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85
485화
카드드득-
이빨 사이의 유충이 발작하듯 꿈틀댔다.
일말의 거부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심 실소하면서도, 이안은 끝을 뾰족하게 말고 있던 혀까지 찔러 넣었다.
쿠드득…!
이빨이 그랬듯, 그의 혀 역시 유충의 껍질을 두부처럼 가르며 박혀 들었다.
이안의 목덜미가 꿈틀댔다.
꿀꺽… 꿀꺽….
유충의 부풀어 있던 몸통이 바람이 빠지듯 쪼그라들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콰지지직-
이 와중에도, 그의 몸은 앞을 가로막는 유충들과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었다. 돌진 속도가 줄어든 탓에, 부딪친 유충들은 터져 나가는 대신 사방으로 튕겨날 뿐이었다.
등 뒤로 넘실대던 촉수들이 일제히 휘몰아치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콰과과과과-
보라색 궤적들에 휩쓸린 유충들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살점과 내장 조각. 검은 체액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와중에도, 이안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음미하듯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빨 사이의 유충은, 어느새 미라처럼 비쩍 말라붙은 몰골이 되어 있었다.
퍼석-
이윽고 이안이 완전히 멈춰서자, 말라붙은 유충이 모래처럼 바스러졌다. 촉수들이 여전히 주위로 휘몰아치는 가운데, 요그의 느긋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솔직히, 맛이 별로 좋지는 않았어.
그러게.
내심 읊조리며, 이안은 입에 남은 잔해를 탁 뱉어냈다.
하지만 어쨌건, 그의 정수에는 혼돈이 스며들고 있었다.
물론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
먹어 치울 놈들은 아직도 잔뜩 남아 있었다.
이안은 휘몰아치는 촉수 너머, 온 사방에서 우글대며 밀려드는 유충들의 물결을 돌아보았다.
위기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여긴 전장 한복판이 아니었다. 그의 주린 배를 채울 만찬장일 뿐.
물론, 저것들을 전부 방금 같은 원시적인 방식으로 섭취할 생각은 아니었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꾸득, 꾸드득…
발에서부터 시작된 불길한 암녹색이, 삽시에 그의 전신으로 균열처럼 번져 나갔다.
제멋대로 뿜어져 나가던 촉수들이 일제히 그의 등 뒤로 되돌아온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찢겨 나간 살점과 내장 조각들로 가득한 일대가 드러나는 가운데.
파사사사사-
모래 유충들이 그 위를 뒤덮으며 밀려들었다. 놈들은 동족이라는 사실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앞에 걸리는 살점과 내장 조각들을 씹어 삼키며 가까워졌다.
이안이 몸을 웅크린 건 그때였다.
동시에, 수십 개의 검은 가시들이 그의 전신에서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콰드드드득-
가시들은 달려드는 유충들을 모조리 꿰뚫으며 그 뒤로 뻗어 나갔다. 중간중간 마디져 갈라지며 새로운 가시를 뿜어내는 채였다.
이안을 둥치 삼아 수많은 나뭇가지가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꿈틀대는 시체들이 잔뜩 걸린 저주받은 나무.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
까드드드득-
이것들은 가지가 아니라 뿌리였다.
순환의 뿌리. 불결한 거목을 죽였을 때 손에 넣은 스킬일 터였다.
뿌리들은 일정 거리 이상 뻗어 나가지 않았지만, 뒤편의 유충들이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새로운 가시를 뻗어내 꿰뚫었다.
동시에 꿰뚫린 유충들의 혼돈을 빨아들이고 있기까지 했다. 꿈틀대는 유충들에게서 흘러든 혼돈은, 그대로 그 중심에 있는 이안에게로 흘러들어왔다.
-호오… 좋은데….
요그의 나지막한 탄성이 이어졌다. 이안 역시 묘한 충만함을 느끼고 있었다.
효율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소모된 혼돈력보다 빨아들이고 있는 혼돈의 양이 더 많았다. 게다가 뿌리를 더 뻗어내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파사사사-
먹잇감들이 스스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혈관처럼 번진 뿌리들은 범위 안으로 들어온 유충들을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꿰뚫었다.
콰직! 콰지직!
날카롭지만 단단하지는 않고 움직이며 시전할 수도 없는 스킬이었지만. 유충 같은 것들을 상대로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설사 뿌리를 피해 들어오는 놈들이 있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안의 등 뒤에 넘실대는 촉수들에도, 뿌리들이 가시처럼 잔뜩 튀어나와 있었으니까.
퍼석- 퍼석-
혼돈을 모조리 빨린 유충들이 곳곳에서 허물어졌다.
그 한복판에 웅크린 이안은, 문득 자신이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포식자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예 틀린 생각은 아닐 터였다.
쿠구… 쿠구…
그의 정수는 여전히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로는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게 틀림없었다.
요그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번진 건 그때였다.
-너무 귀 기울이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 솔직히, 기분이 너무 좋군.
너까지 그러면 어쩌냐.
이안이 내심 실소를 삼키는 사이.
부오- 오오오오오-
야나르 타쉬의 포효가 대기를 쩌렁쩌렁 울리며 번져 나왔다.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방적인 살육. 아니, 만찬을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었다.
불나방처럼 밀려들던 유충들의 물결이 잦아든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파사사사-
이안은 몸을 웅크린 와중에도, 유충들이 썰물처럼 물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푸스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바로 하며, 이안은 저 뒤편에 휘몰아치고 있는 모래 회오리를 돌아보았다.
콰아아아-
회오리는 점점 더 그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내부에 일렁이고 있는 적갈색은 야나르 타쉬였다. 놈은 아직도 솟아오른 그대로 넘실대는 중이었다.
‘거대하게 키워서, 같이 덤비려는 건가?’
게임에서라면 마지막 페이즈에나 할 법한 짓거리였다.
하긴. 놈이 지금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당장 신경 써야 할 건 저놈이 아니었다.
-가만히 서서 뭐 하는 거야? 가자고. 친구.
모래 속에 몸을 숨긴 거대한 기척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다시 사냥의 시간 스킬을 활성화하며, 이안이 시선을 돌렸다.
모래 아래에 몸을 숨긴 야나르 타쉬의 혼돈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은 이안이 마주 땅을 박찼다.
쿠- 확-!
그의 몸이 화살처럼 뿜어져 나갔다. 놈을 향한 살의와 분노, 그리고 갈증이 느껴졌다.
이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안은 굳이 그 어두운 감정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투쟁의 축복을 받을 때 카르하의 투쟁심을 받아들였듯이. 지금은 그의 혼돈이 뿜어내는 감정들이 전투 의지를 북돋는 연료가 되고 있었으니까.
자주색 궤적을 흩뿌리며 뿜어져 나가던 그는, 한순간 불현듯 힘껏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쿠화아아아-
잿빛의 모래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야나르가 솟아오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원을 그리며 돋아난 이빨들을 뾰족하게 모은 채였다. 이안을 그대로 부숴버리려는 것이리라. 이글대며 밀려드는 적갈색 혼돈을 눈에 담던 이안이, 촉수를 활짝 펼쳤다.
푸확-
동시에 그의 몸이 한순간 하강을 멈췄다. 야나르에게는 반대로 한순간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질 터였다. 날개처럼 활짝 펼쳤던 촉수들을 그대로 몸에 두르며, 이안이 빙글 몸을 돌렸다.
콰과과과과-
그의 머리 아래로 대기를 찢을듯한 충격파를 흩뿌리는 야나르가 스쳐 지나갔다.
이안이 몸을 감싸고 있던 촉수들을 힘껏 뒤로 내뻗은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그의 몸이 쏜살같이 떨어져 내렸다. 암녹색으로 일렁이는 양손을 앞으로 내미는 채였다.
카가가가가가가-
이안의 양손이 야나르의 몸통 위를 역주행하듯 할퀴고 지나갔다. 열 가닥의 암녹색 궤적이 야나르의 몸통 위로 길게 이어졌다.
곧바로 사라지지 않고, 놈의 가죽이라 불러야 할 두껍고 질긴 껍질을 부식시키는 채였다.
물론 그 궤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아아아-
한순간 이안의 몸이 야나르에게 휙 딸려가 듯 뿜어져 나갔다.
물론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곧바로 촉수들을 사방으로 내리쳐 가죽에 깊숙이 박아 넣으며 몸을 고정했다. 암녹색으로 일렁이는 손을 떼지 않은 채였다.
치이이이…
매캐한 연기와 함께 녹아내리는 가죽을 내려다본 것도 잠시. 이안이 그 한복판으로 양손을 더 깊숙이 찔러넣었다. 자주색 아지랑이를 머금은 굵은 양팔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꽈지- 지지직-
이안의 양팔이 좌우로 천천히 벌어졌다. 야나르의 가죽을 찢듯이 벌리는 채였다. 놈의 껍질은 유충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두껍고 단단했지만.
까드드득…!
이안의 힘을 버텨내지는 못했다. 불결한 손톱이 주위를 부식시키고 있어서이기도 할 터였다. 균열처럼 쩍 벌어진 껍질 사이로 끈적한 체액이 뭉실뭉실 솟아올랐다.
이안의 전신에 둔중한 진동이 번진 건 그때였다.
콰과과과과-
야나르의 몸이 지표면에 닿은 것이다. 물론 놈은 다시 모래 속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그저 그 위를 꿈틀대며 미끄러질 뿐이었다.
몸통 좌우로 잿빛 모래가 자욱하게 치솟았다. 물론, 이안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몸을 숙이면서, 쩍 벌어진 상처 사이로 오른팔을 밀어 넣었다. 어느새 그의 전신에는 암녹색이 균열처럼 번지고 있었다.
까드드득-
그가 쥐고 있던 주먹을 활짝 펼치자, 손아귀에서 순환의 뿌리가 가시처럼 뿜어져 나갔다. 야나르의 몸속으로 파고든 뿌리가 삽시에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앞으로 죽 미끄러지던 야나르가 소금 뿌린 미꾸라지처럼 꿈틀대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부오- 오오오오-
고통에 찬 비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안은 휘청대지조차 않았다. 이미 놈의 몸속에 번진 뿌리는 혼돈을 빨아들이고 있기까지 했다.
-산 채로 잡아먹다니…. 너무 잔인하네. 친구.
요그의 속삭임이 이어졌다. 내용과 달리 아주 즐거운 듯한 말투였다. 물론 그건 이안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이 녀석을 전부 먹는다면, 배가 부를지도?’
유충들을 잡아 먹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혼돈이 흘러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빨아먹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다. 자신의 것인지 정수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갈증이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애석하게도, 욕망을 충족하는 것 역시 불가능할 것 같았다.
쿠구… 쿠구…
그의 권속들이 다시 혼돈을 앗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모로의 분노. 그리고 세렌의 사명감과 조급함이 환영처럼 뇌리를 스쳤다.
시선을 돌리지 않고도, 이안은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썰물처럼 흩어졌던 유충들이 그들에게로 몰려간 것이리라.
-알아서들 해결하게 두는 게 어때, 친구? 우린 여기에 집중하자고.
요그의 나른한 속삭임이 번졌다.
…그럴 수는 없지. 아쉽지만.
이내 이안이 내심 읊조렸다.
동시에 야나르의 몸속에 암세포처럼 번지던 순환의 뿌리가 재가 되어 흩어지고, 박혀 있던 촉수들이 툭툭 뽑혀 나왔다.
야나르는 맥없이 꿈틀댈 뿐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놈의 전신은 푸석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일어선 이안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콰과과과-
그는 저 뒤편, 유충들의 물결 한복판을 관통 중인 보라색 궤적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물론, 모로와 세렌이었다. 모로는 달려드는 유충들을 들이받아 터뜨려 버리며 내달리고 있었고, 세렌은 보랏빛 아지랑이가 이글대는 철퇴를 마구 휘둘러 댔다.
보라색 궤적이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유충들이 산산이 터져 나갔다.
두건을 눌러쓴 루시아는 모로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고 그건 세렌의 뒤에 앉은 디아나도 마찬가지 같았지만. 모로와 세렌 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지금까지는.’
내심 읊조린 이안의 허벅지가, 한순간 터질 듯 꿈틀댔다.
콰드득… 쿠화악-!
야나르의 몸통이 움푹 함몰되는 가운데, 이안이 만들어 내는 자주색 궤적이 포탄처럼 뿜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의 궤적은 유충들 쪽으로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훨씬 더 옆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래 아래 몸을 숨긴 야나르의 실루엣이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안의 궤적에 보랏빛이 섞이기 시작하는 사이.
쿠과과과-
야나르가 모래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들 주위에 우글대는 유충들까지 죄다 갈아버리려는 듯한 기세였다.
“……!”
그 사실을 깨달은 듯, 멈칫한 세렌이 시선을 돌렸다. 모로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루시아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들었다.
치켜뜬 그들의 눈동자에, 밀려드는 야나르의 모습이 가득 맺혔다. 앞으로 뾰족하게 내민 새카만 이빨들까지.
콰지지지직-!
직선을 그리는 보라색 궤적이 야나르의 몸통에 포탄처럼 틀어박힌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촉수를 전신에 갑옷처럼 두른 이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