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493
493화
저도 모르게 일그러진 표정을 간신히 수습한 이안이, 다시 앞을 돌아보며 내뱉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간신히 눌러 삼키는 채였다.
하필 마력이라니.
정보창에 표시되지 않는 부가 효과가 있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너무 공교로웠다.
‘하긴. 용의 피를 넣었댔지….’
그가 아르케아스를 다시 만나면 어떻게든 한 병을 더 얻어내야겠다고 내심 다짐하는 사이.
“…절대 소박하지 않아요. 디아나. 마법사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일이라고요. 영약에 그런 효능까지 있었다니….”
이안의 속내를 짐작한 듯, 루시아가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의아한 눈으로 이안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디아나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운도 따랐겠지. 몸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용의 마력이 송과체에 영향을 끼친 걸 거야.”
“송과체… 라니요?”
세렌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녀를 돌아본 디아나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영혼을 담는 그릇입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거나 수행을 거듭해온 이들은,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더 크고 다양한 방식으로 발달해 있다고 하더군요.”
“아하… 놀랍네요. 저는 지금까지, 영혼은 심장에 담겨 있다 여겼는데요.”
“그 부분에는 아직도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알아요.”
덧붙인 건 루시아였다.
“영혼이 정확히 어디에 담겨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이 순간에도 많은 학자와 마법사들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죠. 하지만 각종 초감각과 송과체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건 정설로 알려진 사실이에요.”
세렌이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루시아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디아나를 바라보았다.
“디아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지만요.”
“…전부터 느꼈지만, 너는 나를 너무 무시한 경향이 있어. 루시페르. 나도 요정이라는 걸 잊지 마.”
디아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일침했다. 루시아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마법사들이나 알 법한 지식이니 놀란 거예요. 디아나를 무시한 건 아니었어요.”
“사실… 내게 전격 주문을 알려준 마법사에게 들은 말이긴 해. 회색 마탑에서 나온 자였는데, 뇌에 특히나 관심이 많았지.”
어깨를 으쓱이며 시인한 디아나가, 이내 짧게 혀를 찼다.
“이 안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나. 기억을 추출하거나 송과체를 인위적으로 발달시키는 방법 따위를 연구 중이라더군. …뇌에 전류를 흘리면 움직이는 꼭두각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식의 괴상한 헛소리나 지껄이던, 기분 나쁜 작자였지만.”
“아하… 역시, 그랬군요.”
루시아가 이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가운데, 세렌이 슬며시 눈을 가늘게 떴다.
“마법사들은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나도 모르죠. 거기까지 묻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뻔한 거 아니겠어요?”
내뱉은 디아나가 다시 한번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런 건 직접 머리를 열어 본 게 아니면 알 수 없을 테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고작 한두 개 열어 본 정도가 아닐 겁니다. 어쩌면, 회색 마탑 전체가 그딴 짓거릴 벌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디아나의 눈매가 슬며시 휘어졌다. 경멸 섞인 미소였다.
“뇌 속에 진리가 있다고 여기는 주문 쟁이들이 모여 있는데, 무슨 짓인들 못 하겠습니까?”
“그건 조금… 역겹군요.”
세렌이 비로소 침음을 흘렸다. 루시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인체와 관련된 연구들은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마법사들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지식을 탐구할 엄두를 내겠어요. 물론… 그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진 않지만요.”
디아나와 세렌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루시아의 시선이 문득 이안에게로 향했다. 시큰둥한 표정이던 그가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요, 이안 님?”
“…아니야. 그냥, 만에 하나라도 회색 마탑과 얽히지는 않았으면 해서. 넌 그 작자들이 좋아할만한 조건을 타고났으니까.”
“제가 실험 대상이라도 될까 봐 걱정하시는 거예요…? 이안 님도 참.”
루시아가 못 말린다는 듯 웃음 지었다. 그게 이 세계가 게임일 때 그녀가 겪었을 운명이리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터였다.
“그냥 조심은 하라는 거야.”
물론, 이제는 이안 역시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가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이 하나 있어. 루시페르.”
디아나의 목소리가 이어진 건 그때였다. 루시아가 돌아보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내게 주문을 가르쳐 주지 않겠어?”
“적색을요…? 하지만 디아나는 이미 비밀 서약을 하지 않았나요?”
“했지. 이게 금기를 범하는 짓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디아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여긴 검은 땅이잖아? 이 땅의 적색 마법사들은 죄다 정신이 나가 버리기도 했고 말이야.”
이안에게 묻지 않는 건, 알려줄 리 없다고 생각해서일 터였다.
물론 옳은 판단이었다. 알려주지 않는 게 아니라 없는 거였지만.
초조한 듯 침을 삼킨 디아나가 덧붙였다.
“…욕심부리는 게 아니야. 화염구 주문 하나면 충분해. 전격 주문은 사실, 준비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든. 위급 상황에 쓰기엔 적합하지 않아.”
“흠….”
짐짓 갈등하듯 침음하며, 루시아가 슬쩍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허락을 구하려는 것이리라.
이안은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다. 비로소 살짝 눈가를 꿈틀댄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적색 마법을 익힌 건 비밀이에요. 마탑의 규율을 어겼다는 뜻이죠. 물론, 제국법도요. 그러니까, 내게 주문을 배운 건 비밀로 해야 해요. 앞으로 절대 전격 주문을 사용해서도 안 되고요.”
디아나의 눈을 마주본 루시아가 덧붙였다.
“약속할 수 있나요?”
“물론이지…!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이 와중에도 제일 의미 없는 걸 거네.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낮게 코웃음만 흘렸다. 자신이 이 가면 도착증 귀쟁이를 꽤나 신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하는 채였다.
뭘 걸건, 그녀가 루시아를 난처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좋아요. 그럼 알려줄게요. 화염구 주문만이 아니라, 내가 아는 적색 주문을 전부요.”
“정말…?!”
“어차피 저도 하위 주문들 밖에는 모르거든요.”
“잘됐네.”
디아나의 눈에 화색이 도는 가운데, 넌지시 끼어든 이안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각자 할 게 생겨서. 사막을 건너는 길이 지루하진 않겠어.”
“너는 무슨…. …….”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던 디아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녀의 가죽 띠에 고정되어 있던 비수 한 자루가 스르륵,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허공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작 두 자루 남은 비수 중 하나였다.
“…나한테 받아간 비수가, 몇 자루 있지 않아?”
“그건 죄다 독이 발려 있으니까. 실수로라도 누군가에게 스치면 위험하잖아. 하지만 네 건, 독이 다 날아간 것 같은데.”
이안의 정확한 지적에, 디아나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잃어버리지만 말아 줘. 잃어버리지만.”
***
“정확해요. 완벽하게 외웠네요. 이게 가장 어려운 주문인데.”
“그저 외운 것뿐이야. 펼치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잘 알잖아? 루시페르.”
“차근차근 해나가면 돼요. 한동안은 어차피, 우리밖에 없잖아요?”
모로와 나란히 걸으며, 디아나와 루시아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둘은 사막을 종단하는 내내 주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
때때로 세렌도 귀를 쫑긋댔지만.
“…….”
정작 마법사인 이안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주문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걸 진작 포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쉬학- 쉬학-
그 역시 몰두할 것이 있어서였다.
지금 그는 의념의 손아귀로 두 자루의 비수와 한 자루의 소검을 저글링 하듯 던졌다 받고 있었다.
며칠간 코피가 날 때까지 특훈을 반복한 결과였다.
솨아아아-
건조한 바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지만, 허공을 오가는 칼날들의 궤적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능숙하게 묘기를 이어가면서도, 이안은 바람에 섞인 짠내에 미간을 좁혔다. 반나절 전부터 바람결에 섞이기 시작한 소금기가, 이제는 아주 또렷해지고 있었다.
바다가 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이안. 칼이 필요해.”
디아나의 목소리가 번진 건 그때였다. 루시아를 모로 쪽으로 밀어내는 채였다.
이안은 대답 대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던 비수 한 자루가, 굴절되듯 그의 시야를 따라 빛살처럼 뿜어져 나갔다.
쒸악- 콰직!
칼날은 모래 한복판, 디아나의 측면으로 소리 없이 다가오던 전갈의 몸통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뒤따라 날아든 또 한 자루의 비수는 꼬리 마디 하단에 정확히 틀어박히는 채였다.
“…….”
“…….”
버둥대는 전갈을 눈에 담은 디아나와 루시아의 고개가, 뒤이어 다시 이안쪽으로 돌아왔다.
손을 앞으로 뻗어 소검의 자루를 가볍게 받아 드는 그를 바라보며, 디아나가 낮은 탄성을 흘렸다.
“…대단하네. 아주 능숙해졌어.”
“훈련이 중요한 이유지.”
심드렁하게 대답한 이안이, 소검을 휙 던지며 덧붙였다.
“덕분에 끼니 걱정은 덜었네.”
소검을 낚아채듯 받아 든 디아나가 몸을 돌렸다.
서걱-
그대로 전갈에게 달려간 그녀는, 독침이 달린 꼬리 윗부분을 단칼에 잘라냈다. 미끄러지듯 멈춰 선 그녀가 바둥대는 전갈의 꼬리를 붙잡아 들어 올리는 사이.
“식사는 바닷가에서 하자고.”
이안이 느긋하게 덧붙였다. 모로의 곁으로 되돌아오면서, 디아나가 고개를 까딱였다.
“가능할 거야. 내 생각엔, 저게 해안 사구 같거든.”
정면 저 멀리, 길게 이어진 모래 언덕을 돌아본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뒤가 바로 바다란 얘기지?”
“천천히 따라와. 안전한지 확인해 둘 테니까.”
디아나가 손에 쥔 전갈을 이안쪽으로 휙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전갈은, 그의 시선이 닿은 순간 허공에 우뚝 멈췄다.
“올라가 있어, 루시페르.”
덧붙인 디아나가 달려 나갔다. 그 뒷모습을 일별하는 이안의 어깨 위로, 세렌의 팔이 뻗어 나왔다.
“제가 들고 있겠습니다. 성자 대행.”
허공에 바둥대던 전갈이 그녀의 손아귀로 스르륵 이동했다.
세렌이 꼬리를 움켜쥐자, 꼬리 하단과 몸통에 박혀 있던 비수가 차례대로 뽑혀 나와 이안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비수에 묻은 체액을 탁 털어내며 몸을 숙여, 루시아를 안장 위로 끌어 올렸다.
“…이런 걸 먹는 게 익숙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이젠 군침이 도는군요.”
체액이 뚝뚝 떨어지는 거대 전갈을 움켜쥔 세렌이 읊조렸다. 약간의 자괴감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녀를 돌아본 루시아가 미소 지었다.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경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전갈. 거미. 뱀. 이름도 알고 싶지 않은 절지동물까지. 일행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주친 마수들을 닥치는 대로 식량으로 삼았다.
전갈은 그중에선 꽤 먹을 만한 식재료라 할 수 있었다.
-…내가 꽤 오래 잔 모양이네. 눈을 뜨자마자 역겨운 짠맛이 나는 걸 보니.
일행의 뇌리로 나지막한 속삭임이 번진 건 그때였다. 서로를 돌아보며 풀썩 웃음 짓던 디아나와 루시아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드디어 깨어났군요…!”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루시아였다. 키득대는 웃음과 함께, 요그가 이안의 장갑 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날 반겨 주는 건 너뿐이네. 루시.
팔뚝을 기어오르는 녀석을 시큰둥하게 내려다보던 이안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번엔 꽤 오래 기절했네.”
-여러모로 무리해서 말이야. 알잖아?
견갑 위로 올라오면서, 녀석이 덧붙였다.
이안은 어깨만 으쓱였다.
그는 이미 진작부터 녀석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추가 능력치가 전부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기만의 가면 스킬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다음에는 내 조언을 조금 더 귀담아들어 달라고. 친구.
물론, 마냥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결과였다.
요그에게 꿍꿍이가 있다면, 그게 뭐건 꽤 큰 차질을 빚게 되었을 테니까. 적어도 한동안은 녀석에게 뒤통수를 맞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다시 귀여워져서 좋네요. 요그.”
루시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요그가 혀를 날름댔다.
-그 말은 좀 서운한걸. 이안의 혼돈이 또 내 영혼을 핥아먹으면, 그땐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뭐, 떠들 기운 정도는 있겠지?”
루시아가 어깨를 으쓱이는 사이, 이안이 툭 끼어들었다. 요그의 시선을 받은 그가 고개를 까딱였다.
“세렌 경이 널 기다리고 있었어.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도록 해. 깨어나자마자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어느새 세렌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보지. 네 혼돈 덕분에, 기억이 다소 뒤죽박죽이 되긴 했지만.
느긋하게 대답하며 뒤를 돌아본 요그가, 이내 키득대며 웃음을 흘렸다.
-아주 멋져졌네. 곧 반편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겠는걸.
“제가 묻고 싶은 것도 그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요그.”
세렌이 전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대답했다. 보라색 혀를 날름댄 요그가 속삭였다.
-설마, 혼돈에 물든 육신과 영혼을 되돌릴 방법을 알려달라는 건 아니겠지.
“…맞습니다만.”
멈칫한 세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그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명백한 비웃음에 이안의 미간에 슬며시 골이 파이는 사이, 녀석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안의 영혼은 혼돈에 물든 적이 없어. 그래서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거야. 물론, 내가 혼돈을 속여 넘긴 덕분이기도 하고. 하지만 넌 달라, 반편아.
요그의 속삭임이 낮아졌다.
-네 영혼은 이미 혼돈에 물들었지. 네 육신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야. 넌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역시… 그런가요.”
세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좌절하거나 절망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는 덤덤한 얼굴이었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일 터였다.
-물론,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을 방법은 있지.
요그가 덧붙인 건 그때였다. 세렌의 시선이 녀석에게로 돌아왔다.
“뭡니까?”
-권속의 정신은 그 주인의 영향을 받지. 그런 의미에서 너는 아주 운이 좋아. 네 주인은 이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영혼의 소유자거든. 너도, 이미 느끼고 있을 텐데?
고개를 갸웃하던 세렌의 눈매가 이내 설핏 가늘어졌다.
변이가 더 진행되었음에도, 자신의 이성이 더없이 명료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한 것이다.
물론 마음 한구석의 어두운 욕망은 그대로였지만, 억누르는 것이 어렵지도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날름댄 요그의 고개가, 뒤이어 이안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네가 이 반편이에게 힘을 내려주지 않으면 돼. 친구. 그럼 영원히 지금처럼, 인간도 마족도 아닌 채로 살게 될 거야.
이 새낀 말을 해도 꼭.
서늘한 눈으로 녀석을 내려다본 이안이, 이내 세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세례를 받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군.”
“…그런 것 같군요.”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혼돈을 다루지 않을 수도, 다른 흑사자들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왜 없어? 네 반편이 친구들이 전부 이안을 섬기게 만들면 되는데. 네 전 주인도 나쁘진 않지만, 이안과는 비교도 할 수 없….
요그의 속삭임이 끊어졌다. 녀석을 집어 든 이안이 그대로 아공간 속으로 던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다시 세렌의 눈을 바라본 그가 덤덤하게 내뱉었다.
“기다려 보시오. 친구들과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나면, 뭔가 다른 걸 떠올릴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