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78
478화
“뭐라고…?!”
“……!”
디아나와 루시아의 고개가 동시에 홱 돌아왔다.
이안의 미간도 일그러지는 가운데, 요그가 태연하게 덧붙였다.
-어쨌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확실하군.
“얼마나 가까워졌는데.”
미간을 찌푸린 이안이 내뱉었다. 요그가 혀를 날름댔다.
-아직은 꽤 먼 것 같지만… 글쎄.
“시발… 서둘러야겠네.”
디아나가 가면 너머의 눈매를 구긴 채 내뱉었다. 루시아도 고개를 끄덕이고, 콧김을 뿜은 모로의 걸음도 조금 더 빨라졌다.
일행은 어느새 모래 언덕을 완전히 내려와서, 반대로 오목하게 파인 모래 계곡을 지나고 있었다.
가시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너도 야나르 타쉬가 느껴지냐.”
주위를 눈에 담던 이안이 덧붙였다. 요그의 대답이 곧바로 이어졌다.
-물론이지, 친구. 우린 같은 혼돈을 삼켰다고.
“우리가 따라잡히기 전에, 그놈의 권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닐 것 같은데. 지금부터 달린다고 해도 쉽지 않을 거야.
역시 그런가, 시발.
이안이 짧게 입맛을 다셨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던 디아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그냥 사막을 지나는 거랑 별반 다를 바도… 아니… 더 최악인 것 같은데.”
“그건 아닐 걸.”
이안이 덧붙였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사막의 마물들은 야나르 타쉬의 권역까지 들어서지는 못할 것 같았으니까. 사막이 서서히 소용돌이 치고 있지 않던가.
아니라고 해도, 지금만큼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터였다. 야나르 타쉬가 놈들을 배려해 가며 싸울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보는 디아나와 루시아를 차례로 일별한 이안이, 이윽고 모로 쪽으로 고개를 까딱이며 덧붙였다.
“그냥 다 같이 타고 달리는 게 어떨까 싶은데.”
“우리 넷이, 전부요?”
디아나의 눈매가 좁아지는 가운데, 루시아가 마찬가지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이안이 모로의 목덜미로 손을 뻗었다.
“그래. 다 같이.”
모로가 대답하듯 크르렁댔다. 녀석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던 이안의 눈매가 문득 꿈틀댈 찰나, 디아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무리 마수 전마라고 해도 우리를 전부 태우고 오래 달릴 수는 없을 거야. 그럴만한 공간도 부족하고.”
“글쎄….”
모로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이안이, 비로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 녀석은 할 수 있다는데.”
“……?”
디아나가 미간을 좁히며 멈칫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이안의 눈동자 한복판에 어느새 보랏빛이 아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로의 사념에 혼돈의 정수가 반응한 것이다. 뒤를 일별한 이안이 덧붙였다.
“세렌 경. 잠시 내려 주시겠소?”
“예…? 아, 예. 성자 대행.”
화들짝 눈을 깜빡인 세렌이 득달같이 옆으로 뛰어내렸다. 이안의 보라색 눈동자가 다시 모로에게로 돌아갔다.
“뭘 하려는 건진 모르지만, 한번 해 봐.”
동시에 모로의 목덜미에 얹은 손에서 혼돈력이 번져 나갔다. 모로가 멈춰선 건 거의 동시였다.
-혼돈을 아끼라고, 친구. 필요한 순간은 따로 있잖아?
요그가 넌지시 덧붙였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굳이 정수가 토해내는 혼돈을 막지 않았다.
이 정도는 사실, 이제 그가 품은 혼돈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꾸득… 꾸드득…
모로의 전신에서 뼛소리가 번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본래도 평범한 전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던 녀석이, 점점 더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보랏빛이 번지는 검회색 갈기가 더 풍성하게 돋아나고, 녀석의 콧잔등에 돋은 뿔도 더 길고 날카롭게 자라났다.
“세상에….”
진화라고 해도 될 만한 변이를 멍하니 지켜보던 루시아가 탄성을 흘렸다. 놀란 얼굴인 건 물러난 세렌도 마찬가지였다.
“대단하군요…. 이렇게까지 성장한 건… 태자 전하의 애마였던 세릴라 이후로 처음 봅니다….”
이안은 비로소 모로의 목덜미에 얹고 있던 손을 뗐다. 물론 모로의 변이는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뿌드득… 뿌득…
안장이 좌우로 더 넓게 벌어지고, 녀석의 전신을 감싼 마갑 역시 더 밀착된 것처럼 파고들었다.
모로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치켜든 건 변이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콧잔등에 솟은 뿔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고, 길고 풍성해진 갈기 사이로 은은한 보랏빛이 흘러내렸다.
크르릉….
녀석이 한층 더 굵고 낮게 울리는 숨소리를 흘렸다. 더 크고 육중해졌을 뿐만이 아니라, 위엄과 기품마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녀석의 갈기를 한차례 쓰다듬은 이안이,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면, 이제 다 같이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
눈을 치켜뜬 일행이 한차례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로의 옆으로 다가왔다.
“정말이지… 놀랍네요. 아주 근사해, 모로.”
이안의 손을 잡고 안장 앞으로 올라선 루시아가 속삭였다. 녀석을 슬쩍 돌아본 모로가 보라색이 섞인 콧김을 뿜었다.
“제 앞으로 오십시오. 제가 뒤로 가겠습니다.”
모로의 등을 붙잡고 올라탄 세렌이 뒤로 몸을 빼며 말했다.
디아나는 사양하지 않고 훌쩍 뛰어올라 이안의 바로 뒤에 탔다.
모로는 휘청대지조차 않았다.
-다 탔으면, 출발하자고.
이어진 요그의 속삭임에 모로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묵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건 아주 안정되어 있었다.
“더 바싹들 붙어.”
이안이 엉거주춤 허리를 붙잡은 디아나의 팔을 끌어당기며 덧붙였다. 그의 허리를 끌어안은 디아나가 눈을 슬쩍 치켜뜨며 굳어지는 가운데, 세렌 역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한 손을 루시아의 어깨에 얹은 이안이 덧붙였다.
“달릴 수도 있겠어?”
모로가 대답 대신 그대로 달려나갔다. 녀석의 꼬리 뒤로 검은 모래가 치솟아 흩날렸다. 뒤이어 모로가 고개를 앞으로 숙이자, 풍성하게 자라난 갈기가 넘실댔다.
‘이게 정말 되네….’
고삐를 쥔 이안이 내심 헛웃음을 흘렸다. 중무장한 인원 넷을 태우고 이런 속도로 달리다니.
아무리 마수 전마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평범한 말이었다면 설 수도 없었을지도 몰랐다.
“너무 무리하지 마. 모로. 몇 시간을 내리 달려야 할지도 모르니까.”
녀석의 갈기 사이로 몸을 숙인 루시아가 덧붙였다.
호기롭게 그르렁대면서도, 모로가 달리던 속도를 조금 줄였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제법 빠른 속도였다.
솨아아아-
모래 섞인 바람이 일행의 전신을 연신 훑고 지나갔다. 어느새 그들은 또 다른 야트막한 모래 언덕을 오르는 중이었다.
속도를 조금 더 줄이는 채였다. 스스로 오래 달릴 수 있는 최적의 속도를 찾으려는 것 같았다.
‘알아서 달리게 둬도 되겠네.’
잠시 지켜보던 이안은, 이윽고 고삐를 아예 느슨하게 풀어 놓았다.
사실 그 역시 지금 모로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지 않던가. 녀석이 스스로 찾게 두는 편이 훨씬 더 나을 터였다.
서걱- 서걱-
모로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적당한 속도를 유지한 채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바짝 굳어져 있던 디아나는 물론 가장 뒤에 앉은 세렌 역시, 이윽고 한결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다.
-이런….
요그의 속삭임이 번진 건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이안의 어깨에 꼬리를 감은 채 속도를 즐기듯 넘실대던 녀석이, 다시 홱 몸을 당겨 이안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엔 은밀하게 접근하느라 느렸던 모양인데.
앞에 앉은 루시아가 미간을 좁히며 돌아보는 가운데, 이안이 내뱉었다.
“더 빨리 다가오고 있다고?”
-그런 것 같아. 뭐, 우리가 대마족의 권역에 가까워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불길하게 소용돌이치는 적갈색 하늘이 저 앞에 보이고 있었으니까.
이안의 시선이 주위로 돌아갔다. 마침 아주 낮은 모래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 중이었다. 정면 저 앞은 훨씬 더 높은 사구가 가로막고 있긴 했지만, 어쨌건 좌우의 시야는 꽤나 넓었다.
“…….”
넘실대며 이어진 검은 사막 저 너머. 흐릿하게 꿈틀대는 실루엣들을 발견한 이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확한 형태를 구별할 수 없는 건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있거나, 모래 속에 몸을 감추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시발… 끝도 없는 것 같은데.”
주위를 돌아보던 디아나도 낮은 탄식을 흘렸다. 여전히 꽤 멀었지만, 어쨌건 사방에서 밀려오고 있다는 건 충분히 분간할 수 있었다.
키아아아- 키에에에-
메아리치는 듯한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번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그 근원지가 하늘 어딘가라는 사실을 깨달은 디아나의 미간이 더 일그러졌다.
“설마, 와이번 울음소리인가…?”
“와이번?”
이안이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며 물었다.
“본래는 협곡에 사는 놈들인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검은 아지랑이가 넘실대는 상공을 이리저리 돌아보던 디아나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더 빨리 달려야 돼. 이안 호프. 이대로는 결국엔 따라잡힐 거야.”
“그건 안 돼.”
“뭐라고…? 왜?”
이안이 딱 잘라 대답하자, 디아나가 그를 올려다보며 되물었다.
“이안 님 말씀이 맞아요.”
덧붙인 건 상체를 완전히 일으킨 루시아였다. 이안의 품에 등을 기댄 녀석이, 고개를 돌려 디아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성장했어도, 모로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아요. 무리해서 달리면 그만큼 더 빨리 지칠 거예요. 최악의 경우엔 낙오될지도 모르고요.”
“아니 그럼… 이대로 따라잡히자고?”
“이미 요그가 그럴 수도 있다고 경고했잖아.”
이안이 태연하게 끼어들었다. 루시아와 디아나를 번갈아 돌아본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모로는 제 몫을 다하고 있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싸우기라도 하잔 거야? 이 상태로?”
“다른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읊조린 디아나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으로 투척용 비수 한 자루를 뽑아 드는 채였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쇠장갑을 낀 손이 뻗어 나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쓸만한 무기를 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세렌이었다. 이안의 시선을 받은 그녀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덧붙였다.
“후미는 제가 맡아야 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가진 무기로는 싸우기 어려울 것 같군요.”
“…….”
이안이 선뜻 대답하지 못한 건 그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건네줄 만한 마땅한 무기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흑검은 자칫하면 그녀를 홀리려 들 수 있었고, 그렇다고 진은 강철 검을 줄 수는 없었다.
지금 아공간에 들어있는 것 중에도 디아나의 소검보다 나은 물건은 전투 망치 정도가 전부였다. 사람을 넷이나 태운 채로 휘두르게 할 물건은 아니었다.
“이거면 될까요, 경?”
되물은 건 루시아였다. 어느새 허리춤에서 꺼낸 철퇴를 옆으로 치켜든 채였다. 뜻밖이라는 듯 눈을 깜빡인 세렌이, 이내 흉악한 금속 추가 달린 철퇴를 눈에 담았다.
“…아주 훌륭하군요. 오히려 여기서는 철퇴가 더 유용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 사제님은요?”
“전 괜찮아요.”
선선히 대답하며 손잡이를 세렌의 손아귀에 건네준 루시아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싸워야만 한다면, 이번에는 주문 쟁이의 방식으로 싸울 생각이거든요.”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마력 탈진 조심하고.”
“이번에는 신경 안 쓸 거예요.”
“…응?”
이안의 미소가 설핏 굳어지는 가운데, 루시아의 태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안 님은 최대한 힘을 아끼셔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저한테 맡기시고 이안 님은 보조만 해 주세요.”
주황빛이 흐릿하게 번지기 시작한 루시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차피 지금은 제 주문이 더 잘 먹힐 거라고요. 이안 님은, 갈색이시니까.”
녀석의 눈을 잠시 바라보던 이안이, 이윽고 풀썩 웃음을 흘렸다.
녀석의 생각이 기특해서만이 아니라, 옳은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렌이 보고 있지 않은가.
물론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죽여서 입을 막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방법까지 동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력 탈진 조심하고.”
이윽고 이안이 덧붙인 말에 루시아의 눈매가 조금 더 휘어졌다. 허락받았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은 것이리라.
-좋은 방법이군. 지금은 주문 쟁이가 둘이니까. 잘만 하면, 크게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겠어. 물론….
요그의 즐거운 듯한 속삭임이 끼어들었다.
-친구 너는, 루시의 말을 듣는 게 좋겠고.
다들 나한테는 쉬라고 난리군.
야나르 타쉬의 전투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살살 가로 저은 이안이 덧붙였다.
“그럼 너도 네 역할을 다해.”
고개를 돌린 그가 요그에 이어 디아나까지 돌아보았다.
“너희들이 가장 감이 좋으니까. 주문 쟁이들의 눈과 귀가 되어 주라고.”
디아나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생존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요그도 곧바로 연기로 화해 흩어졌다.
-잘 해보자고. 귀쟁아.
삽시에 디아나의 목덜미에 재구성된 요그가 속삭였다. 디아나는 조금도 움찔대거나 께림칙해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돌아볼 뿐이었다.
크르릉…!
그사이 모로가 다시 오르막으로 접어들었다. 완만하지만 가장 높은 모래 언덕이었다. 일행들이 저마다 가볍게 몸을 풀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조심해야 할 놈이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데.
요그의 속삭임이 번진 건 언덕 중턱을 한참 지나친 때였다.
물론 이안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아가 그를 흘깃 돌아본 건 그때였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안 님은 제가 놓친 것들만 맡아 주세요. 힘을 아끼셔야 한다고요.”
긴장과 묘한 설렘이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 이안을 돌아보는 눈동자는 이미 선홍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알았다니까.”
이안이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눈웃음을 지은 루시아가 비로소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양손을 어깨 앞으로 치켜드는 채였다.
“그럼 어디 한 번… 해보자고요.”
활짝 펼친 그녀의 양 손아귀에서, 눈부신 불길이 원을 그리듯 휘몰아치며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