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54
#554화
이미 엿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이안은 모른 척 되물었다.
“저 안이 어딘데.”
“아. 길을 전혀 모르시는군요. 가깝습니다. 따라오세요.”
항아리를 옆구리에 단단하게 끌어안은 소년이 휙 몸을 돌렸다.
지금까지 그랬듯 행인들 곁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채였다.
목적지는 정말 가까웠다. 채 서른 걸음도 나아가지 않아 건물과 건물 사이의 길로 들어선 소년이 멈춰 섰다.
“저 건물입니다. 나리.”
소년이 길 안쪽, 건너편 건물의 출입문을 가리켰다.
시끄럽게 떠들어대거나 토사물과 나뒹구는 취객들이 보였다. 이 와중에도 남자 몇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1층은 주점이고, 도박장은 그 위에 있습니다. 계단으로 가시면 문지기가 앞을 막을 테니, 놀라지 마시고 가진 돈을 보여 주세요. 동전을 몇 개 쥐여주시면 과정이 더 편해지실 겁니다.”
재빨리 말을 이은 소년이, 벽을 등지고 서며 덧붙였다.
“외눈에 갈색 머리를 기르고, 수염이 수북한 제국인을 찾으세요. 그자가 샌퍼드라는군요. 아, 반투르인 호위도 함께 있답니다.”
들은 말을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는 모습에 고개를 주억거린 이안이, 소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녀석이 벽을 등진 건 자신과 루시아로 주위의 시선을 가리려는 것 같아서였다. 곧이어 그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가락 사이의 은화를 뚫어질 듯 쳐다보던 소년의 눈이 이내 커졌다.
“…하나가 늘었는데요, 나리?”
이안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은화가 두 개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이며 목소리를 낮춰 대꾸했다.
“네 덕에 여러모로 시간을 많이 아꼈으니까. 방금 그 거지와 돈을 나누기로 했잖아.”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깜빡인 소년이, 이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나리…! 정말 자비로우시군요.”
“들키지 않게나 조심해라. 몇몇 놈들이 널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던데.”
이안이 항아리 안으로 손을 넣으며 덧붙였다. 소리가 크게 나지 않게 은화를 떨어뜨리는 채였다.
소년은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염려 마세요. 여긴 보기만큼 위험하지 않거든요. 진짜 위험한 건, 더 깊은 안쪽이죠. 두 분도, 소매치기만 조심하시면 될 거예요. 아. 약쟁이들도요.”
“아까랑은 말이 좀 다른데.”
“두 분의 주머니를 지켜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보단, 네가 받아야 할 돈을 지키고 싶었던 거겠지.
이안이 풀썩 웃음 지었다.
하긴. 정말 위험천만하다면 도박장이나 술집, 매음굴 따위를 운영하는 데에 지장이 있을 터였다.
곳곳에 도사린 놈들도 불미스러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배치된, 일종의 자경단인 것이리라.
소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친절하고 자비로우신 분들은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렇게 아첨한다고 더 주진 않을 거다.”
“진심입니다. 보통 노예 부리듯 하시거든요. 가끔은, 약속을 어기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럼 다음부턴 돈부터 받고 정보를 알려주도록 해.”
이안의 조언에, 소년의 미소가 의미심장해졌다.
“괜찮습니다. 그런 분들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괴한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게 되거든요. 가진 돈도 전부 털리고요.”
…또 이런 함정이 있었군.
이안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 괴한들이 누구일지는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루시아의 가면 너머에서도 바람 소리가 번지고 있었다. 그녀 역시 헛웃음을 흘리고 있는 것이리라.
소년이 재빨리 덧붙였다.
“물론 두 분은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신의가 있으니, 오히려 두 분을 지켜드릴 겁니다.”
이안의 시선을 받은 소년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더 시키실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저를 찾아주세요. 나리께서 머무시는 숙소 근처를, 늘 배회하고 있겠습니다.”
그가 어디에 머무는지 정도는 손쉽게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손을 뻗은 이안이 소년의 곱슬머리를 가볍게 헝클였다.
“그래. 수고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보자.”
“루 솔라와 루 로지스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빌겠습니다. 나리.”
소년이 항아리를 겨드랑이 아래에 단단히 끌어안았다. 루시아가 옆으로 비켜서자, 한 번 더 예의 바르게 인사한 녀석이 그대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소년의 뒤통수를 바라본 루시아가, 한 박자 늦게 뒤따르듯 걸음을 옮기며 읊조렸다.
“행운을 빌어주다니. 우리가 그자와 도박이라도 하려는 건 줄 아나 봐요.”
“밀항선을 타는 것도 행운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
선선히 내뱉으며, 이안도 루시아를 따라 좁은 골목 바깥으로 되돌아갔다. 소년은 이미 날래게 인파 사이로 멀어지고 있었다.
저 녀석이 끝까지 이쪽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뇌리를 스쳤다. 아마 이안이 저 녀석의 이름을 묻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일 터였다.
“이 도시가 번성한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여긴 군도의 문화와 제국의 문화가 균형을 이루고 공존하는 공간인 거예요.”
소년의 뒤통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루시아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다른 지역보단 훨씬 느슨하면서도, 제국법의 영향력이 아예 없지는 않은 거죠. 평범한 제국인들도 일탈을 즐기기에 충분할 만큼.”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이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읊조렸다.
언젠가 엘리야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뒤를 이었다. 적어도 테사이아와 붙여 놓는 것보다는 건설적인 대화가 오갈 터였다.
그사이 건물 옆에 기댄 거지에게로 다가간 소년이, 그의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잠깐의 대화 후에, 기대선 거지가 자세를 바로 했다.
소년을 끌어안고 머리를 헝클인 거지가, 싱글대며 다시 벽에 등을 기댔다. 씩 웃은 소년이 날듯이 가벼운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루시아의 가면 너머에서 또 한 번 바람 빠지는 소리가 번졌다.
“정말 걱정할 필요도 없었네요.”
“그러게.”
고작 은화 하나로 저런다니.
하긴. 그에게나 푼돈이지, 저들에게는 충분히 기분 좋을 돈일 터였다. 크게 딴 도박꾼이나 돈 많은 제국인이라도 스쳐 간다면 모를까. 이 골목을 오가는 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럼 슬슬, 들어가지 그래? 시간 낭비 그만하자고.
이안의 뇌리로 나지막한 속삭임이 번진 건 그때였다. 홱 고개를 돌리는 걸 보니 루시아도 들은 게 분명했다. 선선히 몸을 돌리며, 이안이 읊조렸다.
“그럴 거니까.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요그가 키득대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쪼개긴.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슬쩍 꿈틀댔다.
어쨌든 이 녀석은 일종의 위험 경보기가 아닌가.
보아하니 오늘 밤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어쨌건 보험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끼이-
주정뱅이들 사이를 지나친 이안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제법 밝고 넓은 장내가 드러났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주점 특유의 구린내가 코를 찔렀다.
“혹시 모르니까, 가면 절대 벗지 마.”
뒤따르는 루시아에게 덧붙이며, 이안이 걸음을 옮겼다.
주점은 이미 만석이어서, 구석진 곳의 맨바닥에 걸터앉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남부라는 것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헐벗은 여자와 남자들이, 주위를 오가며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
물론 이안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각 귀퉁이에 선 제국식 정복 차림의 덩치들을 돌아보며 오른쪽 저 건너편 벽면을 따라 이어진 계단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북부보다 훨씬 노골적이네요.”
뒤에 바짝 따라붙은 루시아가 속삭였다. 녀석이 당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하는 건지 마뜩잖아 여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이안이 멈춰 섰다.
“이 위는 주점이 아닙니다.”
속이 얼핏 비치는 얇은 정복을 걸친 덩치가, 슬며시 계단 앞을 막아서며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알고 왔소.”
선선히 대답하며, 이안이 품에서 금화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상인들에게 보답으로 받은 물건이었다. 여전히 꽤 묵직한 주머니의 입구를 살짝 벌리자, 안에 담긴 금화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흠….”
덩치가 낮게 침음하며 이안을 아래위로 살폈다.
갑옷을 수리할 돈으로 도박이나 하러 오는 인간 말종으로 보일지, 수틀리면 난동을 피울 위험 분자로 보일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 같긴 했지만.
“수고가 많으시군. 얌전하게 놀다 가겠소.”
이안은 나지막이 덧붙이며, 슬쩍 건달의 손에 은화를 쥐여 줬다.
티 내지 않고 주먹을 쥔 덩치가, 이안의 뒤편에 선 루시아를 일별하며 덧붙였다.
“무장은 해제하셔야 합니다.”
“보다시피, 갑옷만 걸치고 있소.”
“…….”
이안이 대답하는 사이, 루시아가 망토 사이에서 꺼낸 단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검집에 담겨 있었고, 자루를 건달 쪽으로 향하게 한 채였다. 선선히 받아 든 건달이 벽 쪽으로 물러났다.
“안에서는 그 어떤 주문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위반하실 경우, 가진 모든 돈을 몰수당하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루시아를 마법사로 오해한 게 분명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얼굴을 가리는 나무 가면에, 짙은 녹색의 망토까지 걸치고 있지 않은가. 이안은 반박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마시오. 그런 일은 없을 테니.”
“맡기신 물건은 나오실 때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덧붙인 건달이 벽을 등지고 섰다. 루시아의 단검은 옆의 상자 안에 욱여넣는 채였다.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이안이 계단으로 들어섰다.
적당히 어둡고 웅성대는 소음이 번지는 2층의 장내가 드러났다.
“…활기가 넘치네요.”
뒤따라 올라오며 루시아가 속삭였다. 그러게. 속으로 읊조리며, 이안은 훨씬 더 넓은 장내를 눈에 담았다. 아마도 주방과 창고였던 공간이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만큼 사람도 더 많았다.
-혼돈의 냄새가 나는걸. 별 볼 일 없지만 말이야.
요그의 속삭임이 뇌리를 스치는 사이, 이안은 주위를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테이블을 앞에 두고 모여 앉아 카드를 치는 자들.
“홀…! 이번엔 홀이야!”
“10보다 낮아. 소리가 달라.”
진행자가 흔드는 주사위 통을 바라보며 돈을 거는 자들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도박이 사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게임이랑 크게 다르지 않네.’
도박장은 게임에서도 가끔 등장하던 일종의 미니 게임장이었다.
이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럽긴 하지만, 심지어 제도에도 하나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거의 즐기지 않았다. 진행을 이어가기에 바빴을 뿐만 아니라, 두 주사위의 합이 홀인지 짝인지를 알아맞히는 도박에서 가진 돈의 절반을 순식간에 잃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그는 시스템이 그의 선택에 맞춰 결과를 조작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현실이 된 지금도 뭐. 크게 다르진 않겠지.’
이안이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장내를 돌아보는 사이.
“…언니와 함께 오지 않길 잘했네요. 분명 같이 놀려고 하셨을 거예요.”
루시아가 또 한 번 속삭였다. 이안의 입가에 실소가 스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쨌건 벽을 등지고 선 조직원들의 숫자가 1층보다 훨씬 많았다. 다들 손님들의 부정을 찾아내려 애쓰는 중이었다.
“이런 샹! 놔! 놔 봐! 난 정말 억울하다고…! 정말이라니까? 이, 이봐…! 잠깐… 잠깐만…!”
마침 손님 한 명이 두 덩치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아마도 뭔가 장난을 치다 걸린 게 분명한 그는, 이안 쪽이 아니라 반대편 벽면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위에선 그다지 보기에 좋지 않은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른 이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건, 당해도 싸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리라.
“…찾은 것 같은데.”
신경도 쓰지 않고 시선을 옮기던 이안의 눈동자가 이윽고 멈췄다.
저 옆쪽의 테이블에, 아까 거지 소년이 말한 인상착의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자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꽤 좋은 체구. 흰머리 섞인 갈색 머리를 늘어뜨리고, 수염을 지저분하게 기른 자였다.
가죽 안대가 오른쪽 눈을 비스듬하게 가로질렀다. 멀쩡한 눈은, 테이블에 엎어 둔 채 끝부분만 살짝 든 카드의 숫자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시발….”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는, 입술의 움직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대각선 뒤, 작은 보관함을 손에 든 근육질의 반투르인까지 일별하며, 이안은 위협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느긋한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패가 영 안 붙는군.”
카드를 테이블 중앙에 던져 놓은 샌퍼드가 혀를 찼다. 그의 앞에는 은화와 동화가 제법 쌓여 있었다.
술잔을 들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는 그의 옆얼굴을 내려다보며, 이안이 입을 열었다.
“술을 마시는 건 돈을 따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아주 훌륭한 지적이군. 그런데…”
술잔을 내려놓으며 내뱉은 샌퍼드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아는 사이던가?”
동시에 그의 뒤에 선 호위가 슬쩍 이안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험악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에는 그다지 투지나 적의 따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귀찮아하는 티가 역력했다. 애초에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리라.
‘선원… 아니, 뭐. 부선장 정도 되려나.’
생각하며 빙긋 미소 지은 이안이, 샌퍼드의 외눈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부터 알아가게 될 사이지. 지한다르 공작 각하께 진 빚을, 대신 받으러 왔소.”
“아…! 각하께서 보내셨군. 암. 내가 공작 각하와 각별한 관계이긴 하지.”
샌퍼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다른 도박꾼들이 들으라는 듯 덧붙이기까지 하는 채였다.
안도가 분명한 한숨을 내쉰 호위가 뒤로 냉큼 물러서는 가운데, 다시 시작하자는 듯 테이블에 손가락을 두드린 샌퍼드가 말했다.
“각하께서 보내셨다는 증거물은, 가지고 오셨소?”
“물론이오.”
선선히 대답한 이안이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하지만 여기서 보여 줄 물건은 아닌 것 같군.”
“그렇다면 더더욱 여기 있어야 할 것이오. 돈을 따야, 각하께 진 빚을 갚을 수 있을 테니까. 지금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거든.”
샌퍼드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꾸했다. 개소리를 꽤 그럴듯하게 하는 재주가 있는 자였다.
물론, 이안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사실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걱정 마시오. 돈으로 받으러 오려는 게 아니니까.”
“그럼…?”
“배를 모신다던데.”
앞으로 미끄러져 흘러드는 카드들을 능숙하게 손바닥으로 눌러 받으며, 샌퍼드가 미소 지었다.
“그게 내 본업이지. …본토로 건너갈 생각이시오?”
“바로 그렇소.”
“잘 됐군.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지만, 몇 자리라도 기꺼이 비워 드리겠소. 그러니 거처로 돌아가시오. 위치를 알려 주시면, 내가 내일 방문하도록 하지.”
카드를 슬쩍 확인하며 말을 이은 샌퍼드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염려 마시오. 어차피 당장은 출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말이오.”
이안은 그게 무슨 상황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건 어차피 나중에라도 들을 수 있는 문제였다.
그보다 먼저 알려줘야 할 사실은 따로 있었다.
“나머지 예약을 다 취소하셔야 할 거요. 배는 나와 내 일행들만 타고 갈 거니까. 그게, 빚을 탕감하는 조건이오.”
샌퍼드가 쩝, 입맛을 다셨다.
“드디어 쓸 만한 패가 들어왔는데….”
탄식하듯 읊조린 그가, 은화 몇 개와 함께 카드들을 테이블 중앙으로 던졌다. 뒤에 선 호위에게 턱짓한 샌퍼드가 일어섰다.
“아무래도 가서 그 증거물을 확인하고, 협의도 좀 나눠야 할 것 같군.”
“잘 생각하셨군.”
이안이 빙긋 미소 지었다. 빈말이 아니었다. 샌퍼드가 한 번 더 카드를 돌리면, 그때는 얼굴과 식탁 중에 어느 쪽이 더 단단한지 확인시켜 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촤르르륵-
다가온 호위가 뚜껑을 연 상자 안에 은화와 동화들을 쓸어 넣었다. 상자에 이미 들어있던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술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털어 넣은 샌퍼드가 이안을 돌아보았다.
“잠깐 기다려 주시겠소? 여기 금고가 있어서 말이오. 돈을 맡겨 두고 나가야겠소.”
도박장에 손님용 금고도 있는 건가. 이안은 낮게 코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여기선 도박장이 돈을 보관하기에 가장 안전한 장소일지도 몰랐다. 우습게도 신뢰는 도박장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 중 하나가 아니던가.
손님이 돈만 찾고 돌아갈 확률도 낮을 테고, 죽기라도 하면 그대로 꿀꺽해 버릴 수 있을 테니 도박장 입장에서도 손해 볼 장사는 아닐 터였다.
“서로의 소개는, 조용한 곳에서 마저 나누도록 합시다.”
턱을 까딱이며 덧붙인 샌퍼드가 테이블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아래층이 아니라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 위에 진실의 방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뒤따라간 호위가 계단 바로 옆에 선 조직원에게 보관함을 건네는 가운데, 샌퍼드가 태연한 얼굴로 뭔가 말을 이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싶더니.”
이안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읊조린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뒤에 조용히 서 있던 루시아가 슬쩍 상반신을 기울였다.
“왜요?”
“저 새끼, 지금 우리를 팔아넘기고 있어.”
“…뭐라고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