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55
#555화
가면 너머로 드러난 눈을 부릅뜬 루시아가 홱 고개를 돌렸다. 이안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빚쟁이가 찾아왔는데, 이대로 나가면 도박장에 진 빚을 갚을 방법이 사라지니 도와달라는군.”
쉬지 않고 입을 놀리던 샌퍼드가, 때마침 이안을 돌아보았다. 이안이 자신의 말을 들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채였다.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게 시간만 벌어 달라는데. 그럼 저 상자에 든 돈을 다 나눠 주겠다고.”
마주 미소 지으며, 이안이 방금 놈이 한 말을 고스란히 내뱉었다.
뇌리로 요그의 키득대는 웃음소리가 이어진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재미있네. 널 한 방 먹인 것도.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네게서 도망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도.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조금 더 비틀렸다. 어쨌건 상황 자체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저놈이 못 믿을 범죄자 새끼라는 건 둘째 치고, 퀘스트도 받지 않았던가. 완료하는 과정에 뭔가 굴곡이 있는 건 당연했다.
다만 먼 길을 온 데다 저놈을 찾는 과정에 도사린 함정들을 피했으니, 무사히 끝나게 되리라 여겼을 뿐이었다.
‘어쩐지 완료 창이 안 뜨더라니.’
저 외눈깔 새끼의 계획은 뻔했다.
아마 뒷골목 어딘가에 놈이 이끄는 선원들의 근거지가 있을 터였다. 여기서 빠져나가 처박혀 있다가, 다른 밀항선들에 섞여 손님들을 태우고 출항할 생각이리라.
그냥 오늘 밤 당장 튄다고 해도, 물론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가 퀘스트가 실패로 끝나는 지점이리라.
그전에 바로 잡을 기회가 있겠지만, 사실 거기까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샌퍼드는 여기서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
“아무래도, 거래를 받아들인 것 같네요.”
루시아가 덧붙인 건 그때였다.
뒤편. 가까운 벽면에 서 있던 조직원 셋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손님들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는 듯 아주 느긋한 걸음걸이였다.
루시아가 묘하게 빛나는 눈으로 이안을 돌아보았다.
“어쩔까요?”
“일단 대화로 해결해 보자고.”
“안 통하면요?”
이쪽으로 다가오는 정복 차림의 조직원들을 슬쩍 돌아보며, 이안이 읊조렸다.
“…네가 바라는 상황이 시작되겠지.”
가면의 눈구멍 너머, 루시아의 눈매가 슬며시 휘어졌다. 이안이 반짝이는 녀석의 눈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웬만하면 죽이진 말자. 그쪽이 뒷수습이 편할 테니까.”
“네. 물론, 그건 저보단 이안 님이 더 조심하셔야 할 것 같지만요.”
“…그렇다고 봐주다가 네가 다치진 말고.”
“염려 마세요.”
한쪽 눈을 찡긋댄 루시아가, 슬쩍 이안의 뒤편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다른 이들에게는 시종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이안의 등을 보호하며 주먹을 휘두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검문하겠습니다. 두 분 모두 손을 어깨 위로 들어 주십시오.”
이쪽으로 다가오던 조직원 중 하나가 내뱉은 건 그때였다. 둘은 이안을, 하나는 루시아를 제압하려는 것이리라. 그들 쪽으로 몸을 돌리며, 이안이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군. 나는 지한다르 공작 각하의 명을 받아 이곳에 왔소.”
“그건 저희와는 상관없는 부분입니다. 뒤로 돌아 양팔을 어깨 위로 드십시오. 불응하신다면 강제로 모시겠습니다.”
조직원이 기계적인 말투로 내뱉었다. 다가오는 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다. 뒤따르는 두 놈은 서로를 돌아보며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뭔가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안의 눈매가 설핏 꿈틀댄 건 놈들 때문이 아니었다.
-평화로운 방법은, 안 통한 것 같은데.
요그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뇌리를 스쳐서였다.
…그러게. 내심 읊조리며 이안이 입맛을 다시는 사이.
“그럼, 모시겠습니다.”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조직원이 이안의 어깨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그의 팔을 꺾어 제압하려는 것이리라. 물론, 이안은 그 손에 붙잡히지 않았다.
쉬학-
대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뻗어 나간 이안의 오른 주먹이, 조직원의 아래턱을 스치고 지나갔다.
빠각-!
아주 가벼운 움직임이었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직원의 고개가 옆으로 홱 꺾이더니, 그대로 옆으로 튕겨 나간 것이다.
콰장창창창-!
옆의 테이블에 처박힌 놈이, 함께 뒤엉킨 채 벽면까지 밀려났다.
뒤따르던 두 놈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는 가운데, 주먹을 멈춘 이안의 미간도 슬며시 일그러졌다.
‘정말 살살 쳤는데…?’
기절만 시킬 요량으로 힘을 빼고 휘두른 주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요란하게 날아가 버릴 줄이야.
이안이 부서진 테이블과 함께 널브러진 조직원을 돌아보는 사이.
“아니, 시발! 내 돈…!”
“다들 비켜! 내 돈 건드리지 마!”
졸지에 테이블을 잃은 도박꾼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들은 쓰러진 채 꿈틀대는 조직원이나 이안 쪽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로지 바닥에 흩뿌려진 돈만 보고 있었다.
“이 개자식이-?!”
“붙잡아!”
놀람을 추스른 두 놈이 버럭 소리치며 달려든 건 바로 그때였다.
물론 이안의 앞으로 다다른 건 한 놈뿐이었다.
쒸악- 빠악!
망토를 펄럭이며 뿜어져 나간 루시아의 주먹이 다른 한 놈의 안면에 틀어박혔기 때문이다.
발이 붕 떠오른 조직원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뭉개진 콧잔등과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빠각-
동시에 앞으로 달려들던 놈의 턱으로도, 주먹 쥔 이안의 손등이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가 홱 돌아간 놈이 굴절되듯 옆으로 튕겨 나갔다.
콰장창창- 콰르르르-
뒤로 날아간 놈은 물론이고, 옆으로 튕겨 나간 놈도 도박꾼들과 테이블을 덮치며 나뒹굴었다.
“아악, 미친-!”
비명과 함께 테이블에 놓여 있던 카드와 금화, 은화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왜 여기에서들 지랄이야-!”
“돈 챙겨! 돈!”
“다들 일어나지 마! 돈 줍는 새끼들은 손목 날아갈 줄 알아!”
삽시에 사방이 시끄러워졌다. 도박꾼들은 벌떡 일어나 테이블에 놓인 자신들의 돈을 챙기거나, 허리를 숙이고 땅에 떨어진 돈들을 줍기 시작했다.
벽면에 기대 서 있던 조직원들이 허둥지둥 달려온 건 거의 동시였다. 물론 앞을 가로막는 도박꾼들을 지나치느라 허우적대야 했다.
‘…힘을 더 빼야겠네.’
그사이, 땅에 처박혀 널브러진 놈의 상태를 확인한 이안이 헛웃음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평범한 인간과 싸워 본 게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가 아닌가. 체감상 1년 이상, 그는 온갖 종류의 괴물과 마족, 대마족 같은 것들만 상대해 온 것이다.
그나마 인간 비슷한 건, 수인 전사들 정도였다. 물론 사실 그들도 평범한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체 능력의 소유자들이었지만, 이안은 그때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제압하지 않았던가.
“…….”
기쁘지만 기쁘지 않은 미묘한 감정 속에서, 이안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단 아래에 선 샌퍼드가 눈에 들어왔다.
“……!”
놈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경악한 듯 입을 벌린 채 상황을 지켜보던 샌퍼드는, 이안과 눈이 마주친 순간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화들짝 몸을 떨며 눈을 깜빡였다.
“저 새끼 잡아-!”
놈의 옆에 선 조직원이 버럭 소리치며 달려 나온 건 그때였다. 어느새 허리춤에 묶여 있던 몽둥이를 치켜든 채였다.
이안은 그대로 놈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몸을 홱 틀며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대가리를 깨주마! 새꺄!”
인파를 뚫고 달려온 조직원이, 치켜든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안의 눈에는 하품이 나올 것처럼 단순하고 느린 공격이었다.
후우웅-
놈이 내리친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며 지나치는 가운데, 이안이 그 틈으로 손바닥을 내뻗었다.
쩌억-!
활짝 펼친 손바닥이 놈의 턱을 치고 지나갔다.
사실상 손가락 두 개만 턱에 닿는 수준. 하지만 이번에도 조직원의 턱이 돌아가고 눈을 까뒤집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철푸덕-
몽둥이를 내리치던 그대로 허물어지던 놈의 몸이, 곧이어 홱 떠밀리듯 벽면으로 밀려났다.
‘…이 정도면 밟혀 죽진 않겠지.’
의념의 손아귀를 거둬들이며 생각한 이안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쓰러진 놈도 턱이 빠진 게 분명했지만. 어쨌건 죽는 것보단 나을 터였다.
빠각-! 빠악!
물론, 루시아에게 두들겨 맞는 것보다도 나을 터였다. 녀석은 지금 망토를 휘날리며 신나게 주먹과 발을 휘둘러대고 있었으니까.
“악, 아악-!”
“붙잡아! 저 다람쥐만 한 년을 붙잡으라고!”
“잡혀야 붙잡- 어윽-!”
조직원들은 대여섯이 동시에 달려들면서도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요정의 망토는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놈들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졌고, 루시아는 아주 날쌨다.
빠각-! 빠악!
건달들이 주먹질 한 번에 정신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루시아를 더 즐겁게 만드는 것 같았다.
-진정해, 루시. 그러다 몸에 그 기분 나쁜 불이라도 붙겠다고. 친구에게 혼이 날걸?
계속해서 낄낄대던 요그가, 이윽고 넌지시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듯한 말투였다.
한 놈의 정강이를 걷어차서 넘어뜨린 루시아가 홱 고개를 돌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도 안 죽였어요!”
거참 기특하네. 또 한 놈의 턱을 돌려 버리면서, 이안이 짧은 헛웃음을 흘렸다. 어쨌거나 루시아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뒤쪽 한 면을 혼자서 막아내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이안이 바쁘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저 새낀 대체 뭔…?!”
“루 솔라여, 시벌…! 괴물인가?!”
“뭘 쫄고 있어! 달려들어!”
위층의 계단에서 조직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란을 듣고 튀어나온 것이리라. 떠밀리듯 달려오는 와중에도, 놈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쩌억-!
이안은 그들이 내려온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마주치는 놈들의 턱을 죄다 돌려 버리고 있었으니까. 전부 한 방에 정신을 잃고 허물어졌고, 그대로 옆의 벽면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그게 혼란 속에서 밟혀 죽지 않게 하려는 나름의 배려라는 사실까지는, 결코 알 수 없을 터였다.
“내 돈에서 손 떼! 이 새꺄-!”
“이게 왜 네 돈이야? 이름 써 놨어? 앙?!”
물론 그런 이안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변하는 건 없었다.
장내의 혼란은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 너 이 새끼, 아까 카드 한장 소매에 숨겼지? 이리 와 새꺄!”
어느새 도박꾼들 사이에서도 주먹다짐이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란을 틈타 남의 돈에 손을 대거나, 사적인 원한을 갚으려는 자들이 생겨난 덕분이었다.
“내 돈 내놔! 이 사기꾼 자식아!”
“악- 아악! 칼!? 이 새끼, 칼을 왜 가지고 있어?”
분명 무기 소지는 금지라고 했건만. 비수 같은 짧은 날붙이를 들고 휘둘러 대는 자도 있었다.
의자가 허공을 날아가고 욕설과 고함, 비명이 난무했다.
-즐거워…! 이 혼란… 이 광기…! 이거야! 이 맛이야! 역시 인간들은 재미있다니까…!
물론 요그의 웃음과 헛소리도 이안의 뇌리를 쉬지 않고 간지럽혔다. 이 새끼, 그냥 아공간에 처박아 둘 걸 그랬나. 내심 혀를 차면서도, 이안은 기계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짜악-! 철퍼덕-
이제는 도박꾼과 조직원의 구별 없이 공평하게 턱을 돌려주고 있었다. 옆쪽의 벽면에는 턱이 빠지거나 돌아간 채로 기절한 자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이안의 눈매가 슬며시 휘어진 건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 새끼 봐라.’
샌퍼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안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을 틈타 어딘가로 숨어든 것이리라.
물론 아직 장내를 빠져나가지는 못했겠지만. 이 난장판의 와중에 놈을 찾는 건 어려워 보였다.
…어쩔 수 없나.
이안이 짧게 혀를 찰 찰나.
-나도 거들어도 될까, 친구?
요그의 속삭임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몇 놈만 살짝 깨물면, 상황이 더 재미있게 돌아갈 것…
“루시에게 엎드리라고나 해. 당장.”
이안이 말을 잘랐다. 멈칫한 요그가 곧바로 그의 말을 전하는 사이, 이안의 눈동자에 무색의 파장이 번졌다.
솨아아-
의념의 손아귀가 옆으로 쭉 뻗어 나갔다. 동시에 앞으로 왼손을 내뻗은 이안이, 옆으로 힘껏 떨치듯 휘둘렀다. 의념의 손아귀가 같은 방향으로 부채꼴을 그리며 뻗어 나갔다.
“으헉-!?”
“으아악?”
달려들던 조직원들이 마차에라도 치인 것처럼 튕겨 나갔다.
놈들만 그런 건 아니었다.
콰장창창창창-!
도박꾼. 테이블. 의자. 그리고 조직원들까지. 의념의 손아귀의 궤적에 휩쓸린 모든 것들이 한데 뒤엉켜 튕겨 나갔다. 그들이 만들어 낸 물결은, 도미노처럼 장내 전체를 뒤덮었다.
“으… 으윽….”
“케헥…! 컥…!”
“이게 뭔… 우웩…!”
어지럽던 장내가 단숨에 조용해지고, 신음만이 이어졌다.
멀쩡하게 선 건 그 한복판, 왼팔을 옆으로 내뻗은 이안뿐이었다.
솨아아아-
성 다미엘의 반지에서 번진 신성이 흐릿하게 잦아들었다. 물론, 이건 그저 보여주기 위한 요식적인 행동이었다. 초능력이나 마법보다는, 신성을 다룬 것처럼 보이는 게 수습하기 편할 테니까.
의념의 손아귀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도 기척도 없이 흩어질 찰나.
“우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루시아가, 낮은 탄성을 흘리며 일어섰다.
단숨에 모든 혼란을 정리한 모습에 감탄한 것이리라.
심지어 서로 뒤엉켜 떠밀리면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뿐. 목숨을 잃은 자도 없는 것 같았다.
“루 솔라여….”
“신의 사도가… 이런 곳에는 왜… 시벌….”
뒤늦게 계단을 내려온 조직원들은, 벽면에 찰싹 달라붙은 채 탄식하고 있었다. 몇몇은 가슴 앞에 손을 모아쥐고 있기까지 했다.
어쨌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건 분명했다. 물론 이안은 그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쓰러진 사람들 사이를 차근히 훑는 중이었다.
“이, 이런 시발…!”
저만치의 벽 앞에서, 쓰러진 사람을 휙 밀쳐낸 샌퍼드가 튕겨 오른 건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움직이는 데에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 건, 벽면을 따라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던 덕분일 터였다.
타타탓-
튀어 오른 그는, 건너편에 선 이안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앞으로 내달렸다. 건너편에 1층으로 이어진 계단의 난간이 있기 때문일 터였다. 그대로 몸을 날려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리라.
쉬악- 퍼억-!
황금빛 궤적이 그의 얼굴 바로 앞을 지나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으헉?!”
기겁하며 고개를 뒤로 젖히며 멈춰 선 샌퍼드가, 궤적이 틀어박힌 벽면을 돌아보았다.
“…허.”
수염 사이로 드러난 그의 입이 설핏 벌어졌다. 금화 하나가 벽돌과 회반죽으로 이루어진 벽면에 깊숙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빗나갔군.”
이어진 나지막한 목소리에, 샌퍼드의 고개가 비로소 좌측으로 돌아갔다.
“어디, 계속 움직여 봐.”
땅에서 주워 든 동전들을 한 손으로 가볍게 던졌다가 받으며, 이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쓰러뜨렸는데도, 숨결만 살짝 거칠어진 게 전부였다.
샌퍼드와 눈이 마주친 이안이 입꼬리만 당겨 미소 지었다.
“다음번에도 빗나갈지, 나도 확인해 보고 싶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