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5
045화
레지스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입이 거칠군….”
지팡이를 쥔 그의 손이 움찔댔다.
으르렁대던 사냥개들이 기다렸다는 듯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이안이 질주하기 시작한 건 거의 동시였다.
그를 향해 달려드는 세 마리의 사냥개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집중력이 최고조로 발휘되기 시작했다.
사각지대를 노리고 채찍처럼 날아드는 촉수와 송곳니가 마구잡이로 돋은 쩍 벌어진 아가리.
그리고 그 아래, 기듯이 낮은 자세로 접근해 오는 놈까지.
주위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선명하게 인식됐다.
자신의 움직임조차 느리게 느껴지는 가운데.
이안은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놈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낮게 밀려드는 놈의 머리를 짓밟고 뛰어올라 몸을 옆으로 힘껏 비틀어 회전시켰다.
그것으로 궤적을 틀어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의 아가리를 흘리면서, 회전력을 실은 검을 내리쳤다.
쉬학-!
그 틈바구니로 밀려들던 촉수와 발톱은 휘몰아치는 방벽에 부딪혀 스쳐 지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을 선보인 이안이 착지했다.
그를 지나친 세 마리 사냥개 중, 목이 잘린 한 마리가 착지와 동시에 허물어져 죽 미끄러졌다.
“재주는 있는 놈-”
그 모습을 보며 중얼대던 레지스의 고개가, 누가 뒤로 끌어당긴 것처럼 젖혀졌다.
어느새 이안이 내던진 투척용 단검이 그의 이마에 박혀 있었다.
검은 핏물이 배어 나온 것도 잠시.
철그렁-
밀려 나온 단검이 떨어졌다.
역시, 이 정도론 무린가?
이안이 혀를 차는 사이, 다시 앞을 보며 레지스가 웃음 지었다.
“이런 재주는 진작 선보였어야지. 지금은… 안 통한다네.”
이마의 상처가 타르처럼 끈적한 점액질과 거미줄 같은 섬유질에 덮여 순식간에 봉합됐다.
뒤이어 날아든 단검은 자주색 역장에 막혀 떨어졌다.
그 너머로 눈속임이었다는 듯 앞으로 질주하는 이안을 바라보며, 레지스가 더 짙게 웃음 지었다.
그의 미간이 일순간 불뚝댔다.
이안의 머리 위 공간이 순간적으로 구겨지면서, 그의 정수리를 그대로 내리찍었다.
하지만 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옆으로 몸을 날린 후였다.
땅을 찍은 공간이 다시 본래 형태로 되돌아갔다.
현실의 막 너머에서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호오.”
이걸 피할 줄은 몰랐다는 듯 레지스가 감탄했다.
하지만 그를 노려보는 이안의 눈빛은 조금의 흥분한 기색도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식이란 거지.’
그가 보여 주는 저돌적인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레지스의 전투 방식을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게임에서도 인간 형태의 놈은 상대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때는 전투 시작과 동시에 피 흘리는 복수자의 화신체인 복수자의 망령이 나타나, 놈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체력이 뚝 떨어진 레지스가 곧바로 본모습을 드러냈었다.
그러니까 사냥개를 부리며 잔재주를 쓰는 지금이, 이안에겐 오히려 가장 조심해야 하는 단계였다.
어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치명상을 입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고작 그게 전부냐? 기대보단 좆밥이군.”
옆으로 내달리며 이안이 도발했다.
레지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날파리 같은 놈이 입담만 독수리구나. 의아하지만 흥미롭군.”
역장을 두른 채, 그가 손을 내밀었다.
신성력과 비슷한 힘이 사냥개들을 감쌌다.
놈들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뒤틀린 몸이 더 부풀었다.
송곳니도 더 길고 날카로워져서, 이안이 오래전 사진으로 본 심해어를 방불케 했다.
“어디, 계속 앵앵대 보거라.”
“오냐, 씹새야.”
이안이 보란 듯 사냥개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그때.
“히익… 히이익…!”
“제기랄.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벽면에 빽빽하게 모여 선 병사들과 기사는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고 있었다.
레지스와 사냥개들이 대부분 이안을 주목하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몇 마리는 그들의 주위를 돌며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층 더 크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변이하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크허엉-!
역시나. 한 놈이 더는 틈을 노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 톱날 같은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콰지직-
내뻗은 창대가 무기력하게 부러지고, 놈의 톱날 같은 이빨이 병사 하나를 찢어발기려던 순간.
콰직-!
붉은 장벽처럼 떨어져 내린 신성력의 궤적이, 사냥개의 허리를 내리찍었다.
땅에 처박힌 사냥개의 잘린 상반신이, 검은 피와 내장을 흩뿌리며 튕겨 올랐다.
빠각!
놈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박살 내면서, 메브가 병사들 앞에 섰다.
벽에 처박힐 때 떨어진 돌 부스러기가 그녀의 궤적을 따라 부스스 흩어졌다.
기사를 돌아본 그녀가 내뱉었다.
“대회관의 모든 통로를 막아. 할 수 있겠나?”
지금까지 선보인 광기가 거짓이었던 것처럼 차가운 목소리.
기사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요정의 유적을 멋대로 개조해 지어진 이 왕성은, 거의 모든 구역을 쇠창살로 격리할 수 있었다.
적이 성 내부까지 침입할 때를 대비한 방비책.
“가라. 회관을 격리하고 폐하께 합류해 상황을 전해.”
콰직- 깨앵-!
달려드는 사냥개 한 마리를 후려친 메브가, 놈을 고기 썰듯 난자하고는 병사들 쪽을 돌아보았다.
“생존자들도 믿지 말고. 가라, 어서!”
“예…! 다들 통로로 달려!”
기사의 외침에 병사들이 발작하듯 내달렸다.
그들에게 달려드는 사냥개들을 메브가 온몸으로 막았다.
썰고 후려치고 짓이기는 과정에서, 한 마리가 끝끝내 그녀의 팔뚝을 깨물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검의 무게추로 놈을 후려쳐 턱을 박살 내고 장화로 마구 짓밟았다.
마지막으로 통로로 들어서며 그 흉신악살 같은 모습을 돌아본 기사가, 이윽고 내뱉었다.
“오해를 사과드립니다, 경. 임무는 목숨을 걸고 완수하겠습니다.”
결의에 찬 얼굴을 한 기사가 사라졌다.
사냥개를 전부 도륙낸 메브가, 비로소 허리를 들었다.
헐떡대는 숨결. 팔뚝을 타고 흘러내려 장갑 끝에 맺힌 피가, 증발하면서 신성력에 녹아들었다.
비로소 그 모습을 확인한 레지스가 웃음 지었다.
“의미 없는 짓을. 이미 모든 사냥개들이 성으로 모여들고 있다. 네년의 선택은 희생자만 늘릴 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팡이를 쥔 그의 손이 다시 움찔댔다.
이안을 노리던 사냥개 대다수가 메브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메브가 말없이 검을 얼굴 옆으로 당겨 드는 가운데.
“이제 난 무시하는 거냐?”
그 빈틈을 뚫고 마침내 레지스에게 쇄도한 이안이 검을 내리쳤다.
역장을 형성하면서 레지스가 웃음 지었다.
“날파리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쏟을 필요는 없는 법이지.”
콰지직-
이안의 검이 역장에 막혔다.
메브와 달리 역장에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지만, 이안은 오히려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만 목격자가 없어지길 바란 게 아니거든.”
“……!”
붉게 타오르는 그의 눈을 마주 본 레지스가 비로소 눈을 치켜떴다.
화르르륵-!
이안의 주위로 붉은 화염구가 마구잡이로 피어올랐다.
그와 맞붙은 레지스의 주위이기도 했다.
피어오른 화염구가 일제히 그를 향해 쏟아졌다.
콰과과과과광-!
대다수의 화염구가 역장에 막혀 폭발했지만, 역장도 주위를 전부 막고 있는 건 아니었다.
몇 개의 화염구가 끝내 레지스에게 닿아 폭발했고, 오히려 역장에 가로막힌 화력이 내부에서 회전하면서 완전히 놈을 집어삼켰다.
반작용으로 튕겨 나온 이안이 바닥을 굴렀다.
연기에 휩싸인 가운데, 그가 눈을 들어 레지스 쪽을 바라보았다.
불길에 휩싸인 놈에게서 웃음소리가 번졌다.
“마법사였군…! 그래, 이제야 의문이 해소되는구나. 겉모습만 보면 누구도 네놈이 마법사라 여기지 않겠지. 콘라우드가 말한 적색이, 바로 네놈이었어. 그 모든 업적은, 눈속임으로 일궈낸 것이었군.”
“네놈처럼 말이지.”
이안이 마주 미소 지었다.
성공이었다. 불길 속 레지스의 모습이 변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놈을 감싼 역장이 더 선명하게 빛나며 거대해졌다.
보름달을 방불케 하는 그 한복판에서, 레지스의 몸이 뒤틀리고 부풀었다.
몸에 붙은 불길이 잦아들었다.
그의 전신에 검은 촉수가 머리카락처럼 늘어졌다.
불룩대던 미간의 피부가 찢어지면서 붉은 촉수가 툭 튀어나왔다.
변이되어 비대해진 송과선.
핏줄은 아예 피부 위로 튀어나와 눈코입을 가렸고.
하나로 융합된 지팡이와 손끝으로 송곳니 같은 발톱이 돋아났다.
고대 신관, 레지스.
“졸라 징그럽네….”
읊조리며 아공간에서 정수를 꺼낸 이안이 다시금 질주했다.
핏줄 너머, 레지스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신은 당신의 피조물을 자신과 닮게 만드시는 법. 이 모습은 내가 신께서 나를 직접 빚어내셨다는 증표이니라-”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가 손을 내젓자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기다란 할퀸 자국이 생겼다.
보이지 않는 발톱이 이안을 찢어발길 듯 날아들었으나, 그는 예상한 듯 갈지자로 몸을 틀어 피했다.
이제부터는 오히려, 그가 알고 있는 전투였다.
크르릉-
텅 빈 허공에서 숨결과 발소리가 이어졌다.
공간의 틈에 숨어 사는 공허의 사냥개가, 본모습대로 이 자리에 소환된 것이다.
메브가 싸우고 있는 변이체들과는 다른, 진짜 공허의 마수였다.
물론 이놈을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화르르- 콰과광-
이안은 정수로 증폭한 춤추는 불꽃을 사방으로 난사하며 레지스에게 솟구쳤다.
허공에서 폭발이 일고, 공허의 사냥개가 거리를 벌린 찰나였다.
레지스가 지팡이를 내밀었다.
더 크고 겹겹이 쌓인 역장이 앞을 막았다.
이안이 예상했다는 듯 손을 내뻗었다.
붉게 달아오른 정수에서 샛노란 불길이 토해져 나왔다.
콰아아아-
증폭된 화염 방사가 레지스와 주위를 뒤덮으며 타올랐다.
역장이 녹아내리는 가운데.
허공에 부유하듯 멈췄던 이안이, 정수를 아공간에 되돌리며 양손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너희 신 곁으로 보내 주마.”
검신을 타고 푸른 신성력이 폭발하듯 분출됐다.
그 힘을 추진력으로, 이안이 레지스에게 뿜어져 나갔다.
이안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는 게임에서의 경험을 통해, 레지스가 역장을 연속해서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한 겹의 역장이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찢어발길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나면 남은 건, 메브에게 최후의 일격을 양보하는 것뿐.
“아닛…?!”
레지스의 송과선이 당혹스럽게 떨렸다.
그 앞의 공간이 칼로 그은 것처럼 죽 잘리더니, 칼날 같은 발톱이 달린 자주색 다리가 불쑥 튀어나온 건 그 직후였다.
“……!”
콰지지직-
이안의 눈이 커지는 가운데, 발톱과 단죄의 검이 맞부딪혔다.
눈부신 섬광. 발톱이 잘려 나가고, 검날이 그 너머의 역장을 찢고 레지스의 몸까지 할퀴고 지나갔다.
‘시발…! 저걸 수비용으로도 쓴다고?’
착지하는 이안의 미간이 구겨졌다.
손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얕았다.
현실이 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예상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저 공허의 발톱은, 게임에선 공격용으로만 사용되던 기술이었으니까.
철퍽, 땅에 떨어진 잘린 발톱이 증발하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레지스의 몸에 달려 있던 촉수들도 우수수 땅으로 떨어졌다.
놈의 어깨부터 허리까지를 훑은 단죄의 검이 잘라낸 것들이었다.
“제법… 이로구나. 티르 엔의 총애까지 받고 있었다니. 하지만… 가짜는 언제나 진짜를 이길 수 없는 법이지.”
속삭임과 함께, 이안의 코앞으로 자주색 역장이 피어올랐다.
이안의 미간이 구겨졌다.
“젠장.”
콰과광-!
폭발과 함께 이안이 튕겨 나갔다.
한발 빨리 몸을 날렸건만, 그의 방어구가 너덜너덜해지고 허벅지와 팔이 피범벅이 됐다.
임기응변으로 혼돈력까지 끌어올리지 않았더라면 고깃덩어리가 되었으리라.
퍼억-!
벽면에 처박힌 이안이 피를 토하며 널브러졌다.
정신을 잃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얕은 부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몸의 감각이 둔하고 현기증이 일었다.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아마도 뇌진탕. 고개를 털던 이안의 미간이 이내 다시 좁아졌다.
카득- 카드득-
돌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벽면과 바닥에 새겨지는 발톱 자국이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허의 사냥개.
이안의 높은 정신력은 이런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한 번만 피하면 돼. 아니, 적어도 치명상만 피한다. 어지러움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시간을 벌면-’
붉은 그림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은 건 그 순간이었다.
메브.
카가가각-
보이지 않는 발톱이 그녀의 검과 부딪혀 불똥을 토해냈다.
그녀의 너덜너덜한 왼쪽 팔 보호대가 누가 움켜쥔 것처럼 구겨졌다.
흘러나온 피가 신성력에 녹아들고, 공격을 막은 메브가 허공에 검을 흩뿌렸다.
사냥개가 황급히 물러나는 소리.
텅 빈 허공에 검은 핏물이 튀고, 순식간에 멀어졌다.
그대로 뻗어 나간 궤적이 회관 너머의 레지스마저 휩쓸었다.
역장과 신성력이 충격파를 흩뿌리는 사이.
“쉬고 있거라, 이안.”
메브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이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를 포위했던 사냥개들은 이미 고깃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그녀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급조한 왼쪽 견갑은 팔 갑주와 함께 너덜너덜했고.
그 아래의 팔뚝에도 속살이 훤히 드러난 상처가 여럿이었다.
반대쪽 팔도 마찬가지. 안면 가리개도 찢겨 나가서, 그녀의 붉게 물든 눈동자와 창백한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난 채였다.
“…경.”
“남은 이들을 부탁하마. 물론, 너는 용병이니 부탁만으로는 움직이지 않겠지.”
이안의 말을 자르며, 메브가 담담하게 말했다.
콰르르- 철컥!
그때 사방의 통로에서 철창살이 떨어졌다.
공허의 사냥개가 흘리는 검은 피가,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다시 가까워졌다.
충격파도 가라앉고 있었지만.
메브는 그저 이안의 눈만을 응시했다.
“남은 내 모든 것을 네게 주마. 그만하면 남겨진 이들을 보살필 대가로도 충분할 거야. 왕국에 남아 달라 부탁하지는 않겠다. 그저, 그들과 함께 해 다오.”
“그럴 수는… 경…! 뒤…!”
떨리는 손으로 땅을 짚던 이안이 눈을 치켜떴다.
핏방울과 할퀴는 발자국이 어느새 지척이었다.
카드득-
메브의 등에서 피가 튀었다.
순간 휘청댄 메브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고마웠다, 이안.”
한 마디와 함께, 메브가 몸을 돌리며 검을 올려 쳤다.
푸확-! 끼아아악-
텅 빈 허공에 검은 피가 폭발하듯 튀어 오르고, 사냥개의 귀곡성 같은 단말마가 이어졌다.
양단된 마수의 시체가 메브의 좌우에 홀연히 나타나 떨어졌다.
헐떡인 메브가 그 너머의 레지스를 바라보았다.
레지스의 얼굴에 희미한 놀람이 번졌다.
“이토록 정순한 신성이라…. 그래, 와 보거라. 티르 엔의 종년아.”
신성력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전신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끝없이 증발하고 있었다.
“…….”
이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뒷모습이, 게임 속 피 흘리는 복수자의 모습이 겹쳐졌다.
메브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안은 복수의 사도는 피를 흘릴수록 강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임 속 피 흘리는 복수자가 그랬으니까.
복수의 사도가 가장 강해지는 건, 죽음을 앞둔 순간이었다.
마지막 한 방울의 생명까지 불사르는 그 찰나의 순간.
이안의 앙다문 턱에 힘이 들어가는 가운데.
철컥.
검을 고쳐 쥔 메브가, 레지스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