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38
#538화
“그게… 대체 무슨….”
로웨나의 미간이 더 일그러졌다.
어느새 테사이아도 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침착했지만,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까지 감추지는 못한 채였다.
비단 발언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지금 이안은, 남부 요정 사회라는 고요한 연못 한복판에 커다란 돌을 집어 던진 셈이기도 했으니까.
잠깐의 침묵 끝에, 로웨나가 입술을 달싹였다.
“대교회에 타락자들이 암약하고 있으며… 그들에 동조하는 요정들이 있다는 말씀이신 겁니까…?”
“그들을 단순히 타락자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이안이 말을 이었다.
“의회는 전 대륙에 분란과 공포를 야기하고, 혼란을 부추겨 광기를 흩뿌리고 있소. 세상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형태로 재건하기 위해, 먼저 완전히 부숴버리려는 것이오. 그리고 그건 결국, 제국을 무너뜨리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소.”
“……!”
“반역자들이란 말이오. 의회는 물론, 그들을 따르는 요정들 역시.”
로웨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부릅뜬 채 이안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경악과 불신이 뒤엉키는 그녀의 눈을 잠시 바라본 이안이, 이윽고 한쪽 어깨를 으쓱였다.
“이만하면 깊은 숲에 발을 들인 대가로는 충분한 정보인것 같소만.”
“…증거.”
그제야 비로소 참고 있던 숨과 함께 내뱉은 로웨나가, 심호흡하듯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덧붙였다.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있으십니까?”
“글쎄. 있다고 해도, 그걸 원로께 보여드릴 일은 없을 것 같소만.”
“뭐라고요…?”
로웨나의 눈매가 또 한 번 날카롭게 일그러졌다.
“중앙의 요정 귀족들을 반역자로 모시고선, 아무런 증거조차-”
“대신 내 이름을 걸었잖소.”
이안이 말을 잘랐다. 로웨나가 멈칫하는 가운데, 그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과 싸워왔소. 그러니 내가 곧, 그들의 존재를 입증할 증인이기도 하지.”
“…….”
로웨나가 말문이 막힌 듯 입술을 달싹였다.
이안의 이름은, 사실 그것만으로도 근거가 되기에 충분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설적인 업적을 이룩한 초인이자, 저 위대한 백금룡의 대행자가 아닌가.
“증인은 성자 대행만이 아닙니다. 원로장.”
테사이아가 나지막이 내뱉은 건 그때였다. 로웨나가 돌아보는 가운데, 그녀가 덧붙였다.
“저는 그들의 음모에 휘말려 끔찍한 고통을 겪었어요. 성자 대행이 아니었다면, 끝내 목숨을 잃었겠죠. 제 이름을 걸고 보증하건데, 성자 대행의 말씀은 전부 사실입니다.”
“…맙소사.”
테사이아를 빤히 바라보던 로웨나가, 비로소 눈을 질끈 감으며 탄식했다. 충격이 작지 않은 듯, 순간 비틀거리기까지 하는 채였다.
“그럼, 내 죗값은 치른 것으로 알겠소.”
이안이 담담하게 덧붙인 건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로웨나의 반응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테사이아를 돌아보며 턱짓한 그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
“잠시. 잠시만요. 성자 대행…!”
로웨나가 다급하게 내뱉었다.
멈춰선 이안이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슬며시 미간을 좁히는 채였다.
“설마 이 정보가 부족하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
“물론 아닙니다. 다만….”
숨을 고르듯 한숨을 내쉰 그녀가 이안을 마주 보았다.
“다만, 중대한 사안인 만큼 조금 더 조언을 청하고 싶을 뿐입니다.”
“정확히 어떤 조언 말이오?”
“혹시, 이미 연관된 가문을 알고 계십니까?”
“글쎄….”
이안의 눈매가 설핏 휘어졌다.
“답을 알려주는 것을 조언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소만.”
“…….”
창백한 얼굴로 이안을 바라본 것도 잠시.
“…그렇군요. 이제야 알겠어요.”
로웨나의 눈빛이 문득 가늘어졌다. 이어진 목소리 역시, 눈빛만큼이나 서늘했다.
“성자 대행께선, 저를 믿지 않으시는 거군요. 그 반역자들과 한패가 아닐지 의심하시는 거예요.”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오. 이 세상에 내가 믿는 요정은 단 둘뿐이어서 말이오. 게다가 귀하는, 의회가 탐을 낼만 한 인재이시기도 하고. 본심을 잘 감추고 사시잖소?”
“그럼 왜 내게 그런 정보를….”
정곡을 찔린 듯 읊조리던 로웨나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반역자들에게 전해주기를 바라신 거군요. 성자 대행께서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요.”
“내 조언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명민하신 것 같소만.”
이안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요정은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그만큼 겁도 많은 족속들이 아니던가.
의회에 충성한다 한들, 목숨을 바칠 정도는 아닐 터였다. 어쩌면 거꾸로 의회에 따져 물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어떤 식이건, 의회 내부에 다시 잡음이 일게 하는 역할 정도로는 충분할 터였다.
물론, 그건 로웨나가 의회의 하수인이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이리라.
“과연… 비범하시군요. 성자 대행. 덕분에, 저 역시 성자 대행의 말씀이 사실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요.”
로웨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뱉은 건 그때였다. 물론, 이안을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저는 반역자가 아닙니다. 저는 성자 대행이 말씀하시기 전까진, 그들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습니다. 제법 오랜 시간을 살아왔는데도 말입니다.”
“그러시다면, 행동으로 증명하시면 되겠군.”
한쪽 입꼬리를 조금 더 말아 올린 이안이 말을 이었다.
“이건 요정 사회 전체의 명운이 걸린 문제임과 동시에, 기존의 권력 구도를 완전히 뒤바꿀 기회이기도 하잖소. 원로장께서도 모르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사실, 성자 대행께 조언을 청한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로웨나가 선선히 인정했다.
더는 원칙이라는 가면에 본심을 숨길 필요가 없어진 것이리라.
“하지만 저를 믿지 못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밖에요. 물론 남부의 원로들 사이에도 반역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녀의 시선이 이안의 옆에 선 테사이아에게로 돌아갔다.
“…믿을 수 있는 원로를, 적어도 한 명은 알고 있으니까요.”
이빨이 안 들어가니까 바로 상대를 바꾸는군.
이안이 내심 코웃음을 흘리는 사이, 로웨나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혼란이 가라앉을 때쯤 원로회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귀하를 남부 깊은 숲의 적법한 대리자로 임명할까 합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원로?”
테사이아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원로장.”
“…뭐라고요?”
받아들이리라 확신하고 있었던 듯, 로웨나의 미소가 굳어졌다.
“원로장을 믿지 못하는 건, 저 역시 마찬가지이니까요.”
“…….”
“게다가 저는 성자 대행께 목숨을 빚졌습니다. 원로로 거듭나게 된 것 역시, 성자 대행 덕분이죠. 그 빚을 갚기 전까진 성자 대행의 곁을 떠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는 규율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죠.”
이어진 테사이아의 말은, 로웨나의 얼굴을 또 한 번 일그러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기까지 한 걸 보니, 반박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대신, 원로회의 일원으로서 작은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테사이아가 넌지시 말을 이은 건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가문들의 자금 흐름을 조사해 보세요. 본토의 다른 요정 가문이나, 대교회와 연관된 자금이 흘러들어온 흔적이 있다면 의회의 하수인일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훌륭한 조언이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로웨나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뒤이어 긴 한숨을 내쉰 그녀가 읊조렸다.
“조언을 듣고 나니, 더더욱 귀하를 깊은 숲의 대리자로 임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원로장.”
“내 수족이 되어 숲에 남아달라는 뜻이 아니에요.”
재빨리 덧붙인 로웨나가, 미간을 찌푸린 테사이아를 마주 보았다.
“다만,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공을 세웠을 때 남부 깊은 숲의 이름도 함께 기록될 겁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반대편에 일종의 보험을 들어 놓으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배신은 요정들의 특기나 다름없지 않던가.
“도저히… 사양할 수 없게 만드시는군요.”
이윽고 테사이아가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입꼬리를 꿈틀대는 걸 보니, 어느 쪽이건 그녀가 손해 볼 일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만하면, 만족하시겠소?”
지켜보던 이안이 넌지시 끼어들었다. 다소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시면서도, 로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성자 대행. 기대하던 정보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군요.”
“그렇다면, 작은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 주실 수도 있겠군.”
이안이 덧붙인 말에, 멈칫한 로웨나가 그를 바라보았다.
“…공교롭군요. 마침 저도, 보답의 의미로 작은 조언을 하나 드리려던 참이었는데요. 그래서, 어떤 부탁을 하시려는 건가요?”
전혀 보답하려는 눈빛이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이안이 내뱉었다.
“말 좀 빌려주시오.”
“…예?”
로웨나가 한 박자 늦게 되물었다.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안이 그녀 뒤편, 길가에 선 두 마리의 백마를 일별하며 덧붙였다.
“한시라도 빨리 숲을 벗어나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말이오. 타헤나에 도착하고 나면, 말들은 에레노스의 요정들을 통해 다시 무사히 돌려보내 드리겠소.”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본 것도 잠시.
“…타고 가십시오.”
실소인지 쓴웃음인지 모를 웃음과 함께, 로웨나가 내뱉었다.
곧이어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백마들이 터덜터덜 이안과 테사이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감사히 타겠소.”
테사이아의 감탄 섞인 시선을 받는 와중에도, 이안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자연스럽게 백마의 고삐를 움켜쥔 그가, 등자를 밟고 올라서며 덧붙였다.
“하시려던 조언은 무엇이오?”
한 번 더 한쪽 입꼬리만 말아 올린 로웨나가, 선선히 입을 열었다.
“중앙에 불온한 소문이 돌고 있는 모양입니다.”
“불온한 소문?”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내며, 로웨나가 불현듯 목소리를 낮췄다.
“저 위대한 백금룡께서 황실과 교단의 허락 없이, 독단적으로 검은 벽을 무너뜨리셨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안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제도에 연락책이라도 있으신 모양이군….”
태연하게 읊조리며, 등자의 끈을 다리에 맞게 조절할 뿐이었다.
낯이 굳어진 건, 오히려 그 옆의 또 다른 백마에 탄 테사이아였다.
“아직 황실과 교단 모두 그 어떤 공식적인 입장도 표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눈동자만 굴려 그녀를 일별하면서, 로웨나가 느긋하게 덧붙였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성자 대행. 암약한 반역자들이, 그런 좋은 기회를 허투루 흘려보낼 리 없을 테니까요.”
“걱정해 주시는 건지, 그렇게 되길 바라시는 건지 모르겠군….”
나지막이 웃음 지으며 읊조린 이안이, 고삐를 쥐어 들며 덧붙였다.
“조언 고맙소. 새겨듣도록 하지.”
적어도 로웨나가 원하던 반응이 아닌 건 분명했다. 한차례 입맛을 다신 그녀가, 이윽고 질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뱉었다.
“그럼 이제, 떠나십시오. 합당한 대가를 치르셨으니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기꺼이.”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은 이안이, 보란 듯 경쾌하게 고삐를 후려쳤다. 두 마리 백마가 오솔길 너머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
우두커니 선 로웨나는 멀어지는 두 기수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보지 않았다.
더는 원로 요정의 눈으로도 볼 수 없게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