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61
461화
“미친…!”
디아나가 본능적으로 자세를 바짝 낮추며 팔로 얼굴 앞을 가렸다.
냅다 도망치지 않은 건, 이게 이안이 시전한 주문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쉬아아악-!
역시나. 날아든 크고 작은 돌덩이들은 앞에 선 이안은 물론, 몇 걸음 뒤에 선 그들과도 충돌하지 않았다. 미끄러지듯 곡선을 그리며 좌우로 갈라져 지나친 것이다.
콰드드드드득-
대신, 디아나의 몇 미터 뒤에 합쳐지듯 모여들어 서로 충돌했다.
뒤를 돌아본 디아나는 충돌음을 연신 토해내며 맞부딪치는 돌덩이들을 눈에 담았다.
크기도 형태도 제각각이었지만.
부서지거나 튕겨 나가지 않고, 결속된 것처럼 이어 붙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쿠웅… 콰드드드드-
묵직한 소리와 함께 옅은 흙먼지가 번지는 와중에도, 일행을 지나치며 날아든 돌덩이들은 연신 주위로 부딪치며 이어 붙었다.
삽시에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몇 미터 간격을 두고 일행을 둘러쌌다. 위로도 반원을 그리듯 덮이고 있어서, 인공 동굴의 입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암석 요새….”
디아나가 비로소 나지막한 탄성을 흘렸다.
지금 이안이 시전 중인 중위 갈색 마법의 이름이기도 했다. 과거, 전쟁 중에 갈색 마법사가 시전했던 비슷한 마법을 떠올린 것이다.
쩌저저저적-
암석 요새는 일행을 완전히 감싸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정면은 뻥 뚫린 그대로였다.
남은 돌덩이들은 천장과 벽면 위에 덧대듯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그런데도 곳곳에 작은 틈들이 뚫려 있어서, 제한적이나마 요새 후미나 측면도 살펴볼 수 있었다.
꾸드득….
단단하게 결속된 암석 요새의 진동이 가라앉았다. 흐릿한 마력이, 먼지처럼 일렁이는 보랏빛을 머금은 채 바위들 사이에 고여 있었다.
암석 요새가 완성된 것이다. 이제 결속을 유지해주는 마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굳건하게 일행을 지켜주리라.
“긴장 풀지마.”
마력 섞인 이안의 목소리가 디아나의 귀를 파고든 건 그때였다.
오른 주먹을 끌어당기듯 얼굴 옆에 움켜쥔 이안이 일행을 돌아보고 있었다.
궐련이 거의 입술에 닿을 듯 가깝게 타들어 가는 가운데. 그의 눈동자에는 이미 다시 연갈색의 마력이 넘실대는 중이었다.
‘벌써 다음 주문을…?’
디아나가 순간 눈을 깜빡였다.
그녀 역시 기초적인 주문 사용자가 아니던가.
일정 수준 이상의 주문을 시전한 뒤엔, 마력의 흐름을 안정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안은, 요새가 완성되기도 전에 곧바로 다음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마력을 통제하는 능력이 엄청나게 뛰어나거나, 이게 그에게는 하잘 것 없는 주문이라는 의미였다.
어느 쪽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이제 시작이니까.”
덧붙인 이안이 앞을 돌아보았다.
디아나의 시선 역시, 비로소 뻥 뚫린 정면으로 향했다.
“……!”
흙먼지가 물안개처럼 번지는 연못 너머로 비스듬한 지층의 단면이 드러나고 있었다. 역경사를 이루듯 하부로 갈수록 멀어졌다.
이 와중에도 저게 아주 단단한 암반층이라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쿠확-!
그때, 이안이 오른팔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활짝 펼치는 채였다.
디아나는 그 순간, 그의 손아귀에서 넓게 방사되는 마력의 흐름을 선명하게 느꼈다.
쿠- 구구구구구…!
장내가 뒤흔들리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한순간 휘청댄 디아나가 재빨리 자세를 다잡았다.
옆에 선 모로가 콧김을 뿜는 와중에도,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기울어진 지층에 고정되어 있었다.
쩍- 쩌적… 쿠구구구구-
지층 표면에 옅은 균열이 거미줄처럼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 위쪽의 틈에서 흙과 자갈이 뒤섞인 부스러기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콰과과…
잔 파문이 쉴 새 없이 번지던 지하 연못 한복판에도 부글대는 지하수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쿠구구구구- 쩌저적-
그리고 그 와중에도 어긋난 채 맞닿은 두 지층의 틈은 점점 더 벌어졌다. 온갖 부스러기와 크고 작은 잔해들이 쏟아져 내리고, 장내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뒤흔들렸다.
중위 갈색 마법, 지반 균열.
본래는 단단한 대지에 좁고 깊은 균열을 만들어내는 주문이, 지금은 반대로 지하에서 지표면을 향해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이 선 일대의 지층을 뒤로 밀어내면서.
꾸득…! 쩌적…!
천장과 벽면 곳곳에서 섬뜩한 소리들이 번지는 가운데, 앞으로 기울어져 있던 장내가 점점 솟아오르듯 수평을 되찾아갔다.
“…….”
가면에 가려진 입을 멍하니 벌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디아나는, 이윽고 대여섯 걸음 쯤 앞에 선 이안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의 전신에서 공명하는 마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머리 위로 치켜든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주문을 통제하고 있어서일 터였다.
솨아아아-
솟아 오르면 번져나간 지하수가 디아나와 모로의 발을 적셨다. 장내가 거의 수평을 되찾아서이리라.
완전히 벌어진 두 지층 사이로 온갖 잔해들이 어지럽게 먼지를 흩뿌리며 추락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장내가 조금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빛…?’
디아나의 눈이 순간 커졌다. 이 틈이 지표면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장내를 뒤덮은 진동과 굉음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쿠구구구… 구구구….
일대가 상대적으로 고요해졌다.
완전히 분리되어 벌어진 지층은, 주문 시전이 끝났음에도 다시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낭떠러지 같은 틈으로 온갖 부스러기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낼 뿐이었다. 어슴푸레하게 흘러드는 빛과 함께.
“후….”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고른 이안이 왼팔을 머리 위로 치켜든 건 그때였다.
서로 마주 보게 펼친 손아귀에서 마력이 스멀스멀 번져나갔다.
이번에도 곧바로 다음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디아나는 그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라지도, 이안의 뒷모습을 눈에 담지도 않았다.
쩍…! 쩌적… 쩌억…!
단절된 회관의 벽면과 천장 곳곳에서 번지는 불길한 소리가, 한층 더 선명하게 귀를 파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층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이 상태가 지하 사원이 유지되는 데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시발….”
나지막이 읊조린 디아나가 마른 침을 삼켰다.
요새 앞으로 고개를 내밀어 천장과 벽면의 상태를 확인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세를 낮춘 채, 곳곳에 뚫린 틈 너머로 사원의 전경을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
흐릿한 빛이 스며들고 있음에도 장내는 오히려 더 어두웠다.
천장과 벽면 곳곳에 새겨진 문양들의 보랏빛이 거의 잦아들어서일 터였다. 불길한 현상이기도 했다.
크르릉….
바짝 긴장한 듯 고개를 숙인 모로가 낮은 숨소리를 토해냈다. 축 늘어진 세렌의 몸 위로 녀석의 잿빛 갈기가 보랏빛 잔상을 남기듯 넘실댔다.
디아나의 시선이 안장에 앉은 루시아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주황빛이 아른거리는 눈으로, 왼팔에 모로의 고삐를 칭칭 감으며 단단하게 고정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담대할 수가….’
내심 읊조리던 디아나는, 곧 다시 홱 앞을 돌아보았다.
이안에게서 심상치 않은 마력의 흐름이 번져나오고 있어서였다.
등골이 오싹한 건, 그의 혼돈이 섞여 있기 때문일 터였다.
믿을 수 없게도, 이안은 평범한 주문에 혼돈을 섞어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슈아아….
어쨌건, 그는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석상처럼 서 있었다.
마주 보게 활짝 편 손바닥 사이로, 보랏빛을 머금은 마력이 맹렬하게 휘몰아쳤다.
자욱하게 번진 흙먼지가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서, 모래 폭풍이 손아귀에 응집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허공을 움켜쥔 것처럼 구부러진 손가락들이 부들부들 떨린 것도 잠시.
쿠- 화악-!
이안이 앞으로 몸을 숙이며 양손을 동시에 힘껏 내리쳤다. 그를 중심으로 흙먼지 섞인 돌풍이 터져 나왔다.
뱉어 버린 궐련의 잔해가 쏟아져 내리는 흙먼지의 폭포 속으로 날아가고, 바닥을 덮은 채 번지는 지하수 표면에 물보라가 튀었다.
디아나가 한쪽 팔을 들어 가면 앞을 가리는 사이.
쿠- 구구구구구-
지금까지와는 다른, 땅속 더 깊은 곳에서 시작된 듯한 진동이 번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허리를 숙인 채 양손을 바닥에 댄 이안의 전신에 마력이 끓어오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쿠- 구구구구구-!
울림이 그에 반응하듯 삽시에 선명해졌다.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 요정 특유의 균형 감각으로 중심을 잡은 디아나의 눈이, 이윽고 서서히 커졌다.
“되… 된다…! 된다고…! 이안…!”
일대의 지반이 진동과 함께 서서히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리친 그녀의 시선이 절로 이안 쪽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허리를 앞으로 숙인 그는, 양팔을 부들부들 떨면서 조금씩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땅을 들어 올리려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그다지 다르지는 않았다.
‘시… 발…!’
이안은 지금,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중이었으니까.
정신적인 압력. 그리고 전신에 이글대는 주문의 마력이 전신을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각 변동. 이 상위 갈색 마법은, 게임에서는 지각을 통째로 침강시켜, 범위 내의 적들을 파묻어 버리는 주문이었을 터였다.
시전 시간이 긴 게 문제일 뿐, 제대로 펼치기만 하면 일반적인 마물들은 즉사시킬 만한 주문이었다.
태산을 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지금은 반대로 일대의 지층을 융기시키고 있어서일 터였다.
‘무너뜨리는 것보다 들어올리는 게 더 어렵단 거지….’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곱씹으면서도, 이안은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힘과 민첩 능력치 역시 주문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어지간한 힘과 균형 감각으로는 이렇게 움직일 수 없었을 터였다.
물론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할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이안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가 이를 악문 채 주문을 이어가는 사이.
“이게… 백마법사….”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디아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탄성을 흘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오만한 요정이라도, 이런 기적에 가까운 광경을 목도하면서도 외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이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단 한 명의 초인이 만들어 내고 있는 기적이 아닌가.
쿠- 구구구구구-
그리고 그들이 선 일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비스듬하게 솟아 오르고 있었다.
분리된 지층 사이에서 온갖 잔해들이 어지럽게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건너편의 암반층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펴고 선 이안이 그 너머를 올려다 보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디아나가, 퍼뜩 눈을 치켜 떴다.
감상에 빠져 잠시 잊었던 현실감이 밀려들었다.
“이안-!”
진동과 굉음을 뚫고, 그녀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길이 보여? 반대쪽에, 통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물론 이안은 뒤를 돌아보지도 대답하지도 못했다.
그저 속으로만 보인다고 읊조릴 뿐이었다.
온갖 잔해의 폭포수 너머, 저 위편의 지층 한복판에 뻥 뚫린 공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층이 벌어지면서 쌓여있던 잔해들이 전부 아래로 떨어진 것이리라. 지층이 어긋나 있던 형태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 지진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는 것 같고….’
힘겹게 양팔을 어깨 앞까지 들어올리는 와중에도, 이안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통로들이 완전히 매몰되어 있었다면, 살아서 이곳을 빠져 나가지 못할 것 같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마력과 혼돈력은 엄청난 속도로 소모되고 있었으니까. 이 인근의 지층을 지표면까지 들어올리는 것보다, 그의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게 더 빨랐을 터였다.
어차피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는 걸 알게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쿠구구구… 쿠르르르르….
등 뒤 저 멀리서부터, 잡음처럼 느껴지는 진동과 둔중한 소음이 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니… 미친…?”
자세를 낮춘 채 암석 요새의 틈 너머를 노려본 디아나가 이내 눈을 치켜떴다.
“서… 서둘러…! 서둘러야 돼! 이안!”
반사적으로 소리치며 이안의 뒷모습을 돌아본 그녀가, 숨을 헐떡이고는 덧붙였다.
“무너지고 있어! 죄다 무너지고 있다고-!”
지하 사원이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연쇄적으로 붕괴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