 않았다. 전투 망치를 머리 위로 치켜든 채, 안장을 박차고 놈을 향해 뛰어오른 것이다.
어느새 모여든 바람이 그의 전신을 떠밀고 있었다.
기사의 보랏빛 눈이 커졌다.
쒸- 아아아악-
전투 망치가 둔탁한 파공음을 토해 내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안의 전신에 휘몰아치던 바람이 자연스럽게 자루를 타고 치솟았다. 그의 왼팔에 일렁이던 백금 방벽은 이미 흔적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간신히 아직 붙잡고 있던 오른손의 장창을 가로막듯이 치켜들며, 도적 기사가 내뱉었다.
“신성한 결투에 비겁한 잔재주를-”
콰-직-!
일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망치가 도적 기사의 머리를 으깨듯 뒤덮었다. 머리를 넘어 쇄골 아래쪽까지 뒤덮은 채였다. 앞을 가로막던 창대도 함께 짓눌렸다.
쿠웅…
양팔을 끝까지 내리누른 이안이 착지했다. 한차례 들썩였던 그의 두 다리가 땅에 닿았다.
미간이 설핏 찌푸려진 건, 팔과 하반신을 타고 번진 충격 때문일 터였다. 흑마가 한 박자 늦게 곁을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식인종 타락자 새끼가… 무슨 신성 타령이야….”
나지막이 읊조린 이안이, 장작을 패는 듯한 자세로 누르고 있던 전투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 아래로 으깨지듯 짓눌린 머리가 드러났다. 뿔은 완전히 으스러졌고, 찌그러진 창대가 얼굴 한복판을 가르며 박혀 있었다.
땅에 반쯤 파묻힌 놈의 오른팔이 바들댄 다음 순간.
쒸에에엑- 꽈앙-!
짓눌린 머리 위로, 전투 망치가 다시 한번 힘차게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