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51
#551화
자욱하던 안개는 도렌 강에 다다르기도 전에 말끔하게 사라졌다.
채 정오도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이안이 안개의 원흉을 제거한 덕분일 터였다. 물론 하늘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제법 폭이 넓은 강 너머가 훤히 보였다.
녹음이 사라지고, 완만한 암반 능선이 펼쳐지고 있었다.
“갈림길이 있는 것 같은데.”
고대의 유산이 분명한 낡고 긴 돌다리를 건너며, 모로의 안장에 앉은 이안이 읊조렸다.
마차가 생겼지만, 그는 여전히 모로에 타고 있었다. 호위기사 흉내를 내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 계속 마차 안에 있는 게 답답해서이기도 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말들이 지칠 테고, 계곡으로 이어진 길을 타면 하루쯤 더 걸릴 겁니다.”
마부석에 앉은 무카파가 말했다.
그가 타고 온 조랑말은 두 백마 사이에서 함께 마차를 끌고 있었다. 졸지에 삼두마차가 된 데다 덩치 차이도 제법 났지만, 오히려 무카파의 말이 가장 앞장서서 말들을 이끌고 있었다.
“능선으로 가지.”
이안의 한 마디로 경로가 결정됐다. 무카파는 아무런 이견도 제시하지 않고, 능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로 접어들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 그리고 틈에서 자란 뻣뻣한 풀들이 전부인 삭막한 전경이 이어졌다.
‘역시, 점점 바다가 가까워지고 있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에 섞인 짠 내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물론 이안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갈림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졌고, 그건 방위상으로 서북쪽이라는 의미였으니까.
사아아아-
점점 더 강해지는. 그러나 여전히 미지근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이안은 손에 든 술병을 느긋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등대 상단에서 받아 온 물건 중 하나였다. 덕분에 남부의 포도주는 중앙의 것보다 단맛이 더 강해서 이쪽을 선호하는 귀족들이 제법 있다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사실까지 알게 됐다.
무려 유리병으로 나뉘어 포장된 고급품이었지만, 이안은 가차 없이 한 상자를 통째로 챙겼다. 한동안은 물 대신 마셔도 될 정도였다.
드르륵-
마차 옆의 간이 창문이 열린 건, 능선을 오른 지 몇 시간이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빼꼼 드러난 원로 요정의 하얀 얼굴에, 이안이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몇 시간 안 잔 것 같은데.”
루시아와 테사이아는 말 그대로 밤새 떠들어댔다.
물론, 요그 때문이었다.
오만한 원로 요정과 음흉한 뱀은 처음부터 죽이 꽤 잘 맞았다. 덕분에 그들의 대화는 흑마법이나 금단의 지식 같은 위험한 영역까지 순식간에 흘러갔다.
물론 그건 위험을 즐기는 성녀의 취향에도 딱 맞는 주제였다.
‘하여간, 그 뱀 새끼는.’
이안으로선 말릴 수도 막을 수도 없는 흐름이었다. 덩달아 한숨도 자지 못한 그는, 결국 아침이 되어서야 안장에서 명상으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떠들던 둘이 조용해진 건 강에 거의 다다라 갈 때쯤이었다. 이안이 안장에 앉아 술만 들이켠 건, 적막을 즐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길이 영 불편해서. 알잖아? 잠자리에 예민한 거.”
전직 떠돌이 흡혈 요정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이안의 입가에 실소가 스쳤다.
“그래. 귀한 몸이시니까.”
“루시는 아주 잘 자고 있으니 염려 마. 침도 흘리면서. 그 사이에, 별일 없었지?”
테사이아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선선히 술병을 건네면서,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 일도.”
“뒤쪽도, 여전히 따라오고 있고?”
이안이 시큰둥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능선 저 아래에, 한 대의 마차와 두 기의 인마가 따라오고 있었다. 챔버스 자작의 둘째 공자와 호위기사인 브레넌. 그리고 그의 종자였다.
“그래.”
일행은 계획대로 해가 뜨기 전에 야영지를 떠났다. 모닥불도 꺼진 시간이건만. 브레넌 경은 어떻게 알았는지 부리나케 그들을 따라왔다.
물론, 동행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경호병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도님. 부디 함께 갈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주 멀찍이 뒤따르기만 하겠습니다. 원로께 방해가 되거나 귀찮으시게 할 일도 없을 겁니다.”
사실상 애원에 가까웠다.
이안과 테사이아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지만. 타오르는 여신의 사도에게 동정심을 사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흐응… 끈질기네. 마물이 어지간히 무섭나 보지. 온몸에 마법 무구를 둘둘 두르고 있으면서.”
비웃듯 읊조린 테사이아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안이 뒤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덧붙였다.
“마물들과 사투를 벌일 정도는 아니겠지. 그런 경험도, 많지 않은 것 같고.”
“그냥 세상 경험 자체가 부족한 것 같은데. 중앙 촌뜨기들인 거야. 하긴. 그러니 이런 시국에 놀러나 온 거겠지만.”
낮게 콧방귀를 뀐 테사이아가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덧붙였다.
“아마 룬 카티스에서도 여기저기 바가지나 잔뜩 쓰고 다닐걸. 본토에 제대로 도착이나 하면 다행이겠지.”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정신을 집중한 것만으로도, 이안은 마차 안에서 엉덩이가 아프다고 투덜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소 피곤한 안색의 브레넌. 그리고 안장에서 끔뻑끔뻑 졸고 있는 종자까지 일별한 이안이,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 거기까진 내 알 바 아니지.”
다시 창문 앞으로 왼손을 내뻗는 채였다. 선선히 술병을 쥐여 주면서,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도와줘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 딱 봐도 돈이 많아 보이는데.”
“저자의 가문에 대해서 알아?”
“아니. 하지만 어쨌든 중앙 귀족이잖아. 돈과 인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거기다 저렇게 놀러 다닐 정도면, 뭐. 뻔하지.”
테사이아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남들한테 뜯어 먹히기 전에, 우리가 뜯어 먹는 게 낫지 않겠어?”
“돈도 많으면서….”
풀썩 웃으며 읊조린 이안이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테사이아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돈은 많을수록 좋잖아. 이안도 비슷한 얘길 했던 것 같은데.”
“됐어. 그것도 살려서 돌아갈 자신이 있을 때나 고민할 문제지.”
고개를 저은 이안이 망토 자락에 입가를 닦으며 덧붙였다.
“우리 몸 건사하기도 벅찰지도 모르는데. 저것들까지 책임지고 싶지 않아.”
“다른 배들은 안 그런가, 뭐. …하긴. 밀항선들도 출항을 거부할 수도 있으니까. 우린, 무조건 출항할 거고.”
테사이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해서 언급할 필요도 없기 때문일 터였다.
“그래. 그 선장이 어떤 놈일진 몰라도, 죽고 싶진 않을 테니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면, 어떻게든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겠지.”
이안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이런 방식은 뜻밖에도 꽤 효과가 있었다. 사람 대부분은 죽음의 위기가 닥치면 한계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법이었으니까.
공작에게 빚을 질 정도의 인물이 애송이일 리 없다는 계산도, 물론 어느 정도는 깔려 있었다.
“전문가에게 맡기겠다는 거네. 하긴. 우린 뭐, 바다에 대해선 아는 게 없으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테사이아가 기다란 궐련을 입에 물었다.
궐련이 스르륵 움직여 창문 밖으로 날아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테사이아의 시선을 받은 이안이, 날아든 궐련을 손가락으로 받으며 내뱉었다.
“안에는 루시가 있잖아.”
“하여간, 살뜰하게 챙긴다니까.”
입술을 비죽인 테사이아가 문을 열었다.
이안의 미간이 슬쩍 좁아질 찰나, 그대로 뛰어오른 그녀가 안장 앞에 올라탔다.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망토를 벗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모로가 불쾌한 듯 콧김을 뿜는 가운데, 이안이 궐련을 문 입술을 달싹였다.
“이렇게까지 피워야겠다고?”
“뭐 어때. 일단 대외적으론, 연인이잖아?”
테사이아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왼발을 휙 움직여 마차 문을 닫아버리는 채였다.
…그 설정 언제까지 써먹을 건데.
뒤를 돌아본 테사이아가 궐련 앞에 작은 부싯돌을 가져다 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헛웃음을 흘린 이안이 숨을 들이켰다. 잘 다듬어진 손가락만 한 부싯돌들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고, 이내 궐련 끝에 옮겨붙었다.
“어차피 달라질 거 없는 건 아는데 말이야.”
이안이 연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내뱉은 테사이아가, 냉큼 궐련을 가져가며 덧붙였다.
“혹시라도 정말 그 대마족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도망쳐? 아니면, 싸워야 돼?”
마부석에 앉은 무카파의 귀가 쫑긋댔다. 오크의 귀는 덩치에 비해 다소 작아서,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어쨌건 그 역시 내심 이안의 생각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기를 마시며 대답을 기다리는 테사이아를 내려다보며, 이안이 선선히 대답했다.
“선택권이 있다면, 어지간해선 도망쳐야지.”
지금까지의 경험상 싸워야만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은 채였다.
물론, 실제로도 그다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본 대마족들은 하나 같이 끔찍하게 강했지만. 부키키아는 특히 까다로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저 물속으로 끌어당기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그를 죽일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이안은 숨을 꽤 오래 참을 수 있었지만. 어쨌건 아예 쉬지 않고도 살 수는 없었다.
“도망치는 게 우선이라는 거지? 다행이네.”
테사이아가 앞으로 돌아보며 내뱉었다. 약초 냄새나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분명했다. 곤두서 있던 무카파의 귀에도 힘이 빠졌다.
“내해에 숨어 있는데도 토벌하지 못했던 놈을, 나 혼자 무슨 수로 토벌하겠어. 최우선 과제는 어디까지나 본토에 무사히 도착하는 거야.”
대답한 이안이 오른손을 테사이아의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궐련을 손가락 사이로 쥐며, 그가 덧붙였다.
“그러려면 우리가 탄 배가 침몰하지 않아야 할 테고. 그것만 생각해.”
“문제가 생기면, 주문쟁이가 해야 할 일이 특히 많을 것 같네.”
선선히 궐련을 돌려준 테사이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같이 오길 잘했지?”
“…뭐, 심지어 청색이니까.”
궐련을 입에 문 이안이 선선히 대꾸했다. 테사이아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유능한 청색 주문쟁이지. 그래… 이번에야말로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은 딱 질색인 거 아니었냐.”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뭐, 이안이 있잖아. 어떻게든 해주겠지. 안 그래?”
같이 빠져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궐련의 연기를 들이마셨다. 왼손의 술병을 테사이아에게 건네주는 채였다.
이후로도 그와 테사이아는 술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주로 요그와 육각 연맹 같은 자질구레한 이야기 들이었다.
다각- 다각-
완만하게 이어지던 오르막이 서서히 평평해진 건, 궐련을 거의 다 피웠을 때쯤이었다. 가뜩이나 칙칙하던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궐련의 심지를 장갑 손바닥에 비벼 끄면서, 이안이 읊조렸다.
“이제 진짜 바다 근처인 것 같은데.”
“맞습니다.”
고삐를 쥔 무카파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너머가 바로 바다입니다. 아마 곧, 눈으로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오르막 정상은 길 오른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천천히 서쪽으로 선회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대로 나아가다 보면 언덕에 가려져 있던 풍경이 드러날 터였다.
“바다라… 오랜만이네.”
테사이아가 읊조리는 가운데, 꽁초를 던져버린 이안이 물었다.
“밤새워 걸으면 내일 중으로는 도착할 수 있을까?”
“중간에 잠시 말들을 쉬게 해야 되긴 하겠습니다만…. 늦어도 내일 정오쯤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 거리면, 여기서 눈으로도 보이겠는데. 생각하며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테사이아가 덧붙였다.
“말린 과일들을 잔뜩 줘. 꿀도 뿌려서. 그래야 힘이 나지.”
말들을 본토까지 무사히 데리고 가고 싶은 것이리라.
모로 정도 되는 녀석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말들은 일행의 체력을 버티기 어려웠다. 사실상 걷고 있는 건 녀석들이니 더 그럴 터였다.
백마들은 살이 조금씩 빠지는 게 벌써 보일 정도였다.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이면서도, 이안이 테사이아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궐련도 다 피웠는데. 계속 여기 있을 거야?”
“곧 바다가 나온다잖아. 바다까지만 보고 들어갈게. 말 나온 김에, 루시도 깨울까?”
테사이아의 해맑은 물음에, 풀썩 웃음 지은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자게 둬. 어차피 곧 지겹게 보게 될 텐데.”
“이안은 낭만이 없다니까….”
테사이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 말에, 이안은 콧방귀를 뀌었다.
몇 년간 한곳에 머문 것보다 떠돌아다닌 시간이 길면, 누구라도 그처럼 변하게 될 터였다. 심지어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좁고 안락한 단칸방으로 돌아가, 몇 달이고 꼼짝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이젠 확실히, 그쪽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네.’
씁쓸하게 입맛을 다신 이안이, 얼마 남지 않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비교적 평평하던 길이 조금씩 앞으로 기울어진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말없이 술만 들이켜던 이안의 시선이, 아래로 이어진 능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둠에 잠긴 일대 저 너머에, 흐릿한 불빛이 일렁이는 도시가 손톱만 하게 보였다.
아마도 저곳이 룬 카티스이리라.
물론 목적지를 확인하는 건 그뿐이었다.
“바다다…!”
길 오른편의 능선에 가려져 있던 바다 역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사이아가 탄성을 터뜨리고서야, 이안도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이미 날이 어두웠지만, 하늘에 가득한 먹구름 덕분에 수평선을 구별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사아아아-
바닷바람이 이안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짙은 남색의 바다에는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폭풍우가 오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꿈틀대는 것처럼 보이는 바다를 응시하는 이안의 눈매가, 이내 슬며시 가늘어졌다.
‘…산호의 혼돈을 흡수해서 그런가.’
묘한 불길함이 목덜미를 스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사이아의 해맑은 목소리가 이어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저 너머에는 땅이 보이는 것 같은데? 무카파, 땅 맞아?”
그녀의 시선은 정면에 가까운 우측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카파의 침음이 이어졌다.
“눈이 아주 좋으시군요…. 제게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맞을지도 모릅니다. 서쪽으로 갈수록 본토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니까요.”
“아, 맞아. 서쪽 끝에 해협도 있지. 그럼 그냥 이대로 쭉 서쪽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그건 어렵습니다. 서쪽으로 갈수록 다시 지대가 높아지니까요. 배를 탈 곳도, 내릴 곳도 없을 겁니다.”
“아하…. 그럼… 저 불빛들은 뭐야?”
이어진 테사이아의 물음에, 무카파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불빛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 수평선 근처에 말야. 불빛들이 떠다니는데?”
“……?”
무카파가 고개를 위로 길게 뺐다. 비로소 저 너머에 일렁이는 수많은 작은 불빛들을 발견한 그가, 낮은 침음을 흘렸다.
“저건… 배들인 것 같군요.”
“배? 뭐야, 역시 여긴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던 건가?”
파도에 파묻히는 것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불빛들을 바라보면서, 테사이아가 읊조렸다. 무카파가 그녀를 돌아본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밀항선은 불을 밝히지 않습니다. 원로.”
“그래? 그럼 저것들은-”
“군도.”
머리 위에서 돌아온 대답에 멈칫한 테사이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그녀와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던 이안이,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덧붙였다.
“군도에서 보낸 배들이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