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13
#513화
테사이아가 속삭이듯 말을 맺었다. 이안의 눈빛은 이미 우묵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손에 쥔 술잔을 까딱대며, 테사이아가 입꼬리를 조금 더 말아 올렸다.
“많이 놀랐나 보네. 하지만 보다시피, 결국 내가 이겼어. 이안.”
그제야 마저 술병을 내민 이안이, 그녀의 잔에 포도주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그 승리의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정말? 그래도 돼? 이안은 말 길게 하는 거 안 좋아하잖아.”
테사이아가 반색하며 물었다.
이안의 입가에도 옅은 실소가 스쳤다.
“그걸 신경 썼다기엔, 날 너무 오래 끌어안고 있지 않았어?”
뒤이어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며, 그가 넌지시 덧붙였다.
“게다가 내가 널 원수의 품으로 돌려보낸 거기도 하니까.”
“그래서 책임감을 느끼는 거야? 흐음… 그렇다면 차라리 그냥 말하지 않는 게 더…. 농담이야.”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뱉은 테사이아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대충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그 늙은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상하게 기분이 더러웠어. 뭐랄까, 본능적으로 불쾌했지.”
기다렸다는 듯이 본론이군.
술병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이안이 실소를 삼켰다. 그사이 술로 입을 축인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저쪽도 날 보는 눈빛이나 말투가 유쾌하진 않았어. 게다가 자꾸 떠보더라고. 내가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확인하려고.”
어느새 한쪽 다리까지 꼰 채였다.
술잔을 감싸 쥐던 이안의 미간이 꿈틀댔다.
“기억을 잃은 걸 밝혔다고?”
“응. 처음부터. 내가 에레노스의 일원인 것 같으니, 가문의 명부를 확인하게 해달라고 했지. 아니면 떠나겠다고 말이야.”
고개를 끄덕인 테사이아가, 슬며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였으면 애초에 들여보내지도 않았을 텐데. 새로운 원로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나 봐. 아니면 내가 정말 기억을 잃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거나. 뭐, 이유야 많았겠지. 욕심 가득한 늙은이였거든.”
“…의외네. 기억이 없다는 건 숨길 줄 알았는데.”
이안이 비로소 술잔을 들며 덧붙였다. 술을 들이켜는 그를 바라보며, 테사이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그런데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야옹이가 그러더라고. 어설프게 아는 척하면 오히려 귀쟁이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차라리 처음부터 밝혀서, 그걸 무기로 삼으라고 말이야.”
짧게 혀를 찬 그녀가 덧붙였다.
“드러낸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아니라나.”
“…그 녀석다운 조언이네.”
입꼬리를 말아 올린 이안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읊조렸다.
검은 털의 수인 여전사를 떠올리는 채였다. 곧 이 녀석에게 소식을 들어야 할 또 다른 친구이기도 했다. 테사이아가 못마땅한 듯 콧잔등을 씰룩였다.
“그것 말고도 별의별 잔소리를 다 하더라니까. 귀쟁이 소굴로 걸어 들어가는 거니까 모자라게 굴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면서 말이야. 누가 누구한테… 다시 생각해도 정말이지 어이가-”
“그래서, 네 말을 믿었어?”
이안이 말을 잘랐다. 테사이아가 한쪽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처음에는 아니었을걸? 그래도 쫓아낼 수는 없게 됐지. 그 늙은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이미 날 알아본 귀쟁이를 몇 명 마주쳤거든. 망령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들이긴 했지만. 게다가….”
슬쩍 이안을 돌아본 테사이아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이안의 이름도 써먹었거든. 기억을 잃고 잠들어 있던 나를, 백금룡의 대행자께서 구해 주셨다고. 나를 원로 요정으로 거듭나게 한 것도 그분이라고.”
그녀의 시선이 식탁 옆에 놓인 생명의 영약으로 돌아갔다.
“백금룡께서 직접 내 출신을 알려주셨다고도 했고 말이야. 이렇게 물증이 있으니, 안 믿을 수가 없었겠지.”
“그것도 샬롯의 조언이었겠고.”
“어떻게 알았어? 맞아. 귀쟁이들은 뒷배에 약하니까 무조건 그렇게 하랬어. 요정을 그렇게 싫어하는 주제에, 너무 잘 안다니까.”
“…정확히 아니까 싫어하는 게 아닐까.”
뭐, 수인들도 마냥 피해자라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이안이 포도주와 함께 뒷말을 삼켰다. 기분 나빠 하긴커녕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린 테사이아가, 쟁반에 놓인 청포도를 한 알 떼어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날 섣불리 건드릴 수도 없어졌지. 하지만 원로회에 바로 이름을 올릴 수는 없다고 했어. 그전에 걸맞은 자격을 갖춰야 한다나.”
입에 넣은 포도알을 사비나라도 되는 것처럼 천천히 씹은 그녀가 낮은 코웃음을 흘렸다.
“그 뒤로는 교육을 핑계로 매일 같이 불러댔지. 내가 정말 기억을 잃은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도 틈틈이 던져댔고.”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겠네.”
이안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품에서 궐련함을 꺼내 드는 채였다. 식탁 옆에 놓인 촛대로 손을 뻗으면서, 테사이아가 질색하듯 고개를 저었다.
“끔찍했지. 어쨌든 뭐, 몇 달 지나니까 더는 묻지 않더라고. 귀족들의 노리개로 끌려다니기라도 한 줄 아는 것 같던데. 마음대로 생각하게 뒀지. …나도 한 대 주면 안 돼, 이안?”
“다시 채워만 준다면야.”
이안이 선선히 궐련함을 내밀었다. 안에 남은 궐련은 이제 단 한 대뿐이었다.
“걱정마. 가득 채워줄게.”
아랑곳하지 않고 냉큼 집어 입에 문 테사이아가, 이안의 궐련에 먼저 촛불을 가져다 대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나는 반대로 점점 의구심이 커지고 있었어. 중앙에서 꾸준히 도착하는 지원금도 수상하고. 늙은이를 볼 때마다 더러운 기분도 그대로고. 결정적으로, 종종 악몽도 꿨으니까.”
“…악몽?”
이안이 궐련의 연기를 뿜으며 되물었다. 자신의 궐련 앞에도 촛불을 가져다 댄 테사이아가 입술을 뻐끔대며 말했다.
“매번 비슷했지. 사비나, 그 마귀할멈이 날 보면서 말하는 거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네가 가문의 보탬이 될 기회다, 뭐 그런.”
“…그거, 기억이 돌아오려는 징조인 것 같은데.”
눈을 설핏 가늘게 뜬 이안이 말했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테사이아가, 촛대를 다시 식탁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 그래서 꿈에 대해서는 곱씹지 않으려고 했지. 다행히, 그 이상 뭔가 떠오르지는 않더라고.”
“여전히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보네.”
“당연하지.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으니까. 과거의 내가 섞이는 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어. 어쨌든….”
궐련의 연기를 뿜으며 즉답한 테사이아가, 왼손으로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때쯤부턴 거의 완전히 자유로워졌지. 날 감시하는 시선도 뜸해졌고. 무엇보다, 검은 벽의 침식이 가까워졌거든. 다들 어수선했어.”
“아하… 내가 북부를 돌고 있을 때쯤이었겠네.”
궐련을 손가락으로 옮긴 이안이 읊조렸다. 술로 입을 축인 테사이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그래서 그때쯤부턴 남몰래 곳곳을 뒤지고 다녔어. 그 늙은이의 수족들부터 차근차근. 이안도 알겠지만, 그건 내 특기잖아.”
“…재미도 있었겠고 말이지.”
“부정하지 않을게. 정말 그랬으니까.”
테사이아가 미소 지었다. 낮게 코웃음을 흘린 이안이 덧붙였다.
“…하지만 널 원탁 의회에 팔아넘긴 기록 같은 건, 남기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랬지.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원로회가 소집됐어. 그 늙은이가 며칠간 집을 비우게 된 거야. 난 아니었지. 침식이 끝난 뒤에나 가입 절차를 밟기로 했었거든.”
번지는 연기를 응시하는 테사이아의 눈매가 넌지시 휘어졌다.
“…덕분에 나는 그 늙은이의 방을 뒤질 기회를 얻었지. 구석에 잠긴 서랍이 있었어. 열쇠는 이틀째에 겨우 찾았지. 그 안에 딸과 주고받은 편지가 잔뜩 있더라고.”
“딸이라면….”
이안의 미간이 절로 좁아졌다. 테사이아가 그를 돌아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그래. 아엘라. 네가 데리고 온 그 계집애의 어미 말이야.”
“…의회와 엮인 건, 그쪽이었군.”
이안이 코로 연기 섞인 한숨을 뿜으며 읊조렸다. 테사이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 여자는 십 년도 훨씬 전에 중앙의 귀족과 재혼했지. 상대도 아내와 사별했다나. 인간 중에는 요정과 혼인하거나 정부로 들이고 싶어 하는 작자들이 많대. 중앙의 요정들은, 그걸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지만.”
“…그야 그렇겠지.”
디아나가 알면 뒷목을 잡겠군.
내심 덧붙인 이안이, 곧이어 짧은 코웃음을 흘렸다. 사실 지금 그녀는 뒷목이 아니라 목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으니까.
“그 결혼을 권한 것도 사비나 같았어.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겠지. 가문을 위해선 못할 게 없었던 거야. 아엘라도 즐기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혹은, 그냥 더 욕심이 생긴 걸지도.”
궐련의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테사이아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문을 꾸준 지원해 줄 고귀한 분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의 편지가 있었어. 다만, 그러려면 가문의 가장 약한 고리 하나를 떼어 대가로 지불해야 할 거라고 말이야. 보자마자 알았지. 그 가장 약한 고리가 뭘 뜻하는 건지.”
“…….”
궐련을 입에 문 이안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테사이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 부모는 전쟁의 시대에 죽었대. 그리고 이 가문에서 나를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
“…반편이.”
이안이 나지막이 읊조린 말에, 테사이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돌아보았다.
“정말 알 줄은 몰랐는데…. 맞아. 반편이. 말라깽이… 난 원래 좀 모자란 귀쟁이였나 봐.”
“넌 안 모자라. …모자라도 상관없고.”
혀를 차며 내뱉은 이안이 술잔을 집어 들었다. 포도주를 벌컥 한 모금 들이켠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 정도 물증만으로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원래대로면 그랬겠지. 하지만 여긴 귀쟁이 소굴이잖아? 그 늙은이는 지나치게 오래 해 먹었고 말이야. 불만을 가진 자들이 많았어. 사실, 직계 혈통을 제외하곤 거의 다 그랬지.”
“…그들을 네 지지 세력으로 만든 거군.”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제법인데. 테사.”
“내가 한 건 별로 없어. 그것들이 먼저 와서 꼬리를 흔들어 댔으니까. 나는 그냥, 못 이긴 척 받아준 것뿐이지.”
말과 달리, 테사이아는 거드름을 피우듯 슬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풀썩 웃음 지은 이안이 덧붙였다.
“그래서?”
“침식이 끝난 뒤에 정식으로 원로회의 일원이 됐어. 아직 이안, 네 실종 소식이 남부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지. 아마 남부가 가장 늦게 알려졌을 거야. 나는 며칠 뒤에 가문 회의를 소집했어. 그리고….”
입가에 악동 같은 미소를 머금은 테사이아가, 궐련을 입가에 삐딱하게 문 채 내뱉었다.
“기억이 돌아온 척했지. 가주가 날 팔아넘긴 걸 기억한다고 말이야. 그때까지 알아낸 것들과 거짓말을 섞어서 떠들어댔어.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하지만 사비나는 물론, 순순히 인정하지 않았겠고.”
“처음에는 그랬지. 오히려 더러운 과거를 감추기 위해서 얕은 수작을 부린다고 비웃더라고. 그래서 오해를 바로잡아 줬지.”
슬며시 송곳니를 드러내며 미소 지은 테사이아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사실, 성자 대행께선 나를 흡혈귀들의 손에서 구해 주셨던 거라고. 당신은 나를 마족의 손에 팔아넘긴 거라고. 물론 약간의 과장을 섞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잖아?”
이안이 한쪽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긴 하지.”
“그 늙은이도 그제야 사색이 되더라구. 볼 만한 얼굴이었지….”
요그처럼 키득댄 테사이아가 청포도를 한 알 더 따서 입에 넣었다. 승리의 순간을 곱씹듯 입을 우물대던 그녀가, 이윽고 덧붙였다.
“그거 알아, 이안? 내 머리는, 원래 백금발이었대.”
손으로 자신의 풍성한 머리칼을 훑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는 몇 년이나 그 흡혈귀들에게 고문당한 거야. 머리가 하얗게 세고 기억을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것들 같은 괴물이 된 거고.”
“…그런데 왜, 죽이지 않았지?”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이안이, 이윽고 물었다. 테사이아의 시선을 받은 그가 어깨를 까딱였다.
“마중 나온 귀쟁이의 말투로 봐선, 죽은 것 같지 않았거든.”
“…솔직히 그러고 싶었지. 내 손으로 직접. 느리고 고통스럽게.”
나지막이 내뱉으며 궐련을 입에 문 테사이아가, 뒤이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러면 일이 지나치게 커졌어. 원로회에 원로를 처형한 합당한 이유를 보고해야 하는데, 이건 대교회에 알려야 할만한 사안이었으니까. 그럼 에레노스는 산산조각났을 거야. 그렇게 되면….”
테사이아가 슬며시 이안을 돌아보았다.
“이안과 한 약속도 지킬 수 없게 됐겠지. 그럴 순 없었어.”
“…….”
이안의 미간이 설핏 구겨졌다.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인 테사이아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흡혈 일족과 관련된 부분은 제외했지. 그것만으로도 가문은 물론이고 원로의 자격을 박탈하기에도 충분했거든. 그리고, 중앙으로 쫓아냈지.”
“…딸의 곁으로 보낸 거군.”
이안이 읊조린 말에, 테사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죽은 듯이 살면서, 계속 지원금을 보내라고 했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말이야. 거부하면 대교회와 백금룡께 모든 내막을 알릴 거라고 했어. 그리고 내 손으로 직접 가문을 찢어발겨서, 다른 요정 가문들에게 던져 줄 거라고도 했지. 특히….”
고개를 돌린 그녀가, 담벼락만 보이는 창문 너머를 눈에 담았다.
“저 건너편에 사는 귀쟁이들. 아메시타에게 가장 큰 덩어리를 나눠줄 거라고. 그 늙은이가 죽는 것보다도 싫어하는 일이거든. 잘 먹힌 것 같아. …저번 달까지는.”
“그래도 실속은 챙겼단 말이지….”
이안이 비로소 읊조렸다. 다시 자신을 돌아보는 테사이아를 마주 본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냥 사비나를 죽이고 가문을 없애 버렸다고 해도, 널 탓하지는 않았을 거야. 테사.”
“…감동적이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이안.”
빙긋 미소 지은 테사이아가, 슬며시 그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오해하고 있네. 나는 복수를 포기한 게 아니야, 이안. 그 늙은이가 더 오래 고통스럽게 만들어 준 거지.”
그녀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이미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었는데, 생명수와 교감할 자격까지 박탈해 버린 거니까. 천천히 말라 죽게 될 거야. 추하고 비참하게.”
“…네가 고통받은 시간만큼 충분히?”
“어쩌면, 그보다도 오래.”
이안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번졌다.
“그럼 됐어. 잘했네.”
“역시 그렇지?”
마주 활짝 미소 지은 테사이아가, 뒤이어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사실, 이득은 그것 말고도 많이 봤어. 정통성은 물론이고 귀쟁이들을 닥치게 할 명분도 챙겼으니까.”
거의 다 비운 술잔을 집어 든 그녀가 덧붙였다.
“내가 실종된 걸 알고도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았잖아. 사실상, 전부 공범이나 다름없지. 안 그래?”
씩 미소 지은 그녀가 잔에 남은 술을 들이켰다. 이안의 입가에도 헛웃음이 번졌다.
“…이 정도면 모자라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비범하다고 해야 할 거 같은데.”
물론 진심이었다. 그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잘 해내지 않았는가.
궐련을 입에 문 테사이아가 느긋하게 등받이에 기대 앉았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귀쟁이는 귀쟁이인가 봐.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안.”
뒤이어 슬며시 이안을 돌아본 그녀가 덧붙였다.
“네 전우까지 다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조용히 중앙으로 보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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