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31
#531화
포로들의 근처에 도착했을 때, 샬롯의 뒤에는 이안과 테사이아 뿐만 아니라 횃불을 든 수인 전사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샬롯이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다들 그녀가 근처를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일어나 따라왔다.
“…….”
“…….”
야성에 물들었던 전사들은, 수인 식으로 팔다리가 뒤로 묶인 채 땅에 배를 깔고 엎어져 있었다.
꼬리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전부 그랬다. 잔해에서 조달한 듯 밧줄의 길이나 굵기가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붙잡혀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잘린 꼬리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전부 샬롯이 잘라낸 것들이었다.
“결박을 풀어. 전부.”
그들을 한차례 돌아본 샬롯이 내뱉었다. 좌측 뒤에 선 테사이아가 그녀의 뒤통수를 노려보았지만, 눈길도 주지 않은 채였다.
우르르 달려 나온 수인들이 저마다 칼을 뽑아 결박된 줄을 잘라냈다. 모든 포로가 자유를 되찾는 데에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대족장.”
전사들이 다시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이드리스가 톱날 검의 자루를 샬롯에게 내밀었다.
받아 든 샬롯이, 여전히 땅에 엎드려 있는 수인들을 내려다보았다.
“일어나라.”
수인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섰다. 다소 비틀대는 자들도 있긴 했지만, 어쨌건 다시 주저앉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늙은 수인들도 그랬다.
‘다들 면상이 볼만 하구만.’
구운 도마뱀을 질겅대며, 이안이 내심 읊조렸다. 반 정도는 한동안 뭔가 씹어 먹기 어려울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태초의 야성을 사랑하지만. 그분을 섬길 생각은 없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을 돌아보며, 샬롯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투쟁의 신을 섬길 것이다. 모두가 보았듯, 그분께서 나를 택하셨으니까.”
“……!”
수인들은 물론, 이안도 씹던 것을 멈추고 슬쩍 눈을 치켜떴다.
샬롯이 이렇게 곧바로 선언해 버릴 줄은 몰라서였다.
하긴. 털에 가려져 보이지 않긴 했지만, 그녀의 어깨에는 카르하의 전투 문신이 새겨지지 않았는가.
이안이 그를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샬롯까지 그럴 리는 없었다.
…그 새끼, 지금쯤 신나게 쳐 웃고 있겠네.
이안이 생각하는 사이, 샬롯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를 따르지 않겠다면 떠나라. 잡지 않겠다. 내게 도전한다면, 그 역시 기꺼이 받아주겠다. 어느 쪽도 아니라면….”
그녀가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내 뒤에 서라.”
침묵은 길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음을 옮긴 수인들이, 절뚝대면서도 샬롯의 뒤로 향했다.
물론 멈추지 않고 마을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자들도 있었다. 다섯도 되지 않는 숫자였다.
샬롯은 뒤를 돌아보지도, 그들을 붙잡아 세우지도 않았다.
“…….”
그저 저 건너편, 움막의 입구 옆에 선 팔메르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벽면에 기대선 채 샬롯을 응시하고 있던 팔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는 근처의 모닥불에서 들고 온 횃불이 들려 있었다.
“가자.”
이안과 테사이아를 번갈아 돌아본 샬롯이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뒤를 느긋하게 따르며, 테사이아가 묘한 기대감 섞인 눈으로 이안을 돌아보았다.
시큰둥하게 도마뱀의 몸통을 깨물면서도, 이안은 샬롯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진 아주 시원하게 처리했지만….’
그녀가 네하트를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이안이 관여할 부분은 아니었다.
게다가 상태창은 그녀를 죽인 것으로 인식했는지, 경험치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퀘스트 보상만으로 올랐다기엔 꽤 많은 양이었다.
“…….”
횃불을 든 팔메르가 움막 안으로 들어서는 가운데. 샬롯과 이안, 테사이아가 차례로 장내에 발을 들였다.
네하트는 다른 수인들과 달리 무릎을 꿇은 채로 결박되어 있었다. 물론 모든 무장이 해제되고, 양팔을 등 뒤로 묶인 채였다.
잘린 오른팔이 적나라하게 보였고, 허리에 잘렸다가 이어 붙은 흔적도 비스듬하게 남아 있었다.
“…….”
더러운 천으로 만든 게 분명한 재갈을 볼이 터지게 물고 있는 네하트의 시선은, 뜻밖에도 이안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아주 분노하고 원통한 눈빛.
그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며, 이안이 구운 도마뱀을 입에 넣었다.
그가 턱을 우물거리자, 네하트가 콧잔등을 씰룩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군.”
조금은 의아한 듯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샬롯이 허리를 숙였다.
그녀가 네하트의 입을 막은 재갈을 뜯어냈다.
입안에 가득하던 더러운 천을 토할 것처럼 뱉어낸 네하트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무슨 짓을 벌인 거냐, 이안 호프…! 네가, 네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긴 하는 거야?”
아, 그래. 너도 보고 있었다 이거지. 생각하며 뼈 채로 씹고 있던 고기를 삼킨 이안이, 이윽고 대답했다.
“그래. 잘 알지.”
“그런데도… 이렇게 뻔뻔하게… 일족의 앞에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거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내뱉은 네하트가 홱, 샬롯을 돌아보았다.
“당장 저자를 죽여야 한다, 샬롯…! 저 가증스러운 인간을!”
“내 귀에는, 네 혀를 잘라 달라는 말로 들리는데.”
샬롯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하트의 눈매가 더 구겨졌다.
“저자가 모두의 아버지를 완전히 유폐했어.”
“……?”
“태초의 야성을 완전히 가둬 버렸단 말이다! 더는 우리에게 닿을 수도 없게!”
“……!”
비로소 샬롯의 눈이 커졌다. 눈을 치켜뜬 건 팔메르와 테사이아, 그리고 움막의 입구 앞에 늘어선 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샬롯의 시선이 물끄러미 이안쪽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눈을 잠시 마주 본 이안이, 이윽고 대꾸했다.
“사실이야.”
“……!”
샬롯이 눈을 치켜뜨는 가운데, 그녀에 이어 팔메르까지 돌아본 이안이 말을 이었다.
“내가 유폐된 야성을 완전히 격리시켰다. 더는 너희들이 닿을 수 없도록.”
“이안….”
샬롯이 나지막이 탄식했다. 물론 모두가 그녀처럼 그저 놀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안을 노려보았다. 곳곳에서 그르렁대는 저주파 섞인 숨소리가 번졌다.
“이 자는 일족의 원수다…!”
이안이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돌아보는 가운데, 내뱉으며 네하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우리는 위대한 야성의 복수를 해야만-”
“야옹이 소굴이라서 그런가.”
말을 자른 건 테사이아였다.
네하트가 멈칫하는 가운데, 입가에 비웃음이 분명한 미소를 머금은 테사이아가 말을 이었다.
“멍청한 소리를 정성껏 하고, 그걸 또 죄다 믿고 앉아 있네.”
“뭐… 라고…?”
네하트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테사이아를 노려본 건 다른 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흘리는 테사이아를 올려다보며, 네하트가 씹어 뱉었다.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귀쟁아.”
“너야말로 멍청한 소리 그만해. 머리가 달려 있으면, 생각이란 걸 좀 하고.”
“…그만.”
싸늘하게 내뱉는 테사이아를 바라보며, 샬롯이 말했다.
“그냥 네가 말해줘, 테사. 네하트의 말이 왜 멍청한 소리인지.”
평소와 달리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그녀를 돌아본 테사이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간. 알았어. 물론, 우리 이안 호프 경께서 대단하신 건 사실이지. 괜히 초인이라 불리시겠어?”
무표정한 얼굴인 이안을 일별한 그녀가, 움막의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엄연한 필멸자야. 인간이라고.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단 한 명의 인간이 신을 봉인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무리….”
그녀의 비웃음 섞인 시선이 네하트의 얼굴을 훑었다.
“그 사도의 힘을 발판으로 삼았다고 해도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냐…?”
네하트가 인상을 구기며 내뱉었다. 테사이아가 또 한 번 보란 듯이 코웃음을 흘렸다.
“뭐라는 거야, 멍청아. 방금 이안이 스스로 인정했잖아. 그럼 어떻게 그런 불가능한 일이 가능했을까? 너희들의 신이 고작 인간 한 명에게 봉인될 만큼 나약한 걸까? 방금 네가 한 주장대로 말야. 이 멍청한 야옹아.”
“…….”
네하트가 멈칫 굳어지는 가운데, 혀를 찬 테사이아가 내뱉었다.
“그게 아니라면. 너희들의 신이 그냥 받아들인 거야.”
“뭐… 라고…?”
멍하니 되물은 건 샬롯이었다.
테사이아가 입꼬리를 싱긋 말아 올렸다.
“모르겠어? 너희들의 신이 원한 거라고. 크룩시카는 이 세상과 격리되길 바란 거야. 이안은 그저 도구로서 그걸 대행한 것뿐이고.”
“……!”
“그게 아니라면, 태초의 야성이 이렇게 순순히 유폐될 리가 있겠어? 작은 반항만으로도, 인간의 봉인 따윈 얼마든지 완성되기 전에 부숴버릴 수 있었을 텐데?”
네하트의 입이 설핏 벌어졌다.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해보지 못한 게 분명했다. 반쯤 넋 나간 얼굴이 된 건 샬롯과 팔메르를 비롯한 다른 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테사이아가 콧방귀를 뀌었다.
“분명 태초의 야성이 스스로 선택한 일일 걸? 안 그래, 이안?”
“글쎄….”
직접 대화를 나눈 건 아닌데. 하고 대답하려던 이안이 멈칫했다.
테사이아가 빨리 그렇다고 대답하라는 듯이 눈동자를 위아래로 움직여 대서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방금 지어낸 것이 분명한 그녀의 말이, 정말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서였다.
크룩시카는 정말 조금의 반항이나 거부도 하지 않았으니까.
녀석을 가둔 혼돈은 결국 대부분 녀석의 것이었으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막을 수 있었을 터였다.
“…내게 선택권을 주긴 했지.”
이윽고 이안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테사이아가 물었다.
“무슨 선택지?”
“내가 야성에 물든 수인들을 지배하거나….”
샬롯을 일별한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면 자신을 완전히 유폐시키거나.”
“…….”
“보다시피, 나는 후자를 택했어.”
이안을 멍하니 바라보던 샬롯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감사를 표하는 것 같기도,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한 묘한 얼굴이었다.
짝, 테사이아가 손바닥을 맞부딪친 건 그때였다.
“명확해졌네. 이안이 너희 야옹이들을 지배하려 할 리가 없잖아.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 빼곤, 별로 쓸 데도 없을 텐데 말이야.”
“말도… 안 돼….”
네하트가 더듬더듬 탄식했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은 듯한 눈으로, 그녀가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왜…? 그분께선 왜, 스스로 우리를 떠나려고 하신 거지? 어째서…?”
좀 전까지의 분노는 오간 데 없이 사라진 목소리였다. 오히려 간청하듯 절박해 보였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이안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유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견딜 수가 없었나 보지.”
그런 속내와 달리, 그의 입술은 덤덤하게 달싹이고 있었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후손들이, 자신 때문에 타락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그냥 외면할 수도 없었을 테고.”
“…….”
“내가 크룩시카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네 아버지와 싸울 때도 만났었지.”
“아버지… 와…?”
네하트의 눈이 더 흔들렸다. 이안이 곧바로 덧붙였다.
“이나스 커글. 그놈을 죽였을 때도, 크룩시카는 내게 분노하지 않았어. 그저 고마워하고 슬퍼했지.”
물론, 피곤해하기도 했고.
내심 덧붙인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자격을 얻은 것도 그때일 거야. 크룩시카가 널 살린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
네하트의 눈이 탁 풀어졌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얼굴도. 음침한 야망을 품은 대족장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건, 네게 복수하는 게 아니네. 이안.”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은 건 샬롯이었다. 몸을 돌려 움막의 입구 쪽을 돌아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건 복수가 아니라 속죄다. 끝내 태초의 야성께서 스스로 우리의 곁을 떠나게 만들고야 말았으니.”
“…….”
늘어선 수인들 역시 어느새 음울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들을 차근히 돌아보며, 샬롯이 입을 달싹였다.
“우리가 끝까지 살아남아 번영하는 것이, 그분께 속죄할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태초의 야성께서 가장 바라시는 게 그것일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투쟁하겠다. 이의 있나?”
대답 대신, 누군가가 울부짖었다.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수인 전사들이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며 구슬픈 울음을 토해냈다.
‘그러니까, 늑대도 아닌 것들이 왜 이러는 거냐고.’
속으로만 읊조리며, 이안이 도마뱀의 꼬리를 입에 넣었다.
그가 나무 꼬챙이들을 휙 옆으로 던지는 사이, 샬롯이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수인들의 울음소리가 삽시에 잦아드는 가운데, 그녀가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네하트를 내려다보았다.
“선택해라. 네하트.”
“……?”
그녀의 눈동자가 샬롯에게로 올라왔다. 톱날 검을 그 앞에 늘어뜨리며, 샬롯이 말을 이었다.
“커글의 의지를 계속 따르겠다면 목을 베겠다. 태초의 야성께 속죄한다면, 꼬리를 자르겠다. 어느 쪽을 택할 거지?”
“…내게.”
샬롯을 잠시 멍하니 올려다본 네하트가, 이윽고 입을 달싹였다.
“내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고…?”
“네가 나를 따르겠다면.”
이럴 줄 알았다.
입을 우물대며, 이안이 내심 읊조렸다. 하지만 어쨌건, 그가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적어도 지금의 네하트는, 살려둔다 해서 허튼 생각을 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따르겠다.”
이윽고 네하트가 고개를 숙이며 내뱉었다.
“따르겠습니다. 대족장.”
고개를 끄덕인 샬롯이 성큼, 그녀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네하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건 축 늘어진 그녀의 꼬리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멈춰 선 샬롯이, 그대로 톱날 검을 내리쳤다.
콰직-!
네하트의 꼬리가 잘려 나갔다.
피가 튀는 가운데,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던 네하트가 그대로 눈을 까뒤집으며 널브러졌다.
피를 왈칵왈칵 토해내는 그녀의 꼬리를 집어 들며, 샬롯이 팔메르를 돌아보았다.
“풀어 줘. 치료도 해 주고.”
팔메르가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몸을 돌린 샬롯이, 왼손에 네하트의 꼬리를 쥔 채 수인들을 바라보았다.
“떠날 준비 해. 여기서 챙길 수 있는 건 전부 챙겨. 늙은이들도 모두, 마로 텔로 돌아간다.”
“……!”
수인들의 눈이 커졌다. 샬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제 투쟁의 신을 섬긴다. 살아남기 위해 싸우라는 게 그분의 가르침이지. 죽음을 기다리는 건 투쟁이 아니야. 알아 둬라.”
말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까딱였다. 고개를 숙인 수인들이 곧바로 몸을 돌려 썰물처럼 물러났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은 테사이아가 이안쪽으로 슬쩍 몸을 기울인 건 그때였다.
“제법이지? 우리 야옹이.”
“그러게. 대족장 태가 나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샬롯에게도 들린 게 분명했다. 머쓱하게 입맛을 다시던 그녀가 이윽고 내뱉었다.
“고마워. 이안.”
이안이 돌아보자, 잠시 머뭇거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일족을 지배하는 걸 선택하지 않아 줘서. 넌 타락한 야성으로부터 수인들을 구원한 거야.”
“…알고 있겠지만, 그런 거창한 의도 같은 건 없었어.”
어깨를 으쓱인 이안이 덧붙였다.
“그냥 덜 귀찮을 것 같은 걸 선택한 것뿐이지.”
“나는?”
툭 끼어든 건, 실실 웃고 있던 테사이아였다.
“이번에는 나도 꽤 도움이 되지 않았어?”
“맞아.”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수인들의 시체로 산을 쌓을 뻔했는데. 잘했다. 테사.”
“역시 그렇지?”
활짝 미소 지은 테사이아가 은근한 눈빛으로 샬롯을 돌아보았다.
미간을 찌푸린 샬롯이, 이윽고 몸을 돌리며 웅얼댔다.
“…맙다.”
“뭐라고? 너무 작아서 안 들리는데?”
“출출하군. 남은 이야기는, 식사하면서 마저 나누자.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아. 이안.”
이안에게 덧붙인 샬롯이, 그대로 움막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참 나. 두 번 말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안 그래, 이안?”
헛웃음을 지은 테사이아가 물었다. 느긋하게 몸을 돌리며,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저 녀석한텐 그렇게까지 쉬운 일도 아니긴 하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