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아직 마적들이 단 하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잖아요.”
멈칫한 발텐이 돌아보자, 루시아가 담담하게 덧붙였다.
“성자 대행께서 어둠 너머로 달려나가 신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요.”
“무슨… 그러니 더더욱 서둘러야 합니다. 성자 대행께 변고가 생기기 전에 말입니다.”
당혹스럽다는 듯 내뱉은 발텐이, 쇳소리가 나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가 저 멀리, 달려오기 시작한 자신의 전마를 눈에 담으며 말을 이었다.
“무모한 결정을 내리신 겁니다. 놈들은 간교하고 잔인하기로 이름 높은 타락자 집단입니다. 만약 우두머리인 버사르가 지휘하고 있다면 더 위험합니다.”
그의 시선이 다시 루시아에게로 되돌아왔다.
“놈은 이미 사자를 몇이나 잡아먹은 전적이 있습니다. 하수인들에게 상처 입은 상대를, 결투라는 명목으로 아주 잔혹하게 유린한 뒤에 죽인다고 하더군요.”
발텐의 말투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이안에게 후방을 맡아달라 부탁한 건, 어디까지나 후방 경계를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멋대로 대열을 이탈해, 홀로 다수의 타락자들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게다가 이곳은 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마경이며, 용의 권역 역시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성자 대행께서 위험에 처하실 것 같지는 않지만….”
하지만 루시아의 눈빛과 말투는 여전히 차분했다.
“정 그렇게 걱정되신다면, 더는 말리지 않을 게요.”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안 가보셔도 될 것 같은데요.”
대답하는 발텐의 말을 자른 건 디아나였다.
어느새 저 뒤편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덧붙였다.
“어느 쪽이건, 이미 결과가 나온 것 같으니까.”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던 발텐이, 그제야 그녀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개 저 너머에 흐릿한 실루엣이 드러나고 있었다.
“……!”
전마의 발굽소리가 가까워지는 가운데, 발텐의 안광이 커졌다.
실루엣이 선명해지면서 마수 전마.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이안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간이 움푹 구부러진 장대 같은 것을 어깨에 걸치고, 망토를 펄럭이는 채였다.
“정말 살아 돌아오다니….”
디아나의 나지막한 탄식이 이어졌다. 그녀 역시 내심으로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다가오는 이안을 바라보던 발텐이, 이윽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루시아의 시선이 느껴져서였다.
“아무래도, 제 말이 맞은 것 같네요.”
그와 눈이 마주친 루시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얼굴의 반을 가린 탓에 입매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미소 짓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비로소 발텐이 멍하니 내뱉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확신하신 겁니까…?”
“성자 대행께서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내리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거든요.”
대답하는 루시아의 눈매가 조금 더 선명한 호선을 그렸다.
“사실 성자 대행께서 이룩하신 위대한 업적들은, 거의 모두가 그렇게 시작되었죠. 이를테면, 되살아난 용이나 고대신의 화신체와 맞서기로 결정하는 것처럼요.”
“…부끄럽습니다.”
말문이 막힌 듯 바라보던 발텐이, 이윽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좁은 식견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건, 사제님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역시 그랬던 때가 있었으니까.”
“…자꾸 끼어들고 싶진 않지만.”
디아나의 목소리가 이어진 건, 루시아가 대답한 직후였다.
루시아와 발텐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그녀가 덧붙였다.
“성자 대행이 뭘 가지고 오고 계신지, 보셔야 할 것 같네요.”
발텐은 그제야 다시 이안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곧 이안이 뒤에 뭔가를 질질 끌고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리가 넷 달린 타락자의 시체였다.
“설마…?”
전신에 판금 갑주를 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발텐이 다시 한번 놀란 듯 굳어졌다.
묘한 적막이 뒤를 이었다.
“…….”
어느새 인근의 늑대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오는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짐마차에 부상자를 운반하던 늑대들도. 그리고 그 짐칸 위로 거무튀튀한 천을 가지런하게 덮고 있던 늑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던 일을 계속 하시오.”
다가오던 이안이 내뱉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리 크지 않지만 마력이 실린 목소리는, 늑대들이 화들짝 정신을 차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그의 말에 토를 달거나 의문을 제시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늑대들이 다시 하던 일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이안의 시선을 받은 루시아가, 눈을 깜빡이며 내뱉었다.
“얼굴, 괜찮으신 거예요?”
이안의 한쪽 얼굴에 피가 잔뜩 번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충 문질러 닦은 듯 지저분하게 말라붙은 채였다.
“조금 긁힌거야.”
이안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상처가 깊어서가 아니라, 힘껏 망치를 휘둘러 대느라 계속 피가 흘러나왔다는 사실은 굳이 덧붙이지 않은 채였다.
말문이 막힌 듯 바라보는 디아나에게까지 고개를 까딱여 보인 이안이 비로소 고삐를 당겼다.
발텐의 앞에 멈춰선 흑마가 그르렁대는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
이안의 검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발텐에게로 향했다. 그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구부러진 창을 바라보던 발텐도 그를 마주 올려다보았다. 정적은 찰나였다.
“먼저, 정중하게 사죄드리겠습니다. 성자 대행.”
고개를 살짝 숙인 발텐이 정중하게 내뱉었다. 이안의 눈매가 순간 꿈틀댔다.
“…사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은 듯한 반응이었지만, 발텐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전투에 정신이 팔려, 성자 대행께서 대열을 이탈하신 것조차 바로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제 무책임한 부탁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
“경이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예요.”
이안의 한쪽 눈썹이 슬며시 말려 올라가는 가운데, 루시아가 덧붙였다. 그의 시선을 받은 루시아가 덧붙였다.
“제가 기다려 보자고 했거든요. 전투도 좀 전에나 끝났고요.”
“…….”
다시 발텐을 내려다본 이안의 입가에 옅은 헛웃음이 번졌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맥이 풀렸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경의 부탁이 후방을 주시해 달라는 뜻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소. 내가 마음대로 움직인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이윽고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한 이안이 훌쩍 안장에서 뛰어 내렸다.
곧바로 어깨에 걸치고 있던 꺾인 창과 망토 아래의 등에 짊어지고 있던 커다란 연 방패를 연달아 땅에 떨어뜨려 버리는 채였다.
“…아량을 배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자 대행.”
방패 한복판을 깊숙이 가르는 흔적을 내려다보던 발텐이 대답했다.
“별말씀을.”
대답하며 고개를 까딱인 이안이 몸을 돌렸다. 루시아와 디아나는 이미 마차 후미에 나란히 서서, 그가 가져온 반인반수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꼴이 된 거지?”
이안이 다가오자, 디아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심으로 궁금한 말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말라비틀어진 미라 꼴이 된 시신은, 머리가 납작하게 짓눌려 있었으니까.
흉갑과 견갑 윗부분도 마찬가지였고, 나머지 갑주들도 덜렁대고 있었다. 거대한 마수에게 짓밟힌 것 같은 몰골이었다.
“뭐, 어쩌다 보니.”
이안이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사이, 뒤따라온 발텐이 낮은 탄성을 터뜨리며 내뱉었다.
“…역시, 버사르가 분명하군요. 방패를 보고 짐작하긴 했습니다만. 갑옷의 형태 역시 제가 보고 받은 그대로입니다.”
“버사르?”
이안이 고개를 갸웃하자, 발텐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 식인 마적단의 우두머리입니다.”
“아, 그래… 그럼 정말 그놈들이 전부인가 보군.”
비로소 옅은 실소를 흘린 이안이 그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어쨌든 이놈의 물건은 전부 내 소유요. 인정하시오?”
“……? 예. 물론입니다. 성자 대행.”
발텐이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선선히 대답했다.
“훌륭하군.”
미소 지은 이안이 그대로 몸을 돌려 흑마의 옆으로 다가갔다.
흑마의 몸에는 버사르의 하반신과 이어진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었다.
“……?”
사슬의 매듭을 풀기 시작한 그를, 발텐은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작 이안이 어떻게 마적들을 퇴치했는지 아직 듣지 못해서였다.
이안이 굳이 설명할 생각이 없음을. 그리고 방금 그 대화가 이안이 그를 따라오라 한 이유의 전부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였다.
이 시체를 가지고 온건, 아공간의 자리가 부족해서일 뿐이라는 것도.
“…이 자를 본보기로 처단하셔서, 마적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신 거군요.”
이윽고 홀로 결론을 내린 발텐이 말을 이었다.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도망친 잔당들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구심점이 사라졌으니, 놈들도 오래 살아남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소.”
무슨 말이냐는 듯 발텐을 일별한 이안이, 손을 멈추지 않고 덧붙였다.
“아무도 살려 보내지 않았으니까.”
“예…?”
발텐이 멍하니 되묻는 가운데, 이안의 덤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 여력이 있다면 짐 마차와 수색대를 보내시오. 저 뒤편에 마적들의 시체가 열 몇 구 더 남아 있으니까.”
흑마의 몸에 감긴 사슬을 풀기 시작하며, 이안이 발텐을 돌아보았다.
“건질 게 꽤 많아 보이던데. 적당한 값만 치르면 전부 양도해 드리겠소.”
“맙소사….”
발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식했다. 이안이 모른 척 덧붙였다.
“값을 치르지 않겠다면, 그냥 드라그 벨가로 보내버릴 것이오.”
“…그런 부분이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자 대행.”
발텐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성들을 수없이 해친 타락자들을 또다시 처단하셨으니, 전하께서 크게 보답하실 겁니다.”
사슬을 풀던 이안의 손길이 멈칫했다. 물론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손을 움직이며, 이안이 내뱉었다.
“다 지불 할 여유가 있으신지 의문이긴 하지만. 알겠소.”
“그러고 보니 저 역시 아직 감사 인사조차 드리지 않았군요.”
내뱉은 발텐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주먹을 쿵 소리가 나게 자신의 흉갑에 가져다 댄 채였다. 흉갑과 판금 장갑에 끈적하게 붙어있던 살점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다시 한번 이안이 돌아보는 가운데, 그가 굵고 음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자 대행께서 기습을 저지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저희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공치사는 거기까지 합시다.”
심드렁하게 입맛을 다신 이안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발텐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감사의 의미로, 전마의 소유권을 성자 대행께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전리품이나 전하의 보답과는 무관한, 약소한 성의입니다.”
전마가 들은 것처럼 그르렁대며 콧김을 뿜었다. 빳빳하게 늘어뜨린 꼬리도 한 차례 들썩인 채였다.
이안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기꺼이 받겠소. 마침, 이 녀석이 꽤 마음에 들던 참이어서 말이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안도하듯 대답한 발텐이, 비로소 몸의 힘을 풀었다.
그사이 사슬을 다 풀어버린 이안이, 손을 탁탁 털며 덧붙였다.
“피곤한데, 근처에서 야영하고 이동하지 않겠소?”
“예. 수색대를 파견하면서, 근처에 야영지를 꾸릴 인원도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선선히 대답한 발텐이, 잠시 침음하고는 덧붙였다.
“한 가지 더, 상의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하시오.”
“행군의 경로를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경로를?”
이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루시아와 디아나도 돌아보는 가운데, 발텐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본래 우리는 동남쪽을 향해 최단 거리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만. 북쪽으로 우회해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마물들은 대마족 다르마라자의 권속들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다르마라자…!”
루시아가 낮게 탄식하는 가운데, 발텐이 덧붙였다.
“마적들이 이것들을 외부에서 끌고 온 것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상관은 없소만, 시간이 촉박한 것 아니었소? 만약 제국의 영역을 침범한 거라면, 섬멸하는 데에 또 시간과 전력을 소모해야 할 텐데.”
이안이 대답하자, 발텐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나 정찰이 목적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그대로 행군해 본부에 보고를 올릴 겁니다. 일정도 한나절 정도만 지체될 겁니다.”
발텐이 손을 둥글게 모아 가슴 앞으로 가져다 댔다.
“구릉지 중심부에는 균열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안개의 외곽을 선회하면서, 정찰조를 꾸려 보낼 생각입니다. 게다가….”
발텐의 시선이 문득 디아나에게로 향했다. 디아나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 듯 멈칫하는 가운데, 그가 덧붙였다.
“마침 드라그 벨가에서 가장 뛰어난 올빼미도 동행 중이군요. 도움을 주신다면, 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게 무슨….”
디아나가 헛웃음을 짓는 사이,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합시다. 저 녀석도 데려다 쓰시고.”
“…뭐라고?”
디아나가 홱 고개를 돌렸다. 이안이 멀뚱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 근처에 와 본 적이 있다며.”
디아나가 숨을 멈췄다.
루시아가 지식을 뽐낼 때, 곁에서 잘난 척하기 위해 첨언 했던 말들을 기억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건 옛날이라니까… 세상이 이 모양이 되기 전의 얘기라고….”
“어쨌든 와보긴 했네. 걱정 마라. 내 사역마를 빌려줄 테니까.”
“…….”
그건 더 싫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디아나는 더는 거절하지 못했다. 그저 코로 긴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발텐을 돌아보았다.
“더 상의할 게 남으셨소?”
“아닙니다. 편히 쉬십시오. 나머지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주먹으로 흉갑을 두드린 발텐이 몸을 돌렸다. 뒤에서 기다리던 자신의 전마에 올라탄 그가, 곧바로 늑대들을 향해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바라본 것도 잠시.
“뜻밖이네요.”
루시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안이 돌아보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다른 걸 더 물어보실 줄 알았거든요. 어떻게 저것들이 다르마라자의 하수인이라는 걸 알아봤냐 거나… 발텐 경이 다루던 힘에 대한….”
“아, 그거…?”
곧바로 알아들은 이안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게다가 오늘만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머잖아 알게 될 부분이기도 했고.
“또 기회가 있겠지. 그보다….”
말을 흐린 그가, 아공간에서 꺼낸 물건을 휙 던졌다.
“이거나 받아라. 루시.”
반사적으로 받아든 루시아가 눈을 깜빡였다.
“단검… 이네요?”
자루를 움켜쥔 그녀가 검집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칙칙하게 빛이 바랜 외날 단검이었다. 칼날에 불그스름한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넘어오면서 네 걸 잃어버렸으니까.”
담담하게 대답한 이안이 덧붙였다.
“제일 쓸만한 거로 골랐으니까, 잘 써라.”
루시아의 눈매에 미소가 번졌다. 단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감사해요. 잘 쓸게요.”
“그리고 디아나. 너도.”
시선을 돌린 이안이 다시 한 번 아공간에서 꺼낸 물건을 던졌다.
“……?!”
입술만 달싹여 욕을 중얼거리던 디아나가 화들짝 손을 뻗었다.
마적단이 쓰던 각궁이었다.
“요정이니까, 활 정도는 쏠 줄 알겠지.”
뒤이어 가죽으로 만든 화살통까지 던진 이안이 덧붙였다.
왼손으로 가죽 통을 받아든 디아나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아는 정도가 아니야. 가장 자신 있는 분야 중 하나지.”
적어도 불만은 씻은 듯이 사라진 게 분명했다. 어깨에 활을 걸친 그녀가 허벅지에 화살통을 묶기 시작한 사이, 루시아가 물었다.
“그런데 이안 님은요?”
“나도 단검은 몇 자루 챙겼어. 게다가 나한텐 이놈이 있잖아. 고철 덩어리만 잔뜩인 것 같긴 하지만.”
옆으로 고개를 까딱인 이안이, 루시아와 디아나를 일별하고는 덧붙였다.
“일단, 싹 벗겨서 털어 보자고.”
루시아와 디아나가, 덧붙이는 말 없이 냉큼 마차에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