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0
#560화
“나리…!”
주점 밖으로 나온 이안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거지 소년이었다.
녀석이 양팔을 머리 위로 흔드는 사이, 무카파와 루시아의 시선도 이안쪽으로 돌아왔다.
길가에 멈춰 서며 슬쩍 턱을 까딱인 이안이, 소년 아래의 무카파를 바라보았다.
“손님들의 말과 마차를 부탁해.”
“예.”
무카파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의 왼손에는 거지 소년의 동냥 항아리가 들려 있었다.
“잠시 후에 뵐게요!”
거지 소년이 덧붙이는 가운데, 루시아도 이안의 앞을 지나쳤다.
가면 너머로 은근한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기 때문이리라.
슬쩍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말과 마차를 정리하고, 도련님을 모시고 와.”
말에 탄 중년 기사가, 나란히 걷는 종자에게 고삐를 건네며 말하고 있었다. 종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등자를 밟고 일어선 그가 훌쩍 안장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대로 이안 쪽으로 다가오며 중년 기사, 브레넌이 미소 지었다.
“경.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미소 만큼이나 안도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말과 마차가 앞을 지나치는 가운데, 이안이 슬며시 마주 미소 지었다.
“반갑소. 피곤해 보이시는군.”
복장은 여전히 깔끔했지만, 브레넌은 처음 봤을 때보다도 여러모로 수척해져 있었다. 눈 밑은 검고, 제국 식으로 기른 수염은 제멋대로 뻗친 상태였다.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말입니다.”
이안의 앞에 멈춰 선 브레넌이, 마구간 쪽으로 멀어지는 마차를 일별하며 대답했다. 뒤이어 가죽 모자를 벗은 그가, 기름으로 떡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토로 돌아가는 배편을 구해야 하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 믿기 힘든 자들투성이라, 아주 낭패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셨겠지.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었지만, 이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되물었다.
“해서, 본토로 돌아갈 배편은 구하셨소?”
“애석하게도…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입맛을 다신 브레넌이, 모자를 겨드랑이 아래에 끼우며 말을 이었다.
“어찌어찌 밀항선의 선장이라는 작자들 몇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만. 만선이라며 돌려보내거나 말을 빙빙 돌리기만 하더군요.”
“마음고생이 심하셨겠군.”
안타까운 듯 대꾸했지만, 역시나 전혀 놀랍지 않은 결과였다.
흥정에 능한 상인들이라면 모를까. 이들은 밀항선 선장들에게는 말 그대로 호구처럼 보일 터였다.
딱 봐도 돈만 많고 물정에는 어두운 귀족들이 아닌가.
며칠만 애를 태워도 지갑에서 나올 금화의 양이 달라지리라는 것 정도는, 이미 다들 알고 있으리라.
지금 이안이 그렇듯이.
“책임을 다하지 못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해서….”
머쓱하게 콧잔등을 긁적인 브레넌이 이안의 눈을 마주 보았다.
“마님께서 제안할 게 있으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계시라도 받은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찬란한 여신께서 길을 인도해 주시는 모양입니다.”
길이 아니라 시련으로 인도하는 걸지도 모르는데.
생각하면서도, 이안이 빙긋 미소 지었다.
“정확히 어떤 제안을 하시려는 건지도, 들으셨소?”
“밀항과 관련된 제안이라고만 들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할 제안이오. 차라리 거래를 틀 다른 선장을 찾아보시는 게 나을 수도 있소.”
이안이 넌지시 덧붙였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저 이들이 미끼를 제대로 물게 만들기 위해 던진 말에 불과했다.
역시나, 브레넌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다니. 과연 고결하시군요.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슬쩍 고개를 기울인 브레넌이 목소리를 낮췄다.
“저희에게 돈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뢰가 훨씬 더 중요하지요. 몇 배의 금화가 더 필요하더라도, 원로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 저 뒷골목 무뢰배들과 거래하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뭐… 그러시다면 다행이군.”
이안이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그에게는 요정과 뒷골목 건달들 모두 똑같이 못 믿을 족속이었지만. 굳이 지금 그 사실을 꼬집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중앙 귀족인 저들은 정말 다르다 느끼고 있을 터였다.
“마님께서 공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시기를 원하시는데. 괜찮으시겠소?”
“…예.”
한 박자 늦게 대답한 브레넌이, 입맛을 다시고는 덧붙였다.
“잘 응대하실 겁니다. 아마도요.”
전혀 자신 없는 말투였다.
이안이 실소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나리-!”
이안의 뒤편에서 목소리가 번졌다.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이안이 고개를 돌렸다. 항아리를 옆구리에 낀 소년이 달려오고 있었다.
“오늘도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리…!”
이안의 뒤편에 멈춰 선 소년이 숨을 고르며 내뱉었다.
이안은 저 너머의 마구간에서 걸어 나오는 루시아와 무카파를 일별하고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너야말로 오늘도 고생했다.”
“나리의 부탁이라면 언제든지요. 소문은 들었습니다. 라흐만 씨의 업장을 뒤집어 놓으셨다면서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군.
브레넌이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눈을 끔뻑이는 가운데,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쩌다 보니.”
“뒷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미소 지으며 내뱉은 소년이, 슬쩍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쪽 업장은 내부 정리에 정신이 없더군요. 연합한 다른 조직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요. 이대로 조용히 마무리 지으려는 것 같아요.”
“그런 건 또 언제 알아봤담.”
이안이 풀썩 웃음 짓자, 소년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문제가 생기면 나리께 알려 드리려고요. 그럼 또 제가 필요해질지도 모르잖아요.”
“그래. 알아봐 줘서 고맙다.”
이안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자, 소년이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이건 제가 멋대로 알아본 거니까, 보답은 주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도 이미 나리께 또 도움을 받았는걸요.”
“나도 신경은 쓰이던 부분이었어. 그러니까 그냥 받아.”
이안이 허리춤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들며 말했다. 잠시 머뭇거린 소년이, 이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럼… 대신 축성 기도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응…?”
“성기사이시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찬란한 여신을 섬기거든요, 나리.”
“이 녀석. 신의 사도께 사사로이 축복을 청하다니.”
이안의 눈매가 슬며시 가늘어지는 사이, 브레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소년이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신의 사도를 뵌 건 처음이라, 주제도 모르고 건방을 떨었습니다. 저는 그저, 혹시 저 같은 놈이라도-”
“뭐, 안 될 건 없지.”
이안이 내뱉은 건 그때였다. 브레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돌아보는 가운데, 소년이 홱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눈을 가늘게 뜬 건, 그저 자신이 루 솔라의 사도가 아니어서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성기사 행세도 줄창 해온 판에, 축성 기도 한 번쯤 흉내 내는 건 사실 문제도 아니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루 솔라가 천벌을 내리지도 않으리라.
“대신 짧게 끝날 거야. 이목을 끌고 싶진 않으니까.”
“네…!”
이안이 덧붙이자, 소년이 냉큼 대답하며 무릎을 꿇었다.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 쥐면서 허벅지를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는 살짝 숙이는 채였다. 머리에 손을 얹어 달라는 게 분명했다.
…진짜 별짓을 다 하네.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 이안이 왼손을 소년의 머리에 얹었다.
“찬란한 빛에 영광 있으라….”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예의상 읊조린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왼손에 흐릿한 빛무리가 번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사아아아-
성 다미엘의 반지에 깃든 신성이 멋대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깨자마자 이런 역겨운 꼴을 보다니….
뇌리로 나지막한 속삭임이 번지는 가운데, 이안의 한쪽 눈썹이 슬며시 일그러졌다.
빛무리가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어서만이 아니라, 눈앞에 또다시 사도 퀘스트가 떠올라서였다.
‘진짜, 각만 나오면 이러네.’
난 마법사라니까….
내심 혀를 차며, 이안은 곧바로 퀘스트를 거절했다. 그런데도 그의 손에서 번지는 빛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반딧불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면서, 천천히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찬란한 빛에 영광 있으라….”
어느새 한쪽 무릎을 꿇은 브레넌이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맙소사, 빛이여….”
“오오… 루 솔라시여….”
“찬란한 빛에… 영광….”
어느새 길을 오가던 행인들도, 이쪽을 돌아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다들 놀란 기색이 역력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해도 떨어진 시점이 아닌가.
물론, 이안의 표정이 떨떠름해지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일어나. 끝났으니까.”
곧바로 소년의 머리에서 손을 뗀 이안이 내뱉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다 덩달아 무릎 꿇은 루시아와 무카파가 일어섰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무릎 꿇은 그대로였다. 감은 눈을 뜨지도 않은 채였다.
“……?”
이안의 눈매가 슬며시 좁아지는 사이.
“신의 손길을 느낀 게 처음이라 그럴 거예요.”
소년의 뒤로 다가서며, 루시아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작은 등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고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에 휩싸이게 되거든요.”
“정말… 그렇네요.”
소년의 떨리는 목소리가 번졌다.
감고 있던 눈을 뜬 녀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덧붙였다.
“이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 봅니다. 나리.”
“…….”
이안이 눈을 끔뻑인 건, 그를 올려다보는 소년의 눈동자에 흐릿한 빛이 반짝이고 있어서였다. 뒤따라 일어서던 브레넌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내는 것도 그래서이리라.
전혀 깨닫지 못한 듯 미소 지은 소년이 꾸벅 몸을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리. 덕분에 저같이 천한 것이, 찬란한 여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 주세요.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섬기는 마음으로 돕겠습니다.”
덧붙인 소년이, 루시아와 무카파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또 뵐게요.”
“어, 그래… 조심히 가. 샤힌.”
루시아가 얼떨떨하게 인사하고 무카파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거지 소년, 샤힌이 몸을 돌렸다.
무릎 꿇은 인파 사이로 멀어지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브레넌이 뒤늦게 낮은 탄식을 흘렸다.
“이런 곳에서… 찬란한 여신의 눈에 든 아이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그러게요. 신앙을 잃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계시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루시아가 읊조렸다. 이안이 눈을 끔뻑인 것도 같은 이유였다. 아주 조금이지만, 루 솔라의 신성이 저 소년의 몸속에 깃든 것이다.
의미심장한 눈빛이 된 브레넌이 읊조렸다.
“어쩌면, 이 또한…?”
“아주 진귀한 광경이군요.”
무카파의 뒤에서 감탄이 번진 건 그때였다. 무카파가 옆으로 물러나자, 종자를 대동한 채 다가오는 금발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실로 수놓은 남색 정복을 걸치고, 코와 입을 손수건으로 가린 채였다. 마구간의 악취 때문이리라.
브레넌이 호위하는, 챔버스 자작의 차남이었다.
“혹, 저에게도 축성 기도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경?”
이안과 눈이 마주친 그가 싱긋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찬란한 여신의 총애를 받으시는 분이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쩌면 제게도 은총이 깃들지도 모르잖아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 분명했다.
여전히 머릿속이 꽃밭인 놈이군.
내심 코웃음을 삼키며, 이안이 입을 열었다.
“그랬다간 기도를 청하는 인파가 구름 떼처럼 몰려들 것 같습니다만.”
“…아.”
“옳은 말씀입니다.”
공자가 탄성을 흘리는 사이, 브레넌이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소란이 커지기 전에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련님.”
그는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일어서는 행인들을 경계하듯 돌아보는 중이었다.
…겁 많긴. 피식한 이안이 몸을 돌렸다.
“그럼, 들어갑시다.”
***
코끝을 스치는 약초 냄새를 맡으며, 이안이 문 앞에 멈춰 섰다.
“마님. 손님들이 도착하셨습니다.”
“들이세요.”
대답이 돌아오자, 이안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문을 마주 보고 앉은 테사이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가 나간 사이, 벽에 딱 붙어 있던 식탁을 조금 옆으로 옮긴 게 분명했다.
식탁에는 두 개의 주석 술잔과 새 포도주가 담긴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저걸 챙겨 왔다니.’
식탁 옆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안이 실소를 삼켰다.
테사이아의 오른손에 기다란 궐련 대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끝에 고정된 궐련은 은은한 약초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선 무카파가 옆으로 돌아서며 문을 잡고 서는 가운데, 루시아가 이안의 뒤를 따랐다. 테사이아의 뒤에 서려는 것이리라.
“…….”
“…….”
샌퍼드와 하심은 늘어선 침대 앞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게 분명했다.
이안과 눈이 마주친 샌퍼드가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시는 사이.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원로.”
문 앞에 선 브레넌이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손에 든 궐련 대를 탁탁 두드리며, 테사이아가 턱을 까딱였다.
“반갑군요. 경. 들어오세요.”
비로소 안으로 들어온 브레넌이, 무카파와 마주 보고 섰다. 오른손을 들어 장내를 가리키는 채였다.
뒤에 선 금발 공자가 느긋하게 장내로 들어섰다.
“호오….”
주위를 돌아보며 낮은 감탄을 흘리는 채였다.
테사이아의 미모 때문인지, 누가 봐도 뱃사람처럼 보이는 샌퍼드와 하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침대와 침대 사이의 벽면에 기대 놓은 송곳니 대검 때문인지도 몰랐다.
종자까지 안으로 들어서자 무카파가 공손하게 방문을 닫았다.
“직접 인사드리겠습니다. 원로.”
그사이 방 한복판에 선 공자가 내뱉었다. 테사이아가 기품 있게 일어서며 대꾸했다.
“구면이니, 소개는 피차 이름이면 충분할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빙긋 미소 지은 공자가, 제국 식으로 멋들어지게 무릎을 굽혔다.
“챔버스 자작의 차남, 시몬 챔버스입니다.”
“테사이아. 테사이아 에레노스.”
루시아가 뒤편에 멈춰 서는 가운데, 테사이아가 고개만 살짝 까딱이며 내뱉었다. 시몬이 미소 지으며 굽히고 있던 무릎을 폈다.
“민망하군요. 진작 이렇게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딱히 궁금하지 않긴 마찬가지였으니, 서로 비긴 것으로 하죠.”
요정다운 말투로 화답한 테사이아가, 술잔이 놓인 맞은 편을 궐련대로 가리켰다.
“앉으세요. 맛 좋은 포도주를 준비해 두었으니.”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향이 느껴지더군요. 물론 궐련의 향도 짙긴 했습니다만, 제 뛰어난 후각을-”
철딱서니 없게 내뱉으며 식탁으로 다가서던 시몬의 목소리가 문득 잦아들었다. 술병을 집어 들던 이안이 슬쩍 그를 돌아보았다.
눈을 치켜뜬 시몬은 테사이아의 어깨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이안의 눈매가 절로 가늘어졌다.
“휴….”
가면을 벗어버린 루시아가 작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왼손으로 두건을 젖히고, 살짝 고개를 털어 머리칼을 정돈하는 채였다.
“…허.”
그리고 치켜뜬 시몬의 눈동자에는, 그런 그녀의 얼굴이 가득 맺혀 있었다. 다시 그를 돌아본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비틀렸다.
‘이 새끼 봐라…?’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561화
24.02.14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