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두건을 눌러쓴 루시아가 등자를 밟고 안장에 훌쩍 올라탔다.
그녀를 태운 마수 전마는 낮은 숨소리와 함께 콧김을 뿜을 뿐, 아무런 난동도 부리지 않았다. 어쩌면 저만치에서 이안이 빤히 노려보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괜찮은 것 같네요.”
고삐를 집어 든 루시아가, 이윽고 옆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잘 탈게요. 고마워요.”
지난 전투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남게 된 말중 하나였다.
세 대의 짐 마차에도 각각 네 마리씩의 전마가 붙었을 뿐 아니라, 측면에도 한 마리씩이 더 묶여 있었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찾아 주십시오.”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늑대가 깍듯하게 덧붙이고는 몸을 돌렸다. 이쪽을 바라보던 이안과 눈이 마주치자 꾸벅 목례까지 덧붙인 채였다. 이안의 근처에서 천막을 거둬들이고 있는 다른 늑대를 돕기 위해 다가오는 채였다.
늑대들은 언제 야성적이고 거칠었냐는 듯 과묵하고 정중한 본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꽤 극단적인 온도 차이였다. 물론 이안은 그 이유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한 마리도 거슬렸는데 두 마리라니….”
옆에서 디아나의 낮은 탄식이 이어졌다. 그녀는 한쪽 어깨에 각궁을 건 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챙길 거 다 챙겨 놓고 불만은.”
낮게 코웃음 친 이안이 훌쩍 자신의 흑마에 올라탔다.
크르르….
녀석이 느긋한 숨소리를 내뱉었다. 체력을 완전히 회복한 게 분명했다. 녀석의 잿빛 갈기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이안은 정리가 거의 끝나가는 야영지를 돌아보았다.
‘역시, 칠 때보다 거둬들이는 게 더 빠르네.’
이제까지와 달리, 늑대들은 거무스름하고 두꺼운 천과 작은 나무 기둥으로 만든 작은 천막을 여러 개 만들어 야영지를 꾸렸다.
드라그 벨가에 들어올 때부터 마차에 싣고 있던 물건들이었다.
물론 이안 일행에게도 하나가 배정됐다.
“…….”
지금 두 늑대가 가지고 돌아가는 천과 나무 막대가 그것이었다.
내부는 빈말로도 넓다고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일행 셋이 충분히 누워 잘 수는 있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천막 안에서는 오염된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안감에 빼곡하게 새겨진 용도를 알 수 없는 주문 회로 덕분일 터였다. 저 천막들은 일종의 간이 거점 같은 역할인 것이다.
이제야 꺼낸 건, 지난 전투의 여파를 빠르게 지우기 위해서일 터였다. 어둠의 축복을 받았던 늑대들이 더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도 몰랐다.
“일어나 있냐?”
늑대들이 멀어지자, 슬며시 오른손을 든 이안이 속삭였다. 뇌리로 낮은 웃음이 번졌다.
-먼저 찾아주다니. 무슨 일인데, 친구?
“이따 널 좀 써야 할 일이 있어서.”
이안이 간단하게 요점을 설명했다. 디아나에게 붙어, 길을 잃지 않게 도와주라는 내용이었다.
-피만 몇 방울 마시게 해 준다면야, 못 할 것 없지. 저 녀석에게도 주문을 새길까?
“그건 됐어. 그냥 방향만 알려 줘.”
-그래… 그것도 어려울 건 없지. 적어도 지금보다는 재미있겠군….
요그가 선선히 대답하는 가운데, 루시아가 탄 전마가 이안의 곁으로 다가왔다.
녀석을 돌아본 이안의 입매가 옅은 호선을 그렸다.
우락부락하고 위협적인 마수와 루시아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혼자 타도 괜찮겠냐?”
“완전히 제 명령을 따르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은요.”
루시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이는 가운데, 이안의 흑마가 낮게 으르렁대며 녀석의 전마를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루시아를 태운 전마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이놈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나.
이안이 생각하는 사이, 루시아가 덧붙였다.
“얼굴은 괜찮으세요?”
“멀쩡해.”
이안이 보란 듯 얼굴 옆을 보였다. 눈을 끔뻑인 루시아가 이내 낮은 탄성을 흘렸다.
“정말, 언제 봐도 놀라운 회복력이셔요.”
다소 꼬질꼬질할 뿐, 그의 한쪽 얼굴과 귓가의 상처는 이미 딱지가 떨어지고 있었다.
“찬란한 여신의 사도라도 이안 님보다 빨리 상처가 아물지는 않을 거예요.”
“뭐. 잘 잔 덕분이지.”
대답한 이안이, 정리를 끝내고 집결 중인 늑대들을 돌아보았다.
어제 발텐이 말한 대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모이고 있었다.
곧이어 그들이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이안도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뒤를 따랐다.
“…정말 안 탈 거예요, 디아나?”
그와 나란히 걷던 루시아가 뒤를 돌아보며 내뱉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직 두 마리 정도 여유가 있어 보이던데요.”
이안도 심드렁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뒤에 멀찍이 따라오던 디아나가 질색하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 안 탈 거야. 못 봤나 본데, 어제 죽은 놈 중의 하나는 낙마해서 제 말에 밟혀 죽었어. 그리고 팔 한쪽이 뜯어 먹혔더군.”
“저랑 같이 타시면 되잖아요. 몇 시간 뒤면 뛰어다니셔야 하는데, 체력을 아끼는 게 좋지 않겠어요?”
“일리 있는 말이군.”
이안이 툭 덧붙였다. 멈칫한 디아나가 미간을 좁히는 가운데, 그가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냥 타. 그만 겁내고.”
“겁이라니… 이건 합리적인….”
웅얼대던 디아나가, 이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다가왔다.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전마를 올려다본 그녀가 훌쩍 위로 올라탔다.
루시아가 이내 엉거주춤하게 앉은 그녀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그렇게 앉으면 떨어져요. 꽉 안으세요.”
“어, 어…?”
디아나가 당황한 듯 눈을 끔뻑이는 사이, 루시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양팔을 자신의 허리에 감았다.
“그래….”
다소 뻣뻣하게 굳어졌던 디아나가, 이윽고 그녀의 등에 삐걱대며 한쪽 머리를 기댔다.
쟨 왜 자꾸 저러는 거야?
심드렁하게 콧방귀를 뀌면서도, 이안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의 안개가 조금씩 짙어졌다. 구릉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균열 인근일 터였다.
늑대들이 방향을 바꾼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발텐이 예고한 대로, 그들은 안개의 끄트머리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균열의 권역으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니, 사실 위험하지도 않은 방식이었다.
“…벌써 시작이군.”
곧 둘씩 짝을 지은 늑대들이 차례로 균열의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루시아의 허리를 감싼 손을 푼 디아나가,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럼, 나도 다녀 오겠다.”
“동작 그만.”
자연스럽게 안장에서 뛰어 내리려던 디아나가 멈칫했다. 이안이 그녀에게 손가락을 튕겼다.
“데리고 가라. 손바닥에 올려두면 방향을 알려줄 거다.”
튕겨 나간 요그가 디아나의 백금발 사이로 푹 파고들었다. 디아나가 소름이 끼친다는 듯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전부터 느끼지만, 이 녀석의 반응이 제일 재미있단 말이지….
“괜한 장난치지 말고, 길만 똑바로 안내해.”
이안이 덧붙인 말에, 디아나가 홱 그를 돌아보았다.
“이 녀석이, 못된 장난질 같은 것도 칠 수 있단 말이야?”
“…아니. 없어.”
“거짓말이군, 제기랄….”
요그가 킥킥대는 가운데, 장탄식을 내뱉은 디아나가 체념하듯 휙 몸을 날렸다. 그녀가 화살처럼 안개 너머로 사라졌다.
이안과 루시아는 앞서 가는 행렬을 따라 말의 속도를 줄였다.
무리는 선두의 발텐과 짐 마차를 호위하는 네 명의 늑대만 남아 있었다.
발텐은 평소의 채 반도 되지 않는 속도로, 외곽을 따라 천천히 나아갔다.
-우리가 뭔가 찾은 것 같은데.
요그의 흐릿한 속삭임이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끝냈다. 세 개의 정찰조가 되돌아온 시점이었다.
“……!”
눈을 동그랗게 뜬 루시아가 절로 이안을 돌아보는 가운데, 다시 한번 흐릿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우리 말고도 발견한 녀석들이 더 있어. 앞서갔으니, 곧 도착할 거야.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안개 사이로 늑대 둘이 달려 들어왔다.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
곧바로 이어진 외침에, 발텐이 기다렸다는 듯 홱 고개를 돌렸다.
부관으로 함께 남아 있던 우두머리 늑대에게 수신호를 보낸 채였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마차 선두로 나서고, 무리를 이탈한 발텐이 이내 고개를 돌렸다.
“…마침 여쭤보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제 일을 덜어주셨군요.”
이안과 루시아가 이미 무리를 이탈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말씀을. 갑시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발텐이 곧바로 말머리를 돌렸다. 늑대 하나가 행렬로 돌아가고, 다른 하나가 자연스럽게 앞장서 일행을 안내했다.
“빠르게 달릴 생각입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발텐이 물은 건, 거의 도착했다는 요그의 속삭임이 뇌리를 파고든 직후였다. 흐릿한 어둠 너머, 달려오는 디아나를 돌아본 이안이 턱짓하며 대답했다.
“그럼 먼저 가시오. 마침 저쪽도, 같은 걸 보고 오는 길 같으니까.”
“예.”
별다른 의심 없이 수긍한 발텐이 늑대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늑대와 발텐이 빠르게 멀어지는 사이, 그들을 지나친 디아나가 미끄러지듯 멈춰서며 내뱉었다.
“이안. 저 앞에-”
“일단 타. 뭘 봤는지는 가면서 듣자.”
고개를 까딱인 이안이 고삐를 흔들었다. 흑마가 달리기 시작했다.
앞선 둘과 달리, 가볍게 뛰는 정도의 속도였다.
루시아를 배려한 속도였다.
-간만에 길잡이가 된 기분이군.
그의 손바닥으로 되돌아온 요그가 자신의 몸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사이.
“전투가 벌어진 흔적이 있었어.”
뒤에서 디아나의 목소리가 번졌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안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루시아의 대답이 이어졌다.
“어떤 흔적인데요…?”
“마물 시체들. 나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어. 혹시 살아남은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 바로 빠져나왔지.”
“하긴. 디아나의 임무는 위치를 파악하는 거였으니까요.”
“드디어 말이 통하네.”
“마족들끼리 영역 다툼이라도 벌인 걸까요.”
“글쎄. 어쩌면. 저쪽에는 대마족 둘의 권역이 맞닿아 있으니까. …발텐 경이 알아내겠지.”
이미 국지전은 시작된 건가…?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요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묵묵히 달려갔다.
사실, 이 정도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도 아니었다.
완만한 오르막 능선을 타고 오르자, 곧 다시 비교적 평평한 고지대가 이어졌다.
-거의 다 왔군.
안개에 악취가 섞이기 시작한 건 그 직후였다. 그리고 마침내 온갖 마물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
발텐과 늑대는 그 한복판에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전마에 탄 발텐은, 한 손으로 투구 아래쪽을 괸 채로 아래쪽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부패가 진행되어 악취가 지독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이안과 루시아가 다가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세요?”
다가가던 루시아가 물었다.
“…아, 오셨군요.”
비로소 상념에서 깨어난 발텐이 일행을 돌아보았다. 늑대가 사주를 경계하듯 물러나는 가운데, 발텐이 덧붙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져 있어서 말입니다.”
“이놈들이 여기에 소굴을 만든 것보다는 나은 상황 같은데.”
이안이 주위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흐릿한 안개 곳곳에 썩어가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을 뿐,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거군요.”
곁에 멈춰선 루시아가 물었다. 잠시 침음한 발텐이, 이윽고 말하기로 결정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죽어있는 마물 대부분은, 어제 우리와 싸웠던 것들과 같은 다르마라자의 권속들입니다.”
“…어제도 묻고 싶었는데.”
넌지시 운을 뗀 이안이 덧붙였다.
“다르마라자는 어떤 놈이오?”
발텐이 어리둥절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모르십니까…?”
“이름 정도는 들어 봤소만. 역사 지식이 해박한 편은 아니라서.”
이안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이런 반응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내전의 시대에 탄생한 대마족이죠. 본래는 어떤 이교도 왕국의 제사장이었다더군요.”
선뜻 입을 연 건 루시아였다.
“제국의 원정대가 가까워지자, 사악한 본색을 드러냈다고 해요. 고대 신에게 왕국의 모든 백성을 제물로 바친 거예요.”
“…사실, 그 이교도들이 자발적으로 행한 일이었습니다. 놈은 그 대가로 필멸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끔찍한 힘을 손에 넣었습니다.”
발텐이 자연스럽게 정정했다.
루시아도 처음 알았다는 듯 탄성을 흘리는 가운데,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간 출신이라….”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내전의 시대가 뭔지 나 대신 한번 물어봐 주면 안 될까, 친구?
그건 안 궁금한데.
생각하던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그를 돌아본 루시아가 어서 물어 달라는 듯 눈을 빛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안이 못이긴 척 입을 열었다.
“역시, 내전의 시대에 태어난 마족이 많긴 한가 보네.”
“그럴 수밖에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 루시아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일곱 여신의 은총 아래 인간의 시대가 열리고, 교단의 비호 아래 제국이 탄생했죠. 제국은 북부 왕국과 남부의 요정들이 충성을 맹세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했고요.”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이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발텐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를 잘못 알고 있구나, 루시페르.”
반문한 건 뜻밖에도 디아나였다.
“요정들에게 합류를 청한 건 제국이야. 원로회가 동의한 끝에 제국의 일원이 되었지. 요정들이 먼저 항복한 게 아니야.”
“요정의 역사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나 보군요.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몰라요.”
루시아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슬쩍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여간 귀쟁이들이란.’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항복이라는 본질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요청을 거절하면, 제국은 군대를 이끌고 상륙했을 테니까. 게다가 약삭빠른 요정들이니, 어느 쪽에 붙는 게 자신들에게 더 큰 이득이 될지도 진작 계산을 끝냈을 터였다. 실제로도 그들은 남부의 패자이자 중앙의 주류 세력 중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제국은 그들과 함께 대륙 통일을 위한 정벌을 시작했죠. 몇 대에 걸쳐서요. 그게 바로, 우리가 아는 내전의 시대인 거예요.”
루시아가 덧붙였다. 요그의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신들의 가호를 받아 번성하자마자 시작한 게 전쟁이라니. 역시 인간들은 재미있다니까….
루시아가 들리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그렇게 이름 붙긴 했지만. 제국의 진짜 목적은 대륙 동부와 동남부를 정화하는 데에 있었다는 게 식자들의 정론이에요. 온갖 끔찍한 마물들이 득시글댔고, 이교도들의 나라도 여럿이었으니까요.”
“…그래. 그게 아니면, 변방 왕국들의 동맹 제의를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겠지.”
디아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첨언했다. 루시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신의 지식도 뽐내고 싶어진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러니까 결국….”
이안의 뇌리로는 흡혈 여제가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환영에서 보았던, 그녀가 마족으로 거듭나던 순간도. 듣다 보니 그 역시, 내전의 시대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제국이 자초한 결과라는 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