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ark Fantasy Villain RAW novel - Chapter 578
#578화
퍼석-!
흑마법사의 전신에서 암녹색 마력이 단말마처럼 흩날렸다. 주문이 깨진 여파이리라. 파르르 경련한 놈이 통나무처럼 뒤로 넘어갔다.
이안은 이미 놈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세를 낮춘 채 비스듬하게 한 걸음 내디디며 몸을 휘돌리는 중이었다.
쒸아악-
돌진하듯 몸을 날린 타락자가 녹슨 외날 검을 내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신성을 머금은 불사자의 두건 망토가 휘몰아치고, 그 앞으로 육각형을 그리는 백금 방벽이 뿜어져 나왔다.
콰지직-!
망토 자락을 내리친 타락자의 옆구리에 방패 표면이 틀어박혔다. 몸이 옆으로 구겨진 놈이 그대로 대포알처럼 튕겨 나갔다.
콰장창창-
갑판을 가로지르며 나뒹군 타락자가 반대편 난간에 목각 인형처럼 처박혔다.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선체가 출렁이면 그대로 바다로 떨어지리라.
물론, 이안은 이미 뒤따라 달려드는 또 다른 타락자를 향해 땅을 박차는 중이었다.
‘죄다 토 나오게도 생겨 먹었네.’
전신이 번들대는 점액으로 뒤덮인 놈이었다. 마찬가지로 점액이 흥건한 작살을 창처럼 움켜쥔 채였다.
작살이 뻗어 나오기도 전에, 아귀를 닮은 면상 한복판에 방패 날이 깊숙이 틀어박혔다.
그 아래, 길게 찢어진 입이 뻐끔댈 찰나.
퍼억-!
진공 폭발이 놈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 버렸다. 체액과 살점이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이안이 놈의 몸통을 무릎으로 후려치며 밀어붙였다.
카드드드드-
점액에 뒤덮인 몸통이 주르륵 밀려나다 멈춰 섰다. 몸통을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던 이안은 더 앞으로 미끄러졌다. 목 단면에서 흘러나온 체액이 그의 무릎과 발끝을 축축하게 적셨다. 물론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뒈져라-!”
달려드는 타락자들 한복판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갑각류가 융합된 듯한 놈이, 오른손 대신 튀어나온 집게발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쒸에엑-
그 옆에는 불어 터져 번들대는 놈이 녹슨 칼을 들이밀었다. 반대편 옆에는 또 다른 놈이 문어 다리 같은 기다란 촉수를 채찍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옛날에 해적 영화에서 비슷한 놈들을 본 것 같은데.’
생각하는 와중에도, 이안은 좌측 저 멀리 널브러진 흑마법사의 시신을 일별했다.
쉬학-!
동시에 놈의 면상에 박혀 있던 검이 빨려들듯 날아들었다.
사그라들던 광검의 칼날이 꼬리처럼 기다란 궤적을 그렸다. 백금 방벽을 치켜든 이안이 오른팔을 그 아래로 내민 건 거의 동시였다.
쿠웅-
거대한 집게발이 철퇴처럼 방벽 위를 내리치고, 검의 자루가 이안의 오른손에 잡혔다. 마력의 칼날이 다시 눈부시게 치솟는 가운데, 이안이 오른팔을 앞으로 훑듯이 휘둘렀다.
콰과과과과- 과과곽-!
본모습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 상태에서도, 광검은 날에 닿은 모든 것들을 막힘없이 가르며 지나쳤다.
불어 터진 놈의 하반신. 집게발을 내리친 놈의 갑피로 덮인 하체. 그리고 옆으로 휘어진 채 날아들던 빨판이 잔뜩 돋아난 촉수까지.
“커허…!”
“아… 아아악-!”
타락자들의 비명과 함께, 잘려 나간 촉수가 이안의 앞뒤로 스치고 지나갔다. 오른팔을 힘으로 멈춰 세운 이안이, 그대로 땅을 박찼다.
콰지지직-
비명을 토해내던 갑각 타락자의 상반신이 방패에 짓눌리며 밀려났다. 이안은 놈의 오른쪽 뒤편, 잘려나간 촉수를 내려다보는 문어 머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서걱-!
비스듬하게 치솟은 광검의 궤적이 놈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 버렸다. 뒤따라 달려들던 다른 놈의 팔뚝 하나도 함께 썰어버리는 채였다.
“저, 저런 미친…! 괴물인가…?!”
“아악-! 으아악-!”
비명과 고함, 그리고 샛노란 궤적이 만들어내는 죽음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안은 일말의 망설임이나 자비도 없이 타락자들을 베어 넘겼다.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서였다. 이 순간에도 테사이아가 해수들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은가.
서걱-! 콰지직-!
의념의 손아귀나 백금의 발톱 같은 것들을 아끼지 않고 휘둘러대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차피 한 시간 남짓만 버티면 되지 않던가.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아마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지금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말 그대로… 일방적이군.
요그가 즐거운 듯 속삭였다.
녀석은 어느새 널브러진 시체 사이를 누비며 이안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타락자들의 혼돈으로 만찬을 벌이고 있기도 했다.
-…호오.
녀석이 멈칫한 건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물론 이안이 몇 개의 죽음을 더 만들어낸 이후이기도 했다.
사아아-
배를 감싸고 안개처럼 넘실대는 푸른빛이 한순간 더 음산하게 짙어졌기 때문이다. 갑판 아래 어딘가에서 번지는 오염된 마력의 파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본데.
갑판의 틈 사이로 푸르스름한 안개가 스멀스멀 번지고, 공포와 분노가 뒤엉켜 있던 타락자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무표정하게 전투를 이어가던 이안이 백금 방벽을 치켜든 건 거의 동시였다.
슈화아아- 콰아아아-!
삽시에 짙어진 푸른 안개가, 그대로 충격파가 되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안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뒤편에 흥건하게 널브러진 시체 토막들과 그 사이의 요그도 마찬가지였다.
“과연…! 대단하구나! 용살자…!”
충격파 너머에서 분노와 감탄이 뒤섞인 외침이 이어졌다.
한층 높이 솟은 후미 갑판 위. 수레바퀴 같은 조타 키를 움켜쥔 함장의 목소리였다.
쿠득… 쿠드득…!
동시에 휘몰아치는 안개 너머, 타락한 선원들의 몸이 꿈틀대며 변이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인간성이 사라지고, 완전한 심해의 하수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리라.
“소문대로, 아니… 그 이상이야!”
여전히 한 손으로 키를 움켜쥔 함장이, 전신에 수증기처럼 일렁이는 푸른 혼돈을 두른 채 소리쳤다.
꿈틀대는 촉수들 아래의 파란 눈동자에, 망토와 백금 방벽으로 몸을 가린 이안의 모습이 맺혔다.
“실종되어 전설이 된 줄 알았건만…. 기어코 살아 돌아왔나 보군. 저 빌어먹을 제물과 그 권속들처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이안이 백금 방벽을 떨치듯 휘둘러, 잦아드는 충격파의 잔재를 털어낸 건 그때였다. 망토가 펄럭이며 몸을 가리는 가운데, 그가 가라앉은 눈으로 함장을 올려다보았다.
“내 소문이 바다도 건넜나 보군.”
“물론이지! 타오르는 붉은 신성! 빛의 검과 황금의 방패…! 천둥을 부리며 신의 화신을 죽였다지? 이렇게 직접 보니, 과연 그럴 만-”
“안다니 잘됐네.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기다려.”
말을 자른 이안이, 그대로 변이 중인 타락자들에게로 몸을 날렸다.
“그럼,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까.”
혼잣말처럼 덧붙인 그가, 다시 광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직 채 변이를 끝내지 못한 타락자들이 속절없이 토막 났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용살자…!”
함장의 외침이 이어졌다. 그의 뒤편에서 변이를 끝낸 선원들이 비척대며 밀려 나왔다. 선미 양쪽의 대형 쇠뇌를 쏴대던 놈들까지 모조리 꼭두각시로 변한 것이다.
“공통의 적이 있으니까! 여기서 날 죽인다면, 너 역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이안은 이어진 목소리에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쉴 새 없이 베고 후려치면서 계단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크르륵…!”
“기아- 아악-!”
변이를 끝낸 선원들은 짐승 같은 숨소리를 토해내며 훨씬 더 위협적으로 달려들고 있었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안은 여전히 빠르고 무자비했으며, 그가 움켜쥔 광검과 금빛 방패는 가로막는 것들을 짓이기고 토막 냈다.
“제기랄…! 내 말 좀 들어! 정말 같이 죽고 싶은 거냐?!”
한 손으로 키를 움켜쥔 채, 함장이 분통을 터뜨리듯 소리쳤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도 새로운 촉수들이 수염처럼 자라나고, 몸 곳곳에 검푸른 비늘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네가 멈춘다면 나도 그러겠다…! 대화! 잠깐이라도 대화라는 걸 나눠 보자고!”
절박한 호소에도 달라질 건 없었다. 순식간에 계단에 접어든 이안은, 계속해서 죽음을 생산해내며 걸음을 옮겼다.
충격파와 시야를 가리는 안개. 심해의 하수인들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내, 내가 혼자 죽을 줄 아냐?!”
함장이 발악하듯 소리친 건, 이안이 기어코 계단을 전부 올라와 갑판에 들어선 직후였다.
“이대로 배를 침몰시킬 수도 있어! 네놈을 길동무로 삼을 수도 있단 말이다…!”
“…….”
상어처럼 변한 선원을 토막 낸 이안이, 비로소 함장을 돌아보았다.
슬쩍 미간을 좁히고, 거칠어진 숨을 고르는 채였다.
협박이 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방금 그가 죽인 놈이 마지막 하수인이었으니까.
“비, 빈말이 아니라고…!”
우묵하게 가라앉은 눈을 마주 보며, 함장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내가 죽으면 너도 곧 죽게 될 거다. 이미 배의 속도를 조금 늦췄지. 네가 어쩔 수는 없을 거다. 이 배는, 오직 나만 통제할 수 있으니까…!”
목소리와 촉수들이 떨리는 건, 그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 어떤 흑해의 해수도. 설사 함대장이라 해도, 심해의 은총을 받은 어인들을 저렇게까지 일방적으로 학살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애원을 협박처럼 하는 재주가 있군.”
비로소 이안이 나지막이 내뱉었다. 오른손의 광검을 비스듬하게 늘어뜨리는 채였다.
함장에게 희망을 주기에는 충분한 변화였다.
“그게 사실이니까. 이 배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내 명령만을 따른다고. 네가 죽인 내 부하들이 그랬듯이.”
키 한복판에 박힌, 푸른 빛을 머금고 일렁이는 정수를 일별한 함장이 다시 이안을 마주 보았다.
“너도 죽고 싶지는 않겠지, 용살자? 그러니 협력하자. 나도 네가 내 부하를 전부 죽인 건 잊도록 하지. 어차피 저런 얼빠진 것들은 얼마든지 다시 구할 수 있어.”
재빨리 내뱉은 그가, 왼팔을 들어 선미 너머를 가리켰다.
뒤편의 파도 아래에는 자줏빛이 넘실대며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멀리서 번지는 폭음과 포효 역시, 여전히 어지럽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네가 저 빌어먹을 것들을 상대해. 그동안 나는 여기서 배를 몰 테니까. 배신할 걱정은 마라. 어차피 나는 네 상대가 못 되니까. 함께 내해를 벗어나 보자고.”
“넌 여기서 움직일 수 없나 보군.”
이안이 담담하게 덧붙였다. 함장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배를 통제하려면 이걸 잡고 있어야 하거든.”
“그럼 그 손을 떼면, 자폭도 할 수 없단 말이네.”
“물론…. …뭐?”
함장이 되물은 순간, 이안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른팔을 내뻗었다. 그의 손을 떠난 광검이 회전하며 뿜어져 나왔다.
서걱-!
방향타를 쥔 함장의 오른팔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비늘이 돋아난 굵은 팔도, 용의 마력이 응축된 칼날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아직 왼팔이 남았지만, 함장은 다시 키를 붙잡지 못했다.
쉬하악-
이안이 뒤따라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금 방벽을 앞으로 내뻗은 채였다. 뾰족한 방패 날이 함장의 목에 틀어박혔다.
꽈지지직-!
그대로 뒤로 쓰러진 함장이, 이안의 무릎에 깔린 채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건, 백금 방벽이 목에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어서였다.
오른팔을 앞으로 내뻗으며, 이안이 덧붙였다.
“설명 고맙다.”
광검이 빨려들듯 그의 손아귀로 되돌아온 건 거의 동시였다. 자루를 움켜쥔 이안이, 그대로 방패 위를 훑듯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잘려나간 함장의 머리가 옆으로 나뒹굴었다. 모자가 완전히 벗겨지면서 머리카락처럼 돋은 수많은 촉수가 드러났다. 죄다 발작하듯 꿈틀대고 있었다.
푸화악-
머리를 잃은 몸통에서 피가 치솟았다. 그대로 일어선 이안이, 곧바로 광검을 내리쳐 몸을 세로로도 갈라 버렸다.
“컥… 콜록….”
촉수들을 꿈틀대며 널브러진 함장의 머리가 피를 토한 건 그때였다.
그는 목이 잘린 채로도 바로 죽지 않았다. 고통스럽게 인상을 찌푸린 채, 잘린 단면과 입에서 연신 피를 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를 관찰하듯 돌아본 것도 잠시.
사아아…
이안이 백금의 발톱을 비활성화하며 몸을 돌렸다. 백금 방벽 역시 뒤이어 사그라들었다.
진은 강철 검을 검집으로 되돌리며, 이안이 곧바로 키로 다가갔다.
“쿨럭… 큭… 크흐… 흐흐흐….”
피를 토하던 함장이, 이윽고 나지막한 웃음을 터뜨렸다.
왼손의 갈고리를 떨어뜨리고는 키를 움켜쥐는 이안을 바라보며, 함장이 피 묻은 입술을 달싹였다.
“후회할 것이다… 용살자…. 이 함선은 정말… 나만이….”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죽음이 찾아와서가 아니었다.
이안의 전신에서 두근대며 번지는 생경한 파장을 느껴서였다.
사… 아아아아…
키 한복판에 푸르스름하게 빛나던 정수가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직후였다. 배 주위로 안개처럼 넘실대던 푸른 빛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함장의 눈에, 비로소 경악이 번졌다.
“혼… 돈…?!”
다크 판타지의 망캐가 되었다
579화
24.03.15
대여
2일 23시간 남음
오