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6
#566화
“……!”
브레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물론 그건 샌퍼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미친…!”
그는 굳어진 브레넌과 달리, 곧바로 욕지거리를 토해내며 몸을 돌렸다. 두 돛대 사이, 갑판 아래로 이어진 계단 앞으로 달려간 그가 고개를 숙인 채 소리쳤다.
“우현! 전부 노 들어! 선두를 서쪽으로 돌릴 거다! 당장 준비해! 당장!”
갑판 아래가 삽시에 부산스러워지는 가운데, 문밖으로 걸어 나온 이안이 브레넌을 돌아보았다.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린 듯, 브레넌이 눈을 깜빡이는 사이.
“공자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시오.”
이안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의 말에서 어떤 거부할 수 없는 권위를 느끼면서도, 브레넌이 입술을 달싹였다.
“경. 방금 하신 말씀은… 대체-”
“설명은 안에서 들으시오. 다들 깨어 있으니.”
시선을 돌리며 말을 자른 이안이, 그대로 선미 갑판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할 말은 다 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듯한 무심한 태도였다.
그를 잠시 멍하니 올려다본 브레넌이, 이윽고 벌떡 일어섰다.
“윽… 뭐가… 대체 뭐가 오고 있다는… 으억…?!”
맥없이 더듬대는 시몬을 힘으로 끌어당긴 브레넌이, 그대로 그를 어깨에 들쳐 매며 몸을 돌렸다.
배는 좌현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균형을 잃기 전에 객실로 들어가야 했다. 브레넌의 시선을 받은 시종도 축 늘어진 종자를 질질 끌며 그 뒤를 따랐다.
“하심! 돛을 돌려야 돼! 몇 놈 끌고 당장 튀어 올라와!”
“예! 선장!”
파도 소리를 뚫고 번지는 외침을 등진 채, 이안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배가 좌측으로 선회하면서 선체가 기울어지고 있었지만, 조금도 균형을 잃지 않은 채였다.
휘오오오오-
선미 갑판으로 들어서자, 안개 섞인 바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불사자의 두건 망토가 넘실댔다.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을 옮기는 그의 시선은, 이미 후미의 안개가 휘몰아치는 바다를 훑고 있었다.
‘역시, 미리 한숨 자 두길 잘했네.’
후측면 저 멀리. 일렁이는 안개 사이로 불길한 푸른색과 자주색이 산불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배가 선회하면서 점점 후미 쪽으로 완전히 돌아가고 있기도 했다.
쿠구-
혼돈의 정수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걸음을 옮기는 이안의 눈동자에 흐릿한 막이 서렸다. 마력 탐지. 뒤이어 혼돈력이 혈관을 타고 번지면서, 동공 한복판에 보랏빛이 선명하게 맺혔다.
사아아아아…
이안의 시야에 푸른색과 자주색 아지랑이가 노이즈처럼 뒤덮였다. 그 와중에도 저 멀리 일렁이는 형체들만큼은 한층 더 선명해졌다.
-저것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건, 어떻게 눈치챈 거야 친구?
이안이 후미의 난간 앞에 멈춰서자, 뇌리로 요그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좌측 구석으로 붙어 서며, 이안이 입술을 달싹였다.
“결국, 서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잖아.”
도주할 때도 진영을 잘 유지할 리가 없었다. 일종의 연합 함대이자 해적들이기도 했으니, 산개하며 뿔뿔이 흩어지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도 그랬다. 푸른 반딧불처럼 보이는 배들은 들쭉날쭉 제멋대로 퍼져가고 있었고, 그걸 바짝 쫓는 자줏빛 덩어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이 바다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결국은 마주칠 수밖에 없었겠네.
요그의 속삭임에, 이안은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였다.
사실 끼워 맞춘 거지만. 하고 내심 덧붙이는 채였다.
요그의 속삭임에 명상에서 깨어난 순간, 눈앞에서 퀘스트 창이 떠오르지 않았던가.
죽음의 바다. 무사히 내해를 건너 땅을 밟아야 완수되는 퀘스트였다.
‘어떻게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뜻이겠지만….’
이안의 눈매가 슬며시 가늘어질 찰나.
“그만-! 절반씩 위치 교대해! 노 전부 내밀어!”
샌퍼드의 카랑카랑한 외침이 이어졌다. 선회를 끝낸 것이리라.
하지만 선체는 여전히 삐딱했고, 언덕을 오르듯 선두 쪽이 위로 솟은 채였다. 물론 이안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의 균형 감각은 수인 전사나 요정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전속 전진! 뒈지고 싶지 않으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샌퍼드의 고함과 함께 배가 한층 더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정상에 다다른 듯 선미가 다시 위로 솟았지만, 이안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푸른색과 자주색의 물결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쿠구… 쿠구…
가장 먼데도 오히려 선명하게 느껴지는 자주색 형체가 꿈틀대며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하리라 유추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너도 느껴져, 친구? 부키키아란 놈, 아무래도 완전히 광기에 잡아 먹힌 모양인데.
…그러게.
정수를 가라앉히며, 이안이 내심 읊조렸다. 저 자주색 형체는 부키키아가 분명했다. 그리고 군도의 함대가 놈을 꽤 위기로 몰아넣었던 모양이었다.
함대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고대신을 섬기는 타락자들이기도 하지 않던가. 부키키아의 권속들은 물론, 놈에게도 꽤 큰 타격을 입히는 데에 성공한 것이리라. 더는 광기를 억누르지 못하게 될 만큼.
‘그리고 전세가 역전된 거겠지.’
부키키아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희소식이었을 터였다.
놈은 이미 상처 입었고, 폭주하며 횃불처럼 타들어 가고 있을 테니까.
제대로 권역을 형성하지도 못했으니, 가만히 두기만 해도 언젠가 자멸하게 될 터였다. 놈이 남긴 흔적이 오래도록 내해를 더럽히게 될지라도.
하지만 어쨌건, 당장 배를 지키며 바다를 건너야 하는 상황에선 그다지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히아- 아아아아-
이안은 수많은 언덕처럼 보이는 파도 너머, 밀려드는 푸른색과 자주색의 물결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고, 이 와중에도 뒤엉켜 타들어 가고 있기도 했다. 귓가를 스치는 흐릿한 괴성은 착각이 아닐 터였다.
쿠르릉-!
선두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먹구름 낀 밤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넘실댔고, 멋대로 번쩍이며 천둥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안의 눈에는 뒤엉킨 혼돈이 눈부시게 산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안-!”
뒤에서 테사이아의 외침이 번진 건 그때였다. 낭떠러지처럼 기울어진 계단을 날렵하게 기어오른 그녀가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혼돈을 거둬들인 이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늦었네.”
“미안…! 나도 준비를 좀 하느라고.”
미끄러지듯 멈춰선 테사이아가, 난간을 붙잡으며 미소 지었다.
말과 달리, 가죽 장화와 팔목 보호대 정도만 추가로 착용한 상태였다. 그 외의 방어구들은 의미가 없다고 여긴 것이리라.
“모로는 줄을 풀어 뒀고, 동생이랑 들창코는 선실에서 선원들을 지키기로 했어. 새싹은 마차 안에 모포를 둘둘 둘러서 박아 뒀고. 배가 침몰한 게 아니면 절대 나오지 말라고도 해 뒀어.”
벌떡 일어선 테사이아가 쏟아내듯 말을 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덧붙였다.
“애송이 일행은?”
“알아서 하라고 했지, 뭐. 대충 상황만 설명해 줬어.”
테사이아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함대와 싸우는 게 대마족이라는 말을 했을 때 그자들이 지은 표정을, 이안도 봤어야 했는데. 금발은 바로 다시 토하더라니까.”
“…그러느라 늦은 거군.”
헛웃음을 흘린 이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테사이아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배 후미로 시선을 돌렸다.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져 있을 줄 알았는데. 하필 이럴 때 나와서 파도밖에 안 보이네.”
파도가 아니라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고 해도 믿을 광경이었다.
파도가 이렇게까지 거대해진 건 물론, 부키키아의 영향이리라. 권역을 형성하지는 못했더라도, 바다는 놈의 영역인 것이다.
“어쨌든….”
불쑥 솟은 나무 틀 너머의 우측으로 고개를 돌린 테사이아가, 느릿느릿 입술을 달싹였다.
“다들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고 있네.”
이안의 고개도 옆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물의 언덕들이 펼쳐지고 있는 바다 저 너머. 하늘이 번쩍일 때마다 위태롭게 파도를 넘는 배들의 모습이 듬성듬성 드러났다.
-괴물들이 포식하는 날이군.
요그가 키득대며 속삭였다.
늘 그렇듯, 녀석은 그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콧방귀를 뀌며 반대쪽도 돌아보고 있던 테사이아가 이내 덧붙였다.
“저쪽에는 왜 배가 있지? 분명히 우리가 제일 빨랐는데.”
이안의 고개가 우측 선두 쪽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말대로 산 정상에 오르듯 파도를 넘는 배의 모습이 손톱만 하게 보이고 있었다.
“다른 항구에서 출발한 배겠지.”
“아, 그래…. 룬 카티스 서쪽에도 항구가 더 있었지? 그럼 우리보다 빠를 만하네.”
테사이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안은 시큰둥하게 위로 시선을 움직였다.
“계속 저어-! 멈추지 마!”
샌퍼드의 외침이 메아리치고, 배가 다시 선미 쪽으로 기울어졌다.
또다시 파도를 넘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휘어진 돛을 올려다본 이안이 다시 고개를 돌릴 찰나.
“확실히, 이야기로 들은 것과 직접 경험하는 건 전혀 다르네.”
내뱉으며, 테사이아가 그의 입술 앞에 궐련을 가져다 댔다.
어느새 그녀도 궐련을 입에 물고 있었다. 선선히 궐련을 입에 문 이안이 손아귀에 불꽃을 피워냈다.
“긴장되나 보지?”
“응. 엄청.”
대답한 테사이아가 궐련에 불을 붙였다. 자신의 궐련에도 불을 붙인 이안이, 커지는 불덩이를 바다로 휙 던지며 내뱉었다.
“사실 나도 그래.”
“괜찮을 거라고, 다 잘 될 거라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테사이아가 미간을 슬쩍 좁히며 되물었다. 궐련의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신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바다에서 해수들과 싸워보는 건 나도 처음이거든. 물론, 해적도.”
“이상한 부분에 솔직하다니까….”
테사이아가 풀썩 웃음을 흘렸다. 곧 그녀의 시선이 파도 너머로 드러나기 시작한 바다로 돌아갔다.
“…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연기 섞인 탄식이 번졌다. 안개가 휘몰아치는 바다 너머로 푸른색과 자주색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어서일 터였다.
이제는 이안도 그것들의 형체를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유령선을 방불케 하는 함선들과 괴상하게 생긴 거대 해수들.
-장관이군….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이 궐련의 연기를 내뿜었다.
현대인 출신인 그의 눈에 저 괴물들은, 공룡이나 심해어처럼 보였다. 물론 두족류같이 생긴 것들도 종종 섞여 있었다. 하나 같이 야나르를 떠올리게 할 만큼 거대했다.
키에에에에에-
저로 뒤엉킨 괴물들이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사방에서 크고 작은 괴성들이 어지럽게 메아리쳤다.
함선들은 노를 젓고 있지 않은데도 엄청난 속도로 파도를 갈랐다.
한순간 물속에 파묻혔다가 다음 순간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주위의 바닷물이 기화하듯 자욱하게 수증기를 뿜어냈다.
“이안과 동생은, 벽 너머에서 저런 것들과 싸운 거구나….”
압도된 듯 그 광경을 지켜보던 테사이아가, 이윽고 읊조렸다.
이안이 궐련을 입에 문 채 대답했다.
“저놈들은 나도 처음이라니까….”
“…그래서, 계획이 뭐야. 이안?”
그를 돌아본 테사이아가, 바다 쪽으로 고개를 까딱이며 덧붙였다.
“이대로면 머잖아 따라잡힐 것 같은데. 늘 그렇듯이, 열심히 잘 싸우면 돼?”
해상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저건 움직이는 전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착실히 그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테사이아를 잠시 내려다본 이안이, 이윽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먼저 물어봐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
“응…?”
테사이아가 눈을 끔뻑이는 가운데, 이안이 그녀처럼 선두 쪽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이 배의 선장은 내가 아니잖아.”
“나리-! 나리!”
샌퍼드의 외침이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눈을 끔뻑인 테사이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다급하게 갑판으로 올라온 샌퍼드가, 굴러떨어지듯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안과 테사이아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좌우로 슬쩍 물러나자, 그가 그대로 난간에 부딪히며 멈춰 섰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샌퍼드가 팔의 고통 따위는 진작에 잊은 듯한 절박한 얼굴로 내뱉었다. 그를 내려다보며, 이안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건 손님인 내가 할 말 같은데.”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부적!”
솟구치듯 벌떡 일어선 샌퍼드가 덧붙였다.
“제 부적이 필요합니다!”
“…광풍의 부적?”
이안이 한쪽 눈썹을 꿈틀대며 물었다. 목이 떨어질 듯 고개를 끄덕인 샌퍼드가, 오른팔을 옆으로 뻗으며 말을 이었다.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도 점점 따라잡히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노잡이들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으니까요! 지치든 따라잡히든, 어느 쪽이건 개죽음-”
“알겠으니까,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나 말해 봐.”
이안이 말을 잘랐다. 망토 자락에 감춰져 있던 오른팔을 슬쩍 앞으로 내미는 채였다.
샌퍼드가 떠드는 사이 아공간을 뒤적인 그의 오른손에는, 거무튀튀한 부적이 들려 있었다.
“가, 간단합니다…!”
눈을 치켜뜨며 내뱉은 샌퍼드가, 옆으로 뻗었던 오른팔을 뒤로 돌렸다.
테사이아가 상반신을 젖혀 피하는 가운데, 샌퍼드가 난간 위에 고정되어 있던 나무 틀에 손을 얹었다.
“여기에 쓰는 겁니다!”
“아하…?”
이안의 시선이 나무 틀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마차 바퀴를 옮겨 놓은 듯한 한복판으로.
“이 마개에 부적을 놓은 뒤에 마력을 흘려 넣고, 이 안에 고정하는 겁니다! 이렇게요!”
품에서 찻잔 받침대처럼 생긴 돌판을 꺼내 틀 한복판의 구멍에 댄 샌퍼드가, 뒤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는 재빨리-”
“줄 중간에 달린 도르래를 돌려서, 틀을 배 뒤로 내리면 되겠고.”
이안이 말을 받았다. 샌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곧 엄청난 바람이 뿜어져 나와 배를 밀어줄 겁니다! 아주 빨라지게요!”
…진짜 부스터였네.
이안의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이건 해적선이나 군함 따위를 마주쳤을 때 도망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제 마석 반지도 함께 드리겠습니다…!”
그사이 손가락을 입에 문 샌퍼드가 낑낑대며 덧붙였다.
“저 대신 부적에 마력을 흘려 넣어 주십시오! 저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마력은 걱정하지 마.”
그의 손에서 마개를 빼앗으며 말한 건 테사이아였다. 샌퍼드의 시선을 받은 그녀가, 궐련을 입에 문 채로 미소 지었다.
“아주 유능한 마법사가, 여기 있으니까.”
“아하?! 다, 다행이군요…!”
샌퍼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침을 삼킨 그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로!”
“한 번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내뱉은 이안이, 손에 든 부적을 던졌다가 받으며 덧붙였다.
“이 부스터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말이야.”
“부스터가 무슨…?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멍하니 읊조리다 재빨리 고개를 턴 샌퍼드가 말을 이었다.
“저도 연달아 사용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마력만 충전한다면, 분명 바로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용했는데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니까요. 정비도 철저하게 해 뒀고요!”
“걱정 마. 마력은 충분하니까.”
테사이아가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샌퍼드가 간절한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노잡이들이 쉴 동안 몇 번만 사용해 주시면 됩니다. 그 뒤엔, 번갈아 반복할 겁니다.”
배가 파도 정상에 다다른 건 그때였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드러난 바다를 돌아본 샌퍼드가, 마른 침을 삼키고는 덧붙였다.
“해, 해협 인근은 수심이 그리 깊지 않습니다. 저 괴물들도 그 근처로 접근하는 건 어렵습니다. 거기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홱 테사이아를 돌아본 샌퍼드가 와락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테사이아가 질색하듯 인상을 찌푸리는 가운데, 그가 덧붙였다.
“그러니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의 목숨이, 두 분께 달렸습니다!”
“알았으니까, 이 손이나 놔.”
테사이아의 싸늘한 대답에 냉큼 손을 놓은 샌퍼드가 고개를 돌렸다.
“나리. 저 도르래는 줄을 타고-”
“알아서 할 테니까, 가 봐. 준비해야 할 게 있다며.”
이안이 궐련의 재를 털며 말했다.
멈칫한 샌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호를 드리겠습니다!”
테사이아와도 눈빛을 교환한 그가 허둥지둥 몸을 돌렸다. 선두가 아래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어서, 그는 또다시 반쯤 구르듯이 중앙 갑판으로 멀어졌다.
“하심! 돛 당길 준비해! 당장-!”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이어지는 가운데, 궐련을 입에 문 이안과 테사이아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손에 든 마개를 슬쩍 흔들며, 테사이아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더 정신 나간 계획인데? 당장 해 보자.”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567화
24.02.23
대여
2일 23시간 남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