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53
#553화
이안의 예상은 조금 빗나갔다.
해가 채 떨어지기도 전부터, 여관 1층의 주점이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행 모두의 잠을 깨우기에도 충분할 정도였다.
“다들 부지런하네. 꼭두새벽부터.”
침대에 걸터앉은 이안이 비아냥댔다.
예상대로 도시에는 외부인들이 가득했다. 일행은 세 번째 여관에서야 비로소 방을 빌릴 수 있었다.
그마저도 가장 크고 비싼 방밖에 남아 있지 않았었다. 물론, 일행에게는 차라리 달가운 일이었다.
바가지를 잔뜩 씌운 게 분명한 가격도, 상인들 덕분에 주머니가 빵빵해진 이안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빨리 나가보자, 이안. 여기 엄청 재미있을 것 같다구.”
가장 큰 중앙 침대를 차지한 테사이아가 재촉하듯 말했다.
웅성대는 소리와 불빛이 번지는 창밖을 반짝이는 눈으로 돌아보는 채였다.
느긋한 손길로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한 이안이 말했다.
“넌 여기 있어. 테사.”
“…뭐라고?”
테사이아의 미소가 단박에 일그러졌다.
“왜?”
“뒷골목을 돌아다니게 될지도 모르는데. 문제 일으키고 싶지 않거든.”
“걱정마, 이안.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조용히 뒤만 따라다닐 거야.”
“그런다고 될 게 아니야. 네 얼굴이 문제니까.”
“내 얼굴…? 내 얼굴이 왜?”
테사이아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이안이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내뱉었다.
“너무 눈에 띄잖아.”
여긴 밀입국자와 오늘만 사는 범죄자들이 도사린 도시가 아니던가. 물론 취객도 잔뜩 있을 터였다.
대로변이라면 모를까. 테사이아를 데리고 뒷골목을 누비면 분명 뭔가 문제가 터질 터였다. 심지어 그녀는 요정 중에서도 체구가 작은 편이 아니던가.
테사이아의 얼굴에 한 박자 늦게 은근한 미소가 번졌다.
“그거 지금, 내가 너무 예쁘단 뜻이지?”
“여기서 무카파랑 기다려.”
대답 대신 내뱉은 이안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턱을 까딱였다.
“루시랑 둘이 다녀올 테니까.”
“…나는 안 되면서, 내 동생은 된다고?”
다시 미간을 좁힌 테사이아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옆의 침대에 걸터앉아 장비를 착용 중인 루시아를 바라보며, 그녀가 덧붙였다.
“동생도 엄청 예쁜데?”
“그게요….”
조금 미안한 듯한 미소를 지은 루시아가, 침대맡에 둔 파수꾼의 가면을 집어 들었다. 그 옆에 잘 개어 둔 요정의 망토까지 함께 슬쩍 흔들어 보이는 채였다.
“…아. 그게 있었지.”
눈에 띄는 외모를 가리기에 더없이 적합한 것들이었다.
낮게 탄식한 테사이아의 시선이 대충 구겨 놓은 자신의 망토 쪽으로 돌아갔다. 새하얀데다 금실로 문양까지 새겨져 있어서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으으음….”
꾹 입을 다문 그녀가 갈등이 오가는 눈으로 루시아를 힐끔댔다.
가면과 망토를 빌려달라고 말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선뜻 내뱉지 못하는 건, 언니로서의 체면 때문이리라. 테사이아가 일생일대의 갈등에 휩싸인 사이.
“저와 같이 움직이는 게 더 편하시지 않겠습니까?”
구석의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무카파가 물었다.
멀쩡한 침대를 두고 왜 바닥에서 잔 건지 모를 노릇이었지만, 이안은 내색하지 않고 내뱉었다.
“그렇겠지. 근데 그러면 저 둘만 남잖아. 그게 더 불안해.”
물론 위험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사고를 칠 것 같아서였다.
팔목 보호대를 차근차근 고정하며, 이안이 덧붙였다.
“원로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잘 지켜 줘. 누가 시비를 걸면, 콧잔등을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저 덩치를 보고도 시비를 틀 간 큰 놈은 거의 없겠지만.
이안이 내심 덧붙이는 사이, 무카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귀빈. 이 도시는 우범 지역이니,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그러지. 걱정마.”
곧 장비 착용을 끝낸 이안이 일어섰다. 불사자의 두건 망토는 물론 진은 강철 검과 송곳니 대검도 그대로 벽에 기대 둔 채였다. 디아나에게 받은 비수들이 꽂힌 가죽 띠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굳이 가지고 다닐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누군가 시비를 건다고 해도, 판금 장갑을 착용한 주먹만으로도 충분할 터였다.
손목과 발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이안이 루시아를 돌아보았다.
“뭐 좀 먹고 갈래?”
어느새 장비 착용을 끝내고 기지개를 켜고 있던 루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다녀와서 먹죠, 뭐.”
조금이라도 빨리 밖에 나가고 싶은 게 분명했다. 에레노스에서 받아온 활동성 좋은 가죽 장비들 위로 짙은 녹색의 두건 망토가 드리웠다.
루시아가 파수꾼의 가면까지 집어 드는 사이, 어느새 술병을 입에 댄 테사이아가 코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문으로 걸음을 옮기며 피식 웃은 이안이 덧붙였다.
“말들도 한 번 살펴보고.”
모로가 곁에 있으니 별일 없겠지만. 내심 덧붙인 그가 복도로 나섰다. 두건을 눌러쓰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루시아가 뒤따르는 가운데, 복도를 가로지른 이안이 주점으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갔다.
“할 일도 없는데, 오늘도 밤새 달리자고!”
“마실 수 있을 때 마셔야지, 암.”
장내는 벌써 술판을 벌이기 시작한 자들로 왁자지껄했다.
제국의 대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위태로운 활기에, 이안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정겨운 풍경이구먼.’
물론 그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장내를 차근히 훑고 있었다.
대다수가 외지인이었지만, 현지인으로 보이는 이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
이윽고 이안의 시선이 한구석에 모여 앉은 자들에게서 멈췄다.
반쯤 헐벗은 데다 날붙이를 착용한 건 물론이고, 지저분한 몸 곳곳에 흉터와 조악한 문신을 새긴 건달들이었다.
‘저것들이 이 주점의 분쟁을 관리하는 건가?’
생각하며, 이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윗입술을 가르는 흉터가 남은 반투르인과 옆에 앉은 외팔이 쿠르드인은 그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윽고 식탁 앞에서 멈춰 선 이안이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아앙?”
흉터와 외팔이가 비로소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 뒤통수만 보이게 앉아 있던 대머리가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돌렸다.
“누구 마음대로 말을 걸고 지랄….”
내뱉던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흠집과 찌그러진 흔적이 가득한 전신 판금 갑옷 때문인지, 무표정한 이안의 우묵한 눈빛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둘 다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무슨 용무이십니까, 나리?”
이안의 전신을 훑고 뒤편에 선 가면 쓴 루시아까지 눈에 담은 대머리가, 이윽고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생김새나 말투로 봤을 때, 이놈은 제국인이었다.
피부색 순서대로 앉아 있는 건가.
실없는 생각과 달리 무표정을 유지한 채, 이안이 내뱉었다.
“샌퍼드 플럼이란 자를 아나?”
“샌퍼드…? 흐음…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대머리가 나지막이 침음하며 마주 앉은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흉터와 외팔이도 묘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눈빛이었다. 이안은 대머리의 뒤통수에 손자국을 내주는 대신, 품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은화를 하나 꺼내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이제 기억이 좀 되살아나겠지.”
굳이 시작부터 피곤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폭력은 평화로운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 동원해도 충분했다.
동전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대머리가 덧붙였다.
“…그 작자에게는 무슨 용무이신 겁니까?”
“받아야 할 빚이 있어서.”
이안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대답할 명분을 만들기 위한 질문이라는 것을 눈치채서였다. 건달들은 의리라곤 없는 주제에, 정작 밀고자나 배신자 취급당하는 건 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족속들이었다.
“빚을 졌다면 갚아야겠지요. 놀라운 일도 아니군요.”
역시나, 은근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대머리가 은화에 손을 얹었다.
“아마 그자는 도박장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도박장은 어디에 있지?”
흉터와 외팔이도 알만 하다는 듯 킬킬대는 가운데, 대머리가 은화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대꾸했다. 인제 보니 검지가 한 마디쯤 없었다.
“도시 곳곳에 몇 군데가 있습니다.”
“그럼 안내를 부탁하고 싶은데.”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나리.”
대머리가 은화로 턱을 긁적이며 대꾸했다. 이안의 눈매가 꿈틀대는 것을 본 그가 황급히 덧붙였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 도시는 구역마다 관리하는 조직이 따로 있습니다. 도박장들은 저희 구역이 아니고요.”
“…….”
“저희끼리 놀러 가는 거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외부인을 대동하고 가는 건 상황이 좀 다릅니다. 심지어, 빚을 받으러 가신다지 않으셨습니까?”
“…흠.”
이안은 짧게 침음을 흘렸다.
귀찮아서 대충 거짓말을 늘어놓은 건 아닐 터였다. 변방이나 북부에서도 심심치 않게 겪은 상황이 아니던가. 윗선을 거슬러 올라가면 도시 귀족이나 사제, 경비 대장 따위가 나오게 되리라. 어쩌면 군도의 간부가 배후일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조직은 여럿이지만 머리는 하나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이안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 돈값을 하려면 대안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물론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몸으로 때우게 할 생각이었다.
“거지새끼들을 만나 보십시오.”
끼어든 건 흉터였다. 이안의 시선을 받은 놈이, 흉터가 새겨진 입술을 씰룩대며 덧붙였다.
“동냥하고 다니는 놈들이 있습니다. 구역에 얽매이지 않는 놈들이고, 보는 눈이 많습니다. 그 작자의 위치도 찾아줄 겁니다.”
“호오.”
이건 좀 신선한데. 이안이 낮은 탄성을 흘리는 사이, 흉터가 말을 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만. 돌아다니며 계속 묻고 다니시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저희처럼 친절한 놈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틀린 말은 아닐 터였다. 음침한 뒷골목에서는 특히.
“훌륭한 조언이군.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비로소 몸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등 뒤로 건달들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잘 쓰겠습니다, 나리!”
이안은 낮게 콧방귀를 뀌면서도, 슬쩍 루시아를 돌아보았다.
“시작이 좋은데. 주먹도 안 쓰고 정보를 얻다니.”
“그러게요.”
루시아가 나지막이 대꾸했다. 조금 실망한 듯한 말투인 건 착각이 아닐 터였다. 건달들과 주먹질하는 걸 즐기는 녀석이 아니던가.
“어디 계속 그럴지 보자고.”
모른 척 내뱉으며, 이안이 주점의 문을 열었다.
낮과는 전혀 다른 활기찬 거리의 풍경이 펼쳐졌다. 곳곳에 횃불이 타오르고, 수많은 인파가 거리를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물론 현지인들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을 구별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다들 눈이 반짝반짝하군.”
거리를 오가며 뭔가 호객 행위에 한창이거나, 으슥한 곳에 모여 작당 모의하듯 쑥덕대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눈빛 역시 번쩍대긴 마찬가지였다.
대로와 달리, 좌우로 작게 갈라지는 골목들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일대가 대낮처럼 밝아 상대적으로 더 어둡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이 도시의 참모습은 저 그림자 속에 있을 터였다.
“어쨌든, 아직 밀항선이 한 대도 출항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안과 나란히 걸음을 옮기던 루시아가 이윽고 내뱉었다.
“그게 아니면 사람이 이렇게 많을 리 없잖아요. 어쩌면 여기도 출항이 금지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잘 됐지, 뭐. 덕분에 그 선장을 못 만날 걱정은 없게 됐으니까.”
대답하며 루시아를 돌아본 이안이,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만나서 들어 보자고.”
루시아의 시선이 이안이 가리킨 방향으로 돌아갔다. 상반신을 거의 드러낸 반투르인 소년이, 작은 항아리를 양손에 들고 인파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품에서 은화를 하나 꺼낸 이안이 소년 쪽으로 다가갔다.
“한 푼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리.”
거지 소년이 항아리를 들며 말했다. 완전히 몸에 밴 익숙한 동작이었다. 항아리 위로 천천히 손을 내밀며, 이안이 말했다.
“샌퍼드 플럼이라는 자를 찾고 있는데. 안내해 줄 수 있겠니?”
손가락 사이에서 빛나는 은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소년이 대답했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나리.”
“아, 그래? 어쩔 수 없지.”
어깨를 으쓱인 이안이 뻗었던 손을 거뒀다. 소년의 말이 이어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하지만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단서를 조금만 더 주시겠어요?”
“도박장 어딘가에 있다던데.”
이안이 말하자, 소년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제게 맡겨 주세요. 찾아 드리겠습니다!”
“모른다더니. 어떻게?”
“이 도시에 거지가 저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게다가 저는 길을 아주 잘 압니다. 적선은, 찾아낸 뒤에 받겠습니다!”
거래할 줄 아는 녀석이군.
낮게 웃음 지은 이안이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안내해 봐.”
“예, 따라서 오세요…!”
동전이 담긴 항아리를 옆구리에 끌어안은 소년이 홱 몸을 돌렸다.
루시아와 눈을 마주친 이안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뒤를 따랐다.
인파 사이를 성큼성큼 뚫고 나아간 소년은, 곧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작은 등잔불이 일렁이고 있긴 했지만, 삽시에 주위가 어둡고 음습해졌다.
“여기서부턴 조심하셔야 해요. 제 뒤에서 너무 떨어지지 마세요.”
기다리고 있던 거지 소년이 속삭였다. 진지한 눈빛에, 이안이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건 곁을 따르는 루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녀석의 눈빛은 뭔가 일어나기를 바라기라도 하듯이 은근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너도 몸이 근질근질하겠지.’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걸음을 옮겼다. 주정뱅이와 건달. 부랑자와 헐벗은 여인들 사이를 지나자, 이윽고 거지 소년이 빠르게 앞서갔다.
“…….”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에 주저앉은 거지에게 다가간 녀석이, 허리를 숙인 채 뭔가 속삭여댔다.
이안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서는 가운데, 루시아가 슬쩍 가면 쓴 얼굴을 기울였다.
“뭐라고 하는 거예요?”
“샌퍼드의 행방을 묻고 있어.”
이안이 나지막이 대꾸했다. 이쪽을 힐끔대는 골목의 현지인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였다.
“알려주면 나한테 받을 돈을 나눠 주겠다는군.”
“아하… 알고 있다고 하나요?”
이어진 물음에, 이안이 대답 대신 턱을 까딱였다. 어느새 소년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이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 골목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항아리를 품에 안은 거지 소년이 왔던 길을 되돌아 걸음을 재촉했다. 들어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이안은 별말 없이 뒤를 따랐다. 저 녀석이 정말 샌퍼드를 찾아주려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던가. 저 녀석의 깔끔한 방식도 꽤 마음에 들었다.
대로를 지난 그들은 곧 또 다른 골목으로 들어섰다.
“히… 히히….”
“헤헷… 쿨럭. 크헷….”
술이 아닌 다른 것에 취한 게 분명한 자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곳이었다. 헐벗은 여인들의 안색도 핼쑥했다.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자들의 눈빛 역시 묘하게 섬뜩했다.
‘밀항한 놈들은 대부분 여길 떠나지 못하고 저렇게 되는 건가.’
게다가 골목의 어둠 곳곳에서도 날카로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이 구역을 관리하는 놈들이리라.
물론 이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이 골목의 범죄자들이 전부 덤빈다 해도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저번보다 더 깊은 골목까지 들어간 소년이, 벽에 비스듬하게 기대 졸고 있는 거지에게 다가갔다.
쑥덕댄 것도 잠시. 소년이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저 안에 있다고 합니다, 나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