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62
462화
…나도 이미 알아.
속으로만 읊조리며, 이안은 보이지 않는 벽을 밀듯 양팔을 조금씩 앞으로 내밀었다.
쿠- 구구구구-
반대편 암반 위로, 뻥 뚫린 크고 작은 구멍의 단면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그 한복판, 가장 커다란 구멍의 단면에 고정된 채였다. 저곳이 지금 그들이 선 회관의 나머지 일부인 것 같았으니까.
쿠- 드드드드…
상승이 느려지면서, 대신 벌어져 있던 틈이 빠르게 좁아졌다.
그럴수록 이안의 전신에 번지는 압박감 역시 커지고 있었다. 이안의 미간에 파인 골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도 그래서였다.
‘이거… 설마…?’
이안의 시선이 문득, 낭떠러지 아래로 끝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온갖 잔해들의 폭포로 향했다.
벌어진 틈 사이에 쌓인 이물질들이 결합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서였다.
쩌저적… 콰광-!
그들이 선 주위에서 폭음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아직 연쇄적인 붕괴가 가까워지기도 전이건만. 잔뜩 균열이 번진 회관의 천장과 벽면이 버티지 못하고 조각조각 추락하고 있었다.
쾅! 콰앙- 콰르르르-
삽시에 사방에 크고 작은 폭음이 어지럽게 이어졌다.
일행을 감싼 암석 요새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요새는 파편의 잔해와 흙먼지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와중에도, 여전히 굳건하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안…! 빨리…! 더 빨리-!”
상반신을 잔뜩 웅크린 디아나가 비명을 내지르듯 소리쳤다.
그녀는 더이상 요새 밖을 살피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 봐야 두려움만 더해질 뿐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거든…?
이안은 으스러질 듯 이를 악문 채로 내심 읊조렸다. 그는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쿠… 드드드득….
하지만 잔해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저 너머. 널찍하게 뚫린 단면이 가까워지는 속도는 점점 더 느려졌다.
이안의 전신을 옭아맨 압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밀어내긴커녕, 오히려 힘을 뺀 순간 반대로 그가 밀려날 것 같았다.
“이 이상은… 안 돼…!”
이윽고 앙다문 이안의 입술 사이에서 억눌린 고함이 터져 나왔다.
보이지 않는 벽을 미는 듯한 자세 그대로 간신히 고개만 돌린 이안이, 핏발 선 눈으로 일행을 노려보며 덧붙였다.
“그냥 달려! 당장…!”
아직 분리된 두 지층이 완전히 이어지지 않았건만.
크르렁…!
포효하듯 앞다리를 치켜들며 울부짖은 모로가 그대로 뿜어져 나갔다. 녀석이 만들어 낸 보랏빛 궤적이 이안의 오른편을 스치고 지나쳤다.
“이안 님-! 따라오셔야 돼요!”
안장에 탄 루시아의 외침이 삽시에 멀어졌다. 낭떠러지 끝에서 펄쩍 뛰어오른 모로가, 쏟아져 내리는 잔해의 폭포를 돌파해 반대편의 어둠 너머에 착지했다.
이안이 멀어지는 보랏빛 뒷모습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는 사이.
“미친… 진짜… 내가 왜….”
달려나가려다 멈칫한 디아나가 탄식을 흘렸다. 잔해가 쏟아져 내리는 절벽 사이를 뛰어넘는 게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리라.
하지만 망설임은 잠깐이었다.
콰과과과과-
어느새 붕괴가 만들어내는 지진과 굉음이 귀가 먹먹할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암석 요새가 단단하다 한들, 저 거대한 붕괴를 견뎌내지는 못할 터였다.
“으… 아아아아아-!”
디아나가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나갔다. 흐릿한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짧은 백금발이 맹렬하게 흩날렸다.
그대로 땅을 박찬 그녀가, 양팔을 앞으로 내뻗은 채 화살처럼 잔해의 폭포 한복판으로 몸을 날렸다.
휘청대며 나뒹굴긴 했지만, 어쨌건 그녀 역시 무사히 반대편에 도달했다.
파스슥-
이안의 전신에 이글대던 마력이 증발하듯 흩어진 건 거의 동시였다. 압력이 함께 사라지면서, 이안의 몸이 한순간 휘청댔다.
‘시발….’
목에서 쇠 맛이 번지는 것을 느끼는 와중에도, 이안은 구부러진 다리에 힘을 줬다. 부릅뜬 눈동자에는 어느새 잿빛의 마력이 번지고 있었다.
슈화아아-
그의 전신에 흙먼지 섞인 바람이 모여들었다. 이안은 바람 칼날이 제대로 응집되기도 전에, 땅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콰르르르-
홀로 남은 암석 요새가 잔해더미에 깔려 허물어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지하 사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때, 이안은 이미 낭떠러지를 박차고 뛰어올라 잔해의 폭포를 관통하고 있었다.
쿠과과과과-
그의 뒤를 따라 불어닥친 바람이 한순간 쏟아지는 잔해를 사방으로 튕겨냈다.
그 사이를 뚫고 반대편의 어둠 너머로 착지한 이안이 바닥을 구르며 착지하는 사이.
쿠르르르릉….
뒤에서 낮고 묵직한 굉음이 번졌다. 완전히 붕괴되어 지층 속으로 매몰된 유적의 단말마였다.
타다닷-!
그러나 튕겨 오르듯 일어선 이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벌써 흐릿할 정도로 멀어진 모로의 보랏빛 잔상을 눈에 담으며, 다시 온 힘을 다해 내달리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육감의 경고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아아아- 기아악-!
사방에서 어지럽게 메아리치기 시작한 이 울음소리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쿠구구구… 쿠드드드-
저 뒤편, 지하 사원을 완전히 짓눌러 버린 지층이 이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집중력과 육감이 최고조로 치달은 이안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보고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
쿠구구구구-
저 먼 위편에서부터 시작된 굉음이 아래로 줄지어 이어지기 시작한 건 그 직후였다. 한순간 등을 떠미는 듯한 둔중한 진동을 동반한 채였다.
기울어진 지층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리라.
‘미치겠네, 진짜…!’
이안은 휘청한 와중에도 균형을 잃지 않고 내달렸다. 동시에 다시 바람 칼날을 시전한 채였다.
용의 진원을 마시고 비약적으로 상승했던 그의 주문 시전 속도는, 이번에 몇 가지 비전을 더 익히면서 더 안정적이고 빨라졌다.
하위 마법 정도는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이면 충분했다.
주문을 완성하는 속도 만큼은 대마법사라 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쩍- 쩌저저적-
장내가 어두워지고 굉음과 진동이 번지는 와중에도, 천장과 벽면을 타고 균열이 번지는 소리는 선명하게 이안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곳도 곧 붕괴가 시작되리라는 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밖으로 나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키에에엑- 갸악-! 갸아악-!
사방에서 번지는 크고 작은 울음소리 역시 초점을 맞춘 것처럼 선명해졌다. 안광조차 빛내지 않는 것들이 사방에서 어지럽게 날뛰고 있었다.
‘…적어도, 밖으로 뚫린 길이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네.’
물론 출구의 존재는, 장내가 칠흑같이 어둡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이안은 곁을 스쳐 지나가는 괴물 하나의 형태를 눈에 담았다.
민둥민둥한 피부. 비쩍 마르고 긴 낫 같은 앞다리와 그에 비해 짧은 뒷다리. 대가리에는 눈 대신 자글자글한 주름과 징그럽게 생긴 귀만 불쑥 돋아있었다.
아가리는 깡마른 아가리 한복판에 세로로 벌어진 채였다. 줄톱 같은 이빨 사이로 가느다란 촉수 여러 개가 넘실댔다.
‘뭐, 마경 박쥐쯤 되는 건가.’
놈들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날뛰고 있었다. 길고 뾰족한 앞발로 서로를 찌르거나 짓밟아 댔다.
물론 일부는 저 앞에서 내달리는 모로나, 그 뒤를 필사적으로 따라가는 디아나에게도 달려들었다.
장내를 휩쓸고 있는 진동과 소음이 저것들의 감각을 어지럽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건 적어도, 이것들이 유적을 탈출하지 못하리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멈추지 마! 상대하지 말고 계속 달려!”
이안이 목청 높여 소리쳤다. 벌써 작게 보일 정도로 멀어진 루시아에게 자신의 생존을 알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크르렁…!
사방의 소란을 뚫고, 모로의 포효가 이안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실제로 들린 게 아니라 사념에 가까운 파장이었다. 녀석은 달려드는 박쥐들을 그대로 들이받고 짓밟으며 전차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타다다다닷-
그 한참 뒤를 따르고 있는 디아나는, 더이상 비명도 고함도 내지르지 않았다. 그저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아슬아슬하게 박쥐들을 피하면서, 쫓기듯 필사적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쉬아아악-
그건 조금씩 디아나를 따라잡고 있는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마수들은 죄다 광란 상태에 빠진 것처럼 발광하고 있어서, 그냥 지나쳐도 따라오지 않았다.
그러려는 놈들도 있었지만, 곧 다른 박쥐의 방해로 무산됐다.
물론 놈들을 그냥 지나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콰르르- 쩌정-! 콰앙-
유적이 본격적으로 붕괴되고 있었으니까.
천장과 벽면의 균열이 번지는 속도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착실하게 이안의 뒤를 따라오는 중이었다. 발광하는 동굴 박쥐들을 대신 집어삼키면서.
콰르르르르-
굉음에 쫓기면서도, 이안은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가 망설임 없이 내달리는 건 그저 생존 본능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이 지하 사원의 구조가 일직선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크고 넓은 통로를 거슬러 가다 보면 분명 출구가 나타날 터였다.
저 먼 아래편에서 어슴푸레한 빛이 번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실제로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보여요-! 이안 님! 디아나!”
루시아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번진 건 거의 동시였다.
모로의 보랏빛 궤적 위, 녀석이 불그스름한 안광을 빛내며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불꽃을 만들어내지 않는 건, 지금은 오히려 그게 이안과 디아나의 시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일 터였다.
“계단! 계단 아래에 출구가 보여요! 멈추지 마세요!”
뒤이어 모로가 도약하듯 펄쩍 뛰어올랐다. 루시아와 녀석의 뒷모습이 아래로 떨어지듯 사라졌다.
콰르르르르-
이안의 뒤로 붕괴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저 너머 발아래로 번지는 광원을 눈에 담은 채, 달려드는 박쥐들을 떨쳐내며 전력을 다해 내달렸다.
“내리막! 바깥도 내리막이에요!”
흐릿하게 메아리치던 루시아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멀어졌다. 출구를 벗어난 것이리라.
아마도 모로는 안전한 게 확실해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려갈 터였다. 이안이 명령한, 그리고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역시 산이었던 거네. 바위산인가? 아니면, 협곡…?’
반쯤 무의식적인 생각을 이어가면서, 이안은 디아나의 뒤를 따라 계단으로 접어들었다.
그녀와의 거리는 이제 고작해야 스무 걸음 남짓한 정도였다.
간격이 더 빠르게 좁혀지지 않는 건, 이제 앞을 가로막는 마물들이 존재하지 않아서일 터였다.
저 아래로, 지층을 깎아 만든 게 분명한 출입구가 끝이 뾰족한 아치를 그리며 솟아 있었다.
콰르르르-
거대 마경 박쥐들은, 죄다 붕괴에 잡아 먹힌 뒤였으니까. 붕괴는 삽시에 계단 주위의 벽면과 천장까지 이어졌다.
출구 주위로도 삽시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졌다.
“으아아아아-!”
붕괴를 직감한 듯, 디아나가 계단을 다 내려가기도 전에 몸을 날렸다. 출입구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그녀가 사원을 벗어난 직후였다. 이안이 막 계단을 박차고 뛰어오른 시점이기도 했다.
추락하는 파편들이 시야를 가렸지만,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지잉-
그저 허공에서 몸을 웅크리면서, 황금빛이 번지는 왼손을 앞으로 치켜들었을 뿐이었다.
떨어져 내리는 파편들의 한복판으로, 육각형을 그리는 황금빛의 궤적이 날아들었다.
콰장창창-!
파편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온 이안이, 왼팔을 떨치듯 휘둘렀다.
시야가 탁 트이고, 거무스름한 비탈길이 발아래로 펼쳐졌다.
비교적 완만한 내리막을 그리는 계곡이었다. 모로의 보랏빛 궤적은 이미 저만치에 손톱만하게 보일 정도로 멀어져 있었다.
이안이 바닥을 나뒹굴다 튕겨 오르는 디아나의 뒷모습을 눈에 담으며 착지하는 사이.
쿠구구구구-
뒤에서 땅이 울릴 정도의 둔중한 진동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내달리며 뒤를 돌아본 이안의 미간이 절로 일그러졌다.
‘이럴 것 같더라, 시발….’
그들이 나온 유적의 출입구는 이미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크고 작은 바위와 흙의 물결이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뒤, 거뭇하게 솟은 바위산의 일부가 비스듬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만들어진 산사태였다.
“이, 이안-! 살려줘! 이아안-!”
같은 광경을 확인한 듯, 디아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럴 때는 세상에서 제일 솔직하다니까. 내심 읊조리는 와중에도, 이안이 달리는 속도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
저 해일에서까지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감해서였다.
“디아나! 돌아와!”
“돌아, 돌아오라고…?!”
이어진 외침에 눈을 치켜뜨며 뒤를 돌아본 디아나가, 다음 순간 그대로 두 다리를 내리찍으며 미끄러지듯 속도를 줄였다.
솨아아아-
이안의 눈동자에 휘몰아치는 금빛에 가까운 연갈색의 마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카가가가각-
헛발질까지 하며 다급하게 방향을 돌린 디아나가 비탈길을 거슬러 달려 올라가기 시작한 사이.
콰득-
완전히 멈춰서며 돌아선 이안이, 그대로 양 주먹을 앞의 땅에 내리찍었다.
쩌저저저저적-!
땅에 덮인 자갈과 흙이 폭발하듯 솟구치면서, 끝이 뾰족한 암반이 거대한 가시 기둥처럼 솟구쳐 올라 그의 앞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