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22
#522화
어둠에 잠긴 숲에서는 벌레 우는 소리도 번지지 않았다.
다각- 다각-
조용한 건, 한복판의 오솔길을 나아가고 있는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과묵한 편인 이안은 물론이고, 테사이아 역시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두 분 다, 말에서 내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참 이어진 침묵을 깬 건, 테사이아가 탄 말과 나란히 걷고 있던 얼룩무늬 털의 수인이었다.
일행의 새 길잡이, 이드리스였다.
“왜, 얼룩아?”
테사이아가 선선히 고삐를 당겨 멈춰 서면서도 물었다. 이드리스를 돌아보는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평소의 평온함을 되찾은 채였다.
“여기서부터는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녀와 이안을 차근히 돌아보며 이드리스가 대답했다. 훌쩍 안장 아래로 뛰어내린 테사이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숲으로 들어가면 다른 야옹이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대로 길을 따라 들어가면 그렇게 될 겁니다. 두 분을 함정에 빠뜨릴 생각 같은 건 없습니다. 저는 그런 비겁한-”
“농담이야. 농담.”
이드리스에게 고삐를 휙 던지며 말을 자른 테사이아가, 입가에 악동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발끈하다니. 놀리는 재미가 있네, 얼룩아.”
“…그게 왜 재미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미간을 슬며시 좁히며 내뱉은 이드리스가, 뒤따라 말에서 내리는 이안을 돌아보며 손을 뻗었다.
“됐어. 그냥 내가 끌면 돼.”
고개를 저은 이안이 손에 쥔 고삐를 어깨에 걸쳤다.
어디까지나 효율의 문제였다. 숲은 딱 봐도 풀과 나무가 제멋대로 우거져 있었다. 그 외에도 진로를 방해할 요소들이 산재해 있으리라.
제아무리 수인 전사라도 말을 두 마리나 이끌고 걷는다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예. 알겠습니다.”
선선히 대답한 이드리스가 말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섰다. 깍지 낀 양손을 두건 위의 목에 얹은 테사이아와 어깨에 고삐를 걸친 이안이 그 뒤를 따랐다.
‘…샬롯의 상태에 대해선 안 묻기로 한 거군.’
테사이아를 슬쩍 일별한 이안이, 모른 척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머리가 식자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지, 아니면 이안처럼 그녀의 상태를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의외로 똑똑한 녀석이니,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했지만.
“…평소보다 멀리까지 나온 거였나 봐. 이렇게 깊이 들어와서 방향을 바꾼 걸 보면.”
테사이아가 느긋하게 입을 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드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근방에 불길한 벼락이 떨어졌었으니까요.”
그의 말투는 이안을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정중했다. 테사이아가 요정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제가 생긴 외곽 지역을 순찰하고 수색하는 건, 저 같은 어린 전사들의 몫입니다.”
“아하, 그래…? 운이 나빴네.”
이드리스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테사이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붙잡힐 일도 없었을 텐데.”
“…차라리 다행입니다. 다른 전사들과 마주쳤다면, 용살자께 목숨을 잃었을 테니까요.”
“긍정적이네. 다들 그저 잠깐 죽음이 유예된 것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
이드리스의 어깨가 설핏 굳어졌다. 입가에 맺힌 요정다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엘 카람까진, 며칠이나 걸려?”
“나흘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사흘 안에-”
“서두르는 건 내일부터 해.”
툭 끼어든 건 이안이었다. 미간을 꿈틀댄 테사이아가 돌아보는 가운데, 그가 말을 이었다.
“이미 너무 오래 걸었어. 지금은 쉬어야 돼. 너도, 말들도. 그러니까….”
이안이 자신을 돌아보는 이드리스와 눈을 마주쳤다.
“야영할 공간부터 확보해. 이드.”
“예. 용살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 이드리스가 주위를 두리번대며 걸음을 옮겼다.
“괜찮겠어, 이안? 그 점박이는 한나절이면 부족에 도착한다던데.”
그사이 짧게 입맛을 다신 테사이아가 말을 이었다.
“빠르면 당장 내일 저녁부터 죽고 싶어서 안달 난 야옹이들이 따라붙을지도 모르잖아. 우리 야옹이를 만나는 게 늦어지는 건 싫다구.”
“글쎄….”
심드렁하게 콧방귀를 뀐 이안이, 숲의 어둠을 눈에 담았다.
“그 네하트란 놈이 정말 일족을 아낀다면,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몇을 보내건 다 죽게 될 거라는 걸 알 테니까.”
“…아하. 그래. 야옹이들은 일족을 아끼니까. 게다가 안 믿어도, 직접 확인은 하려 들 테고.”
테사이아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어느새 서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야옹이들을 죄다 쳐 죽이려고 그 말을 꺼낸 게 아니었네. 사실, 한 놈만 죽이려고 한 거야. 그치?”
“일이 쉬울 것 같아서 꺼낸 말이지만, 그렇다고 빈말은 아니었어.”
이안이 눈길도 주지 않고 대답했다. 그가 굳이 도발하는 말을 전하게 한 이유는, 방금 언급했듯 그저 화가 나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예상과 달리 수인들이 추적해 온다면 전부 죽일 생각이었다. 사실, 그가 특별하게 아끼는 수인은 샬롯 하나뿐이지 않던가.
다른 수인들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경험치를 많이 준다면 오히려 흡족한 마음이 들지도 몰랐다.
물론, 네하트 역시 예고한 대로 반드시 죽일 생각이었다. 비단 샬롯의 복수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이, 남부 DLC의 보스 중 하나인 것 같으니까….’
게임에서 수인들은, 놈에 의해 완전히 타락하게 되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놈의 계획대로 요정들의 음모를 역으로 분쇄하고 더 큰 힘을 손에 넣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면 요정들과 전쟁을 벌였을 터였다. 중앙은 곧, 남부에서 벌어지는 일 따위는 신경도 쓰지 못하게 될 테니까.
굳이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려 줄 필요는 없었다.
‘…보스는,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지.’
이왕이면, 비교적 쉬운 방향으로.
사실 이게 이나스 커글을 들먹인 가장 큰 이유였다.
네하트가 그가 생각한 것만큼 수인 다운 놈이라면, 반드시 직접 이안을 죽이려 할 테니까.
수인들의 시체로 산을 쌓으며 나아가는 것보단, 이쪽이 훨씬 더 쉽고 빠르게 결론을 낼 수 있으리라.
“…이쪽입니다.”
앞에서 이드리스의 목소리가 번진 건 그때였다. 어둠 저 너머에서, 번뜩이는 주황색 안광이 이안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는 꽤 높고 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옆으로 젖힌 채였다. 그 너머로 꽤 굵고 높이 솟은 나무 둥치가 보였다.
땅 위로 혈관처럼 솟은 뿌리 사이에, 작은 구덩이 같은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난 요정이 아닌 것 같아.”
풀숲을 지나쳐 그 앞으로 다가서며, 테사이아가 읊조렸다.
“눅눅한 건 딱 질색이거든. 물론, 벌레도 그렇고.”
“확실히, 원로 요정이 할 말은 아니네.”
이안이 그녀의 곁을 지나치며 읊조렸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푸르릉…
전마는 풀숲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풀어준 채였다. 지친 듯한 콧김을 뿜으며, 녀석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건 이드리스가 끌고 온 테사이아의 전마도 마찬가지였다.
“모닥불은 됐어.”
이안이 툭 덧붙였다. 안으로 들어온 이드리스가 풀숲을 젖히고 있던 팔을 거두며 대답했다.
“예.”
다시 솟아오른 풀 줄기들이 적당히 주위를 가렸다. 이안은 비스듬하게 솟은 나무뿌리에 기대듯 누웠다. 불편했지만, 어쨌건 잠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무려 4레벨의 명상 스킬을 가진 그는, 원한다면 달리는 말의 안장 위에서도 잘 수 있었다.
“두 분은 주무십시오. 제가 보초를 서겠습니다.”
테사이아가 망토를 벗어 펼치는 가운데, 풀숲을 등지고 쪼그려 앉은 이드리스가 말했다. 망토 위에 웅크리듯 누운 테사이아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기습하거나 도망치기 딱 좋겠네.”
이드리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런 수치스러운 짓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 수인들은-”
“할 거면 해보라는 말이야. 여기서 술래잡기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거든. 물론, 벌을 주는 것도.”
“…….”
…어지간히 한 번 잡아 족치고 싶은 모양이네.
귀쟁이다운 면모를 가감없이 선보이는 테사이아의 모습에, 이안은 결국 낮은 실소를 흘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수인들에 대한 분노를 다 삭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네하트란 놈의 계획은, 들었겠지.”
모른 척 눈을 감은 이안이 내뱉었다. 테사이아의 대답이 곧바로 이어졌다.
“들었어. …원로회와 손잡은 누군가가, 그놈과도 내통하는 걸까?”
“글쎄…. 어쩌면 원탁은 수인과 요정이 전쟁을 벌이는 걸 원할지도 모르지.”
이안이 덧붙인 말에, 테사이아가 홱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양쪽 모두를 부추겨서 말이지? 그래… 그럴수도 있겠네. 아니, 그러고도 남아. 그것들은 인간 이외의 종족들은 이용해야 할 도구로밖에는 여기지 않으니까.”
테사이아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원탁 의회에 의해 끔찍한 일을 겪지 않았던가. 물론 직접 고통을 선사한 건 흡혈 일족이었지만, 원흉은 놈들이었다.
“이안이 그 빌어먹을 야옹이를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 놈들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잖아.”
이윽고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안이 덧붙였다.
“그렇겠지. 원로회 내부의 연결 고리는 그대로겠지만.”
“내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거야?”
“조심하란 얘기야. 누가 놈들과 이어져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
“찾아보려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야. 나는 최연소 원로잖아.”
“됐다니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아니냐.
내심 덧붙이며, 이안이 콧방귀를 뀌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이윽고 그가 덧붙였다.
“혹시라도 허튼 생각을 하고 있는 거면, 거기까지만 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슬쩍 미간을 찌푸린 이안이 고개를 들며 눈을 떴다. 입가에 실소가 번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테사이아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 몹시 피곤했던 게 분명했다.
이래놓고 사흘은 무슨….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이안이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
어둠 너머에서 자신을 가만히 응시중인 주황색 눈동자를 발견해서였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드리스가 멈칫하는 가운데, 이안이 내뱉었다.
“할 말 있어?”
“…아닙니다.”
녀석이 시선을 돌리며 읊조렸다.
빤히 바라본 이유를 내심 짐작하면서도, 이안은 다시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피곤하면 깨워. 바꿔줄 테니까.”
***
쿠구….
내면에서 번진 낮은 울림에, 이안은 번쩍 눈을 떴다. 혼돈의 정수가 거짓말처럼 침묵에 잠겼다.
“…….”
어느새 주위는 어슴푸레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얼굴 옆을 기어가는 지네를 닮은 벌레와 이끼 낀 나무 둥치를 잠시 눈에 담은 이안이, 이윽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일어나셨습니까.”
앞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풀숲을 등지고 주저앉은 이드리스였다. 이안이 잠들기 전과 똑같은 자세였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게 분명했다.
“역시 젊음이 좋네….”
나지막이 읊조리며 일어선 이안이 기지개를 켰다. 풀숲 너머로 설핏 보이는 숲의 풍경은,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물론 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밝았다. 보이는 모든 곳에 나무가 가득했다.
미지근하고 습한 공기에, 풀냄새와 흙냄새가 훨씬 더 짙게 묻어났다.
“뭐야, 다들 일어났어?”
테사이아가 부스스 일어선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한 동작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망토를 어깨에 걸친 그녀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덧붙였다.
“그럼 출발하자.”
거, 눈꼽은 떼고 가지.
내심 읊조리면서도, 이안은 선선히 걸음을 옮겼다. 냉큼 일어선 이드리스도 전마의 고삐를 당겼다.
푸르륵….
녀석이 지친 숨소리를 내며 힘겹게 일어섰다. 휴식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고삐를 당겨 비틀대는 말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이안이, 이드리스의 뒤를 따라 풀숲을 지나쳤다.
“먹으면서 가. 이안.”
안장 옆에 달린 가방을 뒤적인 테사이아가, 이안을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꽁꽁 싸인 넓은 나뭇잎을 펼치는 채였다. 안에는 연갈색의 빵 조각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꿀을 잔뜩 바른 요정식 건빵이었다. 말린 과일, 그리고 육포와 함께 챙겨온 보존 식량이었다.
“야옹아. 너도 먹어.”
이안이 몇 개를 집어들자, 이드리스에게로 달려간 테사이아가 손을 내밀었다. 그를 돌아본 수인의 눈매가 슬며시 좁아졌다.
“제가 먹을만 한 음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알아. 그래도 먹어.”
“…예.”
앞으로 귀쟁이 혐오가 더 심해지겠는데….
내심 읊조리며 건빵을 입에 넣은 이안이, 문득 다시 이드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빵을 집어 드는 와중에도 한팔로는 앞을 가로막는 풀숲을 헤치고 있었다.
“칼 뽑아도 돼. 눈치 보지 말고.”
이어진 이안의 목소리에, 이드리스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왔다.
어깨를 으쓱인 이안이 입을 우물대며 덧붙였다.
“그래야 빨리 움직일 거 아니야.”
“…예.”
입에 건빵을 털어 넣은 이드리스가, 허리춤에서 검을 단숨에 뽑아 들었다. 넓적하고 긴 칼날에 끝부분이 앞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송곳니 검이었다. 물론 샬롯이 사용하던 것처럼 날카롭고 단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퍼석- 파사삭-!
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풀숲들을 베어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소 떨떠름하게 입을 우물대면서도, 이드리스는 가차 없이 팔을 휘둘러댔다.
단숨에 잘려 나가지 않는 질긴 부분들은, 팔을 당겨 끝부분의 송곳니로 끊어버리는 채였다.
…저게 그냥 내장만 긁어내는 용도는 아니었구만.
내심 읊조리며 이안은 테사이아가 건넨 수통을 받아들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일행은 더 빠르고 쾌적하게 밀림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쿠릉…! 쿠르릉-
저 뒤편의 하늘이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이어진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고개를 들어 여전히 먹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을 올려다 본 테사이아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또 밀림 어딘가에 광기의 벼락이 떨어졌나 보네.”
“글쎄….”
하늘을 올려다 본 이안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냥 누군가 열이 받은 걸지도.”
“……!”
그 말에 담긴 속뜻을 단박에 이해한 듯, 테사이아가 홱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안은 더 덧붙이는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신을 잠에서 깨운 정수의 울림을 내심 곱씹고 있었다. 네하트의 혼돈과 공명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가 품은 혼돈의 정수에는 이나스 커글의, 크룩시카의 혼돈이 섞여 있지 않던가.
“…그래서, 어떻게 죽인 거야?”
그를 빤히 바라보던 테사이아가 내뱉은 건 그때였다. 이안이 돌아보자,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걸며 속삭였다.
“대마족, 이나스 커글 말이야.”
풀숲을 헤치며 앞서 나가던 이드리스의 귀가, 순간 바짝 곤두섰다. 내내 묻고 싶었지만, 차마 엄두가 나지 않던 질문이기도 할 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