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방금, 네 새로운 권속이 탄생한 것 같은데.
…그러게.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뇌리를 울리는 속삭임에, 이안은 머릿속으로만 대답했다.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여서만이 아니라,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콰과과과과-
지금 그는 땅속에서 이리저리 엄청난 속도로 이동 중인 야나르 타쉬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야나르 타쉬는 모래 속에서 훨씬 더 빠르게 움직였다. 운행 중인 롤러코스터의 옆면에 짓눌린 채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하긴. 애초에 놈이 느려 보이던 건, 덩치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일 뿐이었다.
‘날 떨어뜨려서 묻어 버리거나 갈아버리려는 게 목적이겠지만….’
지금의 이안은 그저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일 뿐. 녀석에게는 애석하게도, 고통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쿠구… 쿠구…
혼돈의 정수가 권속에게 뿜어내고 있는 파장을 신경 쓸 정도의 여유도 있을 만큼.
물론, 그저 딴짓만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촉수들을 야나르 타쉬의 외골격에 박아 넣고, 암녹색으로 물든 손으로 놈의 외골격을 녹이고 있었다.
불결한 손톱. 아마도 드네로브의 교회에서 부패의 의식을 저지할 때 손에 넣은 스킬일 터였다.
쿠드드득….
그의 손은 암석 같은 야나르 타쉬의 외골격에 이미 손목까지 박혀 있었다. 손에 닿은 부분을 중심으로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콰과과과-
그 주위로 이어진 커다란 균열들은, 야나르 타쉬가 사막에 자신의 몸을 내리찍으면서 스스로 만들어 낸 흔적이었다.
어쩌면 이게 게임에서 놈을 죽이는 방법이었는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마법들을 피하면서, 놈이 육탄 공격으로 스스로 방어력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것이다.
‘방어력을 다 깎으면, 막상 체력은 그렇게 높지 않은 식이었겠지.’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놈의 속살은 외골격만큼 단단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
물론 지금은 놈이 스스로 자신의 외골격을 다 부숴 버리기를 기다려 줄 수 없었다.
그때까지 일행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그의 육체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였다.
쿠구… 쿠구…
이 순간에도 정수에 담긴 혼돈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비단 불결한 손톱이나 그의 등에서 솟아 나온 심연의 촉수. 혹은 아마도 세렌과 모로일, 계속해서 그의 혼돈력을 갈취해 가는 권속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혼돈의 화신이 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계속해서 혼돈력이 소모됐다.
‘변신에 제한 시간이 있는 건, 뭐. 놀라운 일도 아니니까.’
문제는 혼돈을 전부 소모하고 나면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본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일 터였다.
그 외에는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건 아주 곤란해질 테니까. 대부분 죽음이라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건, 새삼스럽게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으리라.
사실상 야나르 타쉬가 아니라 제한 시간과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이 모습이 된 이래, 정작 야나르 타쉬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은 없지 않던가.
‘이걸 웃어야 할지….’
그가 야나르 타쉬의 외골격을 녹이는 데에 집중하는 것도, 비단 달리 할 게 없어서나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놈의 혼돈을 빨아들일 방법을 마련해 두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이미 손목까지 파고들었지만, 놈의 외골격은 아직도 한참이나 더 남아 있는 것 같았으니까.
놈의 덩치를 생각하면 팔꿈치 위까지 밀어 넣어야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쿠구… 쿠구….
뇌리로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도 그래서일 터였다. 분노. 살의. 질투. 짜증. 약간의 조바심과 영문 모를 애증까지.
복합적이고 생생한 감정들이었지만, 이안은 전혀 휩쓸리지 않았다.
이것들이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했잖아. 네 혼돈은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다니까.
요그의 웃음기 섞인 속삭임이 이어졌다. 평소보다 더 선명한. 머릿속에 바로 대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녀석이 이렇게 말 한 건 물론, 이안의 사념을 읽어서였다.
깊은 본심까지는 여전히 읽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어쨌건 녀석은 표면적인 상념은 아주 자연스럽게 읽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이안은 의사소통에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너무 안심하지는 말라고, 친구. 지금 네 영혼이 나와 네 이 정체 모를 무언가에 의해 두 겹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해도, 영혼 자체가 강해진 건 아닐 테니까 말야.
요그의 느긋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혼돈이 네 영혼을 삼켜버리지는 못하겠지만. 메아리만으로도 부서지거나 망가질 수는 있을 거야. 알을 마구 흔들면, 껍질은 무사해도 안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리잖아?
…뭐, 비슷한 경험이 없진 않지.
이안은 평소처럼 닥치라고 핀잔을 주거나 무시하는 대신, 선선히 대꾸했다.
어차피 달리할 것도 없지 않던가. 애초에 요그가 이렇게 떠들어대는 것도, 지금의 상황을 지루해하고 있어서일 터였다.
-그렇게 되면 나도 위험하다고. 잊지 마. 너는 지금 혼돈과 융합한 게 아냐. 내가 네 혼돈을 속이고 있는 거지.
요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네가 의식을 잃는다면, 네 영혼은 고립되고 나는 먹혀 버릴지도 몰라. 네 혼돈에 삼켜지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긴 하지만… 자의식을 잃고 싶진 않다고.
거, 새끼. 하여간.
이안은 내심 코웃음을 흘렸다.
역시 본인의 안위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직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 놈이었다.
물론, 조언을 한 귀로 흘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 혼돈의 화신으로 거듭난 것부터가 녀석 덕분이 아닌가.
무사히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녀석의 노고를 치하할 생각까지 있었다.
녀석이 말했던 위험 부담이, 바로 그 부분인 것 같았으니까.
부오- 오오오오-
전신을 울리는 듯한 울부짖음이 번진 건 그때였다. 동시에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이안에게 흐릿하게 전해졌다. 두려움과 비통함. 그리고 분노.
-몸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는 걸 드디어 눈치챘나 본데.
그러게. 꽤 둔하네.
내심 읊조리면서도, 이안은 일말의 동정심이나 미안함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녀석에 대한 살의와 분노가 들끓었다. 그의 혼돈이 뿜어내는 감정이었다.
‘…진짜, 어쩌다 이렇게 성질이 더러워졌지.’
예전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안은 내심 입맛을 다셨다.
하긴. 그는 언제나 분노나 짜증, 불쾌함, 그리움 따위의 감정들을 억누르며 지내왔다.
높은 정신력 덕분에 무던하게 견뎌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혼돈의 정수까지 속일 수는 없었을 터였다. 이 녀석은 그의 그런 감정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것이다.
‘나쁜 아빠가 된 기분인데….’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터였다. 그가 흡수해 온 혼돈들에는 사념이 깃들어 있지 않던가.
타락자나 마족의 잔류 사념이 건전할 리 없었다.
-그게 거슬리면, 이 혼돈을 온전히 네 것으로 만들면 돼. 친구. 지금과는 정확히 반대로 말야.
요그의 의미심장한 속삭임이 번진 건 그때였다.
-그럼 너는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거야, 친구.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이 모습조차도 하잘것없게 느껴질 거라고.
하여간 틈만 나면 영업질이네.
이안이 내심 코웃음을 흘리는 그때,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이던 야나르 타쉬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비로소 이대로는 절대 이안을 죽일 수도 떨쳐 낼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가는 게 오히려 그를 도와주는 선택이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하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그가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 수는 없을 터였다.
-겁을 잔뜩 먹었군. 하긴… 너 같은 혼돈의 화신을 처음 봤겠지. 공포는 미지에서 비롯되는 법이기도 하고 말야.
요그가 즐거운 듯 킥킥대는 가운데, 야나르 타쉬의 전신에 적갈색의 마력이 번지기 시작했다.
혼돈의 시야로 응시 중인 이안에게는, 놈의 몸속 깊숙한 곳에 새겨진 고대어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워낙 희미한 데다 알아본다 해도 전부 해석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여러 주문이 새겨져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쨌건, 학습 능력이 없진 않네.’
그저 솟구치는 것만으로는 그를 떨쳐 낼 수 없으리란 사실 역시,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저 위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굉음이 번지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콰과과과과-
땅 위로 솟아오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안은 자세를 더 낮추면서, 동시에 심연의 촉수들을 최대한 깊숙하게 찔러 넣었다.
콰아아아-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완전히 사라지고, 자욱하게 치솟는 잿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동시에 야나르 타쉬의 전신에 맺힌 적갈색 혼돈 역시 선명해지고 있었다.
쿠하아악-!
주위의 모래 먼지가 일제히 빨려들면서, 거대한 기둥처럼 치솟은 야나르 타쉬의 주위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니, 웬만한 마족이라 해도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나갔을 모래 회오리.
쿠과과과과-
이안을 너덜너덜하게 휩쓸어 날려버리기에도 충분했다. 솟구치듯 튕겨 나가 빙글빙글 회전하는 이안의 뇌리로, 요그의 속삭임이 번졌다.
-꽤 시큰한데.
지금 이안의 상태를 표현하기엔 지나치게 단순한 감상이었다.
전신이 갈려 나간 찰흙처럼 변해버리지 않았는가. 촉수들이 너덜너덜해졌을 뿐만 아니라, 한쪽 눈까지 멀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고통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통각 자체가 대부분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
쿠구… 쿠구…
심지어 그의 육체는 엄청난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정수가 토해낸 혼돈이 빠른 속도로 전신으로 번지면서, 터지고 찢겨나간 부분들을 채웠다.
콰과과과과-
기둥처럼 솟은 야나르 타쉬의 전신에는 여전히 모래 회오리가 번지고 있었다.
이대로 하늘까지 솟구치게 만들어 풀어버리려는 건지도 몰랐다.
이미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곳곳에 휘몰아치고 있었으니, 하나쯤 추가되더라도 티가 나지도 않을 터였다.
고오오오-
빙글빙글 돌며 치솟는 사이에도 잿빛으로 뒤덮인 하늘과 곳곳에 휘몰아치는 모래 회오리들을 돌아본 이안이, 이윽고 발아래에 펼쳐진 광경을 눈에 담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공교롭네.’
그의 권속들이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세상이 빙글빙글 회전하는 와중에도, 이안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모로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야나르 타쉬가 이곳에서 솟구친 게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곧바로 뒤를 이었다.
-저래서 반편이가 네 권속이 된 건가 본데.
달려오는 모로의 뒤로, 모래 유충들이 우글우글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 멀찍이 혼돈의 시야로만 볼 수 있는 커다란 실루엣들도 따라오고 있었다.
야나르. 심지어 두 마리였다.
‘야나르 타쉬가 불러들인 건가.’
땅속을 오가는 데다 온갖 주문을 난사하고, 거기다 하수인들까지 소환하다니.
게임에서는 그야말로 끔찍하게 어려운 보스였을 터였다.
막상 야나르 타쉬 본신의 공격 패턴은 솟구쳐 오르거나 몸으로 짓눌러 버리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모든 과정을 동시에 겪는다면 절대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내가 모르는 공략법이 더 있나.’
자연스럽게 이어진 상념을, 이안은 이내 가볍게 떨쳐 냈다. 지금은 전혀 의미 없는 의문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일행들의 상태였다.
혼돈을 잔뜩 머금은 모로와 녀석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루시아까지 먼저 확인한 이안이, 비로소 자신의 새 권속을 눈에 담았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거겠지만….’
여러모로 애석한 짓을 해버렸네.
내심 입맛을 다시긴 했지만, 지금 세렌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모로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보랏빛 혼돈을 전신에 두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손에 쥔 철퇴에서도 혼돈이 아지랑이처럼 치솟고 있었다. 역천의 송곳니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찌르고 베는 것만이 아니라 후려치는 것도 가능한, 전천후 병기가 따로 없을 터였다.
“…….”
이제는 그녀도 이안을 발견한 게 분명했다.
그녀의 보랏빛 안광은, 거의 상승을 멈춘 이안을 정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건 그녀의 등 뒤에 빼꼼 고개를 내민 가면 쓴 요정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제, 옆으로 물러나 있어.’
이안이 오른손을 옆으로 치켜들며 생각했다.
세렌에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모로는 그의 사념을 들은 게 분명했다. 녀석이 그대로 비스듬하게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이다.
휘아아아-
그사이 추락을 시작한 이안은 허공에서 자세를 다잡았다. 그의 육체는 상승하는 동안 이미 재생을 완벽하게 끝마친 상태였다.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촉수들이 한순간 그의 몸을 감싸듯 구부러졌다. 일제히 뒤로 뻗어 나간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쒸아아악-
천천히 하강하던 이안의 몸이 그대로 화살처럼 뿜어져 나갔다.
자신이 보기에도 이 촉수들은 날개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정말 그를 날게 해 주지는 못했다.
이런 식으로 추진력을 더하거나, 일종의 활강 정도만 가능하게 할 뿐이었다.
물론 촉수들이 진짜 유용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하나하나가 사역마 수준의 원시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콰아아아-
스카이 다이빙을 하듯 뿜어져 나가는 와중에도, 이안은 저 아래쪽에 펼쳐진 유충들의 물결을 눈에 담았다.
한눈에 봐도 수백 마리는 될 법한 무리였다.
‘전부 다 몰려온 건가?’
놈들은 모로를 따라 방향을 바꾸지 않고, 추락하는 그를 향해 똑바로 밀려들고 있었다.
어쩌면 야나르 타쉬의 부름을 받고 온 게 아니라, 스스로 우두머리를 지키기 위해 모여든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건 달라질 건 없지만.’
뾰족한 이를 훤히 드러낸 이안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야나르 타쉬는 물론이고 저 모래 벌레들조차도, 자신들에게 다른 용도가 더 있다는 것까진 알지 못할 터였다.
쉬하악-!
뒤로 너풀대던 촉수들이 일제히 좌우로 활짝 뻗어 나간 건 그때였다. 한순간 이안의 추락 속도가 느려지면서, 그의 궤도가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물론 그렇다 해도 충분히 빨랐고, 지상 역시 가까울 만큼 가까워진 상태였다.
촉수들을 활짝 펼친 이안이, 가까워지는 유충들의 물결 한복판으로 비스듬하게 떨어져 내렸다.
콰드드드득-!
그의 촉수와 전신에 휩쓸린 유충들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평소와 달리 전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감각이었다. 뒤이어 상반신을 위로 치켜든 그가 모래 위에 떨어졌다.
콰과과과과-
그는 평소처럼 나뒹굴지 않았다. 그대로 두 다리를 땅에 박은 채 미끄러지듯 착지했다. 둔중한 충격파를 사방으로 흩뿌리는 채였다.
모래가 사방으로 자욱하게 솟구치고, 충격파에 휩쓸린 유충들이 끈적하게 터져 나갔다.
자세를 낮춘 이안이 완전히 멈춰서는 가운데.
쿠구… 쿠구…
정수의 울림이 문득 선명해졌다.
이안의 의도를 눈치챈 것이리라.
낮게 코웃음 친 이안이, 흩어지는 잿빛 모래 먼지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파사사사사-
사방에서 밀려드는 유충들의 물결이 시야 가득 펼쳐졌다.
이안의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보라색의 혀가 날카로운 이빨 사이를 훑은 것도 잠시.
쿠- 화악-!
그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땅을 박찼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 자주색 궤적이 번지기 시작했다. 사냥의 시간.
눈 깜짝할 사이에 유충들이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하지만 원을 그리며 튀어나온 이빨들을 딱딱대는 것들의 형체는, 그의 시야에 느리고 선명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그래… 사실 나도, 저 녀석들이 무슨 맛일지 궁금하긴 했다고.
요그의 속삭임이 뇌리를 울리고, 적의와 살의가 치솟았다. 모든 것을 찢고 죽이고 먹어 치우라는 속삭임이 귓가를 스치는 것 같았다.
이안은 자신의 것이 아닌 그 감정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마족 같은 일갈을 내지르며, 이안은 유충들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제대로 된 자세도 갖추지 않은, 말 그대로 육탄 돌격이었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콰지지지지직-
그의 돌진에 휩쓸린 유충들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전신에 살점과 내장 섞인 체액들이 뒤덮였지만, 이번에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해방감마저 들었다.
돌진을 멈추지 않은 채, 이안이 한 손을 낚아채듯 휘둘렀다.
콰직-
달려들던 유충 한 마리가 그의 손아귀에 맥없이 붙잡혔다.
놈은 역겨운 꽃잎 같은 이빨들을 맞부딪치고 두툼한 몸통을 발작하듯 마구 꿈틀댔다.
까드득…
하지만 이안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날카로운 손끝이 놈의 외골격을 파고들 뿐이었다.
불결한 손톱은 진작 비활성화한 상태였다. 유충의 몸은 녹아내리는 대신, 그저 터져버릴 것처럼 부풀었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더 컸던 것 같은데.’
내가 많이 커지긴 했나 보네.
생각하며, 이안은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벌렸다.
삽시에 더 뾰족하게 돋아난 새카만 이빨들이, 유충의 몸통 한복판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