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05
#505화
한참을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협곡을 지나자, 거짓말처럼 드넓은 황야가 펼쳐졌다. 비쩍 마른 풀과 앙상하게 솟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도 했다.
“세상에….”
하지만 디아나는 태어나서 녹색을 처음 본 사람처럼 감탄하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댔다.
“…황실은 중앙과 전선을 수복하는 데 집중하길 원하고, 대교회는 제국 내부의 혼란을 우선적으로 잠재우길 원한 것 같아요.”
뒤편, 모로에 탄 둘의 대화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채였다.
“그 과정에서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부작용이, 슬슬 나타나고 있는 거고요.”
“성전사단과 정화대에 대한 욕이라도 잔뜩 적혀 있었나 보네.”
“애 둘러서 표현하긴 했지만요. 지금 대교회는 서부의 정화에 힘쓰고 있는 모양이에요. 사실상 가장 오래 방치되어 있었으니, 쉽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하더군요.”
루시아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안색에 혈색이 돌고 있었다. 그녀는 종일 숙취에서 비롯된 두통에 시달린 참이었다.
“서부를 생각하면, 히케드 전하의 존재가 늦게 알려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대교회도 전선을 경계하게 될 테니까요.”
“그게 우리한테도 좋을지는 모르겠다만… 뭐.”
이안이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과 흑태자 간의 문제는 한동안 끼어들지 않기로 결론 내리지 않았던가. 가능하다면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럼, 남부는?”
“아시다시피, 여긴 침식으로 인한 피해도 그리 크지 않았으니까요. 본래도 교단의 도움을 그다지 기대할 수 없어서,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이골이 나기도 한 것 같고요.”
“마음이 놓이는 말이네.”
앞서 걷던 디아나가 뒤를 돌아보며 내뱉었다. 버석버석한 관도 위를 뒷걸음질 치면서, 그녀가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남부가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니 말이야. 너무 많은 게 달라졌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내가 알던 그대로야.”
“그건… 다행이네요. 어쨌든, 남부의 치안은 꽤 안정된 상태인 것 같아요. 그러니 중앙과 북부로 병력이 차출된 거겠지만요.”
루시아가 애매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안이 짧게 입맛을 다셨다.
“다시 곳곳에 광기의 씨앗이 스며들 것 같은데. 잠깐의 평화겠네.”
“글쎄. 아마 괜찮을 거야.”
디아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풀과 나무들이 섞이기 시작했어도 여전히 다소 황량한 일대를 돌아보며, 그녀가 덧붙였다.
“아마 이 근방에는 들창코들만 살고 있겠지. 그것들은 늙어 뒈지기 전까지도 전사야. 마경 비슷한 것만 발견되어도 뻐드렁니를 딱딱대며 달려나갈 거라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그런가. 종족 비하에 갈수록 물이 오르는 것 같은데.
이안이 내심 읊조리는 사이.
“이대로 북서쪽으로 쭉 올라가면 나오는 남부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역들은, 알다시피 인간들과 우리 요정이 꽉 잡고 있지.”
관도 저 너머를 돌아보며, 디아나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뭔가 생긴다면 앞다퉈 토벌하려 할 거야. 전리품은 물론이고 중앙으로 진출할 발판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 서쪽의 밀림은, 수인들이 책임지고요?”
루시아가 알 것 같다는 듯 덧붙였다. 떠올린 것만으로도 불쾌한 듯 콧잔등을 씰룩대며, 디아나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그 냄새나는 짐승들은 사냥과 살육에 늘 목말라 있으니까. 그 역겨운 본능을 해소할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차라리… 광기의 유혹에 빠져주면 좋겠네. 이참에 싹 다 쓸어버릴 수 있게 말이야.”
“어… 그러길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요.”
루시아가 다소 머쓱하게 턱을 긁적였다. 디아나를 빤히 내려다보던 이안이 입을 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가 수인이야. 그리고 지금, 이곳 남부에 있지.”
“…그랬어?”
멈칫한 디아나가 되물었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너희 새 원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해.”
“뭐… 라고…?”
디아나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이안을 돌아보았다.
“대체 어쩌다 그런 끔찍한 일이…? 가문의 원로가, 수인과 친구라고? 그건 수치나 다름없는-”
“그 말도 너희 원로 앞에선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물론, 내 앞에서도.”
“…….”
이안의 싸늘한 말에, 디아나가 그대로 멈칫 굳어졌다.
여전히 걸음은 옮기면서, 인상 역시 찌푸린 채였다. 짧게 혀를 찬 이안이 고개를 까딱였다.
“수인을 미워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내 친구는 너희 원로를 위해 목숨까지 던진 녀석이라는 걸 알아 둬.”
“수인에게 빚까지 졌다니….”
디아나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안이 자세한 사연을 알려 준 적이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던 루시아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사실, 처음엔 저도 믿기지 않았어요. 제가 기억하는 그 수인의 모습은 이안 님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거나, 꼬리를 잘리고 좌절한 모습뿐이었으니까.”
“꼬리를…? 아, 그래.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리네.”
번쩍 고개를 든 디아나가 비로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네 애완견이었구나. 이안 호프. 그런 거라면 뭐-”
“이미, 친구라고 말 했을 텐데…?”
이안의 싸늘한 눈길에, 디아나의 얼굴에서 미소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재빨리 다시 앞으로 몸을 돌리는 채였다.
가면을 얹은 정수리를 잠시 가만히 노려본 이안이, 다시 루시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그 수인도 다시 만나러 가실 생각이신가요?”
“너무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아마도.”
“기대되네요. 그럼 저도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만나러 가는 분도 마찬가지이긴 해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잖아요.”
그랬나…?
눈을 끔뻑인 이안이,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테사이아는 이 녀석을 멀리서나마 본 적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루시아는 아닐 터였다.
“아주 자유분방하고 재미있는 분이라던데, 맞나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이안이 되물었다.
“그 말을 누가 했지?”
“언니가요.”
“역시…. 그래, 뭐. 너랑 잘 맞을지도 모르겠네. 만만치 않게 제멋대로인 녀석이거든.”
조금 더 짙게 미소 지으며 덧붙인 이안이, 어깨를 까딱였다.
“지금도 내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일지는, 만나 봐야 알겠지만.”
“자리에 걸맞은 품위를 가지게 되셨을 거야.”
디아나가 넌지시 끼어들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가 덧붙였다.
“원로란 그런 자리니까.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뭐… 그것도 나쁘진 않아.”
맨발로 돌아다니는 꼴을 다시 보는 것보다는, 뭐.
내심 덧붙인 이안이 루시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벽이 무너진 뒤의 소식은 모든 전선 요새에 비상경계 명령이 내려진 게 전부라고?”
“네.”
재빨리 눈을 깜빡인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빌리언 경의 말처럼, 본토에서 다음 명령이 내려질 시기가 지난 것 같아요. 남부 대공께는 황실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마법 전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아직 전선까지 전파되진 않았어요.”
“내해의 소식은… 도시에 도착해서 알아봐야겠네.”
덤덤하게 읊조린 이안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을 느낀 듯, 디아나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 시종 꼬마가 말한 대로, 아흐람에 도착하기 전까지 다른 마을은 안 들를 거야. 이 근처는 특히. 그 들창코 놈들의 부락에서 묵을 바에는, 그냥 노숙하는 게 나아.”
“…전 오크들의 움막에서도 자보고 싶은데요.”
루시아가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디아나가 질색하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그 뻐드렁니들이 사는 방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그 역겨운 음식과 숨 막히는 규율들도.”
뒤를 홱 돌아본 그녀가 간절한 눈으로 이안을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손님에게도 규율을 요구한다는 게 믿어져? 기상 시간까지 정해주고, 음식을 남기면 모욕으로 받아들인다고. 믿어줘 이안. 오크들은 거점의 음식들도 맛있다고 여기는 놈들이라고. 내가 사냥이라도 해 올 테니까-”
혹시라도 이안이 변덕을 부릴까 염려하는 게 분명했다.
풀썩 웃은 이안이 말을 잘랐다.
“알았으니까 진정해. 일행의 길잡이는 너야. 네가 인도하는 대로 갈 거고.”
“그래… 현명하게 선택한 거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디아나가 읊조렸다.
“위험하지도 않을 거야. 그 들창코들은 자기들의 영역이 어지러워지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어쨌건 그녀가 오크 부락에 들르는 것을 죽는 것만큼 싫어한다는 건 분명했다. 이안이 선선히 고개를 까딱대는 사이.
“내해에 큰 문제만 없으면 좋겠어요. 뱃길이 전부 막히지만 않았어도 만족해요.”
조용히 미소 짓던 루시아가 덧붙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남서부 끝까지 가야 할 수도 있겠지만요.”
“뭐… 최악의 경우엔, 위험을 감수해야 되겠지.”
짧게 입맛을 다신 이안이, 관도 저 너머로 펼쳐진 황야를 바라 보았다. 하늘에 먹구름이 자욱하게 뒤덮인 채였다. 아니었다면 사막 못지 않게 덥고 건조했을 터였다.
“찾다 보면, 괴물들이 득시글대는 바다에도 배를 띄울 뱃사공이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군도 출신들이나 그런 미친 짓을 할 텐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섬 조각 출신들은 대부분 바다의 강도들이고.”
혀를 차며 내뱉은 건 디아나였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도 그럴걸. 네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한 상황일 수도 있어. 심해의 괴물을 섬기는 놈들도 있다니까.”
“놀랍지도 않네. 타락한 해적이라. 아주 잘 어울려.”
디아나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루시아는 진지하게 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괴물들이 가득한 바다를 건너는 데에는, 차라리 타락한 해적들의 배가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 부키키아와 한통속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침몰할 확률은 훨씬 더 낮겠지.”
물론 배 위에서 칼부림할 각오 정도는 해야겠지만. 어쨌건 빌리언이 소개해준 배를 타는 것보단 나을 터였다.
“뭐… 일단은 가보자고. 뭐건, 검은 땅을 배회할 때보단 낫겠지.”
“동감이에요. 솔직히… 조금 두근거리기도 하고요. 온통 새로운 것들만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싱곳 미소 지은 루시아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이안을 돌아보았다.
“쩨 마지막 여정이기도 하고요.”
“…그래. 너라도 즐기고 있으니 됐다.”
낮게 웃음 지은 이안이, 느긋하게 고삐를 고쳐 쥐었다.
건조하고 칙칙한 남부의 황야가, 묵묵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일행의 여정은 관도를 따라 순조롭게 이어졌다.
여전히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고, 밤마다 때때로 불길한 천둥이 번쩍였지만.
“고향에 돌아온 실감이 나네. 아주 평화로워.”
“그러게요. 낮에도 적당히 따듯하고요.”
마경의 지옥 같은 환경도 버텨낸 일행에게는 소풍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는 아니게 될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랬다.
심지어 식량을 조달하는 데에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디아나는 뱀, 여우나 오소리, 심지어 사막 토끼 같은 짐승들을 손쉽게 사냥해 왔다.
“…요정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존재들이지 않나요?”
끼니마다 고기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루시아가 어리둥절하게 물을 정도였다.
“물론이지. 먹어치워서 하나가 되고 싶을 만큼 사랑해.”
물론, 디아나의 비웃음을 살 뿐이었다.
“그러니까 불이나 피워, 루시페르. 내가 가죽을 벗기는 동안.”
“…네.”
덕분에 일행은, 물을 제외하고는 전선 요새에서 가져온 보존 식량에는 손도 대지 않을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던 양념 통이 완전히 바닥난 건 덤이었다.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그랬다.
-내가 없는 사이에… 또 재미있는 일들이 그렇게나 많았었단 말이야…?
마침내 반성을 끝낸 요그와 시시콜콜하게 떠들어댈 여유까지 있을 만큼.
평야 저 너머에 곧게 뻗은 상아색의 성벽이 보이기 시작한 건,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서였다.
“드디어… 문명다운 문명이 나타났네요….”
루시아가 성벽을 돌아보며 읊조렸다. 자유도시, 아흐람이었다.
성벽은 담벼락이라 불러도 될 만큼 낮아서, 그 너머로 직사각형으로 솟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훤히 보였다. 중앙의 웬만한 대도시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대도시라고 해서 조금 의아했는데… 정말이네.”
모로의 옆을 나란히 걷는 디아나는, 감격보다는 놀란 표정이었다.
“내 기억에는 별 볼 일 없는 동네였는데. 대체 어쩌다 이렇게 커진 거람….”
활짝 열린 대문을 바라보며 읊조린 그녀가, 정수리에 얹고 있던 가면으로 다시 얼굴을 가렸다.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일 터였다.
“전선의 요새들로 이어지는 요충지라 그럴 거예요. 자연스럽게 인파가 모이고, 눌러앉는 사람들도 생겼을 테고요.”
“하긴… 나 때는 그 전선이라는 게 훨씬 더 동쪽에 있었으니까.”
성문을 통과하며, 디아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묘한 감흥을 느끼고 있는 건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어쨌건, 살아서 문명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아흐람은 여러모로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대도시였다. 제국과는 건물의 형태부터가 달랐다.
‘중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비슷한 걸 본 것 같은데….’
인간과 요정, 오크가 뒤섞인 인파들의 복식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식 복장도 없지는 않았지만, 남부 식으로 얇은 천을 전신에 칭칭 두르거나 반대로 맨살을 훤히 드러낸 자들이 대다수였다.
“…….”
이국적이라고 느끼는 건 저들도 마찬가지인지, 스쳐 가는 행인들의 시선 역시 때때로 일행에게 머물렀다.
“…다들 잘 먹고 잘살았나 보네. 하나같이 때깔이 좋아.”
디아나가 읊조렸다. 묘하게 배알이 꼴리는 듯한 말투였다. 그녀의 속내를 어느 정도 짐작한 듯 웃음 지은 루시아가 속삭였다.
“좋게 생각해요. 이제 디아나도, 이런 풍족한 문명 속에서 살게 된 거니까.”
“보이는 게 전부도 아닐 거야.”
이안이 담담하게 덧붙였다.
밤이면 도시 구석에선 타락자와 이교도들이 불결한 모임을 열고, 뒷골목에서는 범죄자들과 떠돌이들의 알력 다툼이 있을 터였다.
며칠 눌러앉아 있다 보면 도시의 온갖 흉흉한 소문들도 듣게 되리라.
‘…나도 정말, 이 세상 사람 다 됐네.’
자신이 여전히 지극히 용병다운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가 묘한 감흥을 느끼는 사이.
“저기가 여관 같아요. 복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네요.”
루시아가 문득 한쪽 팔을 앞으로 내밀며 내뱉었다. 이안을 슬쩍 돌아본 녀석이 미소 지었다.
“주정뱅이들도 보이고요.”
같은 곳을 돌아본 이안의 한쪽 입꼬리도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그러게. 바다 건너에도 다르지 않은 게 있었네.”
거리 저 너머. 마구간이 딸린 건물 주위로, 삼삼오오 모인 인파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벽면에 토하거나,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자들도 있었다. 아직 대낮인데도 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제 돈이 필요하지 않을까?”
디아나가 문득 속삭인 건 그때였다. 이제야 비로소 생각난 듯한 태도였다.
“애석하게도 나는 한 푼도….”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대답하는 이안의 손에는 어느새 소형 보관함이 들려 있었다.
“우리가 먹고 잘 걱정은 없을 만큼 충분히.”
뚜껑을 연 그가 안에서 두툼하게 겹친 제국 금화를 꺼내자, 디아나의 눈이 멍하니 커졌다.
“부자이기까지… 했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