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92
492화
“엥…?”
디아나의 표정에 순간 힘이 탁 풀렸다. 그사이 능숙하게 장갑 착용을 끝낸 이안이 덧붙였다.
“인사는 생략하자고. 내가 저지른 일을 수습한 것뿐이니까. 얘기는 들었다. 고생 많았어, 디아나.”
“…그래서.”
세렌에게 각반을 건네받는 이안을 멍하니 바라보던 디아나가, 이윽고 덧붙였다.
“내가 정말, 산 거라고?”
“그렇다니까.”
이안이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더는 시선도 주지 않고, 각반을 하반신에 고정하는 것에 집중하는 채였다. 디아나가 말을 이었다.
“너는, 인간으로 되돌아온 거고?”
“보다시피.”
“세렌 경은… 어… 음.”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며 덧붙이던 디아나가 멈칫했다. 뭐라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입만 뻐끔대는 그녀를 일별하며, 세렌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제 모습이 많이 흉측한 모양이군요.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경.”
“…별말씀을. 아무튼… 무사는 하신 거고.”
덧붙이는 디아나의 눈에 비로소 현실감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안은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상관도 없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채였다.
“시발…! 내가 정말 살다니…!”
“…내가 어떻게 됐는지는, 안 물어봐요?”
뒤에서 이어진 나지막한 목소리에, 디아나의 미소가 굳어졌다. 눈을 끔뻑인 그녀의 고개가 이윽고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루시페르…!”
누운 채로 올려다보고 있던 루시아가, 디아나와 눈이 마주치자 비로소 빙긋 미소 지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디아나.”
“……!”
다음 순간 디아나의 몸이 반대쪽으로 휘청 넘어졌다. 그대로 뛰어오른 루시아가, 그녀를 덮치듯 와락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망토 자락을 펄럭이며 디아나를 부둥켜안은 루시아가, 이내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코가 맞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어디 아픈 곳은 없어요? 의식도 감각도, 전무 멀쩡하고요?”
“어, 어어…? 어… 그래….”
눈을 치켜뜨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디아나가, 이윽고 슬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덧붙였다.
“그… 멀쩡한 것… 같아….”
“그렇게 대충 대답하지 말고요. 상처가 쑤시지는 않고요?”
“그러니까… 괜찮은… 아니, 잠깐만… 어딜 만지는 거야….”
디아나가 몸을 움츠리며 굳어졌다. 루시아가 옆구리의 맨살에 손을 가져다 댔기 때문이다. 물론 루시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녀의 옆구리를 쓰다듬고 눌러댔다.
“안 아파요? 전혀?”
“어어…? 응, 아니… 간지러운데… 이제 그만….”
“뒤쪽도 봐야겠어요. 돌아봐요.”
“뭐라고? 아니, 잠깐. 잠깐만-”
디아나가 허둥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어진 루시아의 무자비한 손길에, 떠밀리듯 옆으로 돌아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픈 곳 없이 멀쩡하단 거지?”
이안이 물은 건 그때였다. 바짝 굳어져 있던 디아나가 고개만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강철 장화까지 전부 착용한 이안이, 발목을 까딱이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소 한심해하는 듯한 검은 눈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웅얼댔다.
“그래… 아프긴커녕… 오히려 몸이 가벼워… 뭔가 홀가분하달까….”
“약발이 잘 받았나 보네.”
바닥에 깔았던 모포를 집어 든 이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디아나가 눈을 끔뻑였다.
“약발…?”
“디아나는, 백금룡께서 이안 님께 하사하신 영약을 먹었거든요.”
대답한 건 루시아였다. 디아나의 왼쪽 등허리까지 확인을 끝낸 듯, 그녀를 다시 반듯하게 눕히는 채였다. 녀석의 손길에 순순히 몸을 맡긴 채로, 디아나가 눈을 치켜떴다.
“백금룡…? 설마, 생명의 영약을 말하는 거야?”
“정확한 이름까진 저도 모르지만요.”
“미친… 하긴… 그 정도 보물은 되어야 날 살려낼 수 있었겠지…. 맙소사….”
멍하니 중얼대던 디아나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이안의 얼굴로 향했다. 그는 디아나가 던져 놓은 모포를 주워 드는 채였다.
“그런 귀중한 걸, 나한테 먹였단 말이야?”
“그럼 그냥 죽게 뒀어야 했냐?”
“아니… 당연히 그건 아니지만….”
이안의 시큰둥한 대답에 숨을 헐떡댄 그녀가, 이윽고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기쁨과 감동을 비롯한 온갖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밀려드는 듯한 얼굴이었다. 마경에서 오래 살아남은 요정에게는 특히나 생소한 감정들일 터였다.
하지만 이안은 이미 그녀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루시, 너는 괜찮아?”
그가 보관함으로 걸음을 옮기며 묻자, 루시아가 비로소 상반신을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목이 좀 마르고 배도 고프지만요.”
“좋은 신호네.”
고개를 끄덕이며 모포를 안에 던져 넣은 이안이, 뒤이어 얼마 남지 않은 식량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그럼 다들 슬슬 준비하자고.”
주저앉은 루시아와 여전히 괴상한 표정으로 드러누운 디아나. 관심 없다는 듯 콧김만 뿜는 모로. 그리고 저만치에 굴러간 가면을 주워 드는 세렌까지 눈에 담은 이안이, 이윽고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이제 이 빌어먹을 사막을 벗어나는 일만 남은 것 같으니까.”
***
일행은 지하수가 강과 호수를 이루는 잿빛 사막을 순조롭게 벗어났다.
야나르는커녕, 유충 한 마리조차 앞을 가로막지 않은 덕분이었다.
이안은 자신이 놈들을 멸종시킨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설사 살아남은 유충이 있더라도, 야나르로 성장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사아아아-
건조한 모래바람이 부는 검은 사막 역시 고요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 너머를 응시하는 이안의 눈에는, 여전히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콰득-
앞장선 디아나와 세렌이, 사막 전갈이나 모래 거미 따위를 종종 찔러 죽이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직도, 뭔가 남은 건가…?’
묘한 조바심과 이질감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어서였다.
야나르 타쉬를 처치하고 나면 사라질 줄 알았건만. 오히려 더 선명해진 상태였다.
물론 그저, 당면한 위협이 사라져서 상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몰랐다.
콰직-!
요그가 여전히 잠들어 있음에도, 세렌과 디아나는 조금의 위기도 없이 마수들을 처치하고 있었으니까.
변이가 더 진행된 세렌 뿐만 아니라, 디아나 역시 감각이 더 예리해진 것 같았다.
아마도 생명의 영약을 섭취한 부가 효과일 터였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정말, 큰 놈들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손에 쥔 소검을 가볍게 휘휘 돌리며 걸음을 옮기던 디아나가 문득 읊조렸다. 그녀의 바로 뒤, 체액이 엉겨 붙은 철퇴를 움켜쥔 세렌도 고개를 끄덕였다.
“야나르 타쉬의 통제에서 벗어난 뒤로, 순순히 흩어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사제 님의 예상대로요.”
그녀의 시선이 뒤편, 모로의 안장 앞에 탄 루시아에게로 돌아왔다.
두건을 눌러쓴 루시아가 빙긋 미소 지었다.
“북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나갔다면, 마수 시체들이 즐비한 광경을 보게 됐겠네요.”
사막의 모든 마수들이 일행을 좇아 모여들지 않았던가.
루시아는 일행이 죽음의 사막에 들어선 뒤로도, 그것들이 흩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었다.
희망사항에 가까운 예상이었지만, 보기 좋게 적중한 것이다.
“그럼 이제, 그냥 다들 모로에 타면 되겠네.”
덧붙인 건 이안이었다. 디아나와 세렌의 시선이, 그가 옆으로 고개를 까딱이며 덧붙였다.
“어차피 북쪽으로 직진만 하면 되잖아. 작은 것들이 모로에게 해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모로가 동의하듯 콧김을 뿜었다.
사막의 작은 마수들은 대부분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도 독을 밀어 넣을 수 있어야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그전에 모로의 간식으로 전락하리라.
물론, 일행의 예비 식사이기도 했다. 죽음의 사막을 떠나기 전에 남은 보존 식량을 전부 먹어 치우지 않았던가.
“아주 설득력 있는 말이네.”
냉큼 소검을 회수하며 몸을 돌린 디아나가 훌쩍 이안의 뒤에 올라탔다. 세렌 역시 익숙하게 맨 뒤에 자리를 잡았다.
크릉…
모로는 일행 모두를 태우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는 동안 작은 마수들을 씹어먹은 터라 온몸에 여전히 힘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오랜만의 평화 같아요.”
루시아가 이안을 돌아보며 말한 건 그때였다. 이안과 눈이 마주친 녀석이 빙긋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실, 마지막으로 언제 평화로웠는지도 모르겠어요. 말 그대로 꿈에서 보냈던 시간 말고는요.”
“…그러게.”
이안도 피식 웃음 지었다. 오죽하면 그의 무의식이 가장 바라던 것이 휴식이었겠는가.
현실에서 이런 느긋함을 느끼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비록, 여전히 검은 사막 한복판이긴 했지만.
‘그래 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루시아의 두건에 한 손을 얹으며, 이안은 마음 한구석의 찝찝함을 털어냈다. 게다가 따로 몰두할 게 없는 것도 아니었다.
“…….”
상태창을 연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희미하게 말려 올라갔다.
일행들이 잠든 사이에 이미 훑어봤지만, 다시 봐도 기분이 나아지고 있었다.
레벨이 또 하나 오른 것이다. 이제 정말 최고 레벨이 그리 멀지 않았다.
게다가 능력치 포인트 역시 하나 더 생겼고, 스킬 포인트도 레벨 업으로 손에 넣은 것을 제외하고도 하나가 더 늘어났다.
‘죄다 퀘스트 완료 보상이겠지.’
심지어 모든 능력치가 하나씩 오르기까지 했다.
근거는 없었지만, 이안은 이것이 성혈이 몸속에 스며든 결과이리라 추론했다.
모든 능력치를 올려주는 퀘스트 보상은 본 적이 없지 않던가.
물론 태황의 성혈의 정보창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아마, 이것도 그렇겠지.’
이윽고 이안의 시선이, 스킬 트리의 한구석에서 멈췄다.
공통 스킬 카테고리에, 외따로 떨어진 새로운 스킬이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의념의 손아귀.
스킬 레벨을 올리는 게 불가능한 고유 스킬이었다. 레벨에 비례해 효과가 상승한다는 게 설명의 전부이기도 했다.
“디아나.”
이윽고 스킬 창을 닫은 이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홀가분한 눈빛으로 앉아있던 가면 쓴 요정이 그를 바라보았다.
“왜?”
“비수 한 자루 빌려줄 수 있겠어?”
이안이 그녀의 팔뚝을 턱짓했다. 팔뚝에 감긴 가죽 띠에 비수 한 자루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몇 자루 남지 않은 비수 중 하나였다.
디아나가 오른손을 들며 대답했다.
“어렵지 않지.”
“아니. 내가 뽑을게.”
“……?”
의아한 듯 이안을 바라본 디아나의 눈이 순간 커졌다.
이안의 눈동자에 흐릿한 핏발이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죽 띠에 고정된 비수가 스르륵 홀로 뽑혀 나와 허공에 떠오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이게 무슨…?”
“…역시 신기하네. 정말 보이지 않는 손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디아나가 눈을 치켜뜨는 가운데, 이안이 시선을 돌리며 읊조렸다.
허공에 떠오른 비수가 그의 시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허공을 갈랐다.
“지금… 의지만으로 비수를 움직이시는 건가요?”
뒤를 돌아본 루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비수를 움직이는 게 마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바로 눈치챈 것이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일종의 염동력 같은데. 갑자기 할 수 있게 됐어.”
“성혈…!”
역시나. 루시아는 그 정도의 단서만으로도 곧바로 해답을 찾아냈다.
“성혈이 이안 님께 깃든 거예요…! 그래서 특별한 힘을 손에 넣으신 거고요. 황족들이 그렇듯이요…!”
“그렇게까지 거창한 능력은 아니지만.”
이안이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허공에 둥둥 떠 있던 비수가 함께 출렁댔다.
“이건 거창한 능력이 맞아.”
허공을 유영하며 따라오는 비수를 멍하니 바라보던 디아나가 말을 이었다.
“보기만 해도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거니까. 심지어 별다른 전조도 없이 말야. 활용도가 무궁무진할 거라고.”
“뭐, 암살 시도 같은 걸 할 땐 유용하겠지.”
“물론이지. 검도 이렇게 띄울 수 있다면, 널 상대하는 적은 네 칼뿐만이 아니라 혼자 떠다니는 칼까지 함께 상대해야 할 거야.”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다양한 응용이 가능한 유용한 스킬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대단히 기쁘지는 않았다.
“얼마나 무거운 것까지 들어 올릴 수 있으신 건가요? 어디까지 작용하고요?”
루시아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또 특유의 학구열이 발동한 것이리라. 이안이 턱을 긁적였다.
“글쎄… 아직 확인해 보진 않았어. 일단, 이 비수 정도는 아주 가볍게 들 수 있어. 그리고….”
이안이 시선을 돌리자, 비수가 순간 화살처럼 뿜어져 나갔다. 멀어지는 비수를 응시하던 이안이, 이내 다시 루시아를 돌아보았다.
“손길이 닿는 범위는 몇 미터 안 돼.”
“…그럼, 내 비수는?”
비수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보며 디아나가 물었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 다시 잡으려고 했는데, 놓쳤어. 아직 통제가 익숙하지 않아서.”
“뭐라고…?”
“그럼, 한 번 모로를 들어 보시는 게 어때요?”
그의 무책임한 말에 디아나의 눈매가 일그러지는 사이, 루시아가 덧붙였다. 날아간 비수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눈빛이었다.
“한계를 시험하기엔 적합하잖아요? 안 된다면, 우리를 한 명씩 들어 보시면 되겠고요.”
“흠….”
왜 네가 더 신났냐.
속으로 읊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이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선 것도 잠시.
크릉…?!
모로가 당황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녀석의 네 다리가 허공에 살짝 떠오른 채 허우적대고 있었다.
“세상에….”
“미친….”
느릿느릿 떠오르는 모로를 내려다보며, 일행들이 저마다 탄성을 흘렸다. 모로가 다시 뚝 떨어진 건 그때였다.
퍼석-!
콧김을 뿜는 모로가 도망치듯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일행들의 시선이 다시 이안에게로 모여들었다.
“…반작용이 아예 없진 않네.”
잠깐 사이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안이 조금 거칠어진 숨소리로 내뱉었다.
손등으로 코 아래를 훑는 채였다. 한쪽 코에서 찐득한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머릿속이 뻐근해지는 듯한 감각도 함께였다.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확실히 유용하겠어요. 모로를 들어 올릴 정도라면, 인간 정도는 충분히….”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언가에 붙잡혀 끌려 올라가는 듯한 자세였다.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이안의 머리 위로 솟아오른 그녀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느낌이 어때?”
미간을 살짝 찌푸린 이안이 물었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썩 좋지는 않아요. 뭔가 몸을 콱 움켜쥐고 있는 것 같거든요.”
루시아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곧 뚝 떨어진 그녀의 몸이 이안의 팔에 안겼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안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덧붙였다.
“이안 님 자신을 날게 할 수는 없나요?”
“…지금 시도 중인데, 안 되네. 나한테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모양이야.”
내뱉으며 그녀를 다시 안장 앞으로 되돌린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뭐, 유사시에 여러모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는 있겠네. 칼을 휘두를 정도가 되려면, 연습이 엄청나게 필요할 것 같지만.”
“…성혈이 몸에 깃드신 거라면, 이제 성자 대행의 후손들도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게 될 겁니다.”
덧붙인 건 조용히 지켜보던 세렌이었다. 일행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되는 가운데, 그녀가 더 길고 뾰족해진 눈을 깜빡이며 말을 이었다.
“혈통만으로도 고귀함을 입증할 수 있게 되신 겁니다. 물론… 성자 대행께선 이미 고결한 분이시지만요.”
“이안 님과 혼인하게 될 분은 아주 든든하겠어요. …그게 누구일지는 전혀 모르겠지만요.”
루시아가 이안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눈매가 의미심장하게 휘어지는 채였다.
“혼인은 무슨….”
이안이 콧방귀를 뀌며 읊조렸다.
동시에 그는 왜 기분이 미묘한지도 깨달았다.
분명 유용하지만, 마법적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스킬인 것이다. 카르하의 전투 문신이나 백금 방벽이 그렇듯이.
“부럽네….”
디아나의 목소리가 이어진 건 그때였다.
“죽다 살아난 이후로 감각이 더 예민해지고 마력도 더 많이 중첩되고 있어서 기뻤는데. 네게 일어난 기적에 비하면 아주 소박해.”
이안의 고개가 절로 그녀 쪽으로 돌아갔다.
“마력이… 뭐…?”
“뭐, 마법사인 네 기준에선 별 것 아니겠지만 말이야.”
어깨를 으쓱인 디아나가, 말과 달리 기쁨을 감추지 못한 눈빛으로 덧붙였다.
“본래는 전격 주문을 한 번도 겨우 외우는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대여섯 번은 너끈할 것 같거든. 아마도 네가 먹인….”
말을 멈춘 디아나가, 어리둥절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